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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600년의 기억
정명림 지음, 장선환 그림, 이지수 기획 / 해와나무 / 2025년 8월
평점 :
서울의 중심을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서울의 중심 하면 광화문이 떠오릅니다. 일단 위치상으로 서울로부터 얼만큼 떨어져 있나? 고속도로 표지판에 붙은 그 숫자의 기준점! 서울과 다른 도시 사이의 거리를 잴 때 시작점으로 쓰는 도로원표가 있어 한반도 지리의 중심점이기도 하구요.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역사의 한가운데를 자리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 책에서는 역사의 현장으로서 광화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동안 '경복궁'에 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고 광화문은 그 책들의 처음이나 일부 페이지에서 경복궁의 가장 큰 문, 정문, 남쪽 문 등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번에 주인공으로서 광화문을 만나니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에 이르기까지 아픈 역사의 현장 중심에 광화문이 늘 함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광화문이 보고 싶어졌어요. 이 책은 넘기다보면 광화문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조선 최고의 손끝이 모여 탄생한 광화문. 하지만 농사 짓다가 겨울에 불려와 고된 노동을 해야하는 장인들에겐 분명 혹독한 시기였을겁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여기저기 안쑤시는데가 없고, 몸져 눕기도하고~인물 하나하나가 다시 보이는데요. 설명이 길지 않아도 장선환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를 끝없이 만들어냅니다. 각장마다 왼쪽 위에 장면을 설명해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글자체 자체는 그림과 잘 어울리지만 크기를 좀 키워도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나 지금이나 볼거리가 가득한 광화문. 당시 왕의 행차 장면을 상상하면서 오늘의 광화문을 걸어봅니다.
그림책 속 장면에서 제 눈에 들어왔던 것은 왕비의 행차에 두른 막 같은 천. 저 천으로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행차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지 않아도 되고, 몰래 담너머로 훔쳐보지 않아도 되네' 하면서 함께 읽는 아이와 자연스레 광화문의 과거와 오늘을 함께 이야기하게 될 거 같아요. 책을 들고 나가면 더더욱!!!

여전히 볼 것도 머물 곳도 많아 늘 찾는 이들이 가득한 광화문.
오늘의 광화문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오늘의 광화문은 많은 관광객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누비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여기저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쉬어가는 사람들로 평화로워 보이는데
주말마다 온갖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는 단체의 목소리로 광장이 채워지기도 하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추위를 뚫고 많은 사람들이 나라 걱정에 길 위를 지켰던 곳이기도 하죠.
책 속에 광화문이 마주했던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왜적이 쳐들어와 불타는 광화문을 바라봐야했던 순간은 마음도 함께 타들어가지 않았을까?
일장기가 걸리고 경복궁이 아닌 총독부의 앞에 선 광화문을 본 사람들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맴돌았을까?
전쟁으로 무너져버린 광화문을 마주했던 마음은 어땠을까?
새삼스레 '광화문'이라는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오늘의 광화문이 보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과 함께
바람이 추억으로 고이 전해질 수 있도록 역사 속에서 제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구요.
익숙한 장소를 진득하게 다시 바라보게 만든 이 책. 이번 가을 산책길에 여러번 동행할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