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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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문학 작품에서 현명하고 인자하고 숭고하고 지혜롭고 성찰력이 뛰어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라는 지나친 요구가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욕쟁이 할머니나 수전노 같은 노인들도 알고 보면 속내는 따듯한 사람이었다라는 반전을 심어 놓은 이야기들은, 젊은이들에게 노인들이 그러한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준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과도한 나이값을 청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도 그럴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처럼, 우리는 나이만 먹어갈 뿐 전혀 성숙해지지 못할 것이고, 성공하지 못한 만큼 성장하지도 못할 것이다.


올리브라는 인물은 나이가 충분히 찼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불친절하며 성질이 고약하고 이기적이며 입담이 거칠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난 그녀가 가진 기질에서 나 자신을 쉽게 발견했다. 그리고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 나 같은 감정을 느껴 이 책에, 올리브 키터리지에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연작 소설인 것도 모르고 두 번째 챕터를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쇄도해 혼란에 빠졌다.
올리브를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단편들은 재밌으나, 다른 단편들은 조금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건 사실이다. 올리브에게 집중하고 빠져들고 싶은데 곁가지가 걸리적거리는 느낌이랄까. 헨리의 죽음도 안타까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너무 갑자기 죽어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내가 두려워했던 미래의 노년의 모습이 썩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기도 한다. 이 책을 몇 년 뒤 다시 읽는다면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두 사람은 요즈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말로. 마치 결혼생활이라는 복잡하고 기나긴 식사가 끝나고 이제야 근사한 디저트가 나온 것만 같았다. - P228

하지만 결혼 후 어느 시기가 되면, 어떤 종류의 싸움은 더는 하지 않게 된다고, 그 이유는지나온 날이 남아 있는 날들보다 더 많아진 시점에서는 사물이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올리브는 생각했다. - P221

그녀는 오늘 왜 여기에 왔던가? 헨리가 에드 보니의 장례식에꼭 가보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그녀는 누군가의 깊은 슬픔을 보며 자신의 어두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쳐들기를 바라며 왔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로 가득한 오래된 집은그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리고 한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들 위로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 P310

"아하." 루이즈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내 꼬락서니를 보고위안을 얻으려고 왔구나. 근데 그게 잘 안 됐고." 그녀가 노래하듯 덧붙였다. "미이이이안" - P281

하지만 그 여자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루이즈 라킨을 찾아간 것은 잘못이었다. 또한 가고 싶으면 가라고 헨리에게 말했다고 해서 그가 죽으리라고 생각한 것도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이 이상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이 대체 누구라고 생각했던 걸까? 올리브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당기고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켰다. 튤립을 심을 것인지를 곧 결정해야 할 것이다. 땅이 얼어버리기 전에. - P293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지금은 그 추억을 건강하고 순수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 P292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 P378

그녀의 몸은, 늙고 뚱뚱하고 살갗이 축 처진 몸은 그의 몸을 처절히 원했다. 헨리가 죽기전 몇 년 동안 자신이 이렇게 헨리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너무 슬퍼서 올리브는 눈을 감았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지금 그녀 곁에 앉은 이 남자가 예전 같으면 올리브가 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그도 필시 그녀를 택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 둘은 이렇게 만났다. 올리브는 꼭 눌러 붙여놓은 스위스치즈 두 조각을, 이 결합이 지닌 숭숭 난 구멍들을 그려보았다. 삶이 어떤 조각들을 가져갔는지를.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않았다. -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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