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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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애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현대인들의 불안, 외로움, 무기력함과 같은 심리를 잔잔하게 그리는 소설이라 덤덤하게 읽어 나가니 기분이 차분해지고 좋았다. 그러고 마지막 해설을 보고 소설 속의 상징과 은유의 치밀한 짜임에 기함하고 말았다. 그의 상징을 하나도 간파하지 못했는데도, 이게 무슨 소리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해설은 해설일 뿐이니까 하나의 의견으로 재밌게 읽어 보았고, 나는 그냥 나의 감상대로, 나의 해석대로 소설을 즐기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소설을 읽고 한마디, 한 줄로 정리가 된다면 그게 정말 인생을 담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의 중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무기력함은 무엇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 명확한 감정은 스스로 적당한 이유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감정, 느낌들을 그냥 흘려보내며 삶을 달관하고 싶을 때 적절하게 어울리는 소설이다.



깃털들
잭과 버드는 공장의 직장 동료이다. 버드는 잭과 그의 아내 프랜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는데 프랜은 썩 내키지 않아했고 버드가 사는 동네를 강촌이라 폄하한다. 버드의 집에서 잭과 프랜은 버드와 올라의 반려동물인 기이한 공작새 조이를 보고 놀라고 집안의 괴기한 치아를 본뜬 상을 보고 또 놀란다. 올라는 자신의 교정전 치열을 본뜬 것이라며 자신에게 교정을 시켜준 버드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자랑스런 아들인 해럴드를 보여주지만 잭 부부는 해럴드가 정말 아이답지 않게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올라는 조이를 집 안으로 들였고 못생긴 해럴드와 기괴한 조이를 보며 그들 부부는 왠지 자신들이 비교적 저들 부부보다는 낫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임신한다. 이후 조이는 숲으로 날아갔고 프랜은 살이 찐 풍만한 여자가 됐지만 여전히 잭과 버드는 절친한 동료이다. 하지만 잭은 그날 이후 버드에게 버드의 집안에 대한 말을 삼가하고 있고, 자신의 아이는 그날의 자신들처럼 조금 음흉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셰프의 집
과거 남편인 웨스로부터 친구 셰프의 집을 무상으로 임대해 있다는 연락에 다시 살림을 합친다. 웨스는 셰프와 마찬가지로 알콜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들 부부는 다시 결혼반지를 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셰프가 돌연 찾아와 자신의 딸 린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그들이 머무는 집에 들어와야 한다며 집을 비워달라 요청한다. 다시 그들의 삶을 시작하려는 듯했지만 웨스는 다시 막막해진 기분을 느끼며 원망섞인 소리로 셰프의 딸 린다를 욕하지만 그것은 린다가 아닌 막연한 세상을 향해있는 듯하다.

보존
샌디의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되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일은 쉽게 구해지지 않다 장기간 무직의 상태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샌디는 직장 동료에게 남편의 문제를 상의하려 했더니 동료는 비슷한 처지에 이십여년 간 침대에 누워있기만 한 삼촌에 대해 얘기해 샌디를 더 걱정스럽게 한다. 집으로 돌아온 샌디는 냉장고가 고장나 안의 음식이 녹고 상해가는 것을 보고 짜증이 치미지만 곧 진정해 음식물을 정리하며 경매장에 냉장고와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가자고 한다. 어렸을 때 샌디는 아버지와 함께 경매장에 자주 갔지만 부모가 이혼한 후 가보지 못했고, 샌디의 아버지가 중고차를 경매장에서 구입한 후 가스가 누출된 그 자동차에서 사망한 것이 떠오른다. 샌디는 급하게 폭찹을 만들어 남편을 부르지만 식탁에 냉장고에서 녹은 물이 생겨 남편의 발에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거실로 돌아간다.

칸막이 객실
마이어스는 오래전 헤어진 아들을 만나러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가는 칸막이 객실에 있다. 아내와 헤어지면서 아들과 격하게 몸싸움을 벌였던 일을 상기하며 그동안 자신의 외로움이 왠지 아들의 탓일 것만도 같다고 생각하지만 8년 만에 아들에게 받은 편지에 사랑한다는 말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러다 화장실에 들른 사이 아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산 일제 손목시계가 도난을 당했고, 그는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잠자는 승객을 의심했지만 그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이내 자신이 그 선물을 찾아낼 수 없음을 깨닫고는 열차를 배회한다. 그러다 스트라스부르역에 정차한 뒤 열차는 조차장에 들려 정비를 하는 듯했고, 그는 과연 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다시 출발한 열차에서 그는 자신의 칸막이로 돌아가려 했으나 자기가 탔던 열차 칸을 떼어내고 다른 칸이 연결된 것을 알게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열차가 선택해준 것마냥 행선지가 바뀐 차 안에서 스르르 잠이 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스코티는 생일 날 하교하는 길에 뺑소니를 당한다. 앤은 집까지 걸어온 스코티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의사는 처음에는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판정하지만 병원에서 잠든 스코티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하워드와 앤은 점점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하워드는 자신의 인생이 그동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불행의 대가가 찾아올 것만 같고, 앤은 폭행사건에 휘말려 응급실에 실려온 다른 환자에게 스코티의 운을 걸어보지만 그 환자가 결국 사망하는 것을 보며 희망을 잃어간다. 앤은 며칠 전 스코티의 생일케이크를 주문해 놓고 사고로 경황이 없어 기억하지 못하고, 빵집 사장은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앤에게 화가 나 항의 전화를 하지만, 앤과 하워드는 그 전화를 건 사람을 뺑소니 가해자라고 오해하며 분노한다. 스코티는 결국 사망하고, 집으로 돌아온 앤은 같은 전화가 걸려오자 불현듯 자신이 주문한 케이크가 떠올라 하워드와 빵집으로 향한다. 그들은 충격과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정을 모르고 역정이 나 행패를 부린 빵집 사장에게 스코티의 사망소식을 전하고, 서로 분노를 가라앉힌 채 사과하며 빵집에 앉아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간다.

비타민
비타민 방문판매를 시작한 화자의 연인 패티는 영업수완을 발휘해 자신의 사업을 차린다. 패티는 핵심 멤버인 실라와 도나와 함께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곧 비타민 판매가 부진하게 된다. 실라는 패티와의 동성 접촉을 시도하다 거절을 당하지만 파티에서 술에 취해 다시 패티에게 접근하려다 화자의 냉담한 태도에 상처받고는 그들을 떠나버린다. 한편 점점 쇠락해가는 사업에 상심한 패티를 두고 화자는 도나의 매력에 몸이 달아오르고 밀회를 즐기려 화자가 간혹 들리는 흑인 펍에 들어간다. 하지만 펍에서 지인 베니에게 소개받은 넬슨이 취중에 거친 입담으로 둘 사이를 희롱하자 펍에서 나오고 도나는 심한 모욕감에 울음을 터뜨린다. 포틀랜드로 떠날 것이라는 도나를 두고 화자는 집으로 돌아오고, 악몽을 꾸다 늦잠을 자버린 패티가 두통을 호소하며 우왕좌왕하며 방을 어지르는 것을 마치 모든 관계가 끝나가는 그들을 지켜보듯 가만히 쳐다본다.

신경써서
이네즈와 로이드는 별거 중인데, 따로 사는 이유는 로이드의 음주 문제인 듯하다. 로이드는 아침 식사를 샴페인과 도넛으로 하는 게 이상할 게 뭐냐고 따질 정도로 음주에 관한 문제가 많은 듯 보인다. 별거한 지 2주 째 되던 어느 날, 이네즈는 상의할 일이 있다며 로이드를 찾아오지만 로이드는 귀지로 귀가 막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할 말은 일단 제쳐두고 자기만 신경써 달라는 로이드를 이네즈는 주인집에 찾아가 물건을 빌려오기까지 하면서 도와주고는 다음을 기약하며 로이드를 떠난다. 로이드는 이네즈가 떠난 뒤 샴페인을 따서 마신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
알콜치료센터에서 만난 조에게 화자는 조와 조의 아내 록시와의 연애사를 듣는다. 친구 집에 굴뚝 청소부로 온 록시는 조에게 행운을 주는 키스를 해달라고 하면서 연애를 시작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누리며 굴뚝청소부로 승승장구 하지만 알콜중독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해 결혼생활이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화자에게 록시를 소개받을 기회가 생기고, 화자는 조에게 록시가 요구했던 대로 행운의 키스를 해달라는 말에 록시는 흔쾌히 화자에게 키스를 해준다. 행운을 바라는 화자는 자신의 아내에게, 여자 친구에게 행운을, 희망을 걸어보는 전화를 하려고 한다.

기차
미스 덴트는 한 남자를 총으로 굴복시킨 뒤 기차역에 간다. 늦은 시간 황량한 기차역에서 한 노인과 여인이 들어온다. 서로 타인의 존재를 거북해 한다. 두 사람은 미스 덴트 앞에서 ‘별의별 종류의 일’(215p.)을 이야기한다. 객차가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는 승객들은 플랫폼의 세 사람을 이상하게 여긴다. 하지만 세 사람은 ‘세상의 별의별 종류의 일들’처럼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과심사에서 멀어지고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술 강사 칼라일의 아내 아일린의 칼라일과 같은 학교 동료인 리처드 홉스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아이 둘, 키스와 세라를 남겨두고 떠나 칼라일은 급한 대로 베이비시터를 구하지만 실패하고 같은 학교의 비서로 근무하고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어가는 캐럴에게 난처한 상황에 대해 상담한다. 칼라일은 분노와 수치심에 아일린에게 전화하기를 꺼리다 칼라일의 상황을 들은 아일린의 전화를 받고 베이비시터 웹스터 부인을 소개받는다. 가족을 두고 떠난 여자에게 내연남의 가사도우미였던 웹스터 부인을 소개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웹스터 부인은 그동안의 형편없었던 다른 베이비시터와는 다르게 아이들도 좋아하고 살림을 잘 꾸려나갔다. 몇 달 간의 생활이 만족스럽게 이어지면서 칼라일은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고, 캐럴과 더 가까워진다. 어느 날 칼라일은 심하게 몸살을 앓게 되고, 칼라일까지 간병하던 웹스터 부인은 조심스럽게 웹스터씨의 전처소생인 밥이 밍크목장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하게 돼 베이비시터를 그만둔다고 말한다. 칼라일은 파자마 차림으로 웹스터 부부 앞에서 자신과 아일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칼라일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 준 웹스터 부부는 칼라일에게 행운을 빈다며 그를 떠나고, 칼라일은 웹스터 부인과 함께 아일린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끝났다는 후련함을 느낀다. 열과 함께, 마치 아일린이 자신의 모든 과거를 정리하기를 도와주려 웹스터 부인을 보내줬던 것처럼.

굴레
홀리츠와 베티는 재갈을 물고 어떤 꿈을 깨기 위해 나아가는가.
미네소타에서 온 홀리츠 가족은 화자의 집에 세를 든다. 두 아이는 홀리츠와 전처의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놀고, 홀리츠는 특별한 직업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미용일을 하는 화자에게 한 번 들려 머리를 하던 배티는 과거 학생 시절 상담교사가 꿈에 대해 묻던 이야기를 하며 그때는 이런 말을 하지 못했지만, 꿈을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아무도 자시에게 꿈에 대해 묻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톱 손질을 받으면서 홀리츠가 경마에 빠졌던 이야기도 한다.
어느 날 홀리츠 부부와 무리의 사람들 늦은 밤 수영장에서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파티를 한다.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화자는 갑자기 홀리츠가 부주의로 머리를 다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응급실로 데려가려 하지만 홀리츠는 ‘난 더 못가겠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며칠 후 홀리츠의 가족은 짐을 싸서 떠난다. 굴레에 씌여 재갈에 물리고 나아가야 하는 말들 처럼.

그때 그녀가 말했다. "안돼요. 지금은 안 돼."
"지금은 안 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녀를 풀어줬다. 나는 그말이 은행에 있는 돈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37

그들도 잘 알다시피 세상은 별의별 종류의 일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 일은 예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이 세 사람이 통로를 걸어자기 자리를 잡는 동안-여인과 백발노인은 서로 나란히 앉았고, 핸드백을 든 아가씨는 몇 자리 뒤쪽에 앉았다―, 그들은 더이상 다른 생각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대신에 승객들은 역을 바라보며 그 역에 기차가 서기 전에 저마다 빠져들었던 생각, 그러니까 저마다의 문제들로돌아갔다. - P215

"암시가 가장 중요한 거야." 그는 수 콜빈의 손을 가볍게 잡고 붓질을 이끌며 말했다. "의도가 보이면그건 그림을 잘못 그린 거야. 알겠니?" - P237

그는 상황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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