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맞춤법이 틀리는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무심에서 비롯된다는 소견이 인상적이다. 노력도 태만하면서 항상 어휘력이 좋아지길 바란다. 관심이 최선의 방법이라 새로 깨달았다. 발전해 나가길 스스로 응원한다.

어휘력은 말발 센 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풀이하는데 그러려면 낱말을 양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하긴 해도 낱말에 대해 ‘잘‘ 알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것이 더 효과적이다. 여기서 ‘잘’이란 다른 낱말과 함께 배치했을 때 의미나 어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섬세하게파악한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부유한 시대를 살면서도 많은 사람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세상이 뭐 하나 제대로돌아가는 것 없이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건 산업경제가 도입된 후에 인간을 꾸준히 도구화한 원인이 크다.

"가격을 가지는 것은 무엇이든 동등한 자격을 지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칸트의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해도 사람들은 선험적으로 안다.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지역감정‘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어휘가 아니다. 높은 산맥과 큰 강을 경계로 말이 달라지는 것처럼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이 뿌리 깊은 갈등이 된 것은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차이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차별한 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이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나중에는 세뇌된 사람들을 통해 무신경하게 살포됐고 현재도 그러하다. 나는 반세기에 걸친 이 사투리 전쟁에서 승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나 자주 쓰는데 번번이 맞춤법을 틀린다는 건 무식보다 무서운 무심함이다. 그 무심함이 정말 꼴 보기 싫다.

잘한다는 평가 말고 다른 말, 층고, 조언, 주의, 지적, 불평 따위를 들으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거나 의기소침해진다. 나를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의 의견일 뿐이며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이해하면 좋으련만, 이미 결과중심주의에 단련된 두뇌회로는 평가로 받아들인다.

"문 닫고 나가라."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문 닫고 어떻게 나가냐고 한 예닐곱 살의 나는 말의 의(意 : 뜻 알았을지 몰라도 미(味 : 맛, 기분, 취향, 느낌, 기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휘력은 말뜻뿐 아니라 말맛도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글쓰기를 분리한다는 점과 주어와 시점을 챙기는 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글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은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여기에 주어와 시점만잘 챙겨도 웬만한 문장은 완성할 수 있다. 한 문장이 길면 또 주어와 시점이 헛갈리니 짧게 쓰는 것이 낫다. 그렇다고 무작정 문장을 자르려 하면 그거 고심하느라 영감이 날아가 버릴 수 있으니 일단 떠오르는 대로 쓰고 수정하면서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안 붙이면 허전해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수식어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찾는 게 우선이고, 형용사를 용언으로 돌려놓으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뜻이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보다 ‘음식이 맛있었다.’,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보다 ‘오늘 즐거웠다."는 식으로 말이다. 뭘 먹어서 맛있었는지, 어떻게 보내서 즐거웠는지. 구체적인 어휘와 함께 쓰면 글이 생생해진다. 이런 수고를 생략하고 ‘맛있는‘,
‘즐거운’ 등의 형용사를 동원해 문장을 뭉뚱그리면 대명사처럼 모호해진다.

필사하면서 아주 느리게 지워나갈 수 있었다. 전형적, 주입식, 세뇌……힘 센 어른들이 젠체하며 한 모든 말들, 힘없는 어른들이 비겁해서 한 모든 말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배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 내가 맘껏 탓하고 욕해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조금씩 후련해졌고 덜 외로워졌다.

자료와 근거가 8할을 차지하고 주장은 2할 내외다. 그 2할을 주장하기 위해 8할을 총동원했고 읽는 이들이승복하게끔 순서를 배치한다. 여기서 유의할 사항은 그 8할이 질적으로 편향돼 있거나 양적으로 지나치게 적은표본을 취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유치해진다는 거다.
질적으로 균형 잡혀 있고 양적으로 충분한 자료와 근거를 걸맞은 어휘로 압축해 뒷받침하는 주장은 설령 수신자의 성향이나 믿음과 달라 끝까지 수긍할 수는 없다 해도 증오심은 생기지 않는다. 적의 의견이지만 존중한다는 마음은 이럴 때 생길 것이다.

누군가 쓴 글이 낡은 어휘에 갇힌 가치를 꺼내 현실로 가져오기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흔하고 닳은 어휘에 담긴 가치를 첫눈처럼 본다.

"나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란 아주 진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 1년간 성인이 읽은 종이책 연간 독서율 52.1%, 독서량은 6.1권, 책 읽은 시간은 평일 31.8분이다. 참고로 2015년 UN 조사에서 미국인 연간 독서량은 79.2권, 일본인 73.2권, 프랑스인 70.8권으로 한국인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독서량 166위. 이 수치는 무엇을 가리킬까. 한국 학생 열명 중 세명은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 열에 일곱은 글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실질문맹률이 OECD 국가 중최고 수준이다.

숫자가 기업 수익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 반응 미디어를 손에 들고 있는 한 사유, 음미, 상상, 사색 등이 끼어들 틈은 없다. 내면에 집중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소리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그에 따른 후유증을 피할 길 없다.

벼락같이 들이닥친 외세의 침입이거나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국가든 개인이든 망한 원인은 대체로 이러하다.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생각만 받아들이거나, 남의 생각 모르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거나.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의 경계가 순수하지 않은 시대에 앞서의 문장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겠다. 남의 생각에 조종당하고 정서에감염된 줄 모르고 자기 취향이나 정서, 선택, 가치관이라고 믿거나, 자기와 비슷한 생각만 받아들여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면서 남의 생각을 많이 안다고 착각하거나.
자기 관점 없이 남의 관점만 일방적으로 따라가거나 자기 관점과 같은 것만 받아들여 자아만 비대하게 키운다면 위험하다. 자칫 망할 수 있다. 인간은 늘 그 두 가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가와 사회, 가정은 목적이나 목표, 필요에 맞게 구성원을 조종하려는 의지를 가졌고 인간은 사회나 집단, 다른 사람이 가진 감정에 쉽게 감염될 수 있으며 자기가 선호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속성을 지녔다.

주최 측이 작품 <샘>, 아니 소변기를 저급하고 불결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하자 뒤샹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글을 발표해 반격한다. 이런 대목이 있다.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글이나 시, 노래를 쓰기도 하지만 짓는다. 문학, 사진, 그림, 조각 등의 분야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집짓는 사람, 작가(作)라 이르는 게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짓는다고 한다.

가끔 궁금하다. 돈 많은 사람들은 행복할까? 답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 돈이 많다고 불행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다시 묻는다. 행복과 불행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가치에 행복뿐 아니라 불행도 그 가치 중 하나다. 가격을 매기려는 속내는 그 가치를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치가 무엇이건 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연도 그러하다. 언제 누가 훔쳐가거나 잃어버리거나 할지 모른다. 물건은 발이라도 없지, 사람은 발까지달렸다. 인연이 우리 사이를 잇는 동안 내게 생긴 가장 좋은 것을 나누고 닳도록 사랑하자. 다음을 기대하지도, 기약하지도 말자.

변함없는 달변의 조건이 있다면 인간을 이해하는 것, 그중에서도 앞서 오뒷세우스가 연설했듯 ‘우리의 몸에서는가슴이 손보다 더 유능하고 우리의 모든 힘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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