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 - 우수영에서 강원도 수류산방까지 마음기행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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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삶이 아주 쉬워 보여도 많이 가지는 것보다 오히려 가지지 않는 무소유가 더 어렵다. 그런데 무소유의 진짜 뜻은 소유와 무소유를 떠나 '집착하지 않음'에 그 본질을 가진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삶이란 '버리고 떠나기'이고, 그것의 본질이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홀가분해지고 자기다워진다고 말씀하셨다. 또 무소유는 나눔이고 무소유 삶은 버리고 떠나고 나누기가 된다. 나눔은 자비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고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에서 법정스님은 늘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기를 당부했다고 한다. 삶에 공식이 있지는 않지만 문명의 이기를 받지만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점점 해체되고 만다는 것이다. 물건의 노예가 되고 조직의 노예가 되고 관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하고 간소해져야 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삶을 산다는 말이다. 무소유의 법정스님에게도 도반이 있었다. 도반은 영혼의 메아리이듯 분신이듯 행동해주는 이를 말하는데 지연이나 학연, 혹은 긴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함께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의 영혼에 깃들어 동지가 된다. 도반 스님과는 겨울 한 철 지낸 것뿐이지만 서로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할 수 있다. 대화도 없었지만 서로가 해야 할 일을 하며 단 한 번도 불협화음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 무소유>에서는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읽을 수 있다. 임신년 10월 8일생인 아이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 역시 남편을 너무 일찍 잃었다.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은 깊은 정이 들 새도 없이 사별했고 외동아들이 있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어머니는 여동생을 낳았다. 그런 어머니가 부끄러워 할머니와 더 정이 들었다. 청년이 되어 머리를 삭발하고 출가하게 된다. 큰스님은 불법인연이 있다며 수행을 잘하여 법의 정수리에 서라는 의미로 법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6·25 전쟁이 나자 해인사 대중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피난을 가야했다. 전쟁이 끝난 후 시자 법정은 효봉 스님을 모시고 쌍계사로 간다. 시자 법정은 큰스님을 모시며 여러 가지를 배운다. 효봉스님은 시자나 다른 스님들에게 야단도 크게 치시는 분이었고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아는 체 둘러대는 태도를 아주 싫어하셨다. 그래서 태도가 분명해야 했다. 법정스님은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면서 타고난 글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된다. 계속 지리산 쌍계사, 가야한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에서 수선안거를 하며 저서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쓰고 1976년 법정스님의 대표적인 저서 '무소유'가 발간된다. 저작 활동과 수련 활동을 하면서 2007년 폐암 진단을 받아 회복했지만 2009년 병고가 재발하게 된다. 요양을 하시다 2010년에 주석하셨다고 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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