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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휴머니즘 - 인류의 미래를 찾아서 (에리히 프롬 탄생 125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황선길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6년 4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의식은 보편적 인간이다'라는 말은 인간은 겉으로는 모두 다르지만 깊은 무의식 안으로 들어가면 외로움, 사랑받고 싶은 마음, 죽음에 대한 불안 같은 감정을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무의식에서 보면 인간은 다 비슷하다. 여기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말하는 휴머니즘이 시작된다.
휴머니즘 하면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꽃도 예쁘고 자연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건 사람이라는 메시지는, 인간을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는 생각인 휴머니즘과 닮았다. 우리 무의식에 공통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은 국적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렇게 인간의 공통된 본질을 이야기하는 책이 『위기의 휴머니즘』이다. 이 책은 프롬의 잘 알려지지 않은 글들을 엮어 휴머니즘과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옮긴이는 독일어 발음을 살려 마르크스를 '맑스', 엥겔스를 '엥엘스'로 표기했는데, 처음엔 일반적인 표기와 달라 낯설었다. 이 낯섦은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프롬의 글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옮긴이는 문장을 다듬어 독자에게 편의를 높이기보다, 원문의 낯섦을 그대로 보존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어려운 부분은 AI에게 물어가며 천천히 읽었다. 첫 부분의 <엮은이 서문>에 있는 다음 문장부터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 p.16
이 책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실존적 질문과 씨름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선호되는 관점은 사회적으로 생성된 감정적인 경험이 관심의 중심에 있는 사회심리학적 관점이다. 또한 이 관점이 주제의 선택을 결정했다.
✨ p.16 AI에게 쉬운 번역 부탁
이 책은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어떤 감정과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사회심리학적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들도 사람과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며 만들어내는 인간의 마음과 경험을 중심으로 선택되었다.
🪞실존적 질문이란 “어떻게 돈을 벌까?”처럼 밥 먹고 돈 버는 일상적인 질문 말고 “돈을 벌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말한다. "왜 사는 걸까?"처럼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밤에 자려다 문득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이게 실존적인 질문이었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이란 사회가 사람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는 시각이다. SNS가 없을 땐 남에 대해 잘 몰랐는데, 지금은 매일 남과 비교하다 보니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옛날엔 여자가 서른 넘기기 전에 결혼하는 분위기였는데, 1인 가구가 늘어난 지금은 결혼을 안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직장에서도 우리 팀을 위해서 오늘 야근을 해야 한다면 불만이 쏙 들어간다. 이렇게 사회와 집단이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바로 사회심리학적 관점이다.
1부에서는 현대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2부에서는 인간 안에 있는 파괴의 본능이 전쟁과 폭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분석한다. 3부는 사람들이 불안할수록 자기 집단만 옳다고 믿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서로를 적으로 돌린다는 것을, 4부는 그래서 그 해답으로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라는 휴머니즘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 무의식은 보편적 인간이다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 내용은 이 책 <제4부 하나의 세계에서의 휴머니즘> 가운데 '오늘날 휴머니즘의 중요성'에 나온다. 술 마시고 필름이 끊겨도 집은 잘 찾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식은 없어도 몸이 길을 기억한다는 게 무의식이 작동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프롬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무의식 깊은 곳에는 인종도 국적도 없는 그냥 '인간'만 있기에 무의식과 접촉하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타인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는 낯선 사람도, 나보다 못한 사람도 없다. '무의식은 보편적 인간이다'라는 말은, 인간에게 공통된 보편성이 있다는 뜻이다.
BTS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는 모습을 보며, 오늘날 세계는 문화, 기술, 경제가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까지 연결된 건 아니다.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도 서로를 적으로 보는 순간, 그 연결은 무역 갈등, 혐오, 전쟁으로 무너진다. 이런 시대일수록 서로 같은 인간임을 강조하는 휴머니즘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의식은 보편적 인간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만약 인류가 휴머니즘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전쟁과 파괴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 프롬이 말하는 휴머니즘은 어려운 이념이 아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만 생각하자. 이태원 참사 때 모르는 사람에게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한 것, 코로나 때 경쟁하던 나라들끼리 백신 정보를 공유한 것 등 그 순간만큼은 그냥 같은 인간이었다. 프롬이 말한 무의식 속의 휴머니즘은 배우는 게 아니라 식욕 같은 본능이지 싶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미 우리 안에 있는 휴머니즘을 깨우는 일이다. 그건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고 생각하는 삶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 책의 표지와 각 부의 시작에는 전각 작품이 실려 있다. 전각은 잘못 새기면 돌을 버려야 해서, 끌을 대기 전에 오래 생각해야 한다. 프롬의 질문도 그렇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쩌면 그 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위기의 휴머니즘』을 위기에서 구하는 일은,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휴머니즘은 이미 우리 무의식 속에 있으니까.
p.292 나는 인간이 훨씬 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 소비가 삶의 지배적 동기가 아닌 세상, 인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목적이 되는 세상, 인간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과 환상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힘을 발견하는 세상이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다. -휴머니스트 신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