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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의 도시
데이비드 베니오프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그리고 오래 살려면 그건 비밀로 간직해 두는 게 좋겠지?"
전쟁. 전쟁이란 단어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는 어색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도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배웠다. 그 당시의 모습은 눈뜨고 보기에 끔찍할 정도로 참혹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나는 그 상황이 어떻게 끔찍했는지 느끼지 못하였다.
<도둑들의 도시>는 유대인소년인 레프와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매력적인 코사크인 콜야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탈영별과 도둑으로 만난 두 사람은 비밀장교의 명령을 받아 열두 개의 계란을 찾아 장교에게 바치는 긴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계란을 찾기 시작하면서 내가 느끼지 못하였다는 전쟁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이 배고픔에 같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던가. 혹은 의사와 간호사들 또한 메스를 소독할 수 없어서 그냥 이용한다던가…….
흔히 요즘은 '먹기 위해서 사는가, 살기위해서 먹는가?' 라는 이야기로 농담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 책을 읽는 동안 이 농담이 정쟁 시에 사람들이 들었다면 얼마나 기가차고 화가 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농담을 주고받은 내가 그 곳의 미치광이로 취급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도 전쟁이 지나간 자리였는데, 내가 이런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는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콜야가 죽고, 레프가 장교에게 계란 열두 개를 전했을 때 장부에는 이미 48개의 계란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답답했던 그 순간을 잊을수가 없다. 전쟁속의 권위와 권력.. 그리고 힘없는 시민과 내 소중한 친구. 책을 덮고 책꽂이에 책을 넣는 그 순간까지도 장교의 마지막 말이 잊히지가 낳는다. "그리고 오래 살려면 그건 비밀로 간직해 두는 게 좋겠지?"
책은 단순히 전쟁의 끔찍함과 공포, 그리고 그 속의 두 사람의 우정에 관하여 감동을 전해 줄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덮은 뒤에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고 느낀다. 책은 내게 그 이상으로 전쟁의 의미와 평화의 중요성, 그리고 진솔하고 소중한 친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상으로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긴 여운을 남기면서 내게 전쟁과 평화에 관해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