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막상 장애인사를 연구하다 보니, 역사는 때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 장애인의 역사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것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과 사회적 인식은 대단히 선진적이었다. 당시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스스럼없이 살아갔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훨씬 덜했다. 예컨대 양반층의 경우 과거시험을 치러 정1품 정승의 높은 벼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즉 조선시대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 특히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장애인의 삶은 크게 위축되었다. 일제강점기엔 근대화, 산업화, 식민지 상황으로 인해 장애인의 수가 급증한 반면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또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어서, 이제 장애인은 동정과 비유의 대상을 넘어 놀림과 학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극단적인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했다. 이렇게 근대는 장애가 하나의 ‘낙인‘, 즉 사회적 질곡이 되고, 지금과 같은 편견과 차별, 배제로서의 장애인사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현대의 장애 문제는 조선시대가 아닌 근대 이후에 비롯된 것이고, 그것도 우리나라 자체가 아닌 외부로부터 이입된 현상이었다는 점이다. -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