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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당은 없다 - 기후와 인간이 지워낸 푸른 시간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5년 9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제주 바당에 대한 추억에서 시작한다. 저자에게는 최고의 이상이자 세상이었고, 우주였던 바당이 아프다. 바당이 죽어가고 있다. 제주 바당을 이야기하지만, 단순히 사라진 아름다움을 한탄하지 않는다. 잘못된 현실을 고발하고, 나아가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 그리고 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묻는다. 제주 바당의 변화와 아픔을 생생하게 기록한 생태 에세이를 만나보자. 먼저 책 속에 나오는 제주어를 조금 가져와 봤다.
갯것이(바닷가), 폴개(서귀포시 남원읍 태흥 2리 바닷가의 옛 지명), 들물(밀물), 겡이(게), 메역(미역), 솔래기(옥돔), 자리(자리돔), 뭉게(문어), 오븐재기(작은 전복), 구젱기(소라), 귀(성게), 우연내(텃밭), 나스미깡낭(하귤나무), 산물(용천수, 지하수), 솥강알(아궁이), 복쟁이(복어), 물이 봉봉 들면(바닷물이 최고의 만조가 되면), 곶자왈(자갈이 널려있는 숲), 물이 바짝 싸면(완전히 썰물이 되면).
1장: 푸른 심장이 뛰던 시간
바당에 얽힌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는 장이다. 산물(生水)은 샘구멍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인데, 이 용천수(湧泉水)는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다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이다. 한 마디로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이다. 대수층은 물을 잘 통과시키고 내보낼 수 있는 암석층이나 토양층을 말하는데, 지하수의 저수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산물은 해안가 주변 바위틈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저자는 어릴 때 축항(築港) 안쪽에서 수영하면서 놀았다. 축항이란 방파제나 제방으로 바깥 바다와 분리되어 파도가 잔잔하고 안정적인 구역을 말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하기 좋았을 것 같다. 축항 안쪽 끝에서는 산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와서인지 들물(밀물)이 되면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많은 고기도 같이 들어왔다고 한다.
물고기를 직접 보는 스노클링도 신나는데 눈앞에서 숭어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따라 함께 폴짝폴짝 뛰어놀았으니 얼마나 신났을까? 숭어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따라서 뛰어놀았던 기억이 어떻게 잊혀질 수 있겠는가. 나는 어릴때 가족과 인천 월미도의 어떤 낚시터에 놀러 갔는데, 바다가 파란 색인 줄 알았다가 초록색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과 지렁이가 꼼질거려서 무서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제주의 어린 시절 추억이 마치 동화 속 이야기인 듯 아름답게 펼쳐진다. 제주 방언도 외국어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듬북이라는 갈조류, 놀래기의 일종인 코생이, 조우럭, 붉바리, 오븐재기, 보말 등 정확하게 신기한 단어를 기억해 내신 작가님도 놀랍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해녀인 어머니는 물질하고, 형과 저자는 축항에서 수영하고, 고기를 낚고, 소라를 잡는다. 바당은 거대하고 넓어서 어떤 장난을 해도 다 받아준다. 바당에서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바닷가 근처에서 사는 게 꿈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우리들의 무관심 때문에 아파서 울고 있었다니...
p.25 나는 그 바당이 늘 좋았다. 그리고 우리 집은 바당을 근거로 삶을 이어간다. 바당이 우리의 삶이고 놀이다.
2장: 더 이상 푸르지 않은 비명
바다는 어느 한순간에 '나 죽는다' 하면서 푹 쓰러지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복구할 자정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를 바당의 복원력이라고 한다. 바당이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여 원래 모습을 되찾는 데는 보통 4년이 걸린다.
제주에 양어장이 들어오고부터 바당은 지속적인 오염에 시달렸고, 결국 바당은 천연의 바당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복원 의지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바당은 이미 매우 지지고 아픈 상태다. 스스로 회복할 자정 능력마저 끝난 무력한 바당은, 양어장 등에서 배출되는 오폐수인 똥물을 어쩔 수 없이 계속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바당은 바당 그 자체로 바라보아야 한다. 인간의 필요나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바당은 개인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삶의 터전이다. 이 바당과 함께하는 삶이 제주의 정체성이다. 제주 바당이 죽어가는 주요 원인이 양식장 배출수와 하수 종말 처리장의 문제라는 점은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제주 행정은 어느 순간부터 마을의 발전 기금 명목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에게 행정 스스로가 '바당을 죽인 범인은 나다'라고 자백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제주도에 갔을 때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지 이토록 심각하게 병들어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바다 환경 지킴이를 시작한 2021년 2월, 저자는 구좌읍 바다가 우도를 제외한 제주도 다른 어느 바다보다 더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심이었다고 한다. 아직 해조류가 멸종하지 않고 톳이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불씨가 있어 아직 되살릴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고향 바당은 10년 전부터 하얗게 변해 미역과 톳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향 바당만 문제가 아니었다. 제주의 미역 생산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갯녹음(백화현상)이다. 바다 사막화라고도 불리는데, 수온 상승과 육상 오염물질 유입 등 복합적인 환경 문제 때문에 해조류가 사라지고 하얀 석회조류가 바위를 덮는 현상이다.
참고로 갯녹음은 해양 수산 분야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로 제주어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이다. 갯은 갯것이(갯가)의 준말로 얕은 바닷가를 말하고, 녹음은 해조류가 죽어가거나 유실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해조류가 사라지는 현상을 갯녹음이라고 하는 것.
겟녹음뿐 아니라 오염도 문제이다. 일본 사람들은 예로부터 톳을 좋아해서 제주산 톳을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일본으로의 수출이 중단되었다. 일본으로 수출한 제주산 톳에서 화학 성분인 인이 다량으로 검출되어 식품 안전성 문제로 일본에서 수입을 안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오염된 바당의 피해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오염된 자연을 물려줘야 한다.
3장: 부서진 바당, 생명의 경계에서
행정은 사람에게 접근하는 만큼 왜 자연환경에는 다가가지 않을까? 사람들은 민원을 넣고 항의하지만 바당과 물고기는 훼손을 당하고, 오수를 마시며, 비닐봉지에 숨이 막혀 죽어도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제주 행정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기술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문제는 오염원에 대한 강력한 규제, 충분한 예산 투자, 그리고 이를 집행할 행정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멘트로 자연을 덮는 도로공사와 같은 개발 사업은 비용이 많이 들어도 실행하지만, 자연과 환경을 배려하는 자연친화적인 사업은 비용을 따지며 실행하지 못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자연이 곧 경쟁력인 제주의 경우라면 자연과 환경의 가치를 최우선시 해야 하지 않을까? 평범한 주부도 아는 이런 사실을 제주 행정은 왜 모르는 척할까?
제주 주민들이 일부 관광객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제주도까지 날아와서 바닷가에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 가버리면, 그 쓰레기는 제주도에 사는 주민들이 알아서 치우라는 말인가? 이런 무책임한 관광객들을 누가 반기겠는가?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제주의 자연과 환경을 아프게 하지 않고, 아름다움만 감상하고 돌아간다면, 관광객들의 방문을 굳이 환영하지는 않아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가 바다 환경 지킴이 활동을 할 때, 겨울철 바당에 쓰레기가 많이 올라오면, 바당에 종사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들은 그 심각한 쓰레기 더미를 보고도 대부분 외면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녀들은 달랐다. 그들은 저자와 함께 바당의 고통을 공감하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그 많은 쓰레기를 함께 치우겠다며 추운 날씨에도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다.
바닷물에 부유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조사해 보니 일본어가 있는 플라스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주 바다를 아프게 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대부분을 우리가 버렸다는 말이 아닌가! 해양 쓰레기의 80% 이상은 바다에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 하천을 통해 흘러들거나, 해안가에 버려진 뒤 바람이나 파도에 의해 바다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영국 스코틀랜드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향유고래의 뱃속에서는 100kg에 달하는 일회용 컵, 비닐장갑, 그물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이인 줄 알고 먹다가 죽은 것이다. 바다거북은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하고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 비닐봉지는 위장이나 소화기관을 막아 장폐색을 유발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런 현실을 알게 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4장: 우리의 이어도는 지금, 여기로부터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의 터전인 '바당'이 그저 늘 그 자리에 있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앓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러한 위기를 진심으로 자각하고 공감한다면, 그 의식 변화가 작고 큰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고, 바다를 죽이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해수면 상승의 가장 큰 2가지 요인은 해수의 열팽창과 빙하가 녹는 것이다. 해양이 따뜻해지면서 해양의 부피가 커지는 현상을 해수의 열팽창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빙하와 만년설이 녹는 속도가 바닷물의 열팽창보다 더 빨라졌다고 한다.
어느 기상학자는 2100년 지구의 해수면 높이가 1m에 이르면, 제주도의 저지대 상당 부분이 잠겨, 많은 인구가 육지로 이동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성난 바당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해안 도로 위로 올라올 것이다. 실제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어떤 마을처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제주도 또한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바당과 무분별하게 개발된 자연을 치유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의 가장 큰 행정력이다. 앞으로는 자연과 바당을 더 이상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행정가나 정치가의 가장 큰 덕목이자 주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해안 도로변에 시멘트 사용을 자제하고, 나무를 심고, 자연을 조성해 가야 한다. 그런 행정이 있어야 주민들에게 안전한 일상이 보장될 것이다. 해녀들에게 바당을 돌려주어야 한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주 삼다수 덕분에 제주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주행정은 앞으로 삼다수 물을 상업화하는 데 행정력을 쏟지 말고, 제주의 물을 지키고 아끼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는 삼다수 가격이 만 원을 넘어서 돈 있는 사람만 자연의 혜택인 제주의 물을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다. 제주의 지하수와 바당은 같은 핏줄이다.
공감은 연대의 시작이고 그 연대는 행동을 만들어낸다. 행동은 결국 희망이자 결과를 생산한다. 누군가는 바당을 소비하고 버리는 데 즐기고, 누군가는 그 버린 즐거움을 수거하면서 바당이 아프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즐긴다. 개인들이 각자의 생각과 방식대로 이끌어 내는 결론이 제주의 바당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하는 쪽으로 많아졌으면 좋겠다.
옛날 제주도 해녀들은 이어도를 꿈꾸어 왔다고 한다. 나는 이어도가 제주도 옆에 실제로 있는 섬이라고 생각했는데, 설화 속에 나오는 상상의 섬이었다. 거기에는 물질의 고통도 없고, 아내를 괴롭히는 남편도, 배고픔도 없다. 매일 쌀밥을 실컷 먹으며 살 수 있는 제주 해녀들의 유토피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바라는 이어도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바당 위기와 기후 위기에 대응하며 맞서고자 하는 우리의 작은 의지를 담은 오늘의 실천이다. 이 책은 다음 세대에게 깨끗한 바당을 물려줘야 한다는 간절한 호소이며, 실천과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당은 없다'는 강력한 경고의 편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