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 우리나라 가장 먼저 사제 도토리숲 문고 6
김영 지음, 신슬기 그림 / 도토리숲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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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라고 하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정조 때에도 천주교에 대한 박해 이야기가 있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김재복'이라는 이름으로 충남 당진의 솔뫼마을에서 태어난다. 재복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1827년 정해박해를 피해 재복의 가족은 경기도 용인으로 가게 된다. 재복은 16살에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받게 된다. 재복은 신학 공부를 위해 잠시 가족과 떨어져 한성에서 지내게 된다. 재복은 한성에 오고 앞으로 조선 교회를 크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대건'으로 개명한다. 대건은 1836년 함께 공부하던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청나라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한다. 당시 마카오는 청나라와 서양의 무역 교류가 활발했고 선교사들의 거점 활동 지역이기도 했다.    


 


1846년 김대건 신부는 조선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10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조선에서는 천주교 박해가 더욱 심해졌고 기해박해 때 가족을 모두 잃고 어머니 혼자 살아남게 되었다. 조선에서는 어려운 형편에도 점점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었다. 김대건은 청나라 사람으로 오해받고 체포되어 옹진군 감옥으로 끌려간다. 김대건 신부 역시 다른 교우들과 함께 심한 고문을 견뎌야했다. 김대건 신부를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신부처럼 청나라에서 온 신부라고 생각했지만 곧 어릴적에 마카오에 간 신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도대장은 김대선 신부의 학식이 높고 지혜롭다는 것을 알아보고 천주교를 버리면 벼슬까지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대선 신부는 거절하고 1846년 국사범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김대건 신부는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는데 힘쓰다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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