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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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고전과 신화이야기는 힘을 잃은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에 살아 숨쉬고 있다. 티비나 영화, 책을 읽으면서 ‘이거 어디선가 본것 같아!’ 하는 느낌이 들때, 고전이나 신화의 변주인 경우가 많다. 변주에 변주는 거듭되고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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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여인>은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운명이라는 단단한 바탕을 깔고 신화를 훌륭하게 변주한 이야기이다. 변주라기보다는 현대적인 재현에 가까운것 같다.
젬은 30년전, 우물파기 일을 하며 겪은일을 회상한다. 아버지가 떠난 후 우물파기 일을 하며 만난 우스타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극단에서 연기를 하는 빨강머리여인에게 강렬하게 이끌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기에 경험한 일들은 평생 젬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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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보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젬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 어린시절 자신의 의지로 한 행동에서 비롯된 일들이 삶을 이끌어 간 것이었다. 젬이 끝내 알지 못한 비밀들, 그의 삶은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의지와 그에 따른 죄책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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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계속해서 <오이디푸스 왕>과 <왕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동양과 서양의 신화가 비교되고 결합되어 가는것이 꽤나 흥미롭다. 동서양의 신화를 대하는 진지하고 비밀스러운 태도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섞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참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자꾸 이끌리듯 읽게 되었던 것은... 어려운 이야기를 탁월하게 이끌어가는 글의 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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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클라우드 5
유윤종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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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푸치니가 유명한 예술가라는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작품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예술가의 생애를 알아간다는 것이 나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푸치니의 생애 뿐 아니라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했던 오페라라는 하나의 예술세계를 알게 된 귀한 경험이 되었다. 책 한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전혀 몰랐던 세계를 만나고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뭐랄까, 엄청 뿌듯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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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는 짓궂은 장난을 잘 치기도 하고, 때론 수줍기도 했으나, 음악작업을 할 때는 괴팍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던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엄청 잘생겼고 세련되기도 하다) 자신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잘 알고 아낌없이 펼쳐낸 작곡가였다. 유윤종 작가의 시선을 쫓아 푸치니의 유년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따라가며, 친절한 설명과 소개를 익히다 보니... 결국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어떤 번뜩이는 영감의 순간적 결과물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삶과 고민의 흔적, 그리고 시대의 이야기가 반영된 하나의 온전한 세계임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이 탄생하게 된 역사와 그 과정을 알게 되니 더욱 깊고 넓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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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의 오페라를 직접 본 적도 없고, 음악도 여기저기 삽입된 짧은구절 정도만 귀에 익은 정도였는데... 책을 읽으며 푸치니의 음악을 찾아 듣다보니 그 매혹적인 분위기에 완전 푹 빠지게 되었고, 꼭 오페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나의 서사를 관통하는 푸치니 음악을 눈과 귀로 함께 감상하게 된다면 아마도 엄청난 전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텍스트를 통해 음악의 선율을 느껴보는 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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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거장의 생애를 정신없이 여행하고보니,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되고 나아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처음부터 챙겨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나. 무려 100권이라는데... 시리즈물의 유혹은 이렇게나 강력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친절하고 의미있는 책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음엔 어떤 책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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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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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이야기를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보게 되다니. 이 어색한 조합, 과연 정체가 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재밌고 유쾌한 반전매력!! 유머러스하고 위트 넘치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었다. 이렇게나 생동감 넘치고 재밌는 에세이를 만나게 되다니, 놀랍고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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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아마추어 여자축구팀에 입단하게 된 혼비씨.(작가님) 초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생활을 하다가 스포츠를 하게 되며 겪게 된 시행착오와 적응, 그리고 축구기술을 익히며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신나게 쫓아가다보면... 축구장은 커녕 살면서 축구공 한번 만져보지 못한 나지만, 당장 축구장에 달려 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각양각색의 여자들이 피치위에 모여 규칙에 따라 축구를 하며,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는 모습이 어쩜 그리 사랑스러운지... 아니 그 모습들을 어찌나 사랑스럽게 그려냈는지. 작가님의 표현력, 완전 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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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여자축구를 하는 사람을 대하는 반응은 처음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기해하고, 의아해하는... 극단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역할의 틀에 박힌 생각이었다는 걸, 나 또한 지금껏 깊이 고민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여자로서 직접 축구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라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여자들은 왜 학창시절에 축구를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것일까?

특히 나와 같이 여중, 여고를 다녔던 사람에게는 비단 축구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배제와 차별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은 자극이 더해진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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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 머리를 질끈 묶고, 날씬한 몸이 아니라 근력을 단련하는 그 열정이 나에게도 전달되어 마음 한구석이 후끈해 지는 느낌이었다. 덩달아 축구의 깨알지식을 알게 된 것도 꽤 쏠쏠한 재미였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모습, 그것을 글로 전하는 일은 이렇게나 반짝거리고, 보는 사람까지 가슴 뛰게 하는 일이다. 한번 빠지면 답도 없다는 축구의 매력, 나도 빠져들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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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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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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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공포를 느끼는 것은 결국 어떤 상황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오락으로 즐기는 것도 알지만... 왠지 나는 나이가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매번 움찔하고 공포에 압도당하는 편이었다. 여름을 맞이하여 야심차게 스릴러 소설에 도전해 보았지만, 읽기 전 단단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스릴러의 매력은 어찌나 강력한지...!! 처음부터 휘몰아치는 전개에 완전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중간에 쉬었다 읽으면 계속 생각날 것 같아서 쉬지 않고 읽다보니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다 읽어버렸다. 400페이지 가까운 책이었는데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잊고 있었던 스릴러의 재미에 완전 푹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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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캐시는 동료교사들과 모임을 다녀오는 길에 한적한 숲속 도로에 멈춰선 차 안의 여성을 목격하지만, 도움을 주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그 여성이 살해되었다는 것과 그녀가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인 것을 알게 되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 후로 매일 걸려오는 그냥 끊기는 전화, 그리고 자꾸만 심해지는 건망증과 망상증... 남편과 친구, 그리고 동료들 모두 캐시를 걱정하고 위로하지만... 결국 절망적인 상황의 끝을 찾아낸 것은 캐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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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없는 공포를 느끼는 기분을 너무 잘 안다. 아직도 나는 혼자 있는 집에서 아주 작은 소리라도 나면 온 집안의 구석구석을 다 살펴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인다. 계속 이어지는 공포와 자기의심의 시간을 견뎌내고... 결국 믿을 것은 자신의 마음과 기억뿐임을 캐시 스스로 찾아내어 다행이었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캐시를 보며 나 또한 얼마나 안도했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타인을 의지하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뒤통수가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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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쫄깃한 긴장감과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재미에 완전 푹 빠졌다. 주인공 캐시가 공포에 떨 때 같이 숨 죽였고, 사건을 해결해 나갈 때 어찌나 통쾌한 기분이 들던지! 작가 B.A 패리스의 흥행작 비하인드의 후속작이라고 하던데, ‘비하인드를 못 읽어본 나로서는 이 책보다 더 재밌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모든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지는 마지막 50페이지는 정말 순식간에 휘리릭 읽어냈다. 오랜만에 스릴러를 읽고 나니 공포에 대한 새로운 자극이 느껴졌다. 올 여름이 가기 전에 스릴러를 조금 더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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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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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p342.

 

40년 넘게 청부살인업자로 살아온 60대 여성킬러 조각’. 나이가 들면서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은데... 점점 타인에게 관심과 연민을 느끼고 마는 스스로에게 당혹감을 느낀다. 그저 말 한마디 더하고, 손 한번 내밀어 볼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녀 삶의 비애가 나에게도 전해져와 자꾸만 공허한 한숨이 나왔다.

 

책을 다 읽고도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했던 파과라는 제목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 뜻 중에, ‘흠집난 과일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일까. 간신히 과일의 구실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예쁘다고 해주지 않는 파과’.

냉장고에 넣어둔 것을 잊어버린 사이, 검게 변해 냉장고 벽에 눌러 붙은 복숭아를 간신히 떼어내며 조각은 그것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상실의 한 가운데를 살아간다는 것, 그 절망감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조각의 모습이 너무 쓸쓸하고 먹먹했다.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을 두 권 이어 읽으면서, 감각적이고 섬세한 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소외된 사람을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으며, 그저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누구에게나 빛나는 순간이 있음을... 동화처럼 이야기에 녹여내었다.

사람들의 시선 밖의 소외된 구석에서 작가님이 보고 싶었던 건, 누구에게나 자그마하게 자리 잡은 슬픔과 아름다움이었으리라. 그 특별한 시선과 마음이 그대로 표현된 글이 너무나 좋았고, 작가님의 글을 계속 읽고 싶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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