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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 마흔 백수 손자의 97살 할머니 관찰 보고서
이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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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가 함께 사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때로는 재치 있게, 때로는 가슴이 찡하게 써 내려간 저자의 글이 마음을 움직인다. 백 세를 향해 달려가는 까칠한 할머니는 까칠한 것이 아니라 삶에서 묻어나는 여유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흔일곱 살 할머니와 일흔 살에 가까운 어머니, 그리고 마흔을 바라보는 손자의 이야기는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저자는 피 여사라 부르는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짧지만 재미있고, 묵직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들, 그리고 가슴 먹먹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실타래 풀듯이 풀어낸다. 거기에는 여자라서 겪어야만 했던 가슴 시리고 서러운 이야기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피 여사의 아픔들을 끄집어낸다. 그로 인해 독자들의 공감도 불러온다.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지만, 그러나 나이 듦에 대한 서러움과 죽음을 대하는 피 여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나의 미래의 모습도 이러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사는 것, 나이 드는 것, 죽음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그 인생의 마지막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자리잡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생과 이별했으면 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자녀들과 인사하고 죽음을 맞이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젊음은 무언가 지속해서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그렇게 활동적이던 사람도 건강 때문에 걷지 못할 수도 있고, 보청기에 의존하거나, 틀니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이 책의 주인공인 피 여사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할머니와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아주 선명하면서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인 문제에 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가족을 바라보면서 이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 직설적이고 툴툴거리기는 하지만 백 세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이런저런 이유로 할머니와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덜컹거리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삐거덕거림은 완화되고, 어느 순간 잘 맞아떨어지는 수학 문제처럼 서로를 향한 이해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은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 길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순례길 가운데 마지막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도 보여준다. 그리고 따뜻함이 배어있다.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저자는 소소한 일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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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