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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책표지에 '천재소매치기 VS 절대 악의 화신'이라는 문구와 더불어 당신은 운명을 믿느냐고 묻는 문구가 이 책이 범상치 않음을 미리 예고하고 있었다.
나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 편도 그렇다고 믿지 않는 편도 아니다.
이 책에서 기자키는 그렇게 말한 주인공 나 에게 '시시한 놈' 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시시한 놈이 될 것 이다.
절대 악의 화신인 기자키의 뜻처럼 운명을 조정하고 신처럼 군림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 할 테니 말이다.
소매치기에 관한 내 생각은 부정적이다.
이건 누구라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지갑을 빼내어 그 돈으로 먹고 자고하는데 좋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다.
이시카와(신미)는 나와 소매치기 동지이다.
둘에게는 소매치기꾼이면서도 묘한 룰이 있는데 그것은 부자의 지갑만 노릴 것! 이었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라고는 연고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소매치기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더 의지하고 아꼈던 것 같다.
이시카와는 사고를 치고 팔레타인으로 도망을 쳤었다.
그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큼 위험한 상황에서 기자키의 도움으로 신미라는 새로운 이름을 걸고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시카와의 제안으로 도쿄를 뜨기로 할 때 기자키의 부탁으로 한 사건에 가담하게 되었다.
5백만 엔을 지급해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허접한 임무이지만,
이 일이 끝나고 이시카와는 그 사람의 손에 죽게 되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는 담담한 태도를 시종일관 보이지만 의외로 다정하고 정을 그리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연찮게 들린 마트에서 엄마의 지시로 물건을 훔치는 꼬마를 보고 몇 번이나 도와주는가 하면 그 아이게 소매치기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돈을 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p.112; 이거 다 줄게. 또 슈퍼 가서 물건 훔쳐오라고 하면 이 돈으로 사. 이젠 더 이상 오지 말고
그런가 하면 처음에 부자의 지갑만을 노린 것은 이시카와의 말처럼 그들은 모든 것을 다가졌기 때문에 하나쯤 잃어보아도 괜찮다는 생각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p.93; 남자의 온화한 표정과 그 너머에 있을 터인 그들의 부드러운 생활에 내 손이 닿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고 하는 것처럼 이시카와가 없을 때에도 계속 그렇게 하였던 것은 이러한 평온한 평범한 가정을 부러워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자키는 이러한 것을 소매치기가 가져서는 안 될 쓸데없는 감정의 일부라고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주인공 나는 절대 악의 화신이 아니고 그냥 천재소매치기로 남아 대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키는 도쿄로 돌아오지 말았어야할 나와 조우하면서 노예소년의 운명을 조절한 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러면서
그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처음부터 이 책을 덮을 때 까지 나는 왜 책의 제목이 쓰리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면서 기자키가
네 건 세 가지 조건 때문에 쓰리가 아닐까 한다. 또 세 가지 조건으로 인해 기자키가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기도 했고.)
어쨌든, 주인공 나의 운명은 귀족이 노예소년의 운명을 마음대로 한 것처럼 이미 기자키의 손에 달려있었다.
그가 내민 세 가지의 임무를 완수의 여부에 관계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예소년 처럼 주인공 '나'의 결말도 똑같았다.
이 소설의 재미는 소매치기 기술에 대한 섬세한 묘사라던가 그들의 심리묘사에 있다.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도쿄에서 마지막으로 부탁받았던 그 날의 사건과 이시카와의 죽음이 들어나면서 재미는 '운명'으로 넘어간다.
한 소설에서 두 가지의 재미를 뽑아내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이 책이 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대표작인지 책을 덮고 나서 정리하면서 완벽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운명을 내 손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
오직 하늘과 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내 손으로 할 수 만 있다면 기자키의 말처럼 가장 큰 쾌락이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누렸다고 할 수 잇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끝부분에 내가 피가 흐르는 부위를 부여잡고 주머니 속에 있던 동전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던지면서 끝나듯이 남이 조정한 운명이라도 나의 의지가 있다면 약간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황상으로 본다면 주인공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동전을 보고 누군가가 달려와 구했고 그 결과 극적으로 살았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