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 웅진백제 발굴 이야기 공주가 좋다 1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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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석장리'는 지금의 충남 공주 석장리동에 있는 구석시 시대의 유적지이다. 공주라는 도시는 역사문화의 도시로 삼국시대의 백제 웅진이라 불리기도 했다. 한국 고고학에서 한획을 긋는 발굴이 두 건이 있는데 석장리와 무령왕릉 발굴이 그것이라 한다. 먼저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은 한반도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구석기 문화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1964년 늦은 봄 역사책에 나오는 뗀석기가 한반도에서도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뗀석기는 구석기시대의 도구로 금강변의 한 언덕에서 4점의 뗀석기와 10여 점의 석기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이 석장리 유적 발굴은 당시까지 학계에 팽배해 있던 가설 '식민사관'을 단박에 타파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수촌리 유적 발굴에서는 지역공동체 내에서 독자적이고 차별적인 지위를 인정받은 지방 세력가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물품을 학계에서는 위세품이라 하는데 이런 위세품들은 금동관과 금동신발 외에도 많이 발견되었다. 정교한 금귀걸이나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장식품들 등도 출토했고 백제시대의 토기들도 다양하게 발굴했다.



백제의 중흥을 이끈 무령왕의 고분은 고고학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무덤의 축조 양식과 사용된 재료는 당시 기술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무덤 속의 껴묻거리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누렸던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사회적 배경, 그 나라의 문화, 더 나아가 외국과 교류 관계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송산리 고분군은 일본인 교사가 공주에 거주하며 개인적으로 백제의 유구와 유물을 다양하게 조사, 연구했다.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송산리 6호분에 들어갔고 자신이 첫 발견자라고 자신의 책에도 기술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임의로 들어가서 조사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약 40년 후 완벽하게 보존된 무령왕릉이 우리 손으로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 역사의 진면모와 만나는 우리 고고학과 역사학이 가장 빛나는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송산리 고분군의 6호분 뒤쪽에 배수로 공사를 하다 발견된 것이 무령왕릉이다. 아무런 훼손의 흔적이 없는 무덤이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체계적인 발굴조사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아 졸속으로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무령왕릉은 발굴 그 자체로 한국의 고고학계에 큰 의미를 남긴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의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의 관불리 유적과 부소산성 등 총 8개로 구성된 연속 유산으로 유네스코세계역사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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