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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한다. 편지에는 수줍은 내 마음을 표현 할 수도 있고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정리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편지쓰기가 참 좋았다. 반대로 편지 받는 것도 참 좋았다. 글 쓸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설렘을 표시하면 나도 덩달아 설레어지는 것이 좋았고 나에게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한다면 정말로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편지는 참 묘한 힘이 있어 그냥 "사랑한다."라고 뱉었을 때는 담백한 맛이 나는데 편지지에 꼭꼭 눌러 적은 글자로 보는 "사랑한다."는 내 가슴을 가득 채우는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어 편지에 관련된 이 책이 참 반가웠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조선인민군우편함 4606호>라는 책 제목을 받아보고 덜컥 겁이 났다.
아마 내가 울음이 많은 탓이라 그럴 것이다. ‘조선인민군’ 이라는 단어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말하기 힘든 씁쓸함을 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전해지지 못한 편지들의 애절한 내용을 읽다보면 절로 울컥해질 것 만 같았다.
이 책에 소개된 편지의 출처에 대하여 저자 이흥환은 미국국립문서보관소의 열람실 문서상자 1138번과 1139번에 들어있다고 한다. 그는 출처에 이어 이 편지들이 미국에 들어가게 된 이유까지 설명하였는데, 한국전 당시 미군들이 북한의 문서들을 노획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 북으로 전해지는 편지도 있고 남에서 북으로 전해지는 편지도 있다. 어색한 단어들과 낯선 비문과 오타들은 그 당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 수많은 편지들은 세월이 흘러 종이들은 바스라질 것처럼 바삭해지기도 하고 누렇게 변색되기도 하였다. 연필로 쓴 글씨들은 세월의 흘러감을 증명이라도 흐릿해지고 잉크로 쓴 것들은 번지게 되었다. 종이와 글 쓴 도구가 제 각각이듯 사연도 제 각각이다. 아들내외 부부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사연을 제대로 이야기해보라고 엄격히 말을 전하는 어머니의 서도 있고 전쟁 통에 은근히 남편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편지도 있다. 또 자신을 걱정 말라는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도 있다.
제 각각의 편지를 수 없이 많이 읽고 있으려니 어쩐지 가슴 한켠이 찡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해지지 못한 편지인 것은 둘째 치고 하나같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랑과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휘갈겨 쓴 편지이더라도 또 사내답게 쓴 글일지라도 은근히 묻어있는 사랑과 애정은 가늠할 수 없으리란 만큼 넘친다.
P164
대개의 전쟁사가 전투 기록, 전략전술사로만 기술된 군사이거나 전쟁의 배경, 원인에만 치중한 정치사이다. 이런 기록은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기록은 그래서 잊히기 쉽다
그렇다.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전투기록과 어떻게 전략을 짜서 당시 한국전을 치렀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이 객관적인 사실들은 원인-과정-결과에 치중한 정치사일 뿐이다. 속속들이 당시 국민들의 삶과 생각은 들어있지 않은 지극히 객관적인 문서이다. 물론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생명력이 깃든 편지는 조금 다르다. 전쟁의 긴박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당시 삶의 궁핍함과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공식화되어있는 자료보다 이러한 글이 더 가슴 아픈 까닭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당신네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것.
따라서 이 편지 한 장, 한 장에는 영혼들이 깃든 것 같다. 새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오래된 편지의 냄새 것일 것만 같다. 저자 이흥환과 출판사에서는 편지글을 인쇄활자로 바로 옮기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당시 편지를 깨끗하게 스캔하여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깔끔하게 옮겨 쓴 원문을 두고도 꼭 스캔 된 편지를 먼저 어렵사리 읽어 내렸다. 아마 그들의 목소리가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하여 역사공부를 한다거나 그 시대의 상황을 알고 싶어 한다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저자가 먼저 이야기 한 것처럼 후손들에게 한 자락의 기억을 돕고 싶고 또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네들이 아직 있다면 이 편지를 찾아가 그 기억들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젊은이에게는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변해가는 모습과 삶에 묻어나는 고단함, 전쟁이 남기고 간 것들을 보여줄 것이고, 전쟁 통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 시대의 아픔이 느껴져 가슴한 쪽이 먹먹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사 속에 빠질 수 없는 한국전의 아픔을 읽는 것이 참 아프다는 것으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