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인은 사람들로부터 정상인으로 취급받지 못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나는 나의 뜻을 실천할 뿐"이라고 했다.이 발언에는 기꺼이 수행하는 자신의 고행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자부심 때문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점도 있었지만,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자신에게 오히려 위로나 자기애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자신을 가끔 자학적으로 혹은 자조적으로 비웃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는 결코 편안한 삶으로 자신의 생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변신했다면 아마도 그 뻔뻔스러움만으로 이미 자화자찬의 가치는 없었을 것이다.쇼인은 이탁오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높이 우러러보고 흠모한다‘고 했다. 아마도 쇼인 자신은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이러한 발언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칭찬도들어 있는 것 같다. 얼어붙은 황야의 밤에 모닥불에 몸을 기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다시 아침이면 끝도 없는 여정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감정의 유대를 쇼인은 이탁오에게 느꼈던 것 같다.그렇게까지 쇼인과 이탁오를 앞으로, 앞으로 몰아세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반복되지만, 미래의 바람직한 ‘진실‘을 끊임없이 지향하는 각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참다움‘에 대한 희구였다고 할 수 있다.두 사람은 목표로 삼은 지향점도 그 과정도 완전히 달랐지만, 외골수로 끊임없이 참다운 것을 추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 P90
정확히 일치한다.두 사람은 ‘참다움‘을 향한 갈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갈망에서 광패와 우당, 광치와 준우 등 하나하나의 접점을 통해서 완전히 결합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참다움‘에 대한 갈망뿐만이 아니다. 그러한 갈망을 현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실천으로 나아간 점도 같으며, 그 실천이 어쩔 수 없이 미치광이 같거나 우둔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같다.따라서 두 사람의 고독감과 절망감의 깊이는 오히려 그만큼 상대방의 그것에 공감하고 동지의식, 나아가 연대감을 더욱 깊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쇼인의 일방적인 공감이며 동지의식이자 연대감이다.쇼인이 이탁오의 ‘동심설‘에 ‘참다움과 거짓이라는 글자‘라고 주석을 남겼을 때, 그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연대감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 P91
2권을 읽으니 작가가 끝에 적어놓은 ˝영웅은 없다˝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된다. 조성준, 길소개, 천소례 등 이들을 비롯하여 스쳐가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날것의 모습은 간교하거나 투박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작가의 사람 자체에 대한 성찰도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반상‘이라는 소제목과 그에 담긴 내용은 고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이 보여 주인공들을 마냥 미워만은 할 수가 없다. 3권에서 조우할 이야기가 궁금하다.
여성들이 이뤄온 역사의 장면들과 그에 대한 작가의 소회를 매콤달콤하게 글로 잘 담아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발언에 백 퍼센트 동조를 할 수 있게 된다기보다 그들의 발언에 담긴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남성으로서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페미니즘에서도 보이는 듯하다.
옛말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하여 시대적인 분위기와 그 맛은 절정이지만 난도가 상당하다. 국어사전을 꼭 옆에 두고 읽을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한문 지식이 풍부하신 분이라면 조금 수월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