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이후 유행한 『당의통략』의 시각은 20세기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사실 『당의통략』 역시 소론계 이건창이 19세기 말에 쓴 당론서에 불과한데도 이를 기반으로 한 역사상이 1차 사료인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정사보다 앞서는 실정이었다. 원사료는 엄격히 관리되어 접근하기 어려웠던 반면에 당론서는 도식적으로 잘 정리되어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의통략』에는 저자와 같은 당색인 소론에 대한 비판이 한 문장 들어 있다는 이유로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이 붙었고,
당시 약간의 명망이 있던 조선광문회가 『당의통략』을 활자화하여 보급하면서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조선시대에 편찬된 당론서는 일본 제국주의 관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재야에서 날카로운 잣대로 조정을 비판했던 내용은 그대로 식민사학자의 입으로 옮겨져 조선에 대한 부정적정치상으로 재구성되었다. 일본 제국 관학자들의 저작을 살펴보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근대 사학의 범주로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조선의 당론서와 차이나는 질적인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문으로 된 책의 내용을 근대적인 일본어 논문으로 깔끔하게 재정리한 표절작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가장 큰 차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정치 혐오를 부추겨 식민지화를 필연적 결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일본 제국주의 관학자의 주요 참고서로 야담집이나 야사野史가 대거 활용된 점도 반정부적인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는 일본 제국에 유리한 자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총독부의 식민지정책과 전통적인 당론서의 영향, 그리고 야담집 혹은 야사 등에 기반한 식민사학자의 연구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당쟁사관이 형성되었다. - 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