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작은 섬 알래스카에서
박은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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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래스카 최남단 작은 섬 케치칸(Ketchikan)은 밴쿠버나 시애틀을 출발한 알래스카 크루즈 첫 기항지로도 유명하다. 기항지(寄港地)란 잠시 기(寄)거하다 할 때의 기(寄)자를 써서 배가 항해하는 도중에 잠시 들르는 항구를 말한다. 연간 강수량이 매우 많아 알래스카의 우기 수도라고도 불린다. 해를 보기 힘들고, 병원도, 언어도, 생활도 불편한 『세상 끝 작은 섬 알래스카에서』 성장해 가는 저자와 가족의 이야기다.


🐻 곰이 사는 동네

베란다에 곰이 올라오고, 길을 걷다 사슴을 만나고, 바다에서는 고래가 숨을 내뿜는 캐치캔(그곳 발음인 듯?)이라는 곳에서 저자는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낸다. 차 안에 남긴 햄버거 상자 냄새를 맡고 곰이 창문을 박살 냈다는 이야기, 차 보험에 곰의 차량 파손을 대비한 항목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 갈색 곰이 늘 먹이를 찾아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해가 지면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위험한 곳이다.

나는 말이 안 통하는 이웃과 사는 이야기에 완전 공감했다. 곰이 자꾸 와서 쓰레기를 뒤지니까 쓰레기는 컨테이너에 넣어야 하는데, 윗집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는데 내가 겪은 층간 소음 문제가 떠올랐다. 최근 뉴스에서 층간 소음을 참다못해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위층 사람을 살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들었다. 쓰레기를 윗집 대신 컨테이너에 집어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언제 쓰레기를 버릴지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고 정말 너무 얄미웠다. 세계 어느 곳이든 이런 이웃 꼭 있나보다.

🌌 앞마당에서 만난 오로라

알래스카 집 앞마당에서 만난 오로라에 관한 묘사는 나도 너무 신비로워서 꼭 한번 가서 직접 보고 싶었다. 밤하늘에 펼쳐진 신비로운 빛을 TV로는 본 적이 있는데, 별로 큰 감동은 없었다. 역시 자연의 장면은 직접 봐야 마음에 깊이 새겨지나 보다. 나는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았던 아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던 장엄한 태양의 모습에 압도당했던 감동의 순간. 저자는 생애 처음 오로라를 본 이후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고 한다. 오로라를 다시 본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이로운 순간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하고,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 어디보다 무엇

나는 상해에서 거의 7년을 살았다. 말이 잘 통하는 한국 사람들끼리만 어울렸고, 마트에서 김치와 라면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간판만 중국어로 바뀌었을 뿐 생활은 한국과 똑같았다. 하지만 상해는 병원도 치과도 안경도 알래스카처럼 너무 불편하고 비쌌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생각만 들었다. 게다가 아들 입시 뒷바라지에 치이다 보니 중국어 공부도, 여행도, 기록도 제대로 못했다.

나는 7년을 살고도 왜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저자는 알래스카에서 고립된 힘든 시간을 글로 녹여 책이 되었다. 나는 낯설고 불편한 환경 속에서 한국 사람만 찾고, 불편함을 피해 다니기 바빴던 게 아닐까? 저자가 얼음의 시간을 글로 녹일 때 나는 상해에서의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건 아닐까? 삶은 내가 어디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느냐로 남는 것 같다.

📖 이 책을 읽고

이 책은 알래스카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읽고 나면 그곳 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긴다. 진짜 곰을 보면 무서울 것 같고, 튀어 오르는 연어를 보면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본 기록은,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더 깊이 와닿을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알래스카와 신앙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기록하며 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해에서 한국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며 살았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 뿐, 가족과 함께 했던 내 삶의 일부였기에 그 시간도 헛되지 않았다. 그때 감정을 글로 써뒀다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었을까? 후회보다 지금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시간은 저자처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내 삶을 살아왔는지 보고 느낀 것들을 조금씩 남기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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