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x4의 세계 - 제2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고학년) ㅣ 창비아동문고 341
조우리 지음, 노인경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 이 글은 창비선생님북클럽으로 해당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내겐 청소년 소설로 익숙한 조우리 작가. 동명의 조우리 작가가 또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서평 목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다시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다.
조우리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북클럽 첫 활동을 시작할 수 있어 더 없이 신난 4월이다. '오, 사랑'에 이어 최근 '사과의 사생활'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조우리 작가의 동화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번 작품 또한 기대가 되었다.
<<4X4의 세계>>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29회 고학년 동화 부분 대상 수상작.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들은 제목만 들어도 표지가 떠오를 정도로 아이들은 물론이고, 동화 읽는 어른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책들이 많다. 가끔씩 비오는 날, 괭이부리말 아이들, 엄마 사용법,기호3번 한석뽕, 우주로 가는 계단, 아무거나 문방구~ 이들 중 교과서에 수록된 책들이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책들이 많은데, 조우리 작가의 동화가 오랜만에 나온 고학년부분 수상작이라 더 반갑다.
표지 속에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등장한다. 조금은 생소한 4X4의 세계. 제목을 먼저 읽은 딸은 '구구단 이야긴가? 하며' 지레 짐작을 하는데~ 어린이 재활 병동을 배경으로 입원 중인 두 아이가 책을 통해 만나 친구가 되는 이야기이다. 하반신 마비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는 아이, 호. 천장의 열여섯 개의 정사각형들을 쳐다보는 일 외에는 할일이 없던 호에게는 4X4의 세계가 전부다. 16개의 네모 칸을 떠오르는 그림으로 홀로 채우며 내일은 조금은 다른 일이 일어나길 하는 바람으로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는데, 병원 복도 한 구석에 책장이 생기면서 호에게도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바로 4X4의 세계를 함께 채울 친구를 만나게 된 것.

책 속에 서로의 흔적을 남기며 시작된 인연은 쪽지 대화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호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나의 세계를 공유하는 친구가 생긴다는 것. 무기력하고 멈춰있던 호의 시간들이 설렘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신이 났다. 쪽지로만 대화를 나누다 자신의 모습에 새롬이 실망할까 직접 만나는 걸 주저하던 호. 하지만 비오는 날 지렁이 무덤을 만들어주는 새롬은 휠체어를 탄 호 덕에 흙을 더 쉬이 옮길 수 있으니 편하겠다며 다가온다.
희망, 가능성과는 멀어지는 날들이라고 생각한 호에게 새롬과의 만남은 어떤 의미일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
"나는 휠체어라는 제약이 있고, 세로는 조금만 뛰어도 금방 지쳤기 때문에 오래 놀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우리 둘 다 완벽하지 않아서. 부족한 나와 부족한 세로가 이 세상에 둘이나 있어서. 그런 우리가 같이 있어서"
호가 새롬(둘만의 애칭은, 세로)에게 비오는 날이면 지렁이 무덤을 만드는 이유를 묻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새롬의 대답이나. 그 전까지 걷지도 못하고 또래보다 작은 모습이 부끄러웠던 호가 함께 있는 순간, 완벽하지 않아 더 좋다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환자이기 전에 마음이 통하는 이를 만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꿈꾸게 하는 것. 아니 가능하게 하는 것. 이건 모두가 누려야하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던가?
아직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 아직도 장애를 극복해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측은한 마음으로만 바라보면서 내겐 아픈 날들이 오지 않기를 소망하지는 않던가?
동화를 읽으면서 다양한 어린이들의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다양한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동화를 읽는 모두에게 다행이자 복된 일이 아닐까 싶다.
병원 속 또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종일 호의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 호를 맡기고 일하는 호의 부모. 사춘기 자녀를 둔 가족, 외국인 가족, 간병이모,
오랜 병간호 속 가족들의 대화 속 각자의 사정을 엿보며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화장실 마저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생활.
다인실 병동에서 소리도 냄새도 숨길 수 없는 모든 일상을 공유해야하는 사람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도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 호가 병원 한쪽에 생긴 작은 도서관을 나만의 동굴로 생각하고 빠져드는 것은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 아니었을까?
창가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운과 기다림이 맞아 떨어져야하는 일인데 '아픈 사람이나 돌보는 사람 모두 언제든 창밖의 세상을 볼 수 있고 개인의 시간과 공간을 챙길 수 있어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호와 새롬이의 성장 모습 외에도 병동생활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 작가의 사려깊은 시선에 고마움을 느낀다.
재활치료의 과정이나 장기 재활 환자들은 한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떠돌아다니는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재활유목민'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러 병원을 찾아 대기하고 , 치료나 관리가 꾸준히 이어지지 못할 때 환자나 가족들이 짊어질 불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장기 병원 생활에 지원들도 다양하게 이루어져야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조우리 작가님이 이렇게 생생하게 병원의 생활을 옮겨낼 수 있던 동기나 창작과정도 궁금해진다.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읽으며 어떻게든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서평단을 하면서 작가님의 편지를 함께 받는 호사를 누렸다. 작가님의 의도대로 4 곱하기 4의 세계를 읽으며
나의 세계 또한 확장됨을 느낀다. 그리고 다정함으로 나의 세계를,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꽉 채워진다. 마지막 작가의 당부대로 모두에게 향하는 다정한 시선은 곧 나를 향한 시선이기도 하니까.
마지막 작가의 당부대로 모두에게 향하는 다정한 시선은 곧 나를 향한 시선이기도 하니까.
이 동화를 읽으면서 따스함이 맴도는 것은 조화로운 그림 덕도 빼놓을 수 없는데.아이들의 세계를 잘 그려내는 노인경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호와 새롬의 만남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포스트잇 하면 떠오르는 색이면서 새롬의 노란 모자 색이기도 하고. 바나나 우유의 색이기도 한 노란 빛 가득한 페이지에 우리의 가로와 세로는 정말 사랑스럽다.
"그럼 이제 걷는 건 포기하는 건가요?"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야. 그렇지만 호야,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
살아가는 거야.다시 살아가는 것. 너는 그걸 해내는 중이야"
호와 새롬을 비롯한 모든 어린이가 제 빛으로 반짝이는 어린이날이 되길 바라며. '함께 라는 감각'을 깨우며, 사랑가득한 시선으로 어린이의 삶 이야기를 들려준 동화를 주변의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가로와 세로가 읽은 책의 목록까지 실어주는 센스. 클로디아의 비밀을 다시 꺼내 이어 읽으며 병동 밖에서 이곳저곳을 누빌 가로와 세로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