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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한서형 향기시집
윤동주 외 지음 / 존경과행복 / 2025년 9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향기 시집은 말 그대로 책에서 향기가 나는 시집이다. 향기가 나는 책갈피와 부채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향기가 나는 책은 생각도 못 해봤다. 나도 태국의 카르마카멧 아로마틱 북마크를 가지고 있다. 오래돼서 향은 거의 다 날아갔지만 북마크를 선물한 아들의 예쁜 마음의 향기는 아직도 그대로다. 향기가 있으면 평범한 물건도 더 특별해지는 것 같다.
책갈피도 이렇게 특별한데 책이라니! 그래서 가장 먼저 이 책의 대표 향기인 유향에 대해 알아봤다. 저자는 상처에서 피어난 맑은 향기가 윤동주의 시와 닮았다고 느껴 이 향을 택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은 유향, 황금, 몰약이었는데, 왕에게 바친 예물에 유향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귀한 향료였던 것 같다.
유향(乳香) 나무는 사막에서 자란다. 이 나무의 상처 난 자리에 맺히는 금빛 나뭇진은 고귀해서 신이 흘린 땀방울이라 불린다. 유향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치유의 향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랑받아 왔다. 제사 때도 사용하는 향료로 황금보다 귀하게 여겨졌으며, 가장 영적이고 시적인 향이다.
신성한 빛을 머금은 유향을 중심으로, 시트러스, 사이프러스, 재스민 등 다양한 향을 쓰다가, 마지막은 우리 땅의 편백으로 마무리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향이 나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너무 신기하다.
책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책에서 향기가 난다. "와아~ 냄새 좋다!" 숲속에서 시를 읽다가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오는 이름 모를 향기에 행복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눈으로 읽고, 코로 냄새 맡고, 소리 내어 낭독하고, 손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럼 오감 중 미각은 어떻게 느끼나? 책을 뜯어 먹을 수는 없으니 커피 한 잔과 함께하면 어떨까?
향기 다음은 별이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인 별을 따라 수천 리 길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다. 왕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별을 헤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고난의 시대 속에서 희망을 꿈꾸었다. 그래서 별이 된 시인 윤동주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이다. 숭실학당,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 문과를 졸업했고, 일본의 릿쿄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영문과로 전학했다. 이 도시샤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나는 윤동주의 시만 알았지 윤동주가 27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사망한 사실은 몰랐다. 윤동주의 생일은 1917년 12월 30일이고 사망일은 1945년 2월 16일이라 만 나이로는 27살이다. 단순히 사망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법적 나이는 28세다. 태어난 해를 한 살로 치는 한국식 나이는 29세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2023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하므로 27세가 맞다.
윤동주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윤동주는 문익환 목사와 동갑내기 친구다. 둘 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곳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龍井市)라고 한다. 누나들은 어릴 때 요절했고, 3명의 남동생과 1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윤동주에게 형제와 다름없이 가까웠던 특별한 인물이 있는데, 사촌 형인 송몽규(宋夢奎)다. 두 사람은 함께 북간도에서 자랐고, 일본 유학은 물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도 함께 순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가 반대하던 창씨개명까지 해 가면서 더 공부하고 싶어 유학까지 갔는데, 죽음이라니... 그냥 공부하지 말고 한국에 있었으면 적어도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대의 건강한 청년이 갑자기 옥 중 사망한다. 윤동주 부모님이 시신을 거두러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다가 송몽규를 면회했는데, 그때 그가 증언하길 조선인 죄수들을 대상으로 매일 이상한 주사를 맞게 하고, 암산 테스트를 시켰다는 것이다. 송몽규도 윤동주 사후 약 3주 만에 사망했다. 아무런 증거도 남아있지 않기에 윤동주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사람들은 윤동주의 죽음이 생체 실험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윤동주 하면 <서시>와 <별 헤는 밤>이 생각난다. 두 시 모두 별이 중심 소재라 별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외우는 단 2개의 시도 윤동주의 <서시>와 <할아버지>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꼭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구일 것 같지만 <서시>의 마지막 행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은 중학생 때 선물을 받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는 <할아버지>라는 시였다. 이 책 84페이지에 실려있다. "왜 떡이 쓴 데도 자꾸 달다고 하오"가 끝이다. 시가 한 줄인데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 시는 "왜 떡이 씁은데도 자고 달다고 하오"인데 요즘 말로 바꾼 것 같다.
이 시집은 워낙 유명하고, 내가 기억하는 시들이 많아서 도대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 책이 향기 시집인 것과 이제까지 시만 읽었지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향기와 윤동주가 살아왔던 삶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가 살아왔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다시 읽으니, 윤동주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어릴 때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달을 쏘다>라는 윤동주의 수필이 있다. 주인공은 바다를 건너온 H 군의에게 절교 편지를 받고 연못에 비친 달을 향해 돌을 던진다. 화내서 씩씩거리는 귀엽고 순수한 소년의 마음이 느껴진다.
p.116 못 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달이 있고...)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더니 딱 그런 모습이다. 그런데 달은 산산이 부서지는가 하더니 연못의 파문이 가라앉자 도로 살아났다. 하늘을 보니 얄미운 달이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 같아 활을 만들어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향해 화살을 쏜다.
나는 진짜 나뭇가지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비슷하게 만들어 쏘는 시늉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본인만이 아는 사실이다. 검색해 보니 활을 쏘는 행위는 저항하는 청년의 끓어오르는 의지의 상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떠나서라도, 저항과 울분을 이렇게 글로 풀어낸 것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둘 다>라는 시에서도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윤동주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달을 쏘거나, 사용이 금지된 한글로 시를 써서 남겼다.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해도 지나간 일과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윤동주는 최선을 다해 일제에 저항하며 시를 썼기에 지금까지 글로 남아, 우리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잔잔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향기까지 더하니 금상첨화다!
시향에 취하다는 말이 있다. 이 시집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시의 운치와 진짜 향기 모두에 취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어디선가 은은하게 향기가 난다. 처음 느껴보는 향기들과 시를 함께 감상해 보자.
아기 예수님께 선물한 유향을 위주로 구성한 한서형의 윤동주 향기시집과 함께, 시향이 가득한 특별한 2025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