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 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
김지수 지음 / 싱긋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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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앤티크'와 '빈티지', '레트로', '클래식'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 '리빙', '인테리어', '가구', '홈카페', '공간' 등의 키워드에 관심이 있다면?

♥ 동서양의 역사적 상황이 '가구', '리빙'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 '삶의 공간'에 대한 적당한 무게의 사유를 찾고 싶다면? 


2. 적당한 무게의 사유 


이 책의 최대 장점은 통상 인간의 삶과 역사, 우리 곁의 실제 인물들과 '가구' 그리고 '공간'을 연결함으로써 평소 가구와 인테리어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과하게 학술적이지 않으나 그렇다고 가벼운 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적당한 무게,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삶에 맞닿은 가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의 내용이 '가구'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구를 표방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저자는 '삶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 사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공간을 문화로 향유하며 살아가는 법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를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역사 속 진실을 만나고 최근 이슈가 되는 문화를 성찰할 수 있으며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상해보게 된다. 저자가 '리빙 인문학'에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고찰했음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책이었다. 


3. 노르웨이의 가구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과 동일 제목의 비틀스 노래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의 'wood'가 숲인지 가구인지에 관해 논하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wood'가 '숲'과 '가구'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는 데에서 시작된 번역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소설의 원제가 『ノルウェイの森』라는 점에서, (비록 오역 논란이 있었다 해도) 하루키의 소설 제목은 별개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직역을 하면 사실상 숲보다는 가구가 문맥상 맞는다. 집에 들어온 상태에서 '이거 멋지지 않니? 노르웨이의 숲이야.'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집의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런데 노래 가사도 일종의 시다. 그래서 은유가 있는 문학적 수사가 동원된다. 만약 이 여인이 숲의 정령이고, 주술을 부려서 남자가 몽환적 상태에 빠졌다면? 그 상태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어떤 환영으로 집이기도 하고 숲이기도 한 공간에 인도되었다면? (91쪽) 


저자처럼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노르웨이산 목재 가구'가 있는 집을 '노르웨이의 숲'으로 은유하여 말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르웨이산 목재 가구를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노르웨이의 숲을 집 안으로 들여온 것이 되지 않을까. 애초에 'wood'를 관통하는 숲과 목재는 일종의 유사성으로 묶인 존재들이므로, '노르웨이산 목재 가구'가 '노르웨이산 숲'이 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까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저자도 결국 'Norwegian Wood'를 '노르웨이의 숲'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알고도 속는 셈 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받았다 한들 서로 다른 작품이므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지만….


- 상실의 시대 그러니까 노위전 우드는 노르웨이의 숲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때로는 알고도 속는, 꿈보다 해몽이 좋은 상황을 즐기는 것이 실제보다 더 좋을 수 있다. (95쪽) 


4. 표현에 관하여 


책의 후반부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등장하는 집,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제인 버킨의 방 등 예술가들의 방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방을 다루면서 '맘스 데스크'와 같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사람을 위한 일과 독서의 공간이 새로이 등장하게 됨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진정한 주거의 근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표면적으로는 과거 남성 중심의 서재 문화를 탈피하여 '자기만의 방'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고 가족 구성원이 차별 없이 자신의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주거의 근대화'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맘스 데스크'의 의미에서도 드러나듯 이러한 용어의 등장은 오히려 여성의 가사노동을 고착화하는 유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변화'로 명명하였다는 것 그리고 타인의 말을 인용해야만 그를 반박할 수 있다는 점이 다소 의아한 부분이었다. (287쪽 참조) 


-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분히 페미니즘적 시각에서만 쓰인 것은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을 경고하며, 성별을 떠나서 올곧은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라는 사람들의 현실적 환경에 성찰을 담아냈는데, 남녀 상관없이 작가도 일반 생활인이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며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84쪽) 


다소 어색한 기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작가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을 경고하며 성별을 떠나서 올곧은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자기만의 방』을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페미니즘은 불평등한(혹은 불평등했던) 성별적 결핍을 바로잡고자 하는 시각이지, 여성 편향적인 사유가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작가들이 돈과 자기만의 방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것은 '남자들은 와인을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셨기 때문에, 한쪽 성은 그토록 번창하는데 다른 쪽 성은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이 픽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한쪽 성의 안전과 번영과 또 다른 성의 가난과 불안정함' 속에서 결핍과 불합리를 느끼며 살았고, 그녀가 언급한 양쪽의 성이 차례대로 남성과 여성을 뜻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따라서 그녀는 불평등 속에서 가난했던 여성의 방을 말했다. 여성 작가들에게 방이 필요함을 말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성별이든' 모든 작가에게 창작을 위한 공간이 필요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그것이 페미니즘적 시각을 벗어난다고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후에 에밀리 데이비스 양이 아주 인상적으로 입증했듯이, 19세기 초 중산층 가족은 오직 하나의 거실을 공유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까요? 만일 여성이 글을 썼다면 그녀는 공동의 방에서 써야만 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이팅게일 양이 격렬하게 불만을 토로했듯이-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채 삼십 분도 되지 않는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았지요. 그곳에서 시나 희곡을 쓰는 것보다는 산문과 픽션을 쓰는 것이 더 쉬웠을 겁니다. 집중력이 덜 요구되니까요. 제인 오스틴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런 환경에서 글을 썼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作 『자기만의 방』에서 발췌) 


남성 저자의 글에서 여전히 안타까운 표현들이 발견되곤 한다. 위에.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눈에 밟히는 부분이 두 군데 정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지만 여기 써야만 하는 이유는, 그런 점만 제외하면 이 책이 참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저자가 가구를, 인테리어를, 삶의 공간을, 인간이 만들어낸 이 작은 문명을 정말 사랑하고 있음을, 그래서 책을 써서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야만 했음을 느꼈다. 방대한 지식의 늪을 헤매며 사유를 정리하고자 했던 저자의 노력을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에서는 이러한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되길 바라며… 마음을 털어놓아 본다. 


※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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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2 : 집으로 가는 길 팍스 2
사라 페니패커 지음, 존 클라센 그림, 김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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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면 왕자가 이해하지 못했던 혹은 어릴 적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이제는 이해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팍스》의 피터는 완고했고 어찌 보면 무모했으며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용감했다. 얼마 전 반려동물과 아버지를 모두 잃고 거의 혼자가 된 열세 살 어린아이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곳을 찾기 마련일 텐데 그는 과거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아간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도전하길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었으므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지만 어쩌면 내가 선택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안전한 길을 택하곤 한다. 어쩐지 존재하는 내 주변의 울타리들이 오랫동안 견고하길 바라며 가끔은 어릴 적보다 더 보호받고 싶은 열망이 생기곤 한다. 문득 어린이였을 적의 나를 깨달으며 그 모습을 피터에 겹쳐 본다. 무모하고 자신의 힘을 믿었던 아이, 현재의 안온보다 오래된 추억과 가슴에 품은 사랑을 더 귀히 여겼던 아이.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피터의 용감한 다정을 안쓰러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감상을 듣고 싶다. 내가 잊어버린 어쩌면 잃어버린 어릴 적의 우정과 용기와 믿음을 현재의 아이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기를, 그리고 그 소중한 성장의 감정들이 그다음 세대로 무사히 물림되기를 바란다. 


…어린 왕자가 영영 어린이로 남아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돌봄을 잃은 동물들에 대해 생각했다. 돌봄을 잃었다는 말은 곧 '이전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돌보아졌음'을 함의하고 있다. 《팍스》에서 여우 팍스(Pax)는 구해졌고 돌보아졌고 결국 다시 버려졌음에도 인간의 사랑을 잊지 않았고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인간을 믿었다. 그런 믿음을 피터는 (일시적으로) 배반한다. 이것은 배반 외의 다른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우면서도 배반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피터가 총을 챙기는 순간부터 나는 그를 조금씩 원망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그 지점에 도달해서야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하는 내가 왠지 우습기도 했다. (1권을 읽고 나서 2권을 읽었더라면 피터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제목은 《피터》가 아니라 《팍스》다. 팍스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하며 로마 신화에서 평화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팍스는 피터에게 평온을 가져다주며 피터를 평화롭고 안온한 길으로 인도해주는 존재다. 그러나 주인을 끝까지 사랑하고 믿는 것은 인간에게 마음을 내어준 동물들의 특징적인 면모인 것을. 파괴하고 미워하고 버리고 버려지는 인간의 잔혹함과 피폐함 앞에서도 인간을 사랑한 동물들은 최후의 애정을 보여 준다. 《팍스》는 잔혹한 세계에도 끝내 사랑과 따스함을, 희망과 다정을 버리지 않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동물의 눈으로 표현해낸다. 


3.


존 클라센의 여우 그림들이 좋았다. 여우보다도 더 여우같다고 이야기하면 여우들에게 실례가 될까? 하지만 그가 그린 여우들은 숲과 들판과 책과 사람에게 동화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그림은 흑백이었지만 그림 속 여우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삽화가 섭외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동화.


※ 아르테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네가 여우를 가지기라도 할 것처럼 얘기하네.
-저도 예전에 한 마리 키웠어요.
피터가 차분하게 말했다. 목구멍이 옥죄어 왔다. 두 손을 꽉 움켜잡았다. 진정되자 이어 말했다.
-그래도 제가 가졌던 건 아니에요. 그건 제대로 된 표현이 아니에요.
피터는 제대로 된 표현을 알았다. 사랑. 피터는 팍스를 사랑했고 팍스는 피터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말을 차마 내뱉지는 않았다.
-제가 길들였어요.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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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소호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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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그를 꼭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동시에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 속에서 헤맨다. 이소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쓰는 사람이니 분명 시인인데 - 그렇지만 시인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 속에 가두기엔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놀라운 사람. 그런 사람•••. 내가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가 에세이이기 때문. 하지만 과연 이소호의 글에 장르를 매길 수 있을까? 장르로 그의 글을 가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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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또한 이 작품을 '어떤 불행한 예술가가 한 땀 한 땀 손수 지은, 여러 사람에 대한 단 하나의 이야기이다.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독자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아주 불평등한 이야기'라고 묘사한다. 이 에세이가 픽션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나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에세이에서 타자는 '허구처럼' 보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에세이에서 타자는 내가 바라본 '타인'으로 등장하고, 당신조차 모르는 당신의 모습이 내 이야기에서 샅샅이 토로된다. 그것은 에세이의 매력이자, 에세이의 위험한 면이다. •••위험한 것은 매력적이다.

0.

이소호는 진솔하고, 시적이다. 그리고 진솔해서 시적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현실적인 삶 깊은 곳에 가 닿았다가 순간 아주 예술적이고 아주 먹먹한 지점까지도 포용한다. 그녀의 에세이는 아름답지 않음을 아름답게 만든다. 투박하고 솔직하고 때론 엉망진창인 사랑 이야기는 실패담이어서 더 인간적이고 더 사랑스러우며 더 재미있다. 시인이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던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이소호는 미지였고 놀라움이었고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수많은 것들이 새로웠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 적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 그녀의 글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전율하곤 했다.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가 그녀의 전시회였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스케치북이었다. 어쩌면 망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실패한 그림들이 담긴 스케치북. 어찌 보면 초라하고 남루하다. 그런데 그 초라함과 남루함이 우습게도 아름답다. 그래서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 아름다움 탓에 우리가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일 테야.

99.

달 출판사의 에세이가 좋다. 나는 천부적으로 에세이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지금껏 접한 달 출판사의 에세이들은 모두 웃고 감동하며 편하게 읽었다. •••아무래도 나는 시인들의 산문을 좋아하나 보다. 유희경 시인의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도 인상적이었는데, 박준 시인의 『계절 산문』과 이병률 시인의 『혼자가 혼자에게』도 꼭 읽어 보아야겠다.

디자인 면에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타이포나 삽입된 디자인 아트가 모던하고 독창적인 느낌인데다 배경에 쓰인 깔끔한 분홍색이 참 귀엽다. 내지에도 디자인 요소가 과하지 않게 배치되어 있어 좋았다. 소제목이 적힌 부분에 기하학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다양하게 삽입되었는데, 《모두를 찢어 붙인 모자이크》에 모자이크 기법의 무언가를 본뜬 듯한 도형들이 들어가 있어서 각 챕터 내용을 반영해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품 후반부 《흑》과 《백》의 소제목 디자인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 《망한 연애 조작단》 서평단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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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 - 사소한 일상도 특별해지는 나만의 작은 습관
이호정(하오팅캘리)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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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딱 한 개의 단어일지라도, 사진 한 장일지라도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의 기록과 또 기록에 대한 조언은 참고할 만한 것이지, (그것을) 나한테 적용할 필요는 없다. 다른 것들을 신경 쓰는 순간 내 기록은 방향도, 쓰고자 하는 바도 잃는다. 또 좋은 것만 '잘' 써넣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87쪽)


대학에 진학하고서부터 다이어리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다. 기존에 스터디플래너였던 것이 다이어리로 한 단계 진화했고 공부 이외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다이어리 혹은 플래너 쓰기는 개성이고 취향이며 극한의 주관적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작년 시월 『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 리뷰에서도 말했듯, 나는 마음의 고민이나 사적인 기분을 글로 남기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다이어리는 객관의 일기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의 다이어리 사진을 볼 때는 왠지 남의 내밀한 일기를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렇게까지 솔직한 심정을 남길 수 있다니. 나는 가끔 모든 감정이 휘발되어 사라지고 '감정'이라는 존재를 새로 익힐 수 있게 되길 바라곤 하는데. 


나의 다이어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객관적이지 않은 영역은 '아이디어'다. 다이어리는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공간으로도 쓰인다. 휴대전화 메모장과 병용하긴 하지만 갑작스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상들을 개괄식으로 끄적이기는 다이어리 쪽이 더 편하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있듯 타인의 기록과 기록에 관한 조언은 상대방의 것일 뿐이다. 다이어리 쓰기가 필수적인 것 또한 아니다. 내 주변에는 오히려 다이어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독서 기록을 남기는 것도 하나의 '기록'이다. 형태는 다양하고 방법은 무궁하며, 어쩌면 기록 자체가 개성이고 취향이며 극한의 주관적 영역일지도 모른다.


2.


아무래도 나는 쓰지 않는 삶이 무용하다고 느끼기에 계속 무언가 기록하려 드는 것 같다. 생각한다기보다는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나에게 계속 쓰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목소리는 머리와 이성으로만 들을 수 없는 음성이다.


3. 


'글'은 '개성이고 취향이며 극한의 주관적 영역'인 '기록'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가끔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보통의 산문에 '(?)'가 삽입되면 글의 흐름이 끊기며 저자의 글에 대한 신뢰성이 조금 떨어진다. 책을 읽으며 '(?)'를 발견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 안의 의아함은 뭉실뭉실 부풀어 오른다. 저자는 '(?)' 표시를 붙일 만큼 불확실한 표현을 반드시 글에 포함해야만 했을까?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보거나, 혹은 '(?)' 앞에 쓰인 내용을 확신의 영역으로 이행시키려고 노력한 결과물일까?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의 활용이 저자의 작법이고 개성이라 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특별한 문학적 장치가 아닌 이상 사용을 지양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역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4.


『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과 같은 생활지침서 성격의 에세이를 평소에는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이러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취향이 궁금해졌다. 에세이의 경우 문학서나 인문서에 비하면 내지에도 그림이나 일러스트, 디자인 요소가 여럿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결국 책을 집어 들고 선택하여 읽고 구매하는 것은 독자들인데, 에세이를 주로 읽는 독자들은 어떤 디자인의 도서를 선호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개인적으로는 내지 편집에 많은 종류의 서체가 사용되어 다소 소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본문 내용이 반점(쉼표)의 크기가 크고 형태가 뚜렷한 서체로 쓰였는데, 저자가 글에 반점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었던지라 문장 부호가 자꾸 눈에 띄었다. 너무 긴 문장이나 주술 호응이 어색한 문장도 종종 보였다. 이러한 점들이 자칫하면 독서에 불편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자간과 행간이 넓고 글씨 크기도 커서 읽기 자체가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쉽고 편한 글이어서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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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보다 가벼운 둘이 되었습니다 - 비울수록 애틋한 미니멀 부부 라이프
에린남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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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멀리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으로 그 범위가 방대하다. 따라서 '채워나가던 사람'이 무언가를 '줄이기 시작하며'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았다면 그 또한 미니멀리즘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에세이였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미니멀리스트의 에세이'라 규정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과 생활을 통해 성장을 경험한 개인의 성장기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비우며' 삶의 균형을 맞추는 삶의 지향이 아니라 '필요'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을 따지지 않아도 현명하고 유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삶의 균형을 찾지 못한 생활은 흔들거리다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므로.

 

♥ 저자는 다양한 결혼생활 에피소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생각을 바꾸었던 과정을 이야기한다. 남편의 운동화를 고를 때 제 취향을 고집했다가 남편이 그 운동화를 거의 신지 않자 결국 처분하게 된 이야기 말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다른 마음을 갖게 됐다. 남편 물건을 살 때는 내 기준이 아닌 남편의 기준으로, 남편을 위한 것을 사겠다고 말이다. 원래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아닌 타인이 사용할 물건을 고르는 것인데 내 취향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할 때도 내 취향대로 고르기보다는 선물을 받을 상대의 취향을 좀 더 생각하는데, 애초에 상대가 사용할 것을 이미 알고 함께 고르는 물건이라면 더더욱 상대의 생각을 먼저 듣고 나의 생각을 얹는 식으로 의견을 조율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일찍 깨닫지 못했던 저자를 탓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개개인의 속도는 모두 다르고 마찬가지로 저자가 이미 깨달은 무언가를 나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저자는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을 되짚으며 성장해온 그의 길을 되돌아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 결혼하면 아이를 낳길 바라는 남성과, 그런 남성과 결혼해 거듭 고민하고 갈등하는 여성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저자는 '미래에 내가 엄마가 된다면 부디 그 결과가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었길 바란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된다면 '그 결과가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한 여성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선택임에도 어떤 여성은 타인의 기대와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앞으로 이 세계를 살아갈 여성들은 정말 자신이 원하고 바랄 때, 그것이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을 때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 프롤로그에 나왔던 '공부하고 일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꾸려나갔다는 말이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에 남았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바라는 남편을 대신해' 아이를 낳지 않길... 소망할 뿐이다.

 

♥ 귀여운 일러스트가 가볍고 편안한 글과 조화를 이루어 좋았는데, 글꼴 선정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제목과 부제목에 쓰인 둥근 글씨체와 이외 다른 정보나 문구에 쓰인 고딕체가 묘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제목 글씨체는 일러스트에 맞추어 둥글고 귀여운 느낌을 살리려 했던 것 같은데, 같은 면에 들어가는 서체끼리의 조화도 조금 더 고려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 아르테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아까운 마음에 속이 쓰려왔지만,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다른 마음을 갖게 됐다. 남편 물건을 살 때는 내 기준이 아닌 남편의 기준으로, 남편을 위한 것을 사겠다고 말이다. 원래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 P28

다른 사람들은 크게 상관하지도, 쓸데없이 걱정을 하거나 참견하지도 않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보다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옷에 도전했다. 자유로운 기분을 자주 느꼈다. - P34

미래에 내가 엄마가 된다면 부디 그 결과가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었길 바란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절대 후회하거나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 P216

내가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사람과 우리의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계속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것들이 보인다. 나는 우리의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매일 배운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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