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나의 얼굴을 - 제2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임수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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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깨진 무르팍 위로 검게 굳은 피딱지를 뜯어내며,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드느라 빨갛게 언 손이 간질간질 녹아가는 것을 느끼며, 오금이 저릿저릿 아파 잠에서 깨며, 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며 성장했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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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여행을 가는 동안 할머니를 돌봐달라는 고모의 부탁을 받고 할머니의 집으로 내려온 주인공 나진. 어린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후 10년 넘게 할머니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곳은 나진에게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부모와 떨어져 살며 결핍을 느끼면서도 내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낸 힘겨운 시절이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울타리안에 있었기 때문에 꿋꿋이 클 수 있었던 곳.
그렇게 다신 돌아온 할머니집에서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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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보내는 사소한 일상과, 지난 기억들을 묵묵히 떠올리는 시간속에서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간다. 임팩트가 큰 사건이 등장하지 않지만, 인물의 섬세한 감정변화가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주인공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내면의 상처와 슬픔을 부러 건조하게 표현하는듯한 느낌이 오히려 더 마음을 이끈다.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그것을 표출하는것 보다 더 깊이있게 다가오는 느낌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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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는 그 마음을 감당하느라 주변에 맴도는 애정과 다정을 알아차릴 겨를이 없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그 마음들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견딜수 없었음을 어렴풋이 깨달게 될 뿐,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이다.
주인공 나진도 조용히 떠올려보는 기억속에서, 자신이 어린시절 힘들게 보냈던 그 시간들이 결코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어린 나진을 돌보기 위해 마음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고, 뒤늦게나마 이해와 화해의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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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갈등이나 혼란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냥 담아두고 흘려보내는 것이 익숙한 보통사람에게, 오히려 더 잘 와닿는 잔잔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흘려보낸 마음의 덩어리들이 시간이 흐른 후 불현듯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오듯,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글이었다. 평양냉면처럼, 슴슴한데 자꾸 생각나고 먹고싶은, 그런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작가님의 다른 글들도 또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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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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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위픽
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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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있는 생이 끝나고 다음생에 살아갈 모습을 결정할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꼭 무언가로 다시 살아가야 한다면 ”돌“, 이라고 예전에 친구와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어떤 풍파에도 휩쓸리지 않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며 단단하게 존재하는 돌.(그때 참 힘든때였나보다..)
그 후, 그런 생각이 나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온갖 사건사고를 다 겪고 난 주인공이, 마지막에 돌이 되어 언덕위에서 가만히 내려다 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또, 이 책에서 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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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세계에서는 다음생에 살아갈 모습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생애전환 시행령’이 있다. 지금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66세가 되면 자신이 원하는 다른종으로 생을 전환했다. 주인공 승혜는 66세에 돌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낡은 타자기로 전환되어 생을 살아가게 된다. 돌이 되는건 생각보다 힘들고, 경쟁률이 센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타자기가 되어 사람들이 남기는 이야기를 받아내면서, 천천히 수명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생의 끝에서, 미련없이 버리고 싶었던 자신의 삶에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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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혜는 삶에 미련이나 기억할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남은 기억은 잠시나마 따뜻하게 느꼈던 감정이었다. 타자기가 되어서야 자신의 마음을 꺼내보는 승혜가 너무 쓸쓸해서 슬펐다. 사람으로 살면서 말하지 못했던 것을,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서야 할 수 있게 되다니.
짧은 이야기에 여운이 컸고, 그만큼 생략된 서사가 궁금했다. 독특한 소재의 이면에 사회적 계급에 따른 죽음의 무게와, 소수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시도 또한 굉장히 의미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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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것은 아름다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게 꼭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것이 아니라도,, 마지막에 떠올리게 될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살고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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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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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하다 앤솔러지 3
김남숙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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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의 하다앤솔러지 시리즈의 3번째 책인 ‘보다’를 읽었다. 본다는 감각을 소재로 한 단편 5편이 실렸는데, 산뜻한 컬러와 미감이 돋보이는 책표지와는 달리 다소 어둡고 진지한 느낌의 작품들이었다.
단순히 눈앞의 장면을 보는것이 아닌, 과거 혹은 미래의 일들을 떠올리고 곱씹는 행위를 통해 현재 삶의 무게감과 깊이를 감각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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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단편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떠오르고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단순한 장면에서 시작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계속 커져간다.
우울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감각하고 생각하는 다양한 방식과 색다른 정서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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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것을 보아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서로 전혀 다르게 이해하기도 한다. 어떤것은 한번만 보아도 단번에 이해가 되고, 아무리 여러번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감각은 너무나 개별적이고, 그래서 모두가 세계를 다르게 이해한다는것을 생각하면 재밌기도 하고, 아득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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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든 이야기가 그런것 같아.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보다 보면 알게 되는거” 나는 혜임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어떤 것은 처음주터 보고 들어도, 겪어도, 전혀 알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별 세 개가 떨어진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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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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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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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평범한 삶을 사는 60대 여성의 일상이, 강렬한 서사의 어떤 이야기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큰 목표도 없고 욕심도 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응시하듯 가만히 겨울정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일상. 딸 미래는 그런 엄마를 단순하다고 하지만, 내색하지 않을 뿐 그녀안에 슬픔과 그리움이 없을리 없다. 겨울정원은 그렇게 모든것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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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아가는 것에 어떤 회한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소소한 유머와 관계속의 온기가 있는 일상.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가 상당히 재밌는데, 일상속에 그렇게 피식 웃을수 있는 순간들이 많은게 행복이 아니면 뭘까, 작은 행복의 힘이 크게 느껴졌다.
잔잔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는게 너무 좋았고, 나도 그렇게 미움과 다툼없이 편안하게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추운겨울에 마음에 품고 있고 싶은 따뜻함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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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에는 <겨울정원> 외에도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아 보이지만, 모두 사랑일수밖에는 없는 이야기들이 한편 한편 마음에 콕콕 박혔다.
뜨겁고 강한 사랑만이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지닌 작은 마음과 사소한 애정은 어떤 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듯한 단편들이 참 좋았다.
찬바람이 불면서 어쩐지 아쉽고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읽어서 더 좋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잔잔하게 겨울정원을 바라보듯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겨울을 마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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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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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녕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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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다니! 미스터리한 설정, 죽음과 얽힌 비밀 등 소재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거기에 문장의 가독성도 좋아서 하루만에 후루룩 재밌게 읽었다.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지만, 문장이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었고, 쨍한 빨강색 표지와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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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호와 소우는 7년을 사귀면서 모든것을 나누고, 함께 미래를 꿈꾼 연인이다. 돈을 벌기위해 캐나다에서 일하고 있던 리호에게 갑작스러운 소우의 자살은 크나큰 배신감으로 다가왔고, 모든것을 포기한 채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리호에게 소우의 번호로 전화가 온다. 정말 죽은 사람에게서 온 전화일까? 그날 이후, 모든것이 새롭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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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차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교차되며 속도감있게 흘러가고, 죽음을 둘러싼 진실의 퍼즐조각이 하나둘씩 맞춰져 간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드러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죽음이 조금씩 이해되어 간다. 누군가를 온전히 다 안다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다 알지 못해도 믿어주는 마음이 지닌 힘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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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너무 힘겹고 슬픈일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극복한 후 다시 내딛는 단단한 발걸음은 그만큼 더 애틋했다. 그렇게 안녕, 모두 안녕하기를 바라는 다정함이 깃든 이야기가 기분좋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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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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