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2 : 집으로 가는 길 팍스 2
사라 페니패커 지음, 존 클라센 그림, 김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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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면 왕자가 이해하지 못했던 혹은 어릴 적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이제는 이해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팍스》의 피터는 완고했고 어찌 보면 무모했으며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용감했다. 얼마 전 반려동물과 아버지를 모두 잃고 거의 혼자가 된 열세 살 어린아이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곳을 찾기 마련일 텐데 그는 과거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아간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도전하길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었으므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지만 어쩌면 내가 선택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안전한 길을 택하곤 한다. 어쩐지 존재하는 내 주변의 울타리들이 오랫동안 견고하길 바라며 가끔은 어릴 적보다 더 보호받고 싶은 열망이 생기곤 한다. 문득 어린이였을 적의 나를 깨달으며 그 모습을 피터에 겹쳐 본다. 무모하고 자신의 힘을 믿었던 아이, 현재의 안온보다 오래된 추억과 가슴에 품은 사랑을 더 귀히 여겼던 아이.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피터의 용감한 다정을 안쓰러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감상을 듣고 싶다. 내가 잊어버린 어쩌면 잃어버린 어릴 적의 우정과 용기와 믿음을 현재의 아이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기를, 그리고 그 소중한 성장의 감정들이 그다음 세대로 무사히 물림되기를 바란다. 


…어린 왕자가 영영 어린이로 남아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돌봄을 잃은 동물들에 대해 생각했다. 돌봄을 잃었다는 말은 곧 '이전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돌보아졌음'을 함의하고 있다. 《팍스》에서 여우 팍스(Pax)는 구해졌고 돌보아졌고 결국 다시 버려졌음에도 인간의 사랑을 잊지 않았고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인간을 믿었다. 그런 믿음을 피터는 (일시적으로) 배반한다. 이것은 배반 외의 다른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우면서도 배반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피터가 총을 챙기는 순간부터 나는 그를 조금씩 원망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그 지점에 도달해서야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하는 내가 왠지 우습기도 했다. (1권을 읽고 나서 2권을 읽었더라면 피터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제목은 《피터》가 아니라 《팍스》다. 팍스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하며 로마 신화에서 평화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팍스는 피터에게 평온을 가져다주며 피터를 평화롭고 안온한 길으로 인도해주는 존재다. 그러나 주인을 끝까지 사랑하고 믿는 것은 인간에게 마음을 내어준 동물들의 특징적인 면모인 것을. 파괴하고 미워하고 버리고 버려지는 인간의 잔혹함과 피폐함 앞에서도 인간을 사랑한 동물들은 최후의 애정을 보여 준다. 《팍스》는 잔혹한 세계에도 끝내 사랑과 따스함을, 희망과 다정을 버리지 않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동물의 눈으로 표현해낸다. 


3.


존 클라센의 여우 그림들이 좋았다. 여우보다도 더 여우같다고 이야기하면 여우들에게 실례가 될까? 하지만 그가 그린 여우들은 숲과 들판과 책과 사람에게 동화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그림은 흑백이었지만 그림 속 여우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삽화가 섭외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동화.


※ 아르테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네가 여우를 가지기라도 할 것처럼 얘기하네.
-저도 예전에 한 마리 키웠어요.
피터가 차분하게 말했다. 목구멍이 옥죄어 왔다. 두 손을 꽉 움켜잡았다. 진정되자 이어 말했다.
-그래도 제가 가졌던 건 아니에요. 그건 제대로 된 표현이 아니에요.
피터는 제대로 된 표현을 알았다. 사랑. 피터는 팍스를 사랑했고 팍스는 피터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말을 차마 내뱉지는 않았다.
-제가 길들였어요.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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