무깟디마 The Muqaddimah - 이슬람 역사와 문명에 대한 기록
이븐 칼둔 지음, 김정아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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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놀랐다. 1200페이지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두꺼울 줄은 몰랐으니까. 놀라움을 뒤로하고 책을 열어보니 여백과 같은 꼼수(?)도 없이 빽빽한 글로 채워져 있었다. 분량도 벅차고 보기만 해도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설레는 마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무깟디마》. 이슬람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역사서라고 칭송받는 책. 동양에 《사기》가 있고, 서양에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면 이슬람에는 《무깟디마》가 있다. 역사를 전공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책이고, 역사를 떠나 세계의 위대한 문헌으로도 유명한 이 저서가 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이슬람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문명의 주류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서양이다. 근대 식민지 시대, 서구 열강은 다른 대륙들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문명을 은연중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대다수 국가들은 좋던 싫던 서구문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서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슬람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특히 이슬람 문화는 서구문명의 근원을 이루는 가톨릭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대립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양 문명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린 시절 나는 《무깟디마》의 편역본인 《역사서설》을 읽었다. 《역사서설》은 《무깟디마》를 축약하여 번역한 영역본을 한국어로 이중 번역한 책인데, 책에 담긴 이븐 칼둔의 논의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기에 나는 은연중에 완역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근 원전 완역본이 개정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고무됐다. 새롭게 완역된 책을 접하고 천천히 읽어보니, 이슬람은 역시 유구하며, 뛰어난 문화를 간직한 곳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칼둔이 살았던 시대는 14세기로, 이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였다. 내가 놀란 점은 14세기에 아랍인들이 인지하고 있었던 세계관이다. 칼둔은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적도와 위도를 중심으로 문명이 나눠진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기후가 사람의 행동을 규정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14세기를 기준으로 볼 때에는 굉장히 앞서있는 생각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 조선이나 중국의 역사가들은 왕조의 유지와 효율적인 통치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칼둔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명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법칙을 고찰하고자 노력하였기에, 생각의 폭이 훨씬 넓다고 볼 수 있겠다.


칼둔이 살았던 시기, 이슬람 문화권은 동양과 마찬가지로 군주정 국가가 많았다. 《무깟디마》 역시 문명에 본질이 왕조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나아가 동양의 사가들과 마찬가지로 군주의 바람직한 통치에 대해서도 밝혀놨는데, 핵심 개념이 바로 '아싸비아'다. 왕조를 건국하기 위해서는 특정 부족이 아싸비아를 가져야 한다. 아싸비아를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연대의식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단순한 연대의식을 넘어 사회를 주도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역량과 리더십 등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아싸비아를 보는 순간, 나는 불현듯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비르투가 떠올랐다.


두 개념은 지도층의 역량과 리더십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무척 비슷하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혈통이나 혈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 개인의 자질과 역량에 집중하는 반면, 아싸비아는 군주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혈통, 가문, 그리고 가신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비르투를 통하여 국민 개개인의 비르투 정신을 고취시켜 국가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반면 이븐 칼둔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통치세력이 아싸비아를 오로지 독점해야 하며 군주가 아싸비아를 상실하게 되면 가신이나 인척 등등의 아싸비아에 굴복할 수밖에 없고, 왕조의 교체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즉 국가에는 여러 아싸비아가 존재할 수 있지만, 가장 강한 아싸비아를 가진 집단이 왕좌를 차지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아싸비아 이론은 왕조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의미하는 '순환론적 사관'으로 이어진다. 왕조의 순환론적 사관으로 살펴볼 때, 아싸비아는 동양의 천명사상과 흡사하다. 동양에서는 집단이 천명을 얻으면 나라를 개국할 수 있고, 천명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도 칼둔 역시 통치계급이 아싸비아를 잃게 되면 왕권을 빼앗긴다고 했으니, 두 개념은 무척이나 닮았다.


《무깟디마》를 읽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료의 비판적인 시각을 주장한 것과 다르게 종교의 권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적 문헌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문헌들을 두고 칼둔은 비판적인 시각보다 종교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마 당시 이슬람 사회에서 종교는 절대적이었기에, 칼둔은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여 종교에 대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 같다. 이런 칼둔과는 다르게 마키아벨리의 역사관과 정치관은 무척 개방적이다. 마키아벨리는 당대에 주류 세력이었던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역사와 정치를 해석하는 데 있어 종교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고 현실 정치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아무튼 무척 방대한 저작을 통하여 14세기 이슬람 문화와 사회 구조를 소상하게 알 수 있었는데, '세계 3대 문명'이라는 문구처럼 아랍과 이슬람 문화는 무척 뛰어났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런 명저들이 하나둘씩 발간되어서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하루빨리 종식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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