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사춘기가 되면 자기 자신에게 그 어느시기보다도 관심이 폭발하는 시기이다. 나의 외모, 이성관계, 그리고 인기와 같은 외적인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도 마음에 걸리고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친구들과 입고 있는 옷 하나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하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에게 눈떠 알콩달콩하게 사귀게 되는데 나만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 그 것은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지는 생각할 수 도 없으리라고 짐작한다. 사회적 편견이 아무리 많이 깨어졌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부정적인 시선은 남아 있기 때문에. <비너스에게>에서의 주인공은 동성을 사랑하는 소년 성훈이기도 하지만, 넓게 본다면 애미의 오.맙.또 친구들이기도 하다. 상황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성훈과 같이 그들도 사회로 부터 내쫓겨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자와 남자의 사랑만이 '정상' 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동성에게 눈을 뜨게 된 성훈은 자신이 속한 사회밖으로 나오게 될까봐 불안해 하는 한편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한다. 평범하게 남아있고픈 욕구와 솔직하게 드러내고픈 욕구가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서 성훈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여자이야기를 하며 '내가 어떤 놈인지 나 자신도 모른다면 남들도 그러지 않을까'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가장 소중한 친구 영무와 유일무이한 가족 엄마에게 마저 비밀이 생겼다는 이유로 성훈을 괴롭게 한다. 사회가 의미하는 평범의 기준으로 들어가기 위해 성훈은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지만, 결국 짝사랑상대인 3학년 선배 앞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제어가 안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게된다. 평범의 틀 안에서 '틀려'버린 성훈은 원치 않는 아웃팅을 당하며 어떠한 항변도 하지 못한 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자퇴를 하게 된다. 좋든 싫든 간에 자신을 포함해주던 우리에서 빠져나오며 성훈은 쓰라린 패배감과 아픈 사랑의 상처를 맛보면서 모든것과 점점 멀어지며 우울증과 자폐를 겪게 된다. <비너스에게> 에서는 동성을 사랑하는 소년을 통하여 '다르다와 틀리다' 그리고 '평범과 특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학교와 엄마는 사회적 틀에서 평범해지길 강요한다. '평범하게 정상인'이면서 남들과 다르게 특별한 것 그러나 정해진 틀 안에서 들어오지 못한다며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사회. 학교에서 내버려진 것은 성훈에게 '패배자'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고 엄마는 그러한 성훈에게 지쳐 '정상인' 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대학 동기 양나씨가 운영하는 상담소 애미에 보내게 된다. 애미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회적 평범의 틀로부터 쫓겨난 아이들이 모여 사회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쉬어가고 준비하는 곳이다. 틀렸다고 쫓겨난 아이들과 지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성훈은 자신 정도면 정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틀리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우쳐 간다. 양나씨로 부터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성훈은 이 과정에서 어른으로 되어가는 법과 사랑에 대하여 여유를 두고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여전히 앞으로도 상처를 받을 것이고 후회를 할 것 이며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을 양나씨와 또 애미에서 만나게 된 현신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p259 "엄마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미성년자 한정이라고 했어. 내가 성년이 되려면 아직도 2년하고도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동안 내가 할 일은 무언가를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것,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듯 내 삶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 <비너스에게>를 읽기 시작할 때는 동성의 소년이 어떻게 다양한 난관들을 헤쳐 나갈까하는 호기심이었다. 다양한 난관이 우리가 매일 살아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쌓아두는 벽이라는 것을 이 책의 성훈이 아프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을 때는 솔직히 충격이었다. 나는 개방적이고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미 무의식중에서 나도 남들과 똑같이 벽을 쌓아 올리고 있지 않았던가. 사회는 우리에게 특별해지길 강요한다. 특별한 아이는 특별한 케이스로 성공합니다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정작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없는 범위로 발을 딛게 되면 '특별'이 아닌 '틀렸다'라고 말하며 쫓아낸다. 그렇게 쫓겨난 동성애뿐만 아니라 사회적 모든 소수자들이 정상인이 아닌 패배자라는 생각으로 아픔을 느낄 때 '우리는 이해한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어느 한쪽이 이해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너스에게>를 통하여 단순한 동성애를 이겨내는 소년을 보았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전체에 깔려있는 높은 벽을 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