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 광해군일기,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들어가며

개인적으로 광해군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광해군에 대해 크게 2가지 시선이 있어 보인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의주로 도망가기 바빴던 선조를 대신하여 분조를 이끌고 임란극복에 앞장섰던 광해군은 즉위이후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비시킨 후 궁궐증축 및 신축으로 인조반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권력의 화신으로 보는 시각이 그 하나요, 명과 청의 교체기에 중립외교로 실리를 추구했다는 시각이 나머지 시각이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두가지 시각에 대해 알고 있었고 관련 서적도 읽곤 했다.

오항녕 교수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이 전자의 시각이라면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는 후자의 시각이 강한 저서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광해군을 어떤 시각으로 그렸을까. 사뭇궁금해하면서 또한 일반 만화책과는 다르게 풍부한 읽을거리와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있어서 고교생이든 일반인이든 보고 읽기에 안성맞춤같다.

 

2. 권력의 화신으로서 광해군

임진왜란이 없었더라면, 선조가 오래 살았더라면 광해군은 임금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은 제1(왕과 세자)에서 광해군과 선조의 관계 및 광해군의 세자로서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2(초기의 광해군)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광해군을 나타내고 있으나, 3(꼬리를 무는 옥사)과 제5(모래 위의 성)에서는 광해군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광해군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첫 번째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나라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다. 누구든지 범죄를 저지르면 이를 모면하기 위해 역적을 모의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러면 왕이 직접 취조를 하면서 관련자들을 귀양보내거나 죽이는 공포정치를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의 세력을 제압하는 식이다. 광해군이 이러한 공포정치를 계속 이어갔다면 인조반정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으나 마지막에 김개시라는 궁녀한테 홀려서 판단력도 떨어지니 자폭한거라 볼수 있다.

솔직히 옥사와 김개시 부분은 일반 역사책에서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 대충아는 부분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이 정도일줄은 미처 몰랐었다.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이 당해 임금 교체후에 완성되므로 광해군일기가 인조시절에 편찬된 점 고려하면 광해군에 대해 불리한 점이 많은 편이리라. 지금도 정권이 교체되면 과거정권때 부정적인 부분을 긁어내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어찌보면 보복일 수도 있고 다른 시각으로는 정화작용일 수도 있어 국민입장에서는 결국 정권교체를 갈망할 것이다. 고이면 썩는다는 격언이 정답이다.

 

3. 실리외교를 펼친 군주로서 광해군

중립외교를 펼쳤다는 부분이 20페이지 정도분량이어서 약간 아쉽지만 그래도 이 책이 두가지 시각을 모두 적절히 반영했다는 점에서 편협하지 않은 역사책으로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내용이지만, 광해군은 명의 원군요청과 내부신하들의 강력한 의견에 따라 어쩔수 없이 1만명이 넘는 원군을 파견한다. 일부 죽기도 했지만 강홍립은 투항하여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많은 신하들이 명에 대해 일방적인 충성을 하는 고지식한 사고에 빠져 있었으나 단하나 광해군은 그렇지 않았고 이 책에서는 성리학 이데올로기, 중국에 대한 명분론의 도그마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라면서 광해군을 평가하고 있다.

 

4. 마무리하며

혹자는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 실각되지 않았으면 병자호란은 없었을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광해군이 계속 왕위를 유지했더라고 중국 정세상 병자호란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여튼 광해군에 대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이 책에서 모두 소개하고 있고 시대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저자가 광해군에 대해 마지막 평가는 다음과 같다.

세자 시절의 아픈 경험으로부터 조금만 자유로웠다면 빛나는 외교에서 보이듯 도그마에 사로잡히지 않은 열린 이성과 현실감각, 그리고 유려한 솜씨로 내치도 성공을 거두었으리라. 그런 상황을 만든 부왕 선조의 책임이 크겠지만 누굴 탓하랴. 극복하지 못한 자신의 몫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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