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책사 - 한국사의 명암을 가른 관계의 힘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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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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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는 사람이나 조직이 어떤 일을 성공하도록 전략과 방법을 세워주는 사람으로, 옛날에는 군주나 장군에게 전략을 제시하는 참모를 뜻했다. 쉽게 말해 제갈량, 방통, 서서, 사마의 등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책사가 있으며, 우리나라엔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이나 세조를 보좌한 한명회, 영조에게 직언한 채제공 등을 꼽을 수 있다. 같은 책사라도 새 나라를 만드는 단계, 왕권을 확립하는 단계, 왕의 결정을 검증하는 단계 등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조선의 책사는 왕의 야욕을 뒷받침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법과 제도,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왕권을 견제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도전은 불혹을 넘긴 나이였지만 이룬 것이 없었다. 썩어가는 고려를 개혁하겠다는 꿈을 안고 관직에 들어섰지만 권력의 실세 이인임에 맞서다가 유배를 당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조선을 건국했고 국호를 정하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새 궁궐을 짓고, 법전을 편찬하는 등 각종 시스템을 정비하고 사병을 혁파해 왕권을 강화했다. 세자 방석을 지지하는 정도전 때문에 자신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한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한다. 정도전이 쓰러지면서 그가 바랐던 재상 정치도 함께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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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는 계유정난을 설계해 수양대군의 즉위를 도운 세조의 핵심 책사이자 영의정까지 오른 조선 전기의 대표 권신이다. 두 딸을 예종과 성종에게 시집보내 권력을 이어 갔고 압구정을 건립했다. 한명회의 이야기는 지금도 역사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심복뿐 아니라 홍달손 등 무장 세력을 포섭한 인물로도 평가된다. 최영 장군은 자신의 사위이자 자신이 모신 주군인 우왕에게 군사적 기반을 제공하고 권문세족의 숙청을 도운 정치적 후견인이었다. 그러나 우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최영은 평생을 바쳐 지켰던 고려도 멸망했다. 요동정벌은 우왕과 최영이 공동으로 추진한 국가 사업이었지만 회군 이후에는 운명이 갈린다. 최영은 끝까지 정벌을 밀어붙인 인물로 남았고, 우왕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옮겨졌다. 이렇게 왕과 책사 사이엔 신뢰와 충성을 바탕으로 한 성공적인 책사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도 있다. <왕과 책사>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군신 관계 40가지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다시 볼 수 있다. 왕과 책사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와 소통이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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