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네를 죽여줘
플로랑스 멘데즈 지음, 임명주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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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각종 폭력에 대한 경고.

이야기의 소재나 장면들이 상당히 불편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하지만 불행에 너무 익숙해진 사람은 불행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불행은 그렇게 끔찍한 것이다.

p.74


 며칠 전, TV 채널을 돌리다 '키라라'라는 전자음악가의 공연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참 그의 공연을 보다가 그가 2017년에 어느 시상식장에서 했던 수상소감을 듣고는 머리가 멍해졌다.

"친구들이 자살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키라라는 트랜스젠더인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대부분 안타까운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음악이 아니었으면 자신도 같은 선택을 했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친구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슬픔과 의지가 동시에 느껴졌다.


 차별과 혐오 등 자신을 부정하는 시선들을 견디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아서, 남들과는 조금 달라서, 어딘가 조금 어긋나고 부족해서. 하지만 정말 이런 것들이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게 맞나?


잠깐, 한 번이라도 나한테 내 자리가 있었던가?

p.21


 «다프네를 죽여줘»는 죽고 싶은 다프네와 누굴 죽여본 적이나 실제로 죽일 생각은 없는 킬러 마르탱의 이야기다. 다프네는 첫 번째 자살을 실패한 후 다크웹에서 살인청부업자에게 자신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넣으며 두 번째 자살을 계획한다. 마르탱은 처음으로 살인 의뢰를 받아 다프네의 자살을 돕기로 했지만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된다. 황당한 상황에서 둘은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심리상담소까지 가게 된다.


 한편 다크웹의 살인청부업자 단체는 그들의 규정에 따라 10일간의 유예 끝에 의뢰에 실패한 마르탱과 의뢰를 했던 다프네까지 죽이기 위해 그들을 찾아온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의 관계와 감춰졌던 비밀이 드러나는데,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을 거듭하며 혼란스러워진다.


"다프네, 다프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진정한 자신은 어딘가에 숨어 있기 때문이죠. 다프네는 위험에 처해 있는 자신만을 알고 있어요. 진정한 다프네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방어기제 속에 숨어 있어요. 다프네, 자신을 증오하면 안 돼요. 진짜 자신을 만난 적도 없잖아요. 다프네는 지금 자신의 것이 아닌 인생을 떠나려고 하는 거예요. 탈출구는 많아요. 어떤 탈출구가 있는지 곧 발견하게 될 거예요."

p.125


 책은 블랙코미디와 스릴러를 오가며 온갖 폭력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끝은 해피엔딩일 거라 믿었다. 아니, 제발 살아서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책과 배움을 좋아했던 다프네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만이 자신에게 남은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마르탱은 그의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과 말들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왜 그 말들에 갇혀 살아왔을까. 답답함과 참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다프네와 마르탱은 서로를, 그리고 모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늘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가 어긋나버린 두 사람의 만남은 놀랍게도 살아서 누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생의 의지를 되살린다. 이야기의 결말은 내가 생각하고 바랬던 것과는 달랐지만, 이 또한 충분히 아름다웠다. 혹독한 상황 속에 여러 번 생을 포기하려 했던 다프네가 누군가에게 생의 의지를 전달하려 하는 모습이 몹시 따뜻하게 느껴졌고,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길고 험한 길로 들어섰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묵묵히 앞만 보고 갈 것이다.

p.250


 삶이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 순 없지만, 어떤 고난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어떤 고통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는 삶의 아름다움도, 행복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행복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게 찾아낸 행복은 또 다른 가능성과 새로운 미래로 우리를 이끈다. 다프네와 마르탱의 굴곡진 삶과 험난한 여정에도 그 끝이 해피엔딩이길 바라고 믿었던 것처럼,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삶에 지친 이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과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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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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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릎 위에 떨어진 작고 구겨진 검은색과 금색 무늬 스카프를 내려다보았다.

경찰이 계속 찾고 있는 스카프와 똑같았다.

p.128



 충격적인 반전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심리 스릴러, «남편과 아내». 교통사고를 당한 파커와 루나 부부의 집에서 살인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발견되며,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간다. 평범해 보이는 부부와 가족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와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세밀하게 담아냈다.


 파커와 루나는 어쩐지 파커의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파커의 부모인 니콜라와 칼은 손자인 바니가 보고 싶지만 점점 만날 기회가 줄어든 것에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는 니콜라에게 아주 특별한 날에서 시작된다. 파커 부부가 일이 있어 바니를 하룻밤 맡기기로 한 날. 아이를 맡기고 떠나기 전, 파커는 니콜라에게 꼭 전해야 하는 말이 있다며 다음 날 다른 가족들이 없는 시간에 찾아오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 밤 큰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중상을 입은 파커는 중환자실에, 루나는 일반 병실에 입원한다.


 파커 부부가 병원에 있는 동안 바니를 자신의 집에서 돌보고 싶었던 니콜라는 병원에 요청해 아들의 옷가지에 있던 파커의 집 열쇠를 받는다. 잠시 의식을 되찾은 파커는 엄마에게 "집에 가지 말라"라고 말한 뒤 다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니콜라는 바로 아들의 집으로 간다. 도착하자마자 집이 매물로 나와있다는 사실과 아들과 루나가 각방을 쓰는 듯한 흔적에 충격을 받는다. 바니의 짐을 챙겨 나오다 무슨 생각인지 루나의 방에 들른 니콜라는 자신과 파커, 바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놀란 마음에 쓰레기봉투를 뒤지다 버릴만한 물건들이 아닌 듯해 일단 봉투째로 자신의 집으로 가져온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급류를 탄다. 바로 그 봉투 밑바닥에서 경찰이 수색하던 살인사건의 핵심 단서인 스카프가 나왔기 때문이다.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 니콜라의 혼란과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파커와 루나 모두를 찾아 스카프에 대해 묻고, 스카프를 버렸다가 다시 되찾기도 하며 끝없이 흔들린다. 아들과 며느리 둘 모두가 의심스럽지만, 피해자의 유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는 아들을 보호하고 싶은 엄마로서의 마음과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정의감이 충돌하며 괴로워한다. 한편, 루나는 니콜라가 스카프를 가지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파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아들을 지키고 싶은 니콜라는 진실을 찾아 점점 더 깊게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니콜라, 파커, 루나, 루나의 엄마인 마리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다 보면 살인사건 이면의 진실과, 부부와 개인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사는 개인과 부부는 상당한 과거와 사연을 품고 있다. 가족들 간에도 어떤 선을 지키고 모든 것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도 하지만, 그들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결국 부부간이나 가족 간에 무언가를 숨긴다는 사실 자체가 파멸로 가는 일이 아닐까 새삼 깨닫게 된다.


 니콜라를 제외한 모든 이가 의심스러워지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조차 헷갈릴 때쯤 범인이 밝혀진다. 이야기를 읽으며 머릿속에 나름의 정리를 했던 것들이 한순간 무너지며 경악스러웠다. 인간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도 끔찍했다. 더 이상 뭔가를 쓰면 그저 스포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글쓰기가 조심스럽다. 과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직접 읽으며 치밀하게 짜인 심리 서스펜스를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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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저속노화 운동법 - 몸의 시계를 늦추는 생활습관
안병택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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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노화의 속도를 늦춰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즉 '노화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저속노화를 위해 운동이 꼭 필요한 이유다.

p.18



 몇 달 전, «아픈 당신에게 숲을 처방합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과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임상 경험과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실제로 당시에 지인 중에 마음의 병으로 몸까지 아파져 고생하다 매일 새벽 러닝을 시작하고 몇 달 만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료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이 있었다. 매일 아침 러닝까진 못하더라도 꾸준한 작은 움직임으로 어떻게든 몸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의 필요성과 효용을 깨달았다. 꼭 숲이 아니라도, 밖에 나가지 못하면 집 안에서라도,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꾸준한 운동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준다.





 «하루 10분 저속노화 운동법»은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건강하고 느리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영향을 생각하며 운동법 뿐만 아니라 운동에 도움이 되는 식습관과 마음 관리법 등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며 저속 노화를 위한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노쇠와 노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개념이다. 노쇠는 '나이와 관계없이 신체 안팎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예비 능력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노화는 '나이가 들면서 신체 구조와 기능이 점점 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쇠와 노화 모두 근력이 중요하고, 노쇠한 상태에서는 회복도 매우 더디다.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운동을 통해 노쇠를 예방하거나 회복하고, 궁극적으로는 노화의 속도를 늦춰 '노화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꾸준한 운동은 몸의 각종 기능을 높이고 혹시 질병에 걸려도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수면과 저작 운동, 정신적인 문제까지 해결된다고 하니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어떤 운동은 오히려 독이 된다. 자신의 신체 한계를 고려하지 않거나, 잘못된 방식의 운동이거나, 운동 중의 잘못된 습관 등이 몸을 오히려 망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근육을 지근과 속근으로 나눠 운동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생활 습관을 점검하도록 한다. 또한 연령대별 추천 운동을 제시하며, 각각 집 밖과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운동법들을 제시한다. 특히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들은 그림과 함께 운동 팁을 제시하여 정확한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고 저속 노화 생활 습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식습관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갱년기를 포함한 급격한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맞이하는 50대 이후의 영양 보충제에 관한 설명도 자세하다. 몸에 좋은 음식과 운동 후에 마시기 좋은 건강 차 등의 소개도 있으니 바로 참고해 볼 수 있다.


 운동은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강도도 중요하지만, 빈도는 더욱 중요하다. 꾸준하고 체계적인 하루 10분 습관이 가져다줄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으로 저속노화에 성공한 '슈퍼 에이저'를 목표로 당장 오늘부터 책을 가까이 두고 매일 하루 10분, 짧지만 강력한 마법을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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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우체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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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보내는 편지>


맨 마지막에 당신이 물었잖아.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이 뭐냐고.


살아 있는 거야. 이상.

p.356



《세상의 마지막 우체국》은 천국으로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막대한 비용을 내고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의 전작인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아이가 제목만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펑펑 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기차역에서는 떠난 이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그려냈다면, 우체국에서는 편지를 통한 마지막 진심을 주고받는 장면을 그려냈다. 두 작품 모두 상실과 치유라는 큰 주제는 같지만, 이 책에서는 만남 대신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정제된 말로 써 내려간 진심을 진정성 있게 전한다.


천국으로 떠난 이들의 사연만큼 남은 이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천국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광고를 본 이들은 떠난 이들에게 꼭 전해야만 하는 절박한 진심이 있다. 연인, 가족, 반려동물 등 사랑하는 이가 떠난 지 49일 이내에만 편지를 부칠 수 있기에 더욱 조급하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편지를 부칠 때 드는 막대한 비용이다.


책의 원제는 《切手がとっても高い郵便局で》인데 '우표가 매우 비싼 우체국에서'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매우 비싼 우표를 파는 우체국이라는 것.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에 붙이는 우푯값은 사람마다 다르게 책정된다. 자산과 수입에 따라 최저금액인 15만 엔부터 시작된다. 답장을 받고 싶으면 우표를 한 장 더 사야 하므로 2배를 내야 하고, 추가로 물품 등을 넣어 보낼 경우 무게에 따라 추가금을 낸다. 이 책에서 나온 가장 비싼 우표는 무려 편도 50억 엔이다.


하지만 떠난 이에게 꼭 전해야만 하는 것이 있고 그럴 방법이 있다는데 돈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편지와 물건을 천국에 부친다. 답장을 받기도 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편지를 부친 사람들은 떠난 이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진실한 마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자신만의 삶을 이어간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목도해왔다. 그래서인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죽음과 상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상실이 누군가의 삶의 의지를 꺾는 모습도, 새롭게 의지를 다지고 살아가게 하는 모습도 봤다. 하지만 제대로 슬퍼하지 못한 채 그저 죽음이나 상실을 입에 올리길 꺼려 하는 분위기는 모순적이라고 느껴졌다. 흘려보내지 못한 슬픔은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안에서 곪고, 언젠가는 터져 나온다. 충분히 애도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과정을 거쳐야 다시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에게 상실의 슬픔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주는 치유의 이야기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니 살아서 행복해지고, 용기 내어 스스로의 길을 찾아라. 자의로든 타의로든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마지막 말에 우리는 상실의 슬픔에도 또다시 살아나갈 용기를 얻는다. 굿럭 인형이 돌고 돌아 다시 첫 주인에게 온 것처럼 슬픔을 공유하며 애도하고, 함께 세상을 살아가며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본문 시작 전에 나온 누군가의 편지의 전문이 맨 끝에서 이어지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이유를 알게 된다. 굿럭 인형의 이동 경로를 쫓거나 인물들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며 책을 읽어가다 보니, 내용적인 측면이나 구조적인 측면에서 모두 이 책이 하나의 루프(Loop, 순환구조)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지만 끝까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엉망인 채로 여럿에게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현실에서는 돈이 얼마나 많든 천국으로 연결되는 우체국이 없으니 역시 마음은 전할 수 있을 때 전해야 한다.


떠난 이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 있는 사람,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 그저 삶에 지쳐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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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정명섭 외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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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는 서울을 배경으로 네 명의 작가가 각자의 색을 입혀 완성한 미스터리 단편소설집이다. 각 단편 끝마다 작가의 인터뷰가 있어 책의 기획 의도와 작품 설명 등을 작가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구성이 좋았다. 서울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네 개의 시선은 서울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했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보편적 이미지와 서울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게 했다.


서울에서 산 지 40년이 넘었다는 서울 토박이 정명섭 작가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을 <사라진 소년>속에 녹여냈다.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그곳에서 살아왔는데 영화를 계기로 조사하다 알게 되어 더 충격이었다고 한다. '서울엔 모든 것이 다 있지만 막상 정말 필요한 것은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 그의 소설의 키워드인 '실종'이라는 말이 겹쳐 보였다. 실제로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서울을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에는 반짝이는 서울의 이면에 있는 어두운 면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왜곡되어 전해진 비극의 진실을 알리고 기억하기 위해 쓴 그의 글은 실제 사건의 진실뿐만 아니라 소설 그 자체로도 생각거리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콜린 마샬의 <(신촌에서) 사라진 여인>도 재미있게 읽었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나 서울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있고,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지혜를 찾아 여러 사람에게 수소문하며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 유럽 여행 중에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다 다른 방향을 알려줬던 기억을 떠오르게 해서 조금 심각한 분위기인데도 괜히 웃겼다.


외국에서 얼마나 오래 거주하고 그 나라 언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구사하는지와 무관하게 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외로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도 오랫동안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기며, 혹은 그렇게 여겨지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외국 생활이 길어질 때도 어김없이 그랬지만, 태어난 고향에서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때에도 그랬다. 표준어를 사용하거나 문화적으로 당연한 부분들을 모른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경험보다는 조금 다르다는 시선을 받으며 성장했던 탓에 그 도시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지도, 애정을 느끼지도 못했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서울에 돌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다. 고향과 서울 그 어느 쪽도 잘 알지 못했고 서울 사람 입장에서는 표준어가 유창한 지방 사람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서울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완벽한 외지인들이 서울에서 말투까지 바꿔가며 살아가는 모습에 그간의 내 모습이 비쳐 보여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늘 변화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인 듯하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다. 나도 가끔은 이런 빠른 변화가 반갑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추억이 있는 공간들이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에 안심하기도 한다. <선량은 왜?>에서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에도 동네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집착하는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의 배경이 된 대학로와 마로니에공원은 요즘도 가끔 들르는 익숙한 장소 중 하나다. 김아직 작가의 말대로 공원 근처의 편의점에 들르거나 휠체어 그네 앞 벤치에 앉을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나에게 서울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이 시작된 곳이자 현재 살고 있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가장 빨리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곳.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서울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서, 여러 입장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다. 서울의 다층적인 얼굴에 대해,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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