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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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다. 9세 때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와, 대학 시절 자살을 시도한 후, 정신병원에 약 3년간 입원했던 경험을 가진 수잰의 에세이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독서와 읽기로 치유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조울증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과 저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여성, 인종차별, 독서와 글쓰기, 정신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자신만의 예리한 통찰과 견해를 펼친다.

원제인 Committed에는 수용되다는 뜻과 전념하는의 2가지 뜻이 있다. 수잰 스캔런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Committed) 경험과 삶의 의미(Meaning)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한(Committed) 삶이라는 2가지 뜻을 모두 담아 이 책의 제목을 정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처음에 조현병으로 오진을 받았고, 이후 히스테리 진단을 받고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 그 당시 여성 환자에게는 히스테리라는 진단이 너무 쉽게 내려졌다고 비판한다. 그녀의 고통은 히스테리가 아니라 외로움, 슬픔,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수잰은 뉴욕주립 정신의학 연구소의 분석가들의 형식적인 차가운 대화와 비인간적인 형식으로만 가득한 것에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결국 그녀는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의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약물이나 형식적인 치료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치유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진단명이 아니다'라고 그녀는 외친다. 진단명이 개인의 정체성이 되면, 그 사람의 급진적이거나 예술가적인 면모 등은 진단명에 묻혀버린다.

일례로 어떤 A라는 여성이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면 가족부터 A를 광녀(madwaman)취급 할 것이고, 친구도, 사회의 시선도, A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저 조현병 환자일 뿐이다. 만약 A에게 예술적인 천재성과 탁월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그저 광기로 취급된다. 진단명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환자로 지내는데 점점 익숙해진다. 죽음을 계획하거나 정신과 의사들과 대화하는 일도 더 능숙해진다. 주립병원은 학생 보험을 적용받아 모든 게 공짜였다. 그러니 떠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형식적이나마 이런 시설이 있어서 자살은 막지 않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해 봤다.

그녀는 자신이 외로웠고, 슬펐으며, 미친 상태였거나 미친 척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과거 트라우마를 기억해 내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의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환상적인 트라우마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관심을 얻기 위해 연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한다.

광기를 연기하는 것은 더 역동적이고 더 진정한 존재가 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햄릿은 미친 것일까? 아니면 미친 척하는 것일까? 누가 그 차이를 알 수 있을까?

병원에 있는 여자들끼리는 서로 경쟁하듯 자해하며 서로를 부추겼고, 환자로서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소리치거나, 침묵하거나, 광분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었다.

환자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병원에서 배웠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사춘기 때 어긋나는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런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부모의 나쁜 관심이라도 받고 싶은 것이다. 이곳 환자들 역시 의사의 나쁜 관심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p.52 그 일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맥락이었다. 그 무엇도 고립된 채 존재하는 건 없으며, 우리는 맥락 속에, 그 순간이라는 맥락과 서로의 존재라는 맥락 속에 존재했다.

뉴욕주립 정신의학 연구소뉴욕주가 관리하는 곳으로, 그 병원의 의학 대학원 학생들을 교육했다. 즉 그 병원은 커리큘럼이었고 훈련장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석 달에 한 번씩 의사들이 교체됐다. 한 의사가 떠나면 또 새로운 의사가 도착했다.

환자들은 한 의사에게 애착을 느꼈다가 3개월에 한 번씩 작별했다. 이것을 치유될 때까지 반복한다. 이것은 이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진 인생을 훈련하는 일이었다. 애착을 형성했다가 놓아보내기를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면, 남은 평생도 그렇게 할 준비가 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훈련이기도 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허전한 마음이 느껴졌다.

죽으려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엄마. 살아 있는 일조차 잘 못하는 엄마가 부끄러웠던 수잰은 엄마가 돌아가셔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9살짜리 아이는 이미 슬픔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는 법을 터득한 뒤였기 때문이다. 사별의 슬픔을 매 순간 느낄 수는 없다. 사람이 항상 슬플 수는 없으니까. 그 무엇도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지라도 삶은 계속된다.

이 애착과 놓아 보내기는 돌아가신 엄마를 놓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훈련이었다고 한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저자의 기억들이었다. 앞으로 사랑하고 잃게 될 모든 사람들에 대한 훈련을 이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병원에 있던 환자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는데, 백인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은, 백인 우월주의의 결과였다. 백인 여자들의 고통이 다른 이들의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는 암묵적 메시지는, 병원 직원들이 대부분 흑인이며 아무도 그들의 고통은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저임금 노동자인 것과 대조적이었다.

저자는 그 병원 시스템 안에서 보낸 시간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누군가를 사귀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관계가 가짜인 것을 알았거나, 구멍투성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과 좀 비슷했다고 한다.

p.354 더는 할 일이 없었다. 일단 그걸 꿰뚫어 보고 나면 떠나야 한다.

수잰의 전환점은 자살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그 결정은 예리하고 명료했으며 그걸로 끝이었다. 자살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결정. 그것은 치료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노트에 미친 듯이 글을 썼다. 이 책에서 하이퍼그라피아라는 단어를 배웠다.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상태를 말한다. 이 노트를 통해 저자는 젊은 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말한다. 때로는 그 젊은 여자를 돕고 싶었다고. 너무나도 그 여자의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고, 때로는 미쳤다고, 참아주기 힘들다고,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다고.

지금이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거라며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과거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수잰은 스스로를 치료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82 미친 여자의 자유는 꿈이기도 하고 덫이기도 하다. -수전 손택

수잰에게는 어쩌면 사회와 단절된 정신병원에서의 삶이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신적 자유를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에서는 낙인이 찍힌다. 사회에서 영구히 제외되어버리는 덫에 갇힌다. 직장, 결혼, 대인관계 등 과연 나라면 정신병원에서 나왔다는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과 제정신인 사람들을 구분하려는 욕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멀쩡한 사람이니까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이 사람일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우린 모두 아프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영원히 살아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내가 너보다 조금 더 건강하면 뭐하고,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제정신이면 뭐 하겠는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끼리 상처와 아픔을 덮어주는 것이 더 기쁘지 않은가?

1990년대부터 정신과 약물이 정신 질환 치료의 새로운 방법이 되었고, 제약 회사의 마케팅이 병원에 침투했다. 이로 인해 정신 질환 환자는 소비자가 되고, 환자들이 의사에게 특정 약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다.

항우울제는 복용했을 때 슬픔을 바로 멈춰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이 느껴지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마치 고혈압 약이나 고지혈증 약으로, 증상만 완화시키는 미봉책 같은 것이 정신과 약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낫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 격렬한 광기의 순간을 피해야 삶의 의미든 뭐든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약물이 그때뿐일지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별이나 이별의 슬픔 또한 이런 광기와 마찬가지로 해결되거나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걸 안고서 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익숙해지거나 익숙해지지 않거나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것 또한 나라는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수잰에게 엄마의 죽음은 엄마를 보며 형성되던 자아를 상실한 일이었고, 엄마와 연결되었던 끈이 끊어진 일이었다. 그녀를 알아주고 사랑해 주던, 엄마를 통해 인식했던, 자기 자신을 잃은 일이었다.

독서와 글쓰기로 자기 자신을 되찾은 그녀는 이제 엄마가 돌아가신 그때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엄마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지 않는다.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본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엄마는, 이제 사진 속에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랑하는 것은 초월이 아니라 삶에 전념(Committed)하는 일이고, 버티며 살아내는 일임을. 그 전념의 방법으로써의 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나만의 시선으로 내 스스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는 한 사람이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수잰의 주위에 엄마 잃은 슬픈 마음을 이해해 주고,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는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그녀는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너무 어렸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절망 속에서도,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방문을 열고 나오게 만드는, 그런 따뜻한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돌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정신병원의 실체를 밝히고, 그곳을 뛰쳐나와 작가가 되었다. 고통을 읽기와 글쓰기로 승화한 진정한 인생의 의미들을 찾은 수잰에게 박수를.

p.503 당신이 왜 그리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그 의사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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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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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헤즐릿의 10살 위인 형 존 해즐릿이 자주 하던 말이 "청춘은 죽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청춘에는 고난을 이겨낼 힘이 있고, 기회 또한 무궁무진할 것 같다. 방황과 고통은 있지만, 지쳐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청춘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p.178 삶의 시작은 마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나는 순간과 같다. 세상이 나를 위해 열려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너머의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청춘은 자연처럼 자신도 영원하리라 착각한다.

8편의 에세이 중 7번째 실린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젊을 때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으며, 마치 나는 불멸의 존재인 것 같이 살아가는 젊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청춘도 아닌데 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에서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 읽게 되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산다.

p.179 그들은 모른다. 언젠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노쇠해지며, 결국 무덤에 던져질 날이 온다는 것을. 청춘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드라마 속이나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부정한다. 장례식장에 다녀왔어도 나는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음을 상상해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천년만년 살 것 같으니까 늘 나중에, 다음에로 미룬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거나,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당황하는 것은, 죽음이 현실이 되니 충격이라서 그럴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장 좋은 땅은 지금 밟고 있는 땅이고,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하지 않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기 때문에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하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실천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나부터 사랑하고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 주며, 내가 먼저 더 많이 사랑하자.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대한 특효약은 메멘토 모리라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메멘토 모리를 생각해야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

나는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늘 해설이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는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계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더니 윌리엄 해즐릿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트와이스와 BTS 가사를 예로 들고, 『호밀밭의 파수꾼』과 『데미안』의 비유를 해주셔서 더 잘 이해가 되었다.

해즐릿은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 글을 쓴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인간 본성을 비판하며, 독자에게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후대의 에세이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영어 수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지적 명성과는 달리 개인사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해즐릿은 1778년 영국 메이드스톤에서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초상화 화가로 활동하다가 문필 활동으로 전향해서 철학서와 문학 평론을 썼다. 1812년 런던으로 가서 형과 함께 살면서 언론인 및 평론가로 명성을 얻었다. 말년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런던 소호 지역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인 그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급진적 공화주의자로서 반체제 운동을 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한다. 또한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지지했다. 그의 에세이는 저항의 무기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조지 오웰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에세이 중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를 빼고, 나머지 7편의 간략한 내용을 살펴보자.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는 유행하는 의견에 따라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진부한 비평가는 말할 시간은 많지만 생각할 의무는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뻔하고 무의미한 말만 반복한다는 말에 찔렸다. 그게 실력인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입력된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뻔한 말을 하거나 저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게다가 귀가 얇아서 남이 말하면 다 진실인 줄 안다. 생각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 해즐릿을 만나면 지식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귀엽게 봐달라고 하고 싶다.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은 온화한 성품이 위선일 수 있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친다. 온화한 왕이 폭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해즐릿이 말하는 온화한 사람이란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성인군자의 온화함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을 버린 대상에 대한 증오는 한때 그 대상에 품었던 애정의 크기만큼 깊고 격렬하다. 그들의 신념이 배신당했을 때 그 분노는 광란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바람난 배우자를 사랑했던 깊이만큼 증오하나 보다.

<종교의 가면>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기독교를 믿으면 제사를 안 지내고, 성당과 절에 다니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떠올랐다. 종교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낸다면 어떤 종교가 옳은 것일까? 난 제사 지내기 싫어서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는 교회고 제사는 지내야 했었다는.

<인격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해즐릿은 상대방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얼굴을 보라고 한다. 말은 바꿀 수 있지만 표정은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의 표정과 얼굴은 그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가난이 배고픔뿐만 아니라, 굴욕감도 준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위선까지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 한 집 걸러 외제차인 이유도 물론 돈이 많아서 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셋 방 살아도 돈 있어 보여야 무시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는 기척만으로도 마치 쓰러지는 말을 피하듯 도망간다는 표현은 지금도 그대로다. 곤경에 처한 말을 돕다 깔려 죽느니 피하고 봐야 한다. 사람도 도움을 청할 기척만 보여도 귀찮고,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본다. 세일즈 관련 일을 하면, 혹시 나보고 보험이든 구독이든 해 달라고 할까 봐 친구들이 다 도망가지 않는가? 물론 나는 거절을 못 해서 보험을 들어주고 해약하고를 반복했지만 말이다.

<인도인 곡예사>는 기계적인 숙련된 기술이 주는 감동을 성찰한다. 그는 몸으로 표현되는 예술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종 차별, 직업 차별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나도 신혼 때 부부 싸움을 하다가 내가 파출부냐고 스스로를 비하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나 스스로 파출부라는 직업을 무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 통해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곡예사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시대에만 위대한 사람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위대함의 진정한 시험대는 역사의 기록이라도 말했던 그는, 이렇게 200년이 지나서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에세이를 써서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마지막 <병상의 풍경>은 병원에 누워 세상과 격리되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조용한 통찰을 담았다. 병상에서의 회복은 독서를 통해 완성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병에 집중하기보다 독서를 통한 삶에 집중하는 게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서는 치유의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끝으로 해즐릿은 병에게 삶을 내어주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 해즐릿을 훌륭한 벗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알고 그것을 힘차게, 게다가 눈부시게 말한다고 표현했다.

신랄한 비판으로 유명한 에세이의 대가 작품을 읽고 나니, 강함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아름답게 묘사한 점이 돋보였다. 그래서 나도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해즐릿의 표현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에세이는,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시적이면서도 날카롭고, 지적이면서도 따듯하다고 정의하고 싶다. 지성의 향기 속에 흠뻑 젖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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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한서형 향기시집
윤동주 외 지음 / 존경과행복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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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향기 시집은 말 그대로 책에서 향기가 나는 시집이다. 향기가 나는 책갈피와 부채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향기가 나는 책은 생각도 못 해봤다. 나도 태국의 카르마카멧 아로마틱 북마크를 가지고 있다. 오래돼서 향은 거의 다 날아갔지만 북마크를 선물한 아들의 예쁜 마음의 향기는 아직도 그대로다. 향기가 있으면 평범한 물건도 더 특별해지는 것 같다.


책갈피도 이렇게 특별한데 책이라니! 그래서 가장 먼저 이 책의 대표 향기인 유향에 대해 알아봤다. 저자는 상처에서 피어난 맑은 향기가 윤동주의 시와 닮았다고 느껴 이 향을 택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은 유향, 황금, 몰약이었는데, 왕에게 바친 예물에 유향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귀한 향료였던 것 같다. 


유향(乳香) 나무는 사막에서 자란다. 이 나무의 상처 난 자리에 맺히는 금빛 나뭇진은 고귀해서 신이 흘린 땀방울이라 불린다. 유향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치유의 향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랑받아 왔다. 제사 때도 사용하는 향료로 황금보다 귀하게 여겨졌으며, 가장 영적이고 시적인 향이다. 


신성한 빛을 머금은 유향을 중심으로, 시트러스, 사이프러스, 재스민 등 다양한 향을 쓰다가, 마지막은 우리 땅의 편백으로 마무리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향이 나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너무 신기하다. 


책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책에서 향기가 난다. "와아~ 냄새 좋다!" 숲속에서 시를 읽다가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오는 이름 모를 향기에 행복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눈으로 읽고, 코로 냄새 맡고, 소리 내어 낭독하고, 손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럼 오감 중 미각은 어떻게 느끼나? 책을 뜯어 먹을 수는 없으니 커피 한 잔과 함께하면 어떨까?


향기 다음은 이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인 을 따라 수천 리 길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다. 왕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을 헤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고난의 시대 속에서 희망을 꿈꾸었다. 그래서 이 된 시인 윤동주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이다. 숭실학당,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 문과를 졸업했고, 일본의 릿쿄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영문과로 전학했다. 이 도시샤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나는 윤동주의 시만 알았지 윤동주가 27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사망한 사실은 몰랐다. 윤동주의 생일은 1917년 12월 30일이고 사망일은 1945년 2월 16일이라 만 나이로는 27살이다. 단순히 사망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법적 나이는 28세다. 태어난 해를 한 살로 치는 한국식 나이는 29세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2023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하므로 27세가 맞다. 


윤동주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윤동주는 문익환 목사와 동갑내기 친구다. 둘 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곳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龍井市)라고 한다. 누나들은 어릴 때 요절했고, 3명의 남동생과 1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윤동주에게 형제와 다름없이 가까웠던 특별한 인물이 있는데, 사촌 형인 송몽규(宋夢奎)다. 두 사람은 함께 북간도에서 자랐고, 일본 유학은 물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도 함께 순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가 반대하던 창씨개명까지 해 가면서 더 공부하고 싶어 유학까지 갔는데, 죽음이라니... 그냥 공부하지 말고 한국에 있었으면 적어도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대의 건강한 청년이 갑자기 옥 중 사망한다. 윤동주 부모님이 시신을 거두러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다가 송몽규를 면회했는데, 그때 그가 증언하길 조선인 죄수들을 대상으로 매일 이상한 주사를 맞게 하고, 암산 테스트를 시켰다는 것이다. 송몽규도 윤동주 사후 약 3주 만에 사망했다. 아무런 증거도 남아있지 않기에 윤동주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사람들은 윤동주의 죽음이 생체 실험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윤동주 하면 <서시>와 <별 헤는 밤>이 생각난다. 두 시 모두 별이 중심 소재라 별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외우는 단  2개의 시도 윤동주의 <서시>와 <할아버지>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꼭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구일 것 같지만 <서시>의 마지막 행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은 중학생 때 선물을 받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는 <할아버지>라는 시였다. 이 책 84페이지에 실려있다. "왜 떡이 쓴 데도 자꾸 달다고 하오"가 끝이다. 시가 한 줄인데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 시는 "왜 떡이 씁은데도 자고 달다고 하오"인데 요즘 말로 바꾼 것 같다. 

이 시집은 워낙 유명하고, 내가 기억하는 시들이 많아서 도대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 책이 향기 시집인 것과 이제까지 시만 읽었지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향기와 윤동주가 살아왔던 삶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가 살아왔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다시 읽으니, 윤동주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어릴 때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달을 쏘다>라는 윤동주의 수필이 있다. 주인공은 바다를 건너온 H 군의에게 절교 편지를 받고 연못에 비친 달을 향해 돌을 던진다. 화내서 씩씩거리는 귀엽고 순수한 소년의 마음이 느껴진다.


p.116 못 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달이 있고...)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더니 딱 그런 모습이다. 그런데 달은 산산이 부서지는가 하더니 연못의 파문이 가라앉자 도로 살아났다. 하늘을 보니 얄미운 달이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 같아 활을 만들어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향해 화살을 쏜다.


나는 진짜 나뭇가지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비슷하게 만들어 쏘는 시늉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본인만이 아는 사실이다. 검색해 보니 활을 쏘는 행위는 저항하는 청년의 끓어오르는 의지의 상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떠나서라도, 저항과 울분을 이렇게 글로 풀어낸 것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둘 다>라는 시에서도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윤동주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달을 쏘거나, 사용이 금지된 한글로 시를 써서 남겼다.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해도 지나간 일과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윤동주는 최선을 다해 일제에 저항하며 시를 썼기에 지금까지 글로 남아, 우리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잔잔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향기까지 더하니 금상첨화다! 


시향에 취하다는 말이 있다. 이 시집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시의 운치와 진짜 향기 모두에 취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어디선가 은은하게 향기가 난다. 처음 느껴보는 향기들과 시를 함께 감상해 보자. 


아기 예수님께 선물한 유향을 위주로 구성한 한서형의 윤동주 향기시집과 함께, 시향이 가득한 특별한 2025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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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한서형 향기시집
윤동주 외 지음 / 존경과행복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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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부채나 책갈피도 아닌 책이라니! 시향에 듬뿍 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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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숨쉼 여행 - 무조건 지금 떠나는 개인 취향 여행 Rainbow Series
김기쁨.김정흠.박은하 지음 / 여가로운삶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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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the GREEN 숨쉼 여행>은 전국의 유명한 맛집이나 명소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책 표지의 색깔 그대로 theGREEN,싱그러운 초록으로의 초대이다.김기쁨, 김정흠, 박은하여행 작가님이 각각 11곳의 여행지와 대표적인 나무 하나를 소개한다.


the GREEN은 심호흡을 하며 숨쉬기 좋은 여행지 33곳을,deep GREEN은 각 여행지의 대표 나무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from GREEN은 함께 가면 좋은 숨쉼 여행지 안내다. QR코드는 숨쉼 여행지 홈페이지 링크인데 없는 경우는 네이버 지도로 연결된다.


나는 대표적인 나무를 더 딥하게 소개해 주는deep GREEN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숨 쉼 여행지인the GREEN과 함께deep GREEN나무도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궁원 하면보리수나무가 생각나고 세종 수목원 하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바오밥나무가 생각이 난다. 마치 파리하면 에펠탑,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이 기억나듯 여행지를 생각하면 나무가 먼저 떠올라서 더 의미 있는 숨쉼 여행이 될 것이다.


이 책은무지개 여행 시리즈의 4번째 책이다.빨강은 예쁜 장소,오렌지는 머무는 사유의 공간,노랑은 신나는 일상탈출 여행지를 소개한다. 색깔이 상징하는 의미와 연관 지어 여행지를 소개해 주는 게 독특하다. 색깔 별로 구비해 놓으면,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유난히 끌리는 색깔을 택해서 여행 장소를 정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the GREEN초록은 숨쉼 여행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마음도 눈도 편안해진다. 전주 한국도로공사 전주 수목원의계수나무잎도 하트 모양이라 잊히지 않는다. 반달이라는 동요로 달나라에 산다는 전설 속의 계수나무. 이름은 들어봤는데 잎사귀 모양이 하트인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계수나무는 토끼가 불사약을 만드는 달나라에 있다. 달을 보면 정말 토끼가 방아 찧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계수나무 잎이 하트 모양이라니! 외로운 달 토끼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보름달을 볼 때면 불사약을 만들고 있는 토끼와 하트 모양 계수나무의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기 바란다.


김기쁨작가님의 숨쉼 여행지 11곳 중 내가 가보고 싶은 곳 1위는 경주 동궁원의보리수(菩提樹)나무다. 마주 보는 곳에 수령 250년이 넘은 붉은 원종 고무나무도 있다. 부처님이 이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왠지 더 평안하게 느껴진다.

작가님은 보리수에 대해서는 더 딥 하게 설명해 준다. 대표 나무 GREEN을 더 deep 하게 알아보는 시간이라deep GREEN이라고 한 게 아닐까? 보리수는 깨달음을 상징하며 이 나무 앞에는 평평한 바위가 놓여 있다고 한다. 부처님이 앉은 자리를 상징하는 포토존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는 인도보리수 나무라고 하지만, 그냥 보리수라는 이름 자체가 깨달음을 상징해서인지 이 나무를 보면 맑고 평화로운 기운을 받아 올 듯하다.


보리수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기뿌리인 기근(氣根). 뿌리가 줄기나 가지에서 나와 땅 밑으로 다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서 그곳에서 또 새로운 줄기가 자라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 그루의 나무가 여러 그루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나의 나무가 점차 숲을 이루는 모양새다. 수행과 깨달음이 반복되면, 점점 더 크고 단단해진다는 깨달음을 주는듯하다.


그 옆에는 the GREEN 여행지로부터(from) 찾아갈 수 있는from GREEN이 나온다. 근처 여행지인 경주 엑스포 대공원, 보문정, 신라왕경숲의 3곳을 추천한다.


3명의 여행 작가님들은 이 기본 틀에 맞추어, 각자 고유한 시선으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숨쉼 여행지를 소개한다. 직접 방문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장소가 생각나면서 나무도 함께 생각이 난다. 주변 관광지도 덤으로 알게 된다. 어떤 곳은 여행지보다 주변 관광지가 더 끌리기도 한다.


김정흠작가님의 숨쉼 여행지 중 내가 가보고 싶은 곳 1위는 경남 산청의 전통 마을 남사 예담촌의 300살이 넘은회화나무다. 어떻게 나무줄기가 서로 교차하듯 자랄 수 있는지 정말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별명이 부부 회화나무다. 연인이 손을 잡고 이 골목길을 지나면, 백년해로한다. 남사 예담촌은 경주 양동 마을, 안동 하회 마을처럼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마을이라고 한다. 돌담길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다.


박은하작가님의 숨쉼 여행지 중 내가 가보고 싶은 곳 1위는 서울 안산 자락길의메타세콰이아다. 전라도 광주(光州)도 있고, 경기도 광주(廣州)도 있듯, 경기도 안산(安山)도 있지만 서울에도 안산(鞍山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나는 이 책을 통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산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산은 무악(毋岳)이라고도 하는데, 산의 모양이 말안장(鞍)과 닮았다고 하여 '안산(鞍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서울 안산 초등학교는 들어 본 것 같은데, 이 산의 이름을 딴 것이었나 보다.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메타세콰이아숲을 볼 수 있다. 와~ 이거 영화 같은 데서 나 보는 숲이다. 정말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어?" 하며 놀랄만하다. 마포구 하늘공원이나 강동구 길동 생태공원처럼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더 조용하고, 깊은 숲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이 책에서 소개해 준 숨쉼 여행지 33곳 중,단 한곳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타워는 가봤지만 남산 소나무 숲 탐방로는 금시초문이다. 이 책을 계기로 한 군데라도 가서 숨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너무 바쁜 분들에게 숨쉼 여행을 선물해 주자.


계절을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리며,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는 나무의 모습에서 인생을 배운다는박은하작가님. 나무를 바라보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는 세찬 비바람과 폭설, 혹은 매서운 가뭄에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인내한다. 깊게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동요 없이 우리에게 산소를 내어준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이 만든 웅장한 건축물 같다.


결국 삶이란, 나이를 먹고 뿌리가 깊어지는 만큼 어떤 고통과 비바람에도 많이 아파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숨 쉬는 일, 그러다 진정 자연으로 돌아가 쉬는 일, 그래서 숨쉼 여행에서 마주하는 나무들과 숲은 마치 우리의 인생을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211 이제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 보자. 발걸음이 닿는 가장 가까운 나무 한 그루를 찾기 위해서. 그곳에서 당신만의 온온한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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