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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윌리엄 헤즐릿의 10살 위인 형 존 해즐릿이 자주 하던 말이 "청춘은 죽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청춘에는 고난을 이겨낼 힘이 있고, 기회 또한 무궁무진할 것 같다. 방황과 고통은 있지만, 지쳐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청춘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p.178 삶의 시작은 마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나는 순간과 같다. 세상이 나를 위해 열려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너머의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청춘은 자연처럼 자신도 영원하리라 착각한다.
8편의 에세이 중 7번째 실린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젊을 때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으며, 마치 나는 불멸의 존재인 것 같이 살아가는 젊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청춘도 아닌데 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에서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 읽게 되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산다.
p.179 그들은 모른다. 언젠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노쇠해지며, 결국 무덤에 던져질 날이 온다는 것을. 청춘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드라마 속이나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부정한다. 장례식장에 다녀왔어도 나는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음을 상상해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천년만년 살 것 같으니까 늘 나중에, 다음에로 미룬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거나,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당황하는 것은, 죽음이 현실이 되니 충격이라서 그럴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장 좋은 땅은 지금 밟고 있는 땅이고,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하지 않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기 때문에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하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실천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나부터 사랑하고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 주며, 내가 먼저 더 많이 사랑하자.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대한 특효약은 메멘토 모리라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메멘토 모리를 생각해야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
나는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늘 해설이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는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계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더니 윌리엄 해즐릿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트와이스와 BTS 가사를 예로 들고, 『호밀밭의 파수꾼』과 『데미안』의 비유를 해주셔서 더 잘 이해가 되었다.
해즐릿은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 글을 쓴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인간 본성을 비판하며, 독자에게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후대의 에세이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영어 수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지적 명성과는 달리 개인사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해즐릿은 1778년 영국 메이드스톤에서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초상화 화가로 활동하다가 문필 활동으로 전향해서 철학서와 문학 평론을 썼다. 1812년 런던으로 가서 형과 함께 살면서 언론인 및 평론가로 명성을 얻었다. 말년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런던 소호 지역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인 그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급진적 공화주의자로서 반체제 운동을 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한다. 또한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지지했다. 그의 에세이는 저항의 무기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조지 오웰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에세이 중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를 빼고, 나머지 7편의 간략한 내용을 살펴보자.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는 유행하는 의견에 따라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진부한 비평가는 말할 시간은 많지만 생각할 의무는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뻔하고 무의미한 말만 반복한다는 말에 찔렸다. 그게 실력인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입력된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뻔한 말을 하거나 저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게다가 귀가 얇아서 남이 말하면 다 진실인 줄 안다. 생각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 해즐릿을 만나면 지식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귀엽게 봐달라고 하고 싶다.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은 온화한 성품이 위선일 수 있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친다. 온화한 왕이 폭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해즐릿이 말하는 온화한 사람이란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성인군자의 온화함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을 버린 대상에 대한 증오는 한때 그 대상에 품었던 애정의 크기만큼 깊고 격렬하다. 그들의 신념이 배신당했을 때 그 분노는 광란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바람난 배우자를 사랑했던 깊이만큼 증오하나 보다.
<종교의 가면>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기독교를 믿으면 제사를 안 지내고, 성당과 절에 다니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떠올랐다. 종교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낸다면 어떤 종교가 옳은 것일까? 난 제사 지내기 싫어서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는 교회고 제사는 지내야 했었다는.
<인격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해즐릿은 상대방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얼굴을 보라고 한다. 말은 바꿀 수 있지만 표정은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의 표정과 얼굴은 그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가난이 배고픔뿐만 아니라, 굴욕감도 준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위선까지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 한 집 걸러 외제차인 이유도 물론 돈이 많아서 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셋 방 살아도 돈 있어 보여야 무시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는 기척만으로도 마치 쓰러지는 말을 피하듯 도망간다는 표현은 지금도 그대로다. 곤경에 처한 말을 돕다 깔려 죽느니 피하고 봐야 한다. 사람도 도움을 청할 기척만 보여도 귀찮고,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본다. 세일즈 관련 일을 하면, 혹시 나보고 보험이든 구독이든 해 달라고 할까 봐 친구들이 다 도망가지 않는가? 물론 나는 거절을 못 해서 보험을 들어주고 해약하고를 반복했지만 말이다.
<인도인 곡예사>는 기계적인 숙련된 기술이 주는 감동을 성찰한다. 그는 몸으로 표현되는 예술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종 차별, 직업 차별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나도 신혼 때 부부 싸움을 하다가 내가 파출부냐고 스스로를 비하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나 스스로 파출부라는 직업을 무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 통해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곡예사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시대에만 위대한 사람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위대함의 진정한 시험대는 역사의 기록이라도 말했던 그는, 이렇게 200년이 지나서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에세이를 써서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마지막 <병상의 풍경>은 병원에 누워 세상과 격리되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조용한 통찰을 담았다. 병상에서의 회복은 독서를 통해 완성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병에 집중하기보다 독서를 통한 삶에 집중하는 게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서는 치유의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끝으로 해즐릿은 병에게 삶을 내어주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해즐릿을 훌륭한 벗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알고 그것을 힘차게, 게다가 눈부시게 말한다고 표현했다.
신랄한 비판으로 유명한 에세이의 대가 작품을 읽고 나니, 강함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아름답게 묘사한 점이 돋보였다. 그래서 나도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해즐릿의 표현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에세이는,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시적이면서도 날카롭고, 지적이면서도 따듯하다고 정의하고 싶다. 지성의 향기 속에 흠뻑 젖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