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
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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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겨두고 스위스로 가려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었다. 해외 여행지로 인기 많은 스위스로 가겠다는데 왜 뉴스에 나오게 되었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 아버지가 스위스에 가려던 이유 때문이다. 스위스는 현재 외국인에게도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국가다. 사전연명의향서와 연명의료 중단 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사전에 연명치료를 거부,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문서로 남기면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버지가 스위스로 가려고 했던 이유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위스와 같이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로 가 임종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는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난치성 근육계 질환과 싸우는 아버지의 죽음과 기자로서 취재 현장에서 경험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병은 병명도 없고 치료 방법도 없는 근육병이었다. 서서히 근육이 굳어가고 나중엔 스스로 호흡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검사 결과를 들은 중년은 남성은 딸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로 울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조금 아픈 것도 집안의 분위기는 어두운데 아버지의 병은 낫지 않는 병이다. 집안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도 밝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어린 나이에 죽음을, 그것도 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된다.

서른여섯의 여름, 기자가 되고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될 무렵 우울이 폭발한다. 16년을 잠복했던 것처럼 우울은 번아웃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공격했고 무너지게 된다. 기자로서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이젠 자신이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죽고 싶은 생각에 시달리는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으로 바뀐다. 누구나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다르다.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들의 사정을 안다면 안락사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자가 만난 의사는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남은 가족들은 고통을 겪는다. 아버지는 위암 말기였고, 위암을 치료했지만 암이 전이되면서 더욱 고통이 심했다. 남은 가족들이 있음에도 그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이유로 의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병으로 인한 고통은 자신의 목숨을 끊게도 한다.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의사가 되고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병으로 인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학자로서 정체성을 잃은 아버지에게 생존은 연명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회복할 수 없는 말기 환자와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 깊어진 환자의 경우 의사에게서 치명적인 약이나 주사를 처받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제도가 스위스의 의사 조력사망이다. 일부 유럽지역과 일부 미국 지역에서 시행중이다. 치료할 수 있는 병은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는 있고, 백세시대가 되면서 더욱 병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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