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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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머리말에서 존 레이 박사는 이 원고를 변호사 클라크에게 받은 범죄자 험버트 험버트의 회고록이라고 밝힌다. 상당히 금기시되어있는 소재를 다뤘고, 소설에서 작가와 화자를 동일시하는 보통의 독자들(혹은 나같이 독자와 화자를 동일시하는 경우)을 고려한 장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험버트는 스위스 태생의 유복한 집안에서 유산을 물려받은 미남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이모의 친구 딸인 에너벨과 같이 뜨거운 여름을 불태웠으나 애너벨은 티푸스로 사망하고, 그의 애너벨은 그가 선호하는 ‘님펫’의 원형이 되어 이후 험버트가 소아를 갈망하는 원천이 된 듯하다.(웬만한 서술어가 피동형으로 쓰일 것 같은데 이는 소설이 독자를 관찰자로 밀어내려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험버트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나이 차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고 밝힌다. 그는 물론 또래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 발레리아라는 폴란드인 의사의 딸이었는데, 4년 결혼생활 후 험버트의 이모부가 막대한 재산을 험버트가 미국으로 와서 사업을 경영하는 조건으로 남겨, 그는 발레리아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절차를 밟아가던 중에 발레리아가 러시아 퇴역장교와 외도한 고백을 듣게 되고, 둘은 이혼해 험버트 홀로 미국으로 오게 된다. 험버트는 뉴욕에서 신경쇠약에 시달리기도 하고, 치료를 받으며 의사들을 기만하기를 일삼고, 북극을 탐험하러 가는 등의 생활을 보내다 회사의 직원이 여름 휴가기간 동안 자신의 친척 맥쿠씨 집에서 요양할 것을 제안해 그곳으로 떠나지만, 맥쿠씨의 집이 화재가 나 맥쿠부인의 친구인 샬럿의 집을 소개받는다. 그는 그곳을 바로 벗어나려 했지만, 샬럿의 딸인 로(롤리타)를 보자마자 그 소녀에게 사로잡혀 샬럿의 집에 머무르기로 한다. 험버트는 로를 지속적으로 염탐하지만 험버트에게 관심이 많은 샬럿은 험버트를 딸의 위험요소로 생각하지 않고 되려 로이를 서로 험버트의 애정을 차지하려는 경쟁자로 인식했다. 샬럿은 로이를 캠프Q에 데려다주면서 험버트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며, 자신과 결혼하여 로의 아빠가 되든지 뉴욕으로 돌아가든지 선택하라는 편지를 남겼고, 험버트는 이 제안을 로를 좀 더 가까이서 추행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샬럿과 결혼한다. 하지만 샬럿은 로를 기숙학교에 보내 험버트와 단둘만의 결혼생활을 계획하고 있었고, 험버트는 이 문제의 상황을 해결할 궁리를 한다. 하지만 샬럿이 험버트의 서랍을 뒤져 그의 본심이 탄로나고, 샬럿은 험버트에게 당장 램스데일을 떠나라고 하며 이 상황을 고발하는 편지를 붙이러 가는 길에 차 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험버트는 이를 기회로 캠프Q로 달려가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로 로를 캠프에서 빼내고, 이미 죽은 엄마의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모텔에서 로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험버트는 성행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어린 소녀의 육체를 탐하는 욕망만을 가지고 있었다. 로에게 수면제를 먹여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려 계획했지만, 로에게 수면제가 잘 먹히질 않았고, 아침에 한 침대에서 눈을 뜬 험버트는 자는척하며 로의 반응을 지켜보았는데, 로는 되려 그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험버트에게 다가가 접촉한다.

정신병자의 회고록이라 자기 합리화로 보이지만, 험버트의 ‘진술’에서 로는 성에 일찍 눈을 뜨고 험버트를 상대로 자기 욕구를 채우는 소녀로 묘사된다. 험버트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후반에 소설의 반전이 일어나듯이, 로는 험버트를 조종하고 이용하고 있었다. 험버트는 그날 아침 로에게 샬럿의 소식을 전했고, 로에게 의지할 것이라고는 험버트만 남은 상황에 험버트는 아주 손쉽게 로를 차지하다.

험버트와 로는 그길로 함께 미국을 여행한다. 그 과정에서 험버트는 롤리타가 자신이 욕망했던 예쁘장한 인형이 아니라 예민하고 변덕이 심한 사춘기의 소녀라는 것도 깨닫는다. 로가 성질을 부리면 감화원에 보낸다고 위협하며, 자신과 함께하는 자유를 계속 만끽하고 싶다면 자신을 따르라는 가스라이팅도 일삼는다.

‘미성년자인 네가 고상한 모텔에서 어른의 윤리의식을 흔들어놨다고 고발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자. 그때 네가 경찰한테 내가 너를 유괴하고 강간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 그럼 나는 감옥으로 가는 거야. 그래, 가지 뭐. 그런데 고아인 너는 어떻게 될까? ...... 물론 전망이 좀 어둡긴 해. 미스 팔렌처럼 근엄하면서도 훨씬 더 완고하고 술도 안 마시는 아줌마가 네 립스틱이랑 예쁜 옷들을 압수하겠지. 마음대로 나다닐 수도 없고! ...... 만약 우리 사이가 들통난다면 너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나서 공공시설에 수용될 거야. 귀염둥이야, 그게 결말이란다. ...... 이런 상황이라면 아빠 곁에 있는 편이 낫지 않겠니, 돌로레스 헤이즈?’(240-241p.)

어느 날 갑자기 로와 자신의 법적 관계가 염려스러웠던 험버트는 로를 동부로 데려와 비어즐리 사립학교에 입학시킨다. 로는 학교에서 연극도 참여하고, 험버트는 로의 친구들과 크리스마크 파티를 열어주는 등의 일상을 보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험버트는 로가 점점 소녀를 벗어나 숙녀의 티가 나는 것을 느끼던 중, 피아노 레슨을 빠지고 로가 무엇을 했는지 추궁하는 과정에 큰 다툼이 일어난다. 로는 험버트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미국을 여행하자고 제안하고, 둘은 다시 여행을 떠난다. 험버트는 여행 중 계속해서 자신의 사촌 트랍을 닮은 남자가 미행하는 듯한 불길한 기분이 들고, 로가 트랍같이 생긴 남자와 대화하는 모습을 포착하지만 로는 지나가는 남자라며 둘러댄다. 험버트는 호텔 테니스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테니스 복식 경기를 하자는 제안을 거절하던 중 호텔에서 비어즐리 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을 듣고 갔으나 그 전화는 누군가의 교묘한 장난이었고, 그 사이 로는 트랍같이 보이는 남자와 넷이 복식 경기를 하고 있었다. 타이어가 펑크난 상황에서 자신의 차를 미행하던 트랍에게 가는 험버트를 다시 그들의 차로 유인하기 위해 로는 차를 출발시키는 등 수작이 이어지자 험버트는 계속해서 로를 추궁하지만 로는 다른 구실을 대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로의 연기를 보며 험버트는 로에게 연극수업을 받게 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로는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했고, 그 사이 어느 남자와 험버트를 따돌리고 도주한다.
험버트는 사설탐정까지 고용하여 로를 찾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로를 찾지 못했고, 세 번 이혼한 여자 리타를 만나 동거를 하던 중 로에게 자신은 딕이라는 남자와 결혼했으며 곧 출산하고 알래스카로 이주할 예정이며 돈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받는다. 험버트는 편지를 추적해 로를 찾아내고, 로는 퀄티라는 남자와 비어즐리에서부터 험버트 몰래 연애를 하다 병원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로는 함께 떠나자는 험버트의 제안을 거절하고, 험버트는 램스데일로 돌아와 퀄티를 추적해 그림로드에 있는 퀄티를 찾아가 죽여버리고 오는 길에 난폭운전으로 체포된다. 로는 분만 중에 숨을 거두고, 험버트는 구금 중 질병으로 죽는다.

험버트가 극악무도한 소아성애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험버트가 성인이 된 로에게 끝까지 집착해 파국에 이른다는 전개가 조금 의아하기는 할 것 같다. 특히 롤리타라는 대명사가 소아성애의 피해자로만 인식했던 또 다른 편견은, 로가 생각보다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퀄티와의 도주계획에 험버트를 이용하는 등의 전개로 미루어 역시 의아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작가도 외설적인 내용을 고려하여 범죄자의 ‘회고록’이라는 트릭으로 독자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 그 회고록에서 굳이 퀄티라는 반전을 뒤에 숨겨두고 있어 책 전반부를 샅샅이 뒤져 퀄티라는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독서를 고난스럽게 했다. 번역자의 의견대로 이 책은 두 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니까.

그러나 20대 때는 물론이고 30대 초반까지도 내 번민의 본질을 명료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육체는 자기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았지만 정신은 육체의 하소연을 모두 외면해버렸다. 한순간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무모하리만큼낙관적으로 돌변하기 일쑤였다. 온갖 금기가 목을 졸랐다. 정신분석가들은 가짜 성욕을 해소하는 가짜 치료법을 권했다. 내가 짜릿한 연정을 품으려면 상대가 애너벨의 자매이거나 하다못해 그녀의 몸종이나시녀쯤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광기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 P32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인데, 아마도 여러분은 내가 벌써 게거품을 물고 흥분하는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저 작은 잔에 즐거운 생각을차곡차곡 담아둘 뿐이다. 여기 사진이 몇 장 더 있다. - P33

아니, ‘끔찍이도‘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새로운 기쁨을 기대하면서내가 느끼는 흥분은 끔찍하다기보다 애처로웠다. 나는 애처롭다고 표현하겠다. 어째서 애처로우냐ㅡ지칠 줄 모르는 불길처럼 성욕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도 성심성의껏 열두 살 먹은 아이의 순결을켜줄 작정이기 때문이다. - P103

다음은 매우 중요한 발언이니 부디 명심해주기 바란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내면은 신사적 측면보다 예술가적 측면이 우세하다. - P118

로마법에 따르면 여자는 열두 살부터 결혼할 수 있었고, 기독교 역시 이 규정을 채택했으며,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지금도 이런 일을 묵인해준다. 그리고 열다섯 살은 어디서나 합법적이다. 북반구에서든남반구에서든, 가령 지역 목사의 축복을 받고 술에 취해 잔뜩 흥분한마흔 살 먹은 짐승이 땀에 젖은 예복을 벗어던지고 어린 신부를 덮쳐뿌리 끝까지 삽입해버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신시내티 등지의 자극적인 온대성 기후에서 여자는 열두 살이 될 무렵에 성숙해진다" (이 교도소 도서실의 오래된 잡지에 실린글이다). 돌로레스 헤이즈는 바로 그 신시내티에서 채 300마일도 안되는 곳에서 태어났다. 나는 자연의 섭리를 따랐을 뿐이다. 나는 자연의 충실한 사냥개다. 그런데 어째서 이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할까? - P217

천진함과 기만, 매력과 천박함, 어둡고 시무룩한 표정과 밝고 명랑한 표정을 모두 갖춘 롤리타는 한번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면 정말 울화통이 터질 만큼 밉살스러운 계집애였다. 때로는 따분해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때로는 시무룩하고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널브러지고, 때로는 그냥 건들거리기도 하는데―자기 딴에는건달처럼 거칠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바보 흉내에 불과했다―변덕이 하도 죽 끓듯 해서 도저히 감당할길이 없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평범한 계집애였다. - P235

지금쯤 독자 여러분도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실무에 밝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를 찾아조언을 구하지도 못할 만큼 무지하거나 게으르지는 않다. 그런데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 섣불리 운명의 흐름을 건드리다가, 즉 운명이 내손에 쥐여준환상적인 선물을 정당화하려다가 오히려 선물을 도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 P276

비스듬히 드러누워 손거스러미를 물어뜯으면서 냉혹하고 흐릿한 눈으로 나를 조롱하듯이 바라보았는데, 한쪽다리를 길게 뻗어 스툴 위에 올려놓고 신발을 신지 않은 발꿈치로 줄곧 스툴을 흔들어대는 그녀를 보는 순간, 2년 전 처음 만난 후로 그녀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한눈에 확인하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독한 환멸을 느꼈다. 아니, 최근 2주 사이에 일어난 변화일까? 그녀에 대한 애정은? 전설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내 불타는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욕망의 안개가 말끔히 걷히고 무서울 정도로 정신이 맑아졌다. 아아, 그녀가 변해버렸구나! - P325

경찰이 이런저런 일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벌어지는지, 네가 어떤 곳으로 가게 되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그놈이 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너는 그놈한테 뭐라고 대답했는지똑바로 대란 말이야. - P349

롤리타의 눈을 보니 놀랐다기보다 손익을 따져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가 어느 친절한 숙녀에게 아빠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하는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한참 동안 라운지 의자에 누워 진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는 다시 운전을 할 만큼 기운을되찾았다. (그후 몇 년 동안 의사들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믿어주지 않았다.) - P380

존 레이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롤리타』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런 책은 흔치 않다. 나머지는 모두 시시한 졸작이거나 이른바 관념소설인데, 마치 거대한 석고 덩어리처럼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조심스럽게 전해지는 관념소설도 사실은 시시한 졸작일 때가 아주 많다. 언젠가는 누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서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 만을 힘차게 때려부수리라.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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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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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후광으로 찾아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그로테스크한 내용에 놀랐다. 표제작 <저주토끼>는 흥미진진했고, 저주는 결국 인과응보로 돌아온다는 ‘교훈’도 좋았다. 다만 그다음 작품들은 어찌나 기괴하고 불쾌한 소설들이 이어지는지, 중간에 책을 그냥 덮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끝까지 차분히 읽어보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몸하다>부터는 불쾌감은 가라앉힐 수 있었고, 윤리적 상상력이 가미된 장르소설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다만 그로테스크한 불쾌감보다 더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내용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흉터>나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 나타나는 ‘장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두드러지는 점. ‘장애’를 ‘죄로 인한 형벌’로 다루고 있고, ‘선’을 행하면 보상과 면죄의 차원에서 ‘장애’를 ‘극복’한다는 전개가 좀 짜증이 난다. <심청가>는 그래도 ‘고전’이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읽으면 되지만, 지금 시대에도 장애를 ‘벌’로 인식하고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여 행복에 이른다는 새로운 소설이 나올 필요가 있을까.
작가 후기(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슬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326p.)처럼 인생에서 쓸쓸함과 허무함과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너무 크게 분노할 것도, 정말 나쁜 사람이라며 미워할 것도 없이.

아래는 줄거리 요약.

<저주토끼>
과거부터 저주를 집안의 업으로 삼는 집이 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친구의 양조사업을 망하게 한 경쟁사 사장을 저주하기 위해 토끼인형을 만들어 경쟁회사에 보낸다. 토끼인형은 밤마다 회사의 모든 종이로 된 문서와 목재를 갉아먹고 똥을 싸지만, 경쟁회사는 이를 쥐의 소행이라 판단하고 방역만 열심히 한다. 하지만 좀처럼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귀중한 문서를 금고로 옮기지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회사의 중요 문서나 수표까지 전부 토끼에 의해 갉아 먹힌다. 경쟁사는 위생문제로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매출이 감소해 점차 기울어가는 도중, 경쟁회사 사장의 손주에 눈에 들어온 토끼인형은 사장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손주는 저주에 걸려 토끼 흉내를 내며 정신을 잃어가다 죽고, 사장의 아들 역시 건드리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는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미쳐가다 죽는다. 사장의 사업은 망하고, 집안사람들은 결국 다 죽어버린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32p.)

친구의 복수를 위해 가문의 불문율을 어긴 할아버지도 결국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화자에게 본인이 저주를 건 이야기를 들려주러 화자를 계속해서 찾아온다.

<머리>
한 여자의 배설물로 형체를 점점 이루어 가는 머리가 변기에서 계속 나타난다. 여자는 ‘머리’를 없애려 머리가 나타나면 변기 물을 내려 버리고 이사도 가고 머리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려도 보지만 ‘머리’는 계속해서 여자가 결혼한 후에도, 여자의 딸 앞에도 나타난다. 어느 날 여자가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보이지 않던 ‘머리’는 완전한 성체가 되어 변기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옷을 벗어달라던 ‘성체’는 여자의 옷을 입고는 발가벗은 여자를 변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다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57p.)

<차가운 손가락>
어둠에서 눈을 뜬 여자는 앞이 보이지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옆에서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목소리는 그녀와 같이 사고를 당한 것 같다. 목소리는 그녀와 같이 학교 동료 선생님의 신혼집 집들이에 갔다고 했다가, 이혼해서 지방으로 내려간 자취집에 갔다고 했다가, 목을 매 자살한 동료의 장례식에 갔다고 하는 둥 혼란스럽게 상황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한다.

‘산다는 거, 정말 불공평하지 않아요? ...... 재미있지 않아요? 독같이 차 사고를 당해도, 누구는 끈질기게 살고, 누구는 그 자리에서 그냥 죽고....’(78p.)

여자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손에 다른 손이 얹혀있는 차를 마주하게 되고 다시 어둠이 덮친다. 다시 어둠에서 깨어난 그녀에게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몸하다>
남자 없이 여자의 몸에 아이가 들어선다. 의사는 임신을 했으니 여자에게 아이의 아빠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리둥절한 여자는 아빠를 찾아 맞선을 보러 다니게 되었고, 맞선 상대들은 다 임신한 여자를 보고는 외면해 버린다. 딸의 배우자를 찾던 가족들은 신문에 아이의 아빠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버리고, 이로 인해 여자는 사기 전화에도 시달리고, 어떤 사업가가 나타나 아이를 불임부부인 자기 아들의 자식으로 삼게해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보상을 해준다고 하기도 한다. 결국 아빠를 구하지 못한 여자는 태동을 느끼며 병원에 실려가는데 여자가 실려간 구급차의 운전사가 처음으로 맞선을 본 남자였다. 아이는 그냥 핏덩이로 태어나고, 의사는 아빠를 구하지 못한 여자의 책임이라며 타박한다. 그 사이 구급차 운전사가 자신이 아빠가 되겠다고 나타나지만 아이는 흥건한 피로 고여있을 뿐이다.

<안녕, 내사랑>
로봇 개발자는 수명이 다한 로봇 1호 로봇 ‘세스’에게 애착이 가 폐기하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개발자는 새로운 로봇 ‘샘’을 ‘세스’라고 명명하고 옷장에 방치되어 있던 1호 로봇을 ‘세스’에게 동기화한다. 동기화가 완료된 1호 로봇은 옷장에서 자신이 수명이 다해 곧 폐기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세스’에게 동기화가 완료된 1호 로봇은 다른 두 로봇 ‘세스’와 ‘데릭’의 힘을 빌려 개발자를 살해한다.

<덫>
어떤 남자가 덫에 걸려 금빛 피를 흘리는 여우를 발견한다. 여우는 남자에게 “나를 풀어주시오.”라고 말하지만, 여우의 피가 굳으면 금덩어리가 되는 걸 발견한 남자는 여우를 잡아 와 조금씩 피를 흘리게 하여 황금을 만들어 낸다. 계속 황금을 흘리는 화수분 같은 여우 덕에 남자는 남들과 달리 조급하지 않게 사업을 운영하였고, 이런 수완은 남자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남자는 곧 결혼해 남녀 쌍둥이를 낳는다. 하지만 결혼 3년째 여우가 죽자 남자의 안정적 자산이 사라지게 되었고, 남자는 불안감이 커져 예전만큼 수완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사업은 기울어진다. 그러다 남자는 아들이 딸의 피를 빨아먹으면 여우처럼 황금피를 흘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는 아내 몰래 아이들을 이용하여 황금을 만들었는데, 이를 발견한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지다 수년 전 여우가 걸렸던 덫에 부딪혀 사망한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남자는 중년의 부자가 되어 큰 사업을 벌이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남매관리를 소홀히 하던 차에 아들이 딸을 임신시킨다. 어느 날 딸의 배가 불러온 것을 본 남자는 의사를 매수해 낙태를 시키려 하지만 딸은 비명을 지르며 “나를 풀어주시오.”라고 외친다. 아들은 의사에게 덤벼들어 목을 물어뜯었고, 난장판이 된 집 안에서 딸은 죽고 아들은 의사가 꺼낸 딸의 아이를 들고 사라진다. 집에는 딸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았고, 모든 사업에 손을 뗀 남자는 마지막 순간 “나를 풀어주시오.” 하면서 숨을 거둔다. 이후 어느 다른 마을에 아버지의 시체에서 황금을 꺼내 먹는 아이가 발견된다.

<흉터>
한 소년이 마을의 저주를 풀기 위해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괴물은 소년의 척추에서 무언가를 빨아먹었고, 평생을 괴로워하던 남자는 어느덧 성장하여 동굴을 탈출한다. 하지만 어느 중년 남자가 아이를 데려다가 동물부터 사람까지 상대하는 싸움판에 끌고 다니며 돈을 벌었고, 몸이 쇠약해져 더이상 싸움을 할 수 없는 남자는 산속에 버려지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우연히 자신을 제물로 바쳤던 마을에 들어선다. 그 마을에서 남자를 알아본 눈이 먼 여자와 그녀의 오빠는 그를 헛간에 가둬버린다. 눈먼 여자는 남자에게 오래전 마을에서 남자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마을의 저주를 풀기 위해 고아인 소년을 제물로 바쳤던 일을 고백한다.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괴물을 죽이러 나섰고, 결투 끝에 괴물을 죽인 남자는 마을에 돌아오지만, 괴물과 함께해야만 상생할 수 있었던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즐거운 나의 집>
한적한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싶었던 부부는 아파트를 청산하고 시골의 빌딩을 매수해 정착한다. 하지만 계약 전 미처 확인하지 않았던 꼭대기 층 주인세대에 쥐와 벌레가 들끓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이상하게도 지하에는 다행히 쥐와 벌레가 없었고, 이 지하층은 부부 아들의 놀이터가 된다.
집에서는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텃새를 부리던 이웃집 남자가 원인 모를 폭행을 당해 부부를 고소하기도 하고, 사무실에 임대해온 남편의 친구가 행방불명이 되며, 1층 상인은 권리금으로 마찰을 빚다 토막살인을 당한다. 행방불명된 남편의 친구 전화를 받은 아내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편은 결국 상간녀와 사고를 당해 숨진다. 처음엔 그림자만 있던 아들은 점차 형상이 드러났고, 여자는 원래부터 그 빌딩에 있던 아이와 함께 계속 살아간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모래사막 위 황금 배의 주인인 주술사는 전쟁 중 모래사막의 왕에게 팔이 잘리고, 이에 분노한 주술사는 앞으로 모래사막 왕의 후손들은 모두 불구로 태어나리라는 저주를 내린다. 모래사막 왕은 이를 무시하지만, 그의 아들은 장님으로 태어난다. 그의 신부감이었던 숲의 공주는 결혼식 전 왕자에게 모래사막왕국에 대한 저주를 듣게 된다. 공주는 황금 배의 주술사를 찾아가 전쟁에서 졌다고 저주를 내린 것은 비겁하다며 저주를 풀어달라 요청한다. 하지만 주술사는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모래사막의 왕이 황금을 약탈하기 위한 침략전쟁이었다며, 저주를 풀어줘도 공주는 왕자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저주를 풀어달라는 공주의 요청에 주술사는 눈먼 물고기를 잡아 풀어주면 왕자의 눈이 뜰 것이라고 알려주고, 사막에서 헤매던 공주는 눈먼 물고기를 발견해 왕자의 저주를 푼다. 모래사막의 왕과 저주가 풀린 아들은 황금 배를 침략하려 했고, 자신이 믿지 않았던 진실을 확인한 공주는 침략을 막으려 하다 주술사의 마녀로 오인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황금 배의 주술사가 모래사막의 왕국을 무너뜨렸고, 공주는 주술사와 함께 평온과 무한의 여정을 떠난다.

<재회>
폴란드에 유학 중인 여자는 카페에서 폴란드 남자와 함께 광장을 한 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유령을 바라본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풀려난 남자의 할아버지는 평생 트라우마를 가지며 살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 자신을 묶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몇 년 뒤 그들은 재회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유령을 보는 능력 때문에 카톨릭 신자인 부모에게 당한 일을 이야기하고, 여자는 이번에도 남자의 부탁대로 남자를 묶어준다. 다음 날 여자는 욕실에 스스로 자신을 묶은 남자를 발견하고 남자는 혼자 죽기 위해 효율적으로 스스로 묶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자를 떠난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
타인을 저주하면 결국 자신도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 P32

자신이 ‘요령‘이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요령‘
을 남들은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돈을 최대한 빨리 많이 벌어서 더 넓은 집과 더 비싼 차를 사고 자식을 수업료 비싼 영어 유치원과 경쟁률 높은 사립 학교에 집어넣고 계절마다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남 보기에 ‘번듯한 삶일 수는 있어도 그녀가원하는 인생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원했고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동네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런 동네를 찾아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P235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더욱 그렇다. 집밖의 문제를 피해가정으로 돌아와도 가족이집 안에서 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P259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이 보이게 - P271

"저주는 풀 수 있으나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눈먼 인간을눈 뜨게 할 방법은 없다. 저들이 언젠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을 알고 있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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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맞춤법이 틀리는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무심에서 비롯된다는 소견이 인상적이다. 노력도 태만하면서 항상 어휘력이 좋아지길 바란다. 관심이 최선의 방법이라 새로 깨달았다. 발전해 나가길 스스로 응원한다.

어휘력은 말발 센 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풀이하는데 그러려면 낱말을 양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하긴 해도 낱말에 대해 ‘잘‘ 알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것이 더 효과적이다. 여기서 ‘잘’이란 다른 낱말과 함께 배치했을 때 의미나 어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섬세하게파악한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부유한 시대를 살면서도 많은 사람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세상이 뭐 하나 제대로돌아가는 것 없이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건 산업경제가 도입된 후에 인간을 꾸준히 도구화한 원인이 크다.

"가격을 가지는 것은 무엇이든 동등한 자격을 지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칸트의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해도 사람들은 선험적으로 안다.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지역감정‘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어휘가 아니다. 높은 산맥과 큰 강을 경계로 말이 달라지는 것처럼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이 뿌리 깊은 갈등이 된 것은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차이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차별한 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이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나중에는 세뇌된 사람들을 통해 무신경하게 살포됐고 현재도 그러하다. 나는 반세기에 걸친 이 사투리 전쟁에서 승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나 자주 쓰는데 번번이 맞춤법을 틀린다는 건 무식보다 무서운 무심함이다. 그 무심함이 정말 꼴 보기 싫다.

잘한다는 평가 말고 다른 말, 층고, 조언, 주의, 지적, 불평 따위를 들으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거나 의기소침해진다. 나를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의 의견일 뿐이며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이해하면 좋으련만, 이미 결과중심주의에 단련된 두뇌회로는 평가로 받아들인다.

"문 닫고 나가라."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문 닫고 어떻게 나가냐고 한 예닐곱 살의 나는 말의 의(意 : 뜻 알았을지 몰라도 미(味 : 맛, 기분, 취향, 느낌, 기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휘력은 말뜻뿐 아니라 말맛도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글쓰기를 분리한다는 점과 주어와 시점을 챙기는 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글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은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여기에 주어와 시점만잘 챙겨도 웬만한 문장은 완성할 수 있다. 한 문장이 길면 또 주어와 시점이 헛갈리니 짧게 쓰는 것이 낫다. 그렇다고 무작정 문장을 자르려 하면 그거 고심하느라 영감이 날아가 버릴 수 있으니 일단 떠오르는 대로 쓰고 수정하면서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안 붙이면 허전해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수식어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찾는 게 우선이고, 형용사를 용언으로 돌려놓으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뜻이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보다 ‘음식이 맛있었다.’,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보다 ‘오늘 즐거웠다."는 식으로 말이다. 뭘 먹어서 맛있었는지, 어떻게 보내서 즐거웠는지. 구체적인 어휘와 함께 쓰면 글이 생생해진다. 이런 수고를 생략하고 ‘맛있는‘,
‘즐거운’ 등의 형용사를 동원해 문장을 뭉뚱그리면 대명사처럼 모호해진다.

필사하면서 아주 느리게 지워나갈 수 있었다. 전형적, 주입식, 세뇌……힘 센 어른들이 젠체하며 한 모든 말들, 힘없는 어른들이 비겁해서 한 모든 말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배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 내가 맘껏 탓하고 욕해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조금씩 후련해졌고 덜 외로워졌다.

자료와 근거가 8할을 차지하고 주장은 2할 내외다. 그 2할을 주장하기 위해 8할을 총동원했고 읽는 이들이승복하게끔 순서를 배치한다. 여기서 유의할 사항은 그 8할이 질적으로 편향돼 있거나 양적으로 지나치게 적은표본을 취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유치해진다는 거다.
질적으로 균형 잡혀 있고 양적으로 충분한 자료와 근거를 걸맞은 어휘로 압축해 뒷받침하는 주장은 설령 수신자의 성향이나 믿음과 달라 끝까지 수긍할 수는 없다 해도 증오심은 생기지 않는다. 적의 의견이지만 존중한다는 마음은 이럴 때 생길 것이다.

누군가 쓴 글이 낡은 어휘에 갇힌 가치를 꺼내 현실로 가져오기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흔하고 닳은 어휘에 담긴 가치를 첫눈처럼 본다.

"나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란 아주 진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 1년간 성인이 읽은 종이책 연간 독서율 52.1%, 독서량은 6.1권, 책 읽은 시간은 평일 31.8분이다. 참고로 2015년 UN 조사에서 미국인 연간 독서량은 79.2권, 일본인 73.2권, 프랑스인 70.8권으로 한국인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독서량 166위. 이 수치는 무엇을 가리킬까. 한국 학생 열명 중 세명은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 열에 일곱은 글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실질문맹률이 OECD 국가 중최고 수준이다.

숫자가 기업 수익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 반응 미디어를 손에 들고 있는 한 사유, 음미, 상상, 사색 등이 끼어들 틈은 없다. 내면에 집중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소리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그에 따른 후유증을 피할 길 없다.

벼락같이 들이닥친 외세의 침입이거나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국가든 개인이든 망한 원인은 대체로 이러하다.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생각만 받아들이거나, 남의 생각 모르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거나.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의 경계가 순수하지 않은 시대에 앞서의 문장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겠다. 남의 생각에 조종당하고 정서에감염된 줄 모르고 자기 취향이나 정서, 선택, 가치관이라고 믿거나, 자기와 비슷한 생각만 받아들여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면서 남의 생각을 많이 안다고 착각하거나.
자기 관점 없이 남의 관점만 일방적으로 따라가거나 자기 관점과 같은 것만 받아들여 자아만 비대하게 키운다면 위험하다. 자칫 망할 수 있다. 인간은 늘 그 두 가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가와 사회, 가정은 목적이나 목표, 필요에 맞게 구성원을 조종하려는 의지를 가졌고 인간은 사회나 집단, 다른 사람이 가진 감정에 쉽게 감염될 수 있으며 자기가 선호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속성을 지녔다.

주최 측이 작품 <샘>, 아니 소변기를 저급하고 불결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하자 뒤샹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글을 발표해 반격한다. 이런 대목이 있다.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글이나 시, 노래를 쓰기도 하지만 짓는다. 문학, 사진, 그림, 조각 등의 분야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집짓는 사람, 작가(作)라 이르는 게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짓는다고 한다.

가끔 궁금하다. 돈 많은 사람들은 행복할까? 답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 돈이 많다고 불행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다시 묻는다. 행복과 불행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가치에 행복뿐 아니라 불행도 그 가치 중 하나다. 가격을 매기려는 속내는 그 가치를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치가 무엇이건 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연도 그러하다. 언제 누가 훔쳐가거나 잃어버리거나 할지 모른다. 물건은 발이라도 없지, 사람은 발까지달렸다. 인연이 우리 사이를 잇는 동안 내게 생긴 가장 좋은 것을 나누고 닳도록 사랑하자. 다음을 기대하지도, 기약하지도 말자.

변함없는 달변의 조건이 있다면 인간을 이해하는 것, 그중에서도 앞서 오뒷세우스가 연설했듯 ‘우리의 몸에서는가슴이 손보다 더 유능하고 우리의 모든 힘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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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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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관한 시시콜콜한 푸념이나 늘어놓는 단편적인 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책이 얇고 주제도 일상적이지만, 작가의 라면에 대한 애착뿐 아니라 라면과 작가의 삶을 비유적으로 짜임새 있게 꾸린, 잘 익은 라면 한 그릇 같은 책이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느꼈던 그 순간의 임시방편 같은 삶을 인스턴트 컵라면에 비유한다.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지 않는 자유로움도 있지만 그만큼 부유하고 있던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며 내 인생의 컵라면과 같았던 시기라는 의미를 붙이는 작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비빔면의 채소 고명을 보며 상상했던 전원 시골 농가의 삶을 톺아보는 등 작가의 인생에 대한 진한 농도의 고찰을 엿볼 수 있다.
라면 도구와 연관된 일화도 섞여있다. 라면포트와 연관된 원주 창작실의 생활이나 라면땅을 만들 수 있는 에어후라이를 비롯해, 냉라면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는 조미료를 갖추어가는 1인 가구 살림 성장기(완성기?)도 펼쳐진다.
친구들과의 만찬에서 일의 기본기를 언급하며 라면의 기본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하고 김치와의 ‘마리아주’를 완벽히 이룬 주점의 속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일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후반부 라면의 상차림에서는 호떡 장사를 했던 작가 어머니의 일화를 들고 와, 호떡 하나와 라면 상차림에 투여되는 너무나 많은 노동력을 보며 애틋함과 함께 감상에 젖게 한다.

가벼운 책이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라면과 함께 나의 삶에서도 상기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쓰레기 같은 일이 아니야. 그냥 일이지. 너에게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하고있는 사람이 있는 한, 절대 쓰레기 같은 일이 되지는않아." - P53

역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한법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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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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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콤에서 진 루이즈(스카웃)라는 소녀의 시각으로 미국 남부의 흑인 인권문제와 집단 내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소수자(희생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진 루이즈와 오빠 젬(제레미 애티커스 핀치)은 여름마다 레이철 아주머니의 집에 방문하는 딜(찰스 베이커 해리스)과 함께 래들리 집을 가지고 놀이를 즐긴다. 메이콤에서는 래들리 집안의 둘째 아서(부) 래들리가 탈선을 일삼다가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로 집안에 갇혀 살고, 부 래들리가 래들리부인을 살해했다는 등의 괴담이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천진한 세 아이들은 래들리의 집을 귀신의 집처럼 여기며 서로의 담력을 경쟁 삼아 래들리 집을 서성거리고, 부 래들리의 생김새를 괴물처럼 묘사하기도 하며, 래들리 집안에 관한 소문을 연극으로 만들어 놀기도 한다.

‘래들리 집안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었는데도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지냈는데, 그건 메이콤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27p.)

사실 집단주의 문화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습성이 아니다. 과거엔 어느 문명에서나 사람들은 생존에 유리한 집단생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행동이 유전되어 이제는 단체생활이라는 말로 순화되어 이제는 생존과 관계없이 개인에게 사회 이익을 위하여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단지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가 우리보다 아주 약간 빨랐을 뿐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습성을 아이들부터 스테퍼니 크로포드 같은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모디 아주머니 같은 인물은 스카웃에게 알지 못하는 일을 예단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며, 아버지 애티커스는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한테 일어난 일은 전혀 알 수 없어.’(94p.)-모디

하지만 아이들의 래들리에 대한 호기심은 끊이지 않아 낚싯대에 쪽지를 걸어 래들리 집에 전달하는 등 계속해서 장난을 친다. 그러다 늦은 밤 몰래 래들리 집에 침입을 하다 젬이 바지를 래들리의 집에 두고 도망쳐 오는 일도 생기지만, 바지를 다시 찾으러 갔을 땐 구멍난 젬의 바지가 수선되어 잃어버렸던 자리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래들리집 근처의 나무 옹이구멍에는 껌이나 동전, 털실 공, 비누 조각 등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해 아이들이 가져오면서 부 래들리와 아이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곧 부 래들리의 형인 네이선이 옹이구멍을 시멘트로 막아버린다.

소설의 국면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흑인인권 문제에 대한 화두로 넘어간다.
애티커스 가족은 핀치스 랜딩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갔다 스카웃이 사촌 프랜시스가 애티커스를 깜둥이 애인이라고 놀려대자 싸움이 벌어진다. 애티커스는 흑인 톰 로빈슨이 유얼집안 사람들에게 쓰인 누명을 풀기 위한 변호를 맡고 있어 마을 백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애티커스의 동생 알렉산드라는 핀치스 랜딩에서 애티커스의 아이들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메이콤으로 온다. 알렉산드라는 애티커스집안과 함께해온 흑인 가사도우미 캘퍼니아가 백인과 흑인 사이의 선을 지키지 않는다며 배제하려 한다. 애티커스는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아 흑인사회에서는 영웅처럼 받들어지고 있었고, 캘퍼니아는 그런 마을 분위기를 고려해 젬과 스카웃을 흑인교회에 데려간다. 젬과 스카웃은 그곳에서 자신들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만나지만 불쾌해하는 이들도 만난다. 알렉산드라는 캘퍼니아의 행동을 맹비난하지만 애티커스는 상관하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에게 캘퍼니아를 가족처럼 받아들이길 권하며, 스카웃은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반발심만 높아진다.
톰 로빈슨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유얼 집안은 가난하여 쓰레기장 근처에 살고,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혀 백인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이다. 메이엘라 유얼은 톰 로빈슨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집안으로 유인했고, 그녀는 성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해 톰을 덮쳤다. 이 상황을 목격한 메이엘라의 아버지 유얼이 분노하여 메이엘라를 구타하고 톰은 그 상황에서 도망쳐 나온다. 유얼의 분노는 톰 로빈슨에게 번져나갔고, 그는 톰이 메이엘라를 폭행하고 강간했다며 허위로 고발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왼손잡이에게 구타당한 메이엘라의 상흔과 진술로 오른손 잡이인 톰이 아니라 왼손잡이 유얼에게 구타당한 것이 밝혀지고, 톰은 메이엘라가 자신을 덮치자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화가 될 것이 두려워 저항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메이엘라도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기고, 배심원들은 흑인차별이 심한 남부사회의 구성원답게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유얼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애티커스가 자신에게 가한 심문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고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톰 로빈슨은 감옥에서 탈영을 시도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유얼은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유얼의 승리는 백인들 특권의 승리였을 뿐, 유얼에게는 패배보다 더한 모욕이었다.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통을 치르고 얻은 대가라는 것이 고작......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이런 식이었거든.’(461p.)

결국 유얼은 애티커스에 대한 복수로 핼러윈 축제로 연극을 마치고 돌아오는 스카웃과 젬을 살해하려고 덮치지만 스카웃은 단단한 연극 복장 덕에 살아남고 유얼과 몸싸움을 벌이던 젬도 부 래들리에 의해 구출된다. 그리고 유얼은 끝내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애티커스는 젬이 정당방위로 유얼을 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보안관 헥 테이트는 유얼이 놓친 칼에 자신이 넘어져 칼에 질려 즉사한 것이라고 애티커스를 설득(?)한다. 이에 대한 진실공방은 벌어지지 않고, 애티커스는 헥 테이트의 의견을 순수히 받아들이다. 젬은 그날의 사고로 장애가 생겼다.

고전은 시대의 분위기에 맞게 새롭게 읽혀야 한다. 당시의 도덕으로 선과 악을 판단해 독자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 소설은 조금 의아한 부분들이 많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 그의 낙천적인 삶의 자세로 용서될 수 없는 것처럼...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명확하게 선과 악을 구분하여 의도를 전달하려 한 것 같지만,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 단지 스카웃의 입장에서만 비친 유얼을 정말 악한 인물로만 평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사실 그것을 판단하기엔 그의 서사는 너무 단편적이다)
나는 이 작품의 저변에 깔린 의식이 ‘흑인만도 못한 백인 놈을 타도하자’로 보인다. 그런 전제를 발판삼아 흑인인권을 옹호하는 권선징악적 교훈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불편하다. 래들리 집안은 유얼 집안 사람들처럼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메이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왔지만, 마침내 백인사회에 선(혹은 이익)을 제공하고 메이콤의 주민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유얼은 가난하고 노력도 하지 않는 이유로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마저 가릴 필요가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도 이뤄지지 않은 채 사라진다.
또 메이콤의 백인들의(혹은 백인 독자들의) 흑인에 대한 인식이 ‘자기들만도 못한 위치에서 배려를 받고, 선을 베풀어야하는 대상’이었는지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한 존엄을 가진 인격’이었는지도 묻고 싶다.
그리고 아래 스카웃이 소설에서 지적한 위선을 유얼처럼 아직 백인 사회에 품어줄 수 있는 마땅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다른 백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455p.)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실 때면 아빠의 얼굴에는 언제나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하는 표정이 나타났습니다. 「너 타협이란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아빠가 물으셨습니다.
「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 말이에요?」「아니, 서로 양보해 합의에 이르는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네가 학교에 가기로 양보한다면, 우리는 전처럼늘 매일 밤마다 계속 글을 읽을 거야. 그러면 되는 거지?」「네, 아빠!」「통상적인 절차 없이 이것을 인준한 것으로 생각하는 거다.」 - P67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야. 길거리를 한번 보려무나,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까. - P93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스카웃, 깜둥이 애인이란 아무 뜻도 없는 그런 말들 중 하나란다. 말하자면 코딱지처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무식하고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어느 누가 자기보다 흑인들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때 쓰는 말이지. 누군가를 욕하는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용어가 필요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어.」
「아빠가 정말로 깜둥이 애인인 건 아니죠?」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래서 때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 해서 모욕이되는 건 절대 아니야.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인간인가를 보여 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시단다.」 - P207

고모는 <무엇이 집안에 가장좋은 일인지 단언하는 버릇이 있었고, 고모가 우리 집에 함께 살러 오신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P242

고모는 어떤 일도 지루해하는 법이 전혀없었으며,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주어지기만 하면 왕비다운특권을 행사하려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리하고 조언하고 충고하고 경고했습니다. - P243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 P368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 P420

「게이츠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지, 안 그래?」
「물론이지. 그 선생님 반에 있을 때 좋았어.」
「히틀러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스카웃, 물론 옳지 않고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계셨거든 ㅡ 우리보다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셨기 때문에 오빠는 선생님을 볼 수 없었지ㅡ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갑자기 오빠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내 옷깃을 잡고 흔들어댔습니다. 「두 번 다시는 그 법정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알아듣겠어? 알아들었냔 말이야! 다시는 나한테 한 마디도 입 뻥긋하지마. 알겠어? 자, 그럼 나가 봐!」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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