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우체국>을 읽었다. 적지 않을 시간을 <우체국> 읽는 것에 투자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상 위에 올려둔 책은 지금 내 옆에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찰스 부코스키의 삶을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확연한 굴곡과 함께 깊게 파인 주름, 툭 튀어나온 턱, 게슴츠레한 눈. 실제로 그는 전업 작가가 되기 전 하급노동자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였고 우연히 우체국에 취직하게 되어 10년 동안 근무하였던 전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은 자전적인 느낌을 적지 않게 받을 수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몇몇 인물은 실제 인물을 묘사했지만, 절대 사실은 아니다. 이에 대하여 책을 들어서기 전 찰스 부코스키는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라고

 

 

  앞서 언급했듯이 <우체국>을 읽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했다. 내가 보통 책을 읽는 방법은 한권을 시작하였으면 나와 맞지 않더라도 끝까지 읽는데, 이 책이 딱 그러했다. 보통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운문형의 압축된 문장이라던가, 기승전결 없이 매일이 똑같이 그려지고 있는 나날들은 내가 과연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초등학생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읽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언어들은 이 책을 과연 19세 딱지 없이 청소년들이 읽게 해도 좋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알겠지만, 모두가 추앙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어째서 이 따위 글이 추앙받을 수 있냐고 말했었다. 매번 책을 피면서 또 지겨운 치나스키(우체국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속으로 들어가야 하냐고 절규했었다. 그러나 참 묘하게도 찰스 부코스키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집중하고 있다.

치나스키의 삶은 단 세 가지로 정리된다. 여자와 술 그리고 경마. 치나스키는 술을 마시고 여자와 섹스하며 그리고 찌든 몸을 이끌고 우체국으로 간다. 우체국에서는 대충대충 일하면서 적당히 요령피우다가 벌게 된 돈으로는 다시 경마를 하고 술을 사먹는다. 순환되는 삶 속에서 치나스키는 어떠한 소속도 원치 않고 노동에서도 해방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여기서 치나스키가 왜! 어떠한 소속도 원치 않고 노동에서도 해방되고 싶어 했는가가 중요하다.

<우체국>은 195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치나스키가 근무하는 우체국들은 한결같이 반복적인 노동을 요구한다. 가장 하급계층으로 취직 하게 된 그에게는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없으나 매일 과도하게 몸을 쓰는 반복적인 노동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생활의 달인’과 같은 단순반복 노동의 달인들이 나와서 재미있게 일하는 것을 보고 괜찮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볼펜 뚜껑 짝을 지어주는 일을 한다고. 처음에는 이보다 쉬운 일이 없을 거라며 신날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같은 일을 하자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당신을 다독일 것 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퇴근까지 시간 내에 할당량을 해야 돼서 마음이 조급해져오기 시작했다. 또 쉬운 일이지만 계속 반복되는 일은 당신의 인내심을 시험할 것이다. 드디어 하루 12시간의 노동이 끝났다. 당신의 손에 들어오는 건 고작 만원이 되지 않는 얼마였다. 얼마나 허탈한가. 이 허탈함의 연속이 당신에게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의미도 없이 오직 목적과 절차만을 따라야 하며 개인의 특성은 모조리 집단이라는 이름하에 말살된다. 오로지 규칙과 결과만을 준수하며 계급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하층계급을 비웃는 노동에 대하여 치나스키는 저항하는 인물로 나온다. 다만, 그는 저항가가 아닌 집단노동에서 요구하는 삶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우체국>이 이렇게 심각한 책은 아니다. 저속한 욕들이 한 페이지 내에서도 몇 번이나 나오고 섹스 하는 장면이 묘사기도 한다. 그러나 p.50에서 시작되는 착한 아저씨 G.G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푹 빠지게 되었다. 헨리 치나스키가 그저 색과 유흥만 즐기는 멍청이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그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지점 말이다.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깨달아 가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반노동에 대한 책이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 책이 그 보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노동에 대한 운동치고는 그가 바꾸어 놓은 것도 또 자신이 변한 것도 혹은 대체물을 마련한 것도 없지 않은가? 그저 현실에 수용되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남자의 이야기 이었다고 생각된다.

 

 

  기어코 <우체국>을 다 읽게 되었을 때 마지막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p.241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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