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세고 촛불 불기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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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별한 ‘기념일’에 대한 단편소설을 엮은 엔솔로지, 테마소설집이다. 표지에 케잌 그림이 있어서 생일이나 축하하는 날에 대한 이야기들인가 싶었는데, 그보다는 마음에 각인되어 잊을수 없는 날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아주 대단한 일이 있었던것도 아닌데, 오래 기억에 남아 두고두고 생각나는 날들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책 속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에게도 끈질기게 남아있는 날들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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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편의 단편소설 중 작가를 알고 있던 경우는 1-2명에 불과했고, 처음 만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운 느낌이 컸다.
특히 김화진 작가님의 <축제의 친구들>을 재밌게 읽었는데, 주인공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는 친밀감과 소외감 그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포착한 문장들이 너무 좋았다.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 김화진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꼭 찾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종종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나쁜 사람이 있고 나는 그 나쁜 사람이 아니면 자동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길에 선다는 듯이. 그러나 나쁜 사람이 아닌 건 그냥 안 나쁜 사람 혹은 안티 나쁜 사람이지 좋은 사람인 것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야. 그렇지 않니?”_<축제의 친구들>,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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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이야기들속에 존재하는 ‘날’은 얼핏보기엔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이 되는 날이었다. 마음먹는다고 만들수 없고,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의미있는 날들.
단편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이나 날들을 포착하는 감각이 더 예민하게 느껴졌던것도 같다. 그게 완결된 결과에 도달하지 않고 이어지는 것 또한 주제와 잘 어울리게 느껴져 재밌게 읽었던것 같다.
누군가의 특별한 날에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게 꼭 기쁨이나 행복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언제나 의미는 함께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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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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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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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작은무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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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작은마을에서 벌어진 실수 하나가 불행의 씨앗이 되어 계속 이어진다. 걷잡을수 없이 커져가는 불행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무법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동생 로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불의나 두려움에도 맞서는 더치스는 무법자이지만 실은 작은 소녀였는데,, 그녀의 고군분투가 너무 격렬하고 아슬아슬해서 책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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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고, 할아버지에게 맡겨진 남매의 삶은 불행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잠시 안정되는듯 했지만, 불행은 끈질기게 따라다녔고 더치스는 그것을 끝내야만 했다. 무법자이기 때문에.
불행이 계속 또 다른 불행을 부르는 상황, 무법자 더치스가 새로운 불행의 주인공이 될지, 아니면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이 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꽉 붙들고 읽었다. 제발,,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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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지닌 욕망과 비밀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개개인이 지닌 선량함과 악함의 기준 또한 뒤섞여 있어 의심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 복잡한 가운데서,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뛰어난 표현력은 몰입에 힘을 더했다.
이야기에 수많은 인물, 암시, 복선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나름 집중해서 추리를 해봤지만 결말은 그것을 훨씬 벗어난 곳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쉽게 추리할 수도 있었는데, 나 또한 내가 보고 싶은것만 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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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재밌게 읽었던것 같다. 가혹한 운명과 그에 맞선 무법자 소녀의 이야기, 미국의 광활한 대지를 가로지르는 스케일과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엄청난 이야기인 동시에, 오직 한사람의 작은 소망에 대해 읽은것 같기도 하다. 불행의 한 가운데서도 활활 타오르며 빛나던 무법자 소녀의 용기가 찬란하게, 오래 기억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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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 바통 7
이종산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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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이알고보니내인생이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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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물 테마소설집이라니, 주제도 참 독특하고 표지, 제목, 각 단편들의 면면까지, 뭔가 묘하면서도 흥미로운 첫 느낌이었다. 귀신, 영혼, 그 외 무엇이라 불리는 것이 서로 뒤바뀌고, 떠돌며 인간 삶에 개입하는 현상은 누구도 증명하지 못하는 비과학적인 것인데. 왜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끊지 못하고, 심지어 매혹되어버리기까지 하는 것인지. 나도 어느새 빙의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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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라는 소재에 걸맞게 7편의 글 속에 펼쳐진 상상의 세계는 정말 다채롭고 개성이 뚜렷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 스릴러 분위기의 글에서부터 SF 세계관이 돋보이는 글, 너무나 현실 같아서 웃픈 글까지. ‘빙의물 테마집’으로 묶이지 않았더라면, 서로 다른곳에서 따로 빛나고 있었을 글들이 이렇게 한권의 책에 묶여 있다는게 재미있었다. 글도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바라보는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박서련 작가님의 ’니가 왜 미쳤는지 내가 왜 알아야 돼‘는 강렬한 제목과, 추리소설 속 인물에 빙의되어 살인사건에 연루된다는 설정이 독특하고 흥미로워 특히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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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빙의’를 다룬 글을 읽다보니, 내가 빙의를 하게 된다면 누구에게 하고 싶은지를 자연스럽게 상상해 보게 됐다. 만약 나라면,,, 이해하기 힘든 누군가에게 빙의해 그의 마음과 생각을 낱낱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해하고 싶지만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나에게는 그게 ’빙의‘의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7편의 소설 속 ’빙의‘가 다 다른 의미를 지닌것처럼, 나도 나름대로 상상하고 생각해 보며 나만의 이야기가 생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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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 이루어진 빙의 소재의 글을 읽는 동안 가뿐히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었고, 7편의 단편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를 슬쩍 ’찍먹‘해 보는 맛이 참 새콤하게 느껴졌다. 그 새콤한 맛이 여름에 참 잘 어울리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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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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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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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물에 적응해서 물 속에 사는 사람, 물 위에 떠다니는 보트에서 사는 사람, 해저도시에 사는 사람 등, 사는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처한 상황은 모두 절망적이다. 사는 환경이 척박하다보니, 사람들은 절박한 만큼 더 모질고 잔혹해져 갔지만, 그 와중에서도 다정하게 손잡고 웃으며 춤을 추는 존재들이 소설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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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에서 파는 타코야키라니,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어쩐지 귀엽고 재밌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낙관적인 마음이 짠하면서도 좋았다. 어쩌면 엉뚱한 것과 낙관적인 마음은 맞닿아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끝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이들의 마음에 왠지 위안이 되는 느낌도 들었다. 만약 내가 소설 속 인물들처럼 바다 한가운데서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면, 낙관적이기 보다는 예민하고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되고 말텐데,,, 곁에 소설속 인물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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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름도 어쩜 이렇게 예쁜 김청귤인지. 작가님 이름도, 그녀가 쓴 글도, 다정하고, 경쾌하고, 귀엽다. 물론 그 속에 현재 지구인들의 무분별한 생활과 그로인한 지구 멸망에 대한 우려도 깃들어 있지만, 그보다는 상황을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밝은 이미지가 더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새드엔딩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힘이 있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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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는건 분명한 사실이고, 수명이 소멸된 이후의 삶에 대한 예측이나 상상이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것도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지구를 탈출하거나, 아니면 물로 뒤덮인 지구에 적응해 살아가거나.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자를 결합하고 변형시키고, 많은 부분을 로봇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부분이 사라지겠지만,,,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할 무언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붙들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천선란 작가님의 추천사처럼, 우리의 모습이 어떤것으로 변하든 끝끝내 놓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이 이 책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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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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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의 돌핀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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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기술의 변화가 빠른 시대에, 미래의 모습을 예측한다는건 사막에서 반지를 찾는일 만큼이나 막막하고 끝이 없는일 같다. 하지만, 우리는 갈수록 더 열심히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는데 매달린다. 어떤 가능성이라도 손에 쥐고 있으려는듯이, 인류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 가운데, 소설은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끝끝내 변하지 않을 무언가를 계속 붙들고 그려낸다. <17일의 돌핀>도 그 가운데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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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삶이 끝나고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처음엔 모두 지구의 삶을 그리워 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억은 지워지고 인간은 새로운 사고와 감각을 지닌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뒷세대와 앞세대로 구분되는 진과 나의 이야기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인 동시에 오랜 과거와 현재사이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결코 낯설지 않았다.
어느쪽이 더 옳다는 것이 아니라, 뒤 혹은 앞 어느쪽을 바라보더라도 함께 존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모두가 다르고, 갈수록 더욱 달라지겠지만, 함께 웃으며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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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낙관적으로 느껴질수도 있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낙관에 기대어 볼수 있는것 아닐까 싶다. 8편의 단편이 다루는 각기 다른 미래의 모습이 흥미로웠고, 담담한듯 편안하게 읽히는 글이 좋았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던 작가님의 말은, 결국 이 책이 미래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임을 알려주었다. 현재를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결국 계속 미래를 빌려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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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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