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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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머리말에서 존 레이 박사는 이 원고를 변호사 클라크에게 받은 범죄자 험버트 험버트의 회고록이라고 밝힌다. 상당히 금기시되어있는 소재를 다뤘고, 소설에서 작가와 화자를 동일시하는 보통의 독자들(혹은 나같이 독자와 화자를 동일시하는 경우)을 고려한 장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험버트는 스위스 태생의 유복한 집안에서 유산을 물려받은 미남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이모의 친구 딸인 에너벨과 같이 뜨거운 여름을 불태웠으나 애너벨은 티푸스로 사망하고, 그의 애너벨은 그가 선호하는 ‘님펫’의 원형이 되어 이후 험버트가 소아를 갈망하는 원천이 된 듯하다.(웬만한 서술어가 피동형으로 쓰일 것 같은데 이는 소설이 독자를 관찰자로 밀어내려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험버트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나이 차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고 밝힌다. 그는 물론 또래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 발레리아라는 폴란드인 의사의 딸이었는데, 4년 결혼생활 후 험버트의 이모부가 막대한 재산을 험버트가 미국으로 와서 사업을 경영하는 조건으로 남겨, 그는 발레리아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절차를 밟아가던 중에 발레리아가 러시아 퇴역장교와 외도한 고백을 듣게 되고, 둘은 이혼해 험버트 홀로 미국으로 오게 된다. 험버트는 뉴욕에서 신경쇠약에 시달리기도 하고, 치료를 받으며 의사들을 기만하기를 일삼고, 북극을 탐험하러 가는 등의 생활을 보내다 회사의 직원이 여름 휴가기간 동안 자신의 친척 맥쿠씨 집에서 요양할 것을 제안해 그곳으로 떠나지만, 맥쿠씨의 집이 화재가 나 맥쿠부인의 친구인 샬럿의 집을 소개받는다. 그는 그곳을 바로 벗어나려 했지만, 샬럿의 딸인 로(롤리타)를 보자마자 그 소녀에게 사로잡혀 샬럿의 집에 머무르기로 한다. 험버트는 로를 지속적으로 염탐하지만 험버트에게 관심이 많은 샬럿은 험버트를 딸의 위험요소로 생각하지 않고 되려 로이를 서로 험버트의 애정을 차지하려는 경쟁자로 인식했다. 샬럿은 로이를 캠프Q에 데려다주면서 험버트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며, 자신과 결혼하여 로의 아빠가 되든지 뉴욕으로 돌아가든지 선택하라는 편지를 남겼고, 험버트는 이 제안을 로를 좀 더 가까이서 추행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샬럿과 결혼한다. 하지만 샬럿은 로를 기숙학교에 보내 험버트와 단둘만의 결혼생활을 계획하고 있었고, 험버트는 이 문제의 상황을 해결할 궁리를 한다. 하지만 샬럿이 험버트의 서랍을 뒤져 그의 본심이 탄로나고, 샬럿은 험버트에게 당장 램스데일을 떠나라고 하며 이 상황을 고발하는 편지를 붙이러 가는 길에 차 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험버트는 이를 기회로 캠프Q로 달려가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로 로를 캠프에서 빼내고, 이미 죽은 엄마의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모텔에서 로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험버트는 성행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어린 소녀의 육체를 탐하는 욕망만을 가지고 있었다. 로에게 수면제를 먹여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려 계획했지만, 로에게 수면제가 잘 먹히질 않았고, 아침에 한 침대에서 눈을 뜬 험버트는 자는척하며 로의 반응을 지켜보았는데, 로는 되려 그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험버트에게 다가가 접촉한다.

정신병자의 회고록이라 자기 합리화로 보이지만, 험버트의 ‘진술’에서 로는 성에 일찍 눈을 뜨고 험버트를 상대로 자기 욕구를 채우는 소녀로 묘사된다. 험버트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후반에 소설의 반전이 일어나듯이, 로는 험버트를 조종하고 이용하고 있었다. 험버트는 그날 아침 로에게 샬럿의 소식을 전했고, 로에게 의지할 것이라고는 험버트만 남은 상황에 험버트는 아주 손쉽게 로를 차지하다.

험버트와 로는 그길로 함께 미국을 여행한다. 그 과정에서 험버트는 롤리타가 자신이 욕망했던 예쁘장한 인형이 아니라 예민하고 변덕이 심한 사춘기의 소녀라는 것도 깨닫는다. 로가 성질을 부리면 감화원에 보낸다고 위협하며, 자신과 함께하는 자유를 계속 만끽하고 싶다면 자신을 따르라는 가스라이팅도 일삼는다.

‘미성년자인 네가 고상한 모텔에서 어른의 윤리의식을 흔들어놨다고 고발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자. 그때 네가 경찰한테 내가 너를 유괴하고 강간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 그럼 나는 감옥으로 가는 거야. 그래, 가지 뭐. 그런데 고아인 너는 어떻게 될까? ...... 물론 전망이 좀 어둡긴 해. 미스 팔렌처럼 근엄하면서도 훨씬 더 완고하고 술도 안 마시는 아줌마가 네 립스틱이랑 예쁜 옷들을 압수하겠지. 마음대로 나다닐 수도 없고! ...... 만약 우리 사이가 들통난다면 너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나서 공공시설에 수용될 거야. 귀염둥이야, 그게 결말이란다. ...... 이런 상황이라면 아빠 곁에 있는 편이 낫지 않겠니, 돌로레스 헤이즈?’(240-241p.)

어느 날 갑자기 로와 자신의 법적 관계가 염려스러웠던 험버트는 로를 동부로 데려와 비어즐리 사립학교에 입학시킨다. 로는 학교에서 연극도 참여하고, 험버트는 로의 친구들과 크리스마크 파티를 열어주는 등의 일상을 보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험버트는 로가 점점 소녀를 벗어나 숙녀의 티가 나는 것을 느끼던 중, 피아노 레슨을 빠지고 로가 무엇을 했는지 추궁하는 과정에 큰 다툼이 일어난다. 로는 험버트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미국을 여행하자고 제안하고, 둘은 다시 여행을 떠난다. 험버트는 여행 중 계속해서 자신의 사촌 트랍을 닮은 남자가 미행하는 듯한 불길한 기분이 들고, 로가 트랍같이 생긴 남자와 대화하는 모습을 포착하지만 로는 지나가는 남자라며 둘러댄다. 험버트는 호텔 테니스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테니스 복식 경기를 하자는 제안을 거절하던 중 호텔에서 비어즐리 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을 듣고 갔으나 그 전화는 누군가의 교묘한 장난이었고, 그 사이 로는 트랍같이 보이는 남자와 넷이 복식 경기를 하고 있었다. 타이어가 펑크난 상황에서 자신의 차를 미행하던 트랍에게 가는 험버트를 다시 그들의 차로 유인하기 위해 로는 차를 출발시키는 등 수작이 이어지자 험버트는 계속해서 로를 추궁하지만 로는 다른 구실을 대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로의 연기를 보며 험버트는 로에게 연극수업을 받게 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로는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했고, 그 사이 어느 남자와 험버트를 따돌리고 도주한다.
험버트는 사설탐정까지 고용하여 로를 찾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로를 찾지 못했고, 세 번 이혼한 여자 리타를 만나 동거를 하던 중 로에게 자신은 딕이라는 남자와 결혼했으며 곧 출산하고 알래스카로 이주할 예정이며 돈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받는다. 험버트는 편지를 추적해 로를 찾아내고, 로는 퀄티라는 남자와 비어즐리에서부터 험버트 몰래 연애를 하다 병원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로는 함께 떠나자는 험버트의 제안을 거절하고, 험버트는 램스데일로 돌아와 퀄티를 추적해 그림로드에 있는 퀄티를 찾아가 죽여버리고 오는 길에 난폭운전으로 체포된다. 로는 분만 중에 숨을 거두고, 험버트는 구금 중 질병으로 죽는다.

험버트가 극악무도한 소아성애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험버트가 성인이 된 로에게 끝까지 집착해 파국에 이른다는 전개가 조금 의아하기는 할 것 같다. 특히 롤리타라는 대명사가 소아성애의 피해자로만 인식했던 또 다른 편견은, 로가 생각보다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퀄티와의 도주계획에 험버트를 이용하는 등의 전개로 미루어 역시 의아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작가도 외설적인 내용을 고려하여 범죄자의 ‘회고록’이라는 트릭으로 독자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 그 회고록에서 굳이 퀄티라는 반전을 뒤에 숨겨두고 있어 책 전반부를 샅샅이 뒤져 퀄티라는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독서를 고난스럽게 했다. 번역자의 의견대로 이 책은 두 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니까.

그러나 20대 때는 물론이고 30대 초반까지도 내 번민의 본질을 명료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육체는 자기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았지만 정신은 육체의 하소연을 모두 외면해버렸다. 한순간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무모하리만큼낙관적으로 돌변하기 일쑤였다. 온갖 금기가 목을 졸랐다. 정신분석가들은 가짜 성욕을 해소하는 가짜 치료법을 권했다. 내가 짜릿한 연정을 품으려면 상대가 애너벨의 자매이거나 하다못해 그녀의 몸종이나시녀쯤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광기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 P32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인데, 아마도 여러분은 내가 벌써 게거품을 물고 흥분하는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저 작은 잔에 즐거운 생각을차곡차곡 담아둘 뿐이다. 여기 사진이 몇 장 더 있다. - P33

아니, ‘끔찍이도‘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새로운 기쁨을 기대하면서내가 느끼는 흥분은 끔찍하다기보다 애처로웠다. 나는 애처롭다고 표현하겠다. 어째서 애처로우냐ㅡ지칠 줄 모르는 불길처럼 성욕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도 성심성의껏 열두 살 먹은 아이의 순결을켜줄 작정이기 때문이다. - P103

다음은 매우 중요한 발언이니 부디 명심해주기 바란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내면은 신사적 측면보다 예술가적 측면이 우세하다. - P118

로마법에 따르면 여자는 열두 살부터 결혼할 수 있었고, 기독교 역시 이 규정을 채택했으며,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지금도 이런 일을 묵인해준다. 그리고 열다섯 살은 어디서나 합법적이다. 북반구에서든남반구에서든, 가령 지역 목사의 축복을 받고 술에 취해 잔뜩 흥분한마흔 살 먹은 짐승이 땀에 젖은 예복을 벗어던지고 어린 신부를 덮쳐뿌리 끝까지 삽입해버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신시내티 등지의 자극적인 온대성 기후에서 여자는 열두 살이 될 무렵에 성숙해진다" (이 교도소 도서실의 오래된 잡지에 실린글이다). 돌로레스 헤이즈는 바로 그 신시내티에서 채 300마일도 안되는 곳에서 태어났다. 나는 자연의 섭리를 따랐을 뿐이다. 나는 자연의 충실한 사냥개다. 그런데 어째서 이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할까? - P217

천진함과 기만, 매력과 천박함, 어둡고 시무룩한 표정과 밝고 명랑한 표정을 모두 갖춘 롤리타는 한번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면 정말 울화통이 터질 만큼 밉살스러운 계집애였다. 때로는 따분해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때로는 시무룩하고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널브러지고, 때로는 그냥 건들거리기도 하는데―자기 딴에는건달처럼 거칠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바보 흉내에 불과했다―변덕이 하도 죽 끓듯 해서 도저히 감당할길이 없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평범한 계집애였다. - P235

지금쯤 독자 여러분도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실무에 밝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를 찾아조언을 구하지도 못할 만큼 무지하거나 게으르지는 않다. 그런데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 섣불리 운명의 흐름을 건드리다가, 즉 운명이 내손에 쥐여준환상적인 선물을 정당화하려다가 오히려 선물을 도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 P276

비스듬히 드러누워 손거스러미를 물어뜯으면서 냉혹하고 흐릿한 눈으로 나를 조롱하듯이 바라보았는데, 한쪽다리를 길게 뻗어 스툴 위에 올려놓고 신발을 신지 않은 발꿈치로 줄곧 스툴을 흔들어대는 그녀를 보는 순간, 2년 전 처음 만난 후로 그녀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한눈에 확인하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독한 환멸을 느꼈다. 아니, 최근 2주 사이에 일어난 변화일까? 그녀에 대한 애정은? 전설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내 불타는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욕망의 안개가 말끔히 걷히고 무서울 정도로 정신이 맑아졌다. 아아, 그녀가 변해버렸구나! - P325

경찰이 이런저런 일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벌어지는지, 네가 어떤 곳으로 가게 되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그놈이 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너는 그놈한테 뭐라고 대답했는지똑바로 대란 말이야. - P349

롤리타의 눈을 보니 놀랐다기보다 손익을 따져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가 어느 친절한 숙녀에게 아빠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하는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한참 동안 라운지 의자에 누워 진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는 다시 운전을 할 만큼 기운을되찾았다. (그후 몇 년 동안 의사들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믿어주지 않았다.) - P380

존 레이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롤리타』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런 책은 흔치 않다. 나머지는 모두 시시한 졸작이거나 이른바 관념소설인데, 마치 거대한 석고 덩어리처럼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조심스럽게 전해지는 관념소설도 사실은 시시한 졸작일 때가 아주 많다. 언젠가는 누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서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 만을 힘차게 때려부수리라.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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