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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느리게 걷기 - 개정판 ㅣ 느리게 걷기 시리즈
전주국제영화제.최기우.박연실 지음, 이상근 사진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문득 ‘전주’라는 곳이 가고 싶어졌다.
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많은 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것을 보려고 노력했는데 전라도라는 곳은 딱 한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어느 새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번 가본 것이 전부라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제주도도 전라도보다 많이 방문하였는데 어째서 딱 한번 가본 것이 전부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한 번의 방문도 전주가 아닌 부여로 문화유적을 답사한다고 가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유적을 답사한다고 가보았던 일 외에는 가본적도 없는 전라도 특히 전주가 어느 날 문득 정말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전주’라고하면 보통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맛과 멋이 어우러진 비빔밥을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리라 예상해본다. 하지만 내가 전주에 꽂힌 이유는 비빔밥이 결코 아니다. (개인적으로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내가 전주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 친구가 들려주었던 소박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과 어디를 가도 문화공연이 많이 있는 바쁘고 화려한 도심이 좋았다. 그 속에서 나고 자랐으니 이 생활이 당연하게 느껴졌고 바쁘게 쫓아다니며 누릴 것을 누리는 생활이 좋아 풀내음은 모르고 살았다. 오히려 간혹 시골에 내려가면 무료함에 견디질 못하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도심생활이 좋았고 이 도심이 아니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내게 전주영행을 풀어 놓았을 때만해도 전혀 그가 저렇게 전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하였을 뿐 전주에 가고 싶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가본적도 없는 전주가 가고 싶어졌고 한 번 가볼까 혹은 그냥 일시적인 충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다. 까짓것 한번 가보면 될 것을 이렇게 고민한데에는 전주에 대해 잘 모르는 까닭도 있었고 은근히 내가 전해 듣고 상상하던 전주가 깨지게 될까봐 무섭기도 하였던 것 같다. 사실은 후자의 이유가 본심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찰나에 좋은 구실이 생겼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전주국제영화제’라는 이유가.
좋은 구실이 생기자마자 바로 검색에 돌입하였고 <전주, 느리게 걷기>의 지은이가 전주국제영화제일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추천해주는 책임을 알고 이 책을 반드시 봐야 될 책이라고 망설임 없이 택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전주, 느리게 걷기>라는 책 제목을 참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하던 전주의 이미지와 딱 걸맞은 ‘느리게 걷기’라는 문구도 그렇고 전주 뒤에 있는 쉼표(,)도 쉬엄쉬엄 둘러보며 걸어도 좋다는 뜻의 제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고 몇 장 살피다 보면 한 눈에 보기 좋게 꾸며진 전주 지도를 볼 수 있다. 이 지도를 보며 손가락으로 책에 나온 루트대로 따라 읽기도 하고 내 마음대로 루트를 짜서 뒤죽박죽으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바로 전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글과 사진들이 아닐까 한다. 말 그대로 전주의 소박함과 전주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운치 있는 사진들과 함께 딸림 말들은 전주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녹아있어서 읽는 사람마저도 어쩐지 전주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안내 책들이 그렇듯 전주에 대한 여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소 재미있게 읽기 힘들겠지만, 전주를 계획할 방문이 있다면 <전주, 느리게 걷기>만큼 좋은 책도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특히 나와 같은 초보자인데다가 전주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지인도 없다면 마냥 웹 서핑을 죽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인데 <전주, 느리게 걷기>는 이런 수고를 단번에 덜어준다. 하나하나 맛보고 평가되어있는 것 같은 맛집들의 정보와 전화번호 찾아가는 방법 그리고 특징들도 쏠쏠한 도움이 되었고 전주하면 생각나는 ‘한옥마을’외에도 숨어있는 명소들을 알뜰살뜰 이야기 해주니 시간은 단축되고 앞서 이야기하였던 지도를 보며 루트 짜기는 좋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전주에 도착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어쩐지 이 책을 보면 웃음이 슬그머니 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책을 들어가는 입구에 전주를 ‘천년의 고도’라고 표현했는데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무의식중에 박혀있는 인식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라 ‘천년의 고도’라고 하면 전주보다는 ‘경주‘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혹시 개인적인 생각에 그치는 것인가 싶어 천년의 고도를 검색해보자 줄줄이 신라와 경주가 검색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흔히 전주를 천년의 고도라고 이야기한다.‘ 라고 써두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시작하는 말이라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은이가 어떠한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도 알 수 있고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주, 느리게 걷기>에서는 다른 도시를 홍보하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도시의 수식어구가 탐이 났던 건지 혹은 전주에서만 통하는 천년의 고도를 대중들의 인식을 무시하고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부분이었을 텐데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어쨌거나 전주에 대한 좀 더 특색 있는 수식어구들이 참 많이 있었을 텐데 남의 도시를 따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씁쓸함으로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