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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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1943년 출생하셔서 1970년 등단 이후로 <태백산맥>과 <아리랑>으로 문학상을 받았음은 물론 끊임없이 책으로 뜻을 펼쳐가는 우리 시대의 소중한 보석 같은 작가님이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조정래 작가님의 글은 이번 <비탈진 음지>가 처음이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 속에는 우리네 정서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은 물론이고 아픔을 과감히 노출하여 더욱 시리고 애틋함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비탈진 음지>를 읽어보고자 마음 먹었던 것은 어쩌면 건방진 태도 일지도 모르나, 왜 조정래 작가에게 열광하는지 또, 쉽게 공감되지 않고 어렵다고 회피한 그 정서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비탈진 음지>는 1973년 처음 발표되고 1999년 조정래 문학전집에서 <황토>와 함께 출간이 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부터 평단의 관심을 받을 만큼 문학관과 역사관을 압축한 작품으로 일컬어 지며, 이번에 새롭게 개정하며 장편 소설로 태어나게 되었다.
최근 들어 읽어 온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섬세하고 정성들인 글인지 문력(文力)이 느껴졌다. 글자 하나에도 힘을 불어 넣고 의미를 부여 한다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데도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이 가득한 글자들이 향연에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기운을 얻었는지 모른다. 이는 여타 외서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한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탈진 음지>는 1970년대 한국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부인의 병수발로 삶을 터전을 잃고 가족들과 서울드림을 꿈꾸며 서울로 상경하여 생계를 꾸리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리하여 서울로 떠난 복천은 ‘무작정 상경한 1세대’로 일컬어 진다. 말 그대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복천은 칼갈이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생활이 녹록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는 마지막까지도 평탄하지 못하고 끊임 없는 고생과 시련을 맞이 한다. 끊임 없이 고생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복천이 가난한 사람은 끊임 없이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끊임 없이 부자인 세상에 원망하고 한탄하는 구절이 있었다.




P125
“어떤 놈들은 벼락을 맞아도 골라가며 돈벼락을 맞아 저런 궁궐 같은 집에 살고, 어떤 놈들은 무슨 모진 죄를 졌길래 고향을 도망쳐 나와 산꼭대기 판잣집 셋방살이 신세란 말인가.
잘사는 것들은 갈수록 팔자가 처지고 늘어지고, 못사는 놈들은 갈수록 신세가 비틀리고 조그라드니 평생 저런 집에서 살아보기는 아예 틀려먹은 거 아닌가.”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조정래 작가가 남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의 문구가 대번에 떠올랐다. 책을 처음 읽어 내려갈 때는 1970년대 돈이 없던 우리네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겪게 되는 모질고 아픈 삶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 즈음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속속들이 열어본 <비탈진 음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저 구절에 해당하는 것이 1970년대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 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일이고 NEWS에서는 경제/사회면을 늘 장식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결국 우리가 힘든 것은 그 시대에서도 반복되던 일이고 이 시대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쇠고리로 연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진 음지>를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의 속내는 그런 날을 희망하지만, 현실화 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이렇게 까지 힘들어야 하고 왜 이렇게 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며 왜 이렇게 까지 모진 시련이 주어지는지. 그 힘들고 고생스러운 마음은 겪어 보지 않고 따뜻한 밥 먹으며 따뜻한 집에서 편히 생활하는 내가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마냐 이지만, 아무리 타국 생활을 오래하여 우리네 정서가 어렵고 쉽게 읽어 내려가기 힘들다는 내게도 공감을 불어 일으킨다.
첫 시작을 왜 조정래 작가에게 열광하는지 궁금하다고 시작했었다. <비탈진 음지>를 다 읽은 지금 그 해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조정래 작가의 글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그의 글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여타 책에서 느끼기 힘든 한국인의 애환과 순수하면서도 힘이 가득한 문력(文力)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투리로 대화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거듭 읽어야 했지만, 문득문득 힘이 들 때 한번씩 <비탈진 음지>를 꺼내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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