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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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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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뭐라하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 강력한 자기 확신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둥글게 굴러가는 사람을 원하지만 정작 세상의 축을 이동시킨 것은 뾰족하더라도 기꺼이 지랄맞을 수 있는 이단아들이었던 것이다. 무례한 간섭, 지위를 무기 삼아 통제하려는 시도, 부당한 잣대 앞에서 무작정 인내하며 속을 끓이는 일은 이제 내려놓기로 한다. 세상이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 끌려다니는 삶보다는 지랄맞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지랄 맞게 살려고 하는 인생의 태도는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준 지랄맞음을 보면 단순한 분노 조절 장애나 맹목적인 이기심이라기보다 무례하고 폭력적인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자존감과 고유성을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방어나 투쟁에 가까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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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도 지랄맞은 예술가다. 지금은 고흐의 그림값은 어마어마하지만 살았을 때 고흐의 그림을 팔리지 않아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며 물감값을 지원받았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스물일곱 살로 늦은 나이다. 하지만 제도권 미국 교육에 오래 적응하지 못했다. 고흐의 그림은 당시 주류 미술시장의 취향과는 크게 어긋나 있었고, 거칠고 두꺼운 붓질과 강렬한 색채, 과감하게 왜곡된 형태는 많은 이들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함께 생활했던 폴 고갱과도 예술관과 성격의 차이로 끊임없이 충돌했다. 고흐의 그림은 대중과 평단, 동료 화가들조차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세상의 인정과 타협하는 그 융통성을 거부했다. 세상이 고흐의 그림에 단 몇 푼의 가치도 제대로 쳐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캔버스 위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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