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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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조하지만, 자살을 바라보는 데 있어 역사성의관점은 피해야 한다. 살아가며 겪는 모든 시절은, 그러니까 실제에 있어 인생의 모든 순간은 저마다 나름의 논리를 가진다.
그에 알맞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시간을 통해 성숙한다는것은 동시에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보자. 우리의불쌍한 가정부 처녀는 창문에서 뛰어내릴 당시와 똑같은 진정성을 나중에 결코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그놈의 사랑 때문에무슨 덕이라도 보았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녀는 오로지자신의 사랑을 충실히 채웠을 따름이다. 비록 대답 없는사랑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강력한 밀도를 불어넣었다.
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나중에 착한 남자를 만나서 아이들을낳고, 그들에게 둘러싸였어도 결코 누릴 수 없는 밀도가 아닐까. 극단적인 선택이기는 했지만 자살을 택함으로써 그녀는 뛰어내리는 바로 그 순간에 가장 진솔한 인생을 살았다. - P36

다시 말해서 자살이라는 문제는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풀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 법칙이라는 게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심리학도 무너지고 만다. 생명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마당에 심리학이 다 무엇인가. 잠시 함께숨을 고르고 ‘생명 법칙‘이라는 전혀 간단하지 않은 개념을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 심리학의 상위개념을 이루는 이 ‘생명 법칙‘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런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자기보존이나 번식 본능이라는 사실에만 의존해서는 생명 욕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런 법칙의토대가 무엇인지 하는 문제를 놓고 수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다.
또 그 연구 방법도 제각각이어서 서로 넘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보기에는 한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확인해주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법칙이라는 논리적 판단은 공허하다는 것이 그 사실이다. 이런 판단들은 그 본질상 동어반복(Tautology)"이다. - P48

에피쿠로스(Epicouros)의 말에 이런 게 있다. "죽음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없으며, 죽음이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P49

우리 문화에서 자살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몹쓸 병에라도 걸렸던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심지어 가난보다도 더 창피한 것처럼 얼굴을 붉힌다. 그는 말한다. "그저 평안을얻고 싶었소. 그냥 편안하게 쉬고 싶었소." 마치 죽음이 삶의 한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없음이 아니라, 존재범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 P52

하지만 오늘날 철저한 권리 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이 주인일 뿐이다. 스스로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결정한다. 신의 권능과 권위가 끼어들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 P54

"나는 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죽는다. 고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에게 어떤 판단을강요하던 인생은 이제 없다." 아니,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죽는다, 고로 나는 최소한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에서만큼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어리석게도 그토록 갈망했던 나 자신을 있을 수 없었던 상황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현실이 그토록 나에게 허락하지 않던 바로 그것을! 뛰어내리기 직전, - P63

‘자연‘이라는 말을 원인과 결과가 맞물려 돌아가는 인과관계 전체로 이해한다면, 어쨌거나 죽음은 ‘자연적‘이다. 다시 말해서 인과관계로서의 외부 세계가 우리의 존재를좌지우지하는 주인으로서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고 있다면, 죽음은 자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자아(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현상, 나라면 ‘감각의 묶음‘에 불과하다고 표현하리라)에게 있어 신장, 위장, 심장 등은 모두 외부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가 그토록 좋아하는 뜨거운 심장이라는것도 따지고 보면 근육 덩어리일 뿐이지 않은가. 반면, 개념으로 쓰기에 깔끔하지 않기는 하지만, 우리 인생을 담아내는 사회적 네트워크이자 소통 수단으로서의 일상 언어는 엄밀함을 중시하는 언어철학이 깎아내리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영리하다. - P78

학교 교육 덕분에 이제 인간은 죽음이 하나의 생명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들어선 어떤 과정의 종착점일뿐이라는 것을 안다. 세포들의 자기 재생 능력이 그 사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 P85

자유죽음을 행하는 자는 인생 논리를 긍정하는 인격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결과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인생 논리를 부정한다. 인생 논리라는 사슬을 박차고 나오면서도,
여전히 그 사슬에 묶여 있다. 그는 천수를 다하는 자연적인 죽음을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에크‘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반자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적인 죽음, 곧 자신의존엄성을 지키려는 죽음을 그는 택한다. 어릿광대의 옷을 입은것만 같던 인생을 버리기로 한다. 이런 유혹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 P105

다행스럽게도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룬 모든 사회에서는 성적 취향에 있어 소수파가 무슨 범죄 집단이거나 환자 집단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여자든 남자든 동성애 취향을 가졌다고 해서 ‘다나을 때까지 검역소에 가두어 두지는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에서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왜 자살을 했거나 시도하는 사람들은끝끝내 사회의 마지막 남은 별종 취급을 받아야 할까 하는 물음이다. 물론 자살이라는 행위가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보다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동성애자는 후손을낳아야 한다는 논리를 거부하는 것일 뿐,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살 시도에 성공한 사람은 매몰차게 잊어버리고, 자살 시도에 실패한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하는게 인간적인 태도일까? - P107

"과거는 치욕적이며,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콜로나(L. Colonna)가 《자살과 정신 질환 분류학(Suicideet nosographie psychiatrique)》에서 한 말이다.] 환자로 내몰린 끝에 자신의 인생을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은 언젠가 자살을 시도한다. 그의 과거가 정말 치욕적이었을까? 그의 느낌 안에서는 분명 그랬으리라. ‘에셰크‘의 감정 안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모든 것을 실패로 여기며 헤아려본다. 참을 수 없는중압감이 그의 가슴을 짓누른다. 그렇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그가 당한 모든 굴욕, 사람들에게 받은 모욕, 껍질만 남아버린 희망 등이 곧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런 것들을 자신에게서 떼어내기가 무척 어렵다. 프로이트는 이를 두고 "떨어짐의고통"이라는 표현을 썼다. "떨어짐의 고통은 아프기만 하다. 예견하는 미래는 새로운 아픔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도망치기로한다. 곧장 달려 숨겨진 비존재로 뛰어든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유일한 탈출구를 찾는다. 그는 이른바 ‘자연적인 죽음‘을 기다릴 여유가 없으며 그럴 기분도 아니다. 오로지 아는 것이라고는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육신이 아무런 희망이 없는 무의미한 저항만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일 따름이다. - P112

프랑스 왕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아래서 수상을 지낸 사람은여덟 살 먹은 아이가 공장에서 하루에 열에서 열한 시간 동안일하는 것이 건강에 아주 좋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이 남아돌아 못된 장난을 일삼는다. 우리의 개념으로 보자면 이 남자는 악당이거나 정신병자가 틀림없다. 그러나그와 동시대를 산사람들에게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이성적인 인간이었다. 더없이 인간적인 남자로 보기도 했으리라. - P113

이를테면 늙고 병들어 죽은 자연죽음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손발을 묶어두고 자연 죽음만 기다리라고 하는 게 반자연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자유죽음을 택하려는 사람은 자연 죽음이 가지는 반자연성을 미리 감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하려는 사람이 자유롭게 택한 죽음의 자연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 P117

이제 자살은 가난과 질병과 마찬가지로 치욕이 아니다. 자살은 더 이상 침울해진 정서를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비행이 아니다(중세에는 심지어 악마에게 사로잡힌 영혼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디까지나 자살은 존재를 몰아붙이는 도전에 맞서 그에 응전하는 일종의 대답이다. 세월이라는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익사하기 직전, 지르는 단말마적 고통의 비명이 자살이다. - P118

의심할 여지가 없이 허무라는 원리는 희망이라는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내밀하고 강렬하게 품었던 희망, 돌이켜 반성하면서 보듬었던 희망, 이로써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끌어안았던 희망을 깨는 게 허무라는 원리다. 허무는 공허하기만 한 게 아니다. - P147

둘째, 이른바 ‘회색 지대‘라는 것이 존재한다. 회색 지대에서 자살을 결심한사람들은 생명 논리와 종족 보존에 혈안이 된사회에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나머지 마치 그런 결심을 하지않은 것처럼 서성댈 따름이다. - P153

그래서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의 답은 꼭 찾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에게 속하는 존재인가? - P172

하지만 차라리 나는 자유죽음이라는 인간적인 존엄을 무시하고 그저 자신을 제물로 바친 헛된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더러 군홧발이나 불구덩이에 희생당하라고 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사랑과 지혜"라며 그리스도의 신을 들먹이는 그의 말이야말로 내가 보기에는 진짜 신성 모독이다. - P175

사회든 종교든 인간에게 자신의 소유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와종교는 인간에게 결정의 자유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 P176

결국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는존재다. 이를 두고 사회가 할 말은 없다. - P177

오늘날 공공질서의 수호자로 임명받은 사회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등의 행태를 보라. 자유죽음을 무슨 몹쓸 병처럼 취급하지 않는가. 자살을 다루는 사회의모든 이론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잠재적인 ‘자살자‘가 그 뜻을 자유죽음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을 막으려 혈안이된다. 이들은 말한다. 생명은 유일한 자산이라고! 어떻게든 지켜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내세워지는 이유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신이 허락해준 생명이기에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인생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무슨 대단한 형이상학적인 가치라도부여했기 때문인가? 그러나 이런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아무것도 없다. 그 형이상학적인 가치라는 것도 알고 보면 생물학에지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그리고 어디서나 늘 새롭게 생성(늘태어난다)되며, 또 취소(죽어 없어진다)되는 게 생명일 따름이다. - P178

타인은, 우리가 알고 있듯, ‘지옥‘이다. 타인의 자유는 나의 자유와 엇갈린다. 타인이 품은 뜻은 나의 뜻을 가로막는다. 타인의 주관은 나의 주관을 파괴한다. 나를 바라보며 반드시 이러저러하게만 살라고 심판하는 타인의 시선은 일종의 살인이다. - P192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증오한다는 것은 언제나 중간 매개, 즉 다른 사람의 눈길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이렇게 보고 있소!" 하고말해주거나 기호로 전달해줄 때만 우리의 자아는 자신을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 P206

‘헤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 발언의 자유, 선거의 자유. 이런 자유는 내가 누리고 있을 때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자유들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그만큼 갈망이 커진다. - P219

가 있다. 흔히 ‘무엇에로의 자유‘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강제가 우리에게 금지한 어떤 것을 행하기 위한 해방이, 다른 한쪽에는 우리를 괴롭히거나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이 서로 대비된다. 사실이 두 가지는 하나다. 내가 가슴의 중압감으로부터 자유롭기 원한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중압감이 없는 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세월이나 허송하는 상태를 바란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 P222

"삶의 이야기는, 그삶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실패의 이야기다(L‘histoire d‘une vie, quellequ‘elle soit, est Thistoire d‘un échec)."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 P225

어쨌든과학적 인식은 우리가 모색하는 자유의 땅이 텅 빈 곳, 아무것도 아닌 곳이라고 말한다. 자유의 땅은 탐스러운 과일로 가득한에덴의 정원이 아니다.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는 나무 밑 잔디 - P251

인식론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진리 (여기서는 진정성이라는 것과 일치한다)라는 개념은 그 정당성을갖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증명해낼 수 있다. 잘못이고 거짓인줄 알면서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품어야 하는헛된 희망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지나온 나날을 돌이켜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리라. 이런 것을 알자고 무슨 거창한론으로 자기 분석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끓어오르는것만큼은 분명하다. 인간이 자유죽음을 결심하는 것이야말로매듭을 짓는 기획이다. 최종 프로젝트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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