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의 시간
김선용 지음 / 복있는사람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헬라어의 시간어떤 책일까? 궁금해진다. 어떤 내용일까? 그냥 헬라어만 나열한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저자는 책의 집필을 제안받고 난이도를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한동안 헤맸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은 한 가지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당대 문화의 산물이며 비그리스도인의 용례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으로, 후대 신학(특히 개신교)에서 핵심 개념으로 부각된 단어들은 되도록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되도록 사회사와 감정사와 심성사의 시선으로 고대 텍스트에 다가가고자 한다.

 

신약시대에 쓰였던 헬라어와 오늘날 쓰이는 헬라어의 상당수는 이미 의미와 뉘앙스에서 적잖은 간극이 발생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간극을 해소하고자 하기보다는 신약성서를 읽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들을 낯선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작업을 통해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현대 서양고전학, 고대 철학, 고대 지중해 세계의 사회문화사 분야에서 외신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므로, 독자들에게 더 깊은 연구의 발판이 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을 통해 헬라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 독자가 있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바램에도 고대 언어의 호락호락하지 않음과 헬라어 원문을 되짚어 보는 일들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저자의 바람대로 헬라어를 더 깊이 연구하고 공부할 사람들이 많아지기에는 갈 길이 아직은 멀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 책 헬라어의 시간은 분명히 읽고 따라가고 공부해야 할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단어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첫 번째 나오는 단어가 명예(τιμή)’이다. 명예(τιμή)’는 단순한 체면치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와 같았고, 명예를 잃는다는 것은 곧 사회적 생명이 끝나는 죽음을 의미했다. 오늘날 돈이 최고의 가치로 떠받치는 시대 가운데 이러한 명예와 수치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세상이 로마 시대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감각은 낯설게 다가온다. 수치심 혹은 부끄러움은 나 혼자 느끼는 사적인 감정이지만, 정반대로 고대인들에게는 철저히 공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상식을 뒤엎는 삶을 상상할 수 있던 원천은 그들이 세상의 명예와 수치라는 가치 체계에서 과감히 탈퇴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오직 예수와 하나님만을 자신들의 심판관으로 삼았다. 이것은 진정한 명예는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 헬라어 단어들이 던지는 도전은 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로 다가온다. 저자의 치밀한 논리와 더불어 방대한 사료들을 인용하여 독자들에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곁에 두고 그 의미를 더 되새김질해야 하는 책이다.

 

그래서 저자는 담시 멈추라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독자들에게 멈춰 서서 조금은 낯설고 불편하더라도 예수님이 살았던 그 2천 년 전의 세상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헬라어로 그들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그 헬라어는 사실 발효되지 않은 딱딱한 밀가루로 만든 빵처럼 씹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씹어 먹을 때, 그 속에서 담긴 깊은 맛을 느끼게 되고, 그동안 부실했던 믿음의 뼈대를 튼튼하게 세워줄 것이다. 헬라어를 더 깊이 연구하고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찬찬히 정독함이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