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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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도 유사 이래 가장 한심한 시대였을 지난 세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다 해버렸다. 난 우리가 다같이 20세기의 고약했던 점들을 기억해본다면, 이런 실수들을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 메시지를 따스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포장했다.
내 책은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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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장애인사를 연구하다 보니, 역사는 때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 장애인의 역사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것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과 사회적 인식은 대단히 선진적이었다. 당시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스스럼없이 살아갔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훨씬 덜했다. 예컨대 양반층의 경우 과거시험을 치러 정1품 정승의 높은 벼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즉 조선시대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 특히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장애인의 삶은 크게 위축되었다. 일제강점기엔 근대화, 산업화, 식민지 상황으로 인해 장애인의 수가 급증한 반면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또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어서, 이제 장애인은 동정과 비유의 대상을 넘어 놀림과 학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극단적인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했다. 이렇게 근대는 장애가 하나의 ‘낙인‘, 즉 사회적 질곡이 되고, 지금과 같은 편견과 차별, 배제로서의 장애인사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현대의 장애 문제는 조선시대가 아닌 근대 이후에 비롯된 것이고, 그것도 우리나라 자체가 아닌 외부로부터 이입된 현상이었다는 점이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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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에서는 남녀 아동이 네 살 때부터 일하기 시작하여 여섯 살에 이미 어른과 같거나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의무교육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정치적 권리인가는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 ‘교육을 받을 권리‘를 수익자인 당사자들이 자진해서 포기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을 받는 것이 ‘특권‘이 아니라 ‘고역‘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는 것은 ‘권리‘인지 또는 ‘의무‘인지를 묻는다면 아마 90퍼센트의 아이들이 ‘의무‘라고 답할 것이다. 아이들의 대답에는 교육은 아이들의 뜻에 반하여 사회가 강제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의무를 위배하는 것을 일종의 ‘정치적 이의제기로 보는 시각도 성립한다. - P151

중요한 것은 안배이다. ‘파랑새‘를 찾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파랑새‘를 찾으러 떠난다면 나중의 뒤처리는 누가 하겠는가? ‘파랑새 찾기‘와 같은 낭만적이고 혁신적인 삶도 인간사회에서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눈 치우기‘ 같은 일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필요하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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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는 순진하게 자기 칭찬을 계속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자기다운 삶을 찾아서 사회의 상식을 거스르고, 당당히 ‘자기다움‘을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투, 복장 그리고 가치관의 정형화에 우리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계급화된 사회구조의 규칙성에 개인을 일상적으로 따르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작용‘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현재 학교 교육이 표방하고 있는 개성을 중시하는 교육과 씩씩하면서 유연한 개인을 양성하는 교육은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퍼진 이데올로기의 정형화에 저항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중앙교육심의회가 제언한 ‘아이들의 자기를 찾는 여행을 돕는 일‘로서의 교육은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이데올로기의 정형화를 가속시키고 보완하는 기능밖에 하지 않는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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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는 순진하게 자기 칭찬을 계속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자기다운 삶을 찾아서 사회의 상식을 거스르고, 당당히 자기다움‘을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투, 복장 그리고 가치관의 정형화에 우리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계급화된 사회구조의 규칙성에 개인을 일상적으로 따르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작용‘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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