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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안네의 일기>는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필독서 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그 도서가 필독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당시 한 번 읽고 난 후 <굿바이, 안네>를 보기 전 까지는 한동안 잊고 살아왔다. 이제는 <안네의 일기>마저도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핵심적인 내용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좋은 책은 두고두고 여러 번 읽어서 때로는 잔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안네의 일기>는 그 당시에 읽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았다. <안네의 일기>가 내 기준에서 좋은 책이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안네의 일기를 읽을 때는 충격이 꽤 컸다. 어린마음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억압을 견뎌내며 때로는 내가 세상에 없는 것 마냥 숨어 살아야 하는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또 그 소녀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어린 소녀라는 사실이 더 못 견디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어린 시절 <안네의 일기>는 내게 꽤 충격이었는지 세계 2차 대전과 관련된 책을 보거나 혹은 수용소의 삶을 담은 책을 읽으면 안네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 시대의 이야기책인 <굿바이, 안네>도 관심이 안갈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안네로 인해 나는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런 안네는 내 기억 속에서 참 괴로웠을지 모른다. 이제는 안네와 정말로 작별인사를 하고 기억 속에서 편히 놓아주고 싶다. 서로가 편안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된 것이지만 유의할 점은 이 책은 내가 앞서 안네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 한 것과 달리 안네와 동시대에 짧은 시간을 공유했던 저자 ‘베르테 메이에르’의 이야기이다.
그럼 왜 이 책에서 충분히 안네의 이야기로 착각할 수 있는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라고 써두었는가가 조금 궁금해진다.
개인적인 의견은 이러하다. 안네와 베르테는 그 당시 이웃집에서 살았다는 추억이 있으며 수용소에는 짧은 시간 조우하였다. 이것으로 안네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밝히기는 충분치 않다. 그러나 베르테는 또 다른 안네이기도 하다. 안네와 비슷한 나이로 수용소의 삶을 견뎌내었던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의미하는 안네는 제2의 안네인 베르테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독자들은 이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로 수용소 겪은 유태인들은 그 속의 삶이 어찌나 처참하였는지 우리에게 책을 많이 남겨두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드물다. <안네의 일기>가 고통스런 삶속에서도 긍정의 에너지로 상황을 차분히 파악한 것과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베르테의 이야기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적당히 중산층에서 여유롭게 자랐던 그녀이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고생이 시작된다. 어린나이에 들어갔던 수용소에서 먹지 못해 커다란 솥에 들어가 어떻게든 식량을 조금이라도 구해보려고 작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고 급기야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의 간을 빼 먹으며 삶을 연명해나가는 것도 보았다. 그 결과 그녀는 전쟁이 끝난 지금도 먹을 것이 여유롭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냉장고에는 항상 먹거리를 잔뜩 채워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현재 직업은 푸드 저널리스트이지만 말이다.
베르테의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대로 흐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전쟁을 겪은 이들이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베르테 역시 그러했고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는가 하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베르테의 이야기는 그 동안 들어왔던 다른 이야기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그녀의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과 같이 끊기는 부분도 드러나 있고 어린 시절의 생각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내가 이 글을 통해 다시 알게 되는 공포는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절반도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전한 집과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대에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노인들은 그렇지 않다. 비단 세계 2차 대전을 겪은 이들 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이들 더 나아가서는 전쟁으로 인해 참혹한 고문을 당했던 이들은 그 이후의 삶에서 더 힘든 생활을 보낸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각종 증후군에 시달리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베르테의 이야기는 현재 그녀의 삶과 과거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 그녀가 겪고 있는 아픔을 이야기 해준다. 이 글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아픔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안네 외에 또 다른 어린이를 만나고 싶다면 이 이야기를 읽었으면 좋겠다. 안네와 같은 시간을 숨 쉬었던 베르테는 더 많은 것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또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