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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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작가의 사상이 담겨있다. 주인공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든 작가의 사상에 비추어 판단하고 평가되는것이고, 그것이 글의 뉘앙스에 담긴다. 소설보다 그런면이 더욱 두드러지는 문학장르는 에세이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에세이는 쉽게 읽히지만 쉽게 다가가기 두려운 장르일 수도 있다. 이 작가의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는데 그 가치관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실망감을 마주하기 두렵다.

이름없는 신문사의 기자라며 특정직업군을 비하하는 발언이나 언어적 표현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작가의 일기가 다소 심기 불편했다. 소설을 보면서 냉철한 비판의식이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남의 험담을 들추는데 탁월한 소질이 있는 작자였다. 알랭 드 보통을 대놓고 깠으니 나도 그냥 대놓고 까버리고 싶은 작가이다. 너도 알겠지만 너 참 뭐 대단한거 없다.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선악과(善惡果)의 정체다.
생각은 현실을 넘어선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이다. 생각 덕분에 우리는 애국이니 박애니, 살을 비비며 온기를 느낄 수 있는사랑을 넘어선 거대한 사랑을 상상한다. 구원이니 해탈이니, 근육의 나른함과 위장의 포만감을 넘어선 거대한 행복을 상상한다. 계급이니 국가니, 내가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넘어선 거대한 집단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허구를 상상하기 때문에 우리가 거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거대한 행복을얻지 못했으며, 거대한 집단 속에서 소외되었다고 여기게 된다. - P123

인간은 가치를 좇는 존재다. 그리고 가치를 좇는 행위 자체가 세상에 폭력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제멋대로 세계를 가치 있는 것, 가치가 덜한 것, 가치 없는 것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서는 필연적으로 구속과 억압을 만들어낸다. 모든 광명은반드시 그림자를 만든다. 아니, 이건 적절치 않은 비유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종이에 데생을 할 때 펜으로 어둠을 그려서 빛을표현하듯, 그림자가 광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옳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가치는 결국 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구속과압을 통해 겨우 그 허구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사람이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한눈팔지 않고상대에게 충실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이것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열정을 금방 잃고, 섹스의 가능성이 있는 타인을 향해 수시로 한눈을 팔며, 오래도록 한 가지 대상에충실할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이 해방된 상태의 인간이다. 결혼은 그런 자연스러운 충동을 억압해서 허구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운명적 사랑, 백년해로라는 개념을 우리는 운명을 구속함으로써 운명을 만든다. - P187

이것이 허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 사제의 삶이 왜 고귀한가? 하느님이 그 삶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인가? 신을 믿지 않는 나는, 사제들의 삶에 가치를부여한 것은 사제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키기 어려운 구속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사제 서품을 통해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사제복을 입고 자신이 선언자임을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때문이다. 허구와, 허구가 만들어내는 구속을 받아들일 때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 P188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는 말은 그냥 난센스일 뿐이다. 물론 미신적이고 비본질적인 억압, 예단은 얼마를 해 가야 한다는 따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그러나해방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언제나 가치를 찾는 여정의 한 수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인위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면, 인간은 유인원이 된다. 일단 외출할 때에는 옷을 걸쳐야 한다는 사회적 억압에 반대해 여름에는 홀랑 다 벗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
그래서 나는 ‘비독점적 다자연애‘ 같은 개념을 우습게 본다.
왜냐하면, 낭만적 사랑이라는 가치는 독점성과 배타성이라는 구속이 있어야 겨우 발생하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비독점적 다자연애에서 ‘연애‘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기껏 해봐야 호혜 평등한 섹스 서비스 교환에 지나지 않는다. 곧장 말해 섹스, 얄팍한 섹스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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