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회사를 10배로 키워주는 회계사가 있습니다! - AI시대, 99% 기업이 모르는 폭발 성장 설계도 하이 아웃풋 10
서정민.서정무 지음 / 라온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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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변호사 하면 어떤 직업인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봐서 그런지 금방 이해가 되고, 공인중개사도 부동산 생각하면 금방 알겠는데, 회계사는 당황스러웠다. 회계가 계산하는 거 아닌가? 정도 밖에 떠오르는 게 없어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그 계산하는 직업이 어떤 일인지부터 알아봤다.

회계사 회사가 작성한 장부가 정확한지 확인하는 감사 업무, 세금을 정확하게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무 업무, 회사가 돈을 어떻게 써야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 좋은 아이디어를 주고 도와주는 경영 자문 업무를 한다. 한마디로 회사의 돈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돈 전문가다.

회계사가 세금과 장부 외에도 회사의 성장을 돕는 경영 코치 역할도 한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세무사는 세금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세금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세금 관련 일만 하는데 비해, 회계사는 이 세무 관련 일과 감사와 경영 자문까지 하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회계사는 물론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조차 무료 AI가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프리 인텔리전스(Free Intelligence, 무료 지능)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세금만 계산해 주는 세무전문가는 설자리가 점점 더 좁아질 것이다.

이 책은 규모와 상관없이 어떻게 하면 내 사업을 더 성장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장님을 위한 책이지만, 나는 표지에 있는 AI 시대, 99% 기업이 모르는 폭발 성장 설계도AI가 대체 못 하는 진짜 사업 파트너를 붙여라라는 말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담았지만, 일반인도 술술 읽히는 게 신기했다.

전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도 전기를 활용하여 다양한 기술이나 장치를 발명한 사람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듯 지금도 마찬가지다. AI를 잘 활용하면 회사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 AI가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을 통해 회사를 10배 100배로 키울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임은 분명하다.

모 법무법인에서는 검색 AI를 도입하여 소송과 자문의 기초 자료를 검색하고 서류 작성을 하고, 어떤 회계법인에서는 AI 어카운턴트를 도입하여 회계감사 기준서와 해석서 등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내고 있다고 한다.

AI의 확장으로 사무직 인력은 계속 줄고, 피지컬 AI가 산업현장을 재편하고 있다. 나도 서평을 쓰다가 궁금한 것은 바로 제미나이나 챗 GPT 같은 AI에게 물어본다. 회계사와 세무사가 어떻게 틀린 지도 비교해서 바로 알려주니, 내가 모르는 분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피지컬AI(Physical AI)란 몸을 가지고 현실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다. 내가 쓰는 제미나이는 화면 속에서 텍스트나 이미지를 만들지만, 피지컬 AI는 이 지능에 몸이 더해진 것이다. 음식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서빙 로봇이나 자율주행차를 생각하면 된다.

피지컬 AI는 물류 창고에서 물건을 운반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네모난 박스 모양이나,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손을 보조하거나 환자의 재활 훈련을 돕는 로봇 등 모양이 다양하다. 사람의 모습 왜 한 피지컬 AI휴머노이드라고 한다. Human인간 + oid(~와 닮은)= 인간을 닮은 형태라는 뜻이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휴머노이드에게 커피 1잔 부탁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p.19 비즈니스 전략 전문가는 회사의 리스크를 미리 예측하여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여러 기업을 거치며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기업을 진단하고 가장 적합한 전략을 제시한다. 앞으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회사의 구조 설계와 전략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러한 전문가와 함께 하느냐가 AI 시대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할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란 기업이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넷플릭스가 구독료를 기반으로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여 안전적인 매출을 창출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 설계는 돈을 버는 구조를 정하는 일인 만큼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는 댄스 학원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동네에서 춤을 가르치는 학원이라 매출 상승에는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고객을 지역이 아닌 'K-POP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으로 재정의 하고 틱톡에 요즘 관심사가 높은 콘텐츠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글로벌 고객군을 모집하여 이를 통한 미디어 콘텐츠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고 한다.

동네의 작은 가게나 학원 홍보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학원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인스타틱톡에 꾸준하게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올리고, 다른 학원과 차별화된 점을 강조하고 공부해서 달라지는 모습을 꾸준히 업로드한다면 학부모님들의 신임을 얻어 입소문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에 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망한 정육점이 있다. 청년 창업이라 일부러 가서 팔아줬는데, 고기가 싸고 맛이 없었다. 그다음에도 사 봤지만 여전히 맛이 없었다. 한동안 간편식도 싸게 팔았지만 맛이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생긴 뒤여서 안 사게 됐다. SNS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기본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님은 이런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기본부터 갖추라고 컨설팅해 주실 것 같다.

비즈니스 모델을 잘 설계해도 현금 흐름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면 매출이 성장해도 통장에 잔고는 늘 없게 된다. 자금 구조는 현금 흐름 설계 시 세금까지 고려해야 한다. 1억 3천만 원짜리 세금 폭탄 고지서를 들고 상담하러 와서 세금을 1억 이상 크게 낮춰 파산을 면한 사장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용기라고 하더니, 참 현명한 사장님이다.

2장 회사를 10배로 키워주는 회계사입니다에서는 저자가 아주 훌륭한 대표님인 걸 알게 되었다. 핵심은 소개였다.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 하는 사장님께는 프랜차이즈 전문가를 연결해 주고, 법률 문제로 고민하는 대표님께는 기업 관련 법률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님을 소개한다. 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회사에는 투자자를 소개한다. 서로 윈윈을 돕고, 나도 함께 윈윈윈 하는 일, 너무 멋지지 않은가?

소개도 좋지만 컨설팅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법인 전환 컨설팅, 창업 컨설팅, 상속세와 증여세 컨설팅, 직원 채용 컨설팅, 재무제표에 대한 컨설팅 등은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중 직원 채용 컨설팅은 직원은 그냥 뽑으면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정직원으로 채용할 것인지 프리랜서인지도 정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도 못 해봤다. 만약 정직원으로 채용하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금도 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을 고용하면 1년간 최대 720만 원을 현금으로 지원받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p.127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일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3장 구조 설계 전략 편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의 정의를 너무나 잘 표현한 말 같다. 대표가 빠져도 굴러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옛날에 동생이 혼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다가 망한 적이 있다. 화장실 갈 틈도 없었다고 한다. 사장이 밥 먹을 시간도, 외출할 시간도 없다면 그게 노예지 어떻게 사장인가?

하지만 직원을 뽑고, 열심히 직원에게 노하우를 알려주고 교육해 놓으면 나가버린다. 그러니 가족끼리 한다거나 나 혼자 하고 말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왜 나가 버리는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왜 또 나는 걸까? 권한과 책임을 제대로 위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런 방법론보다 AI와 사람이 같이 일을 하는 하이브리드 조직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하는 내용을 가져왔다.

하이브리드(Hybrid)혼혈이라는 뜻이다. 간단히 하이브리드 근무를 생각하면 된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이 결합된 근무 형태를 말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역시 휘발유와 전기 모터 2가지 동력을 결합한 것처럼. 하이브리드 조직은 반복적인 업무는 AI가, 운영과 전략적인 의사결정은 사람이 하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직원을 잘 교육해서 AI와 함께 운영을 맡기면 어떨까? 책임감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믿고 맡겼는데 욕심이 나서 회사 재산을 빼돌리고 먹튀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래서 컨설팅이 필요한가 보다.

4장에서는 돈이 남는 구조를 만드는 세무와 재무 전략을 배운다. 세액공제와 세액감면 중 어떤 게 더 유리할까? 5장에서는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마케팅과 브랜딩 전략을 배운다. 팬덤 기반의 커뮤니티 구축 전략이 흥미롭다.

마지막은 지속 성장의 루틴 만들기와 리스크 관리 전략이다. Just do it! 그냥 해! 이 말이 김연아 선수의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영상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실행하지 않으면 아이템이 시장에서 먹힐지 안 먹힐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이 실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것을 알려 주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구매 이력과 방문 빈도를 AI로 분석하고 충성고객에게는 프리미엄 혜택을, 이탈률이 높은 고객에게는 맞춤형 쿠폰 등을 제공하여 충성 고객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AI로 손쉽게 다국어로 자동 번역 및 현지화해서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다.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 모든 분들과 사업을 하고 계시는 사장님 들은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운더리를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관점에서 높고, 멀리, 길게 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유비무환이다. 세금 폭탄 맞고 후회하지 말고,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였는데 놓치지 말고, 사업을 더 크게 확장하려다가 빚더미에 앉지 말고, 이 책으로 제대로 배워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서 웃는 날만 가득한 나날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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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따위 넣어둬 -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
장정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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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희 작가님이 학생들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읽다가 유독 <차례차례 피는 꽃>이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서 꽃 이야기를 제일 먼저 가져왔다. "지금 이 교실엔 서로 다른 꽃씨가 서른 개나 있네?"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학생들은 모두 대학입시라는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아이들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존경 따위 넣어둬>라는 제목은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다. 글도 소설도 아닌데 얼마나 재밌게 술술 읽혔는지 모른다.

모든 꽃은 차례차례 피어난다. 누군가는 봄, 누군가는 여름. 하지만 문제는 오랫동안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 안에 꽃피울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체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늦더라도 언젠가는 꼭 피어나는 꽃이다. 꽃을 피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피게 된다!

p.148 진달래가 피었다고 해서 철쭉도 같이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꽃을 피웁니다. 조팝나무 꽃이 피었다고 싸리나무가 몸살을 앓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피워야 할 때 피우는 꽃들이 모여 이 나라 산천을 꽃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도종환의 산문시 <차례차례 피는 꽃> 중에서

이 책은 실수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바치는 고해성사이자,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께 건네는 위로다. 이 글이 혹한의 시간을 건너갈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작은 촛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저자는, 존경 따위 넣어 두고 서로의 고통을 알아주고, 공감하며 함께 버티자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의 부제는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다. 지금의 교사는 존경보다는 버틸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퇴직을 떠올리는 교사들에게는, 학부모의 따뜻한 한 마디, 학생들의 격려, 서로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동료들의 마음이 필요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문학 선생이 된 저자는 가사와 육아가 겹치며 전인 교육은 점점 더 멀어지고, 오로지 점수를 올리기 위해 서로를 매섭게 다그치는데 익숙해져 갔다. 과중한 업무는 스스로를 점점 소진시켰고 의욕은 희미해지고 우울은 깊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뇌출혈로 쓰러진다. 하지만 다행히 잘 회복해서 학교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남편에게 불행이 닥친다. 그래서 남편 대신 가장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 학교에서 아이들이 건네는 미소와 애정 어린 쪽지가 그녀를 구원했던 천상의 손길이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던 건 아이들과 교사라는 일이었다고.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래야 자녀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 '선생이 못 견딜 때가 되면 방학을 하고, 부모가 못 견딜 때가 되면 개학을 한다'는 말에 나도 웃음이 나오며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저자는 숨구멍을 내기 위해 특별활동 동아리 문예반을 만든다. 이 동아리 활동은 스스로를 위한 숨구멍이었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해방구였다. 저자는 학생들을 제자가 아니라 글쓰기 도반(道伴)이라고 생각했다. 도반은 글자 그대로 길(道)을 함께 가는 짝(伴), 즉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라는 뜻이다. 글을 쓰면서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도 성장했다.

문예반은 잘 쓰는 사람보다 잘 쓰고 싶은 사람을 반기는 곳이다. 문예반은 공부와 시험에 지친 아이들에게 출구이자 힐링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열정이 재능이다"는 문예반의 모토다. 글 쓰는 동력은 재능이 아니라 열정임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설정한 문구다.

저자는 글쓰기의 재능을 탓하지 않는다. 끝까지 쓰는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문예반을 이끄는 동력은 아이들의 열정이었다. 인문계 고교의 꽉 짜인 일정 속에서도 아이들은 밤을 지새우며 필사하고 시와 소설을 써냈다.

나는 맞춤법 틀리는 남자친구를 우아하게 가르쳐 준 여학생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독감에 걸려 학원을 못 갔더니 남자친구가 "어서 빨리 낳아"라고 문자가 왔다. 그래서 답장하길 "고마워, 꼭 순산할게"

2교시 수업의 <꿈을 찾는 것이 꿈인 아이들>이라는 제목은 딱 나에게도 해당된다.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 권 읽고 온갖 핑계를 대면서 책을 읽지 않는 나 자신을 위해 서평단을 신청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남들과의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내 성격을 이용한 것이다.

2년 이상 서평단을 해오면서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은 찾지 못했지만 처음에 책을 읽으면 재밌었다고밖에 표현을 못 하던 내가 책 내용도 조금씩 요약하고 내 생각을 쓰는 분량도 처음에 비하면 정말 많아졌다. 이 수필의 제목처럼 나 역시 나의 꿈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꿈을 못 찾으면 뭐 어떤가? 이미 행복이라는 꿈은 이루어졌는데.

저자의 살인적인 양의 지식 주입을 그만두고, 재밌을 것 같은 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도 100% 찬성한다. 공부도 하고 행복한 기억도 많이 만드는 교육은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진다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감동 스토리는 저자가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에게 감성만이 아니라 깊이를 갖춘 시도 마주하고, 시를 섬세하게 골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에 상처를 받은 학생이 있었다. 윤미라는 학생인데, 어느 날 저자를 찾아와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시가 그렇게도 무의미한 거였는지 계속 생각이 나서 수능까지 망칠까 봐 털어버리고 싶어 찾아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즉시,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 학생의 발표를 함께 들었던 아이들 앞에서 사과한다. 이게 소설이 아닌 실화라니... 존경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 버렸다.

윤미가 발표를 잘못한 게 아니라고, 열심히 준비해서 발표한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선 안 됐었다고, 문학 교사로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책임을 윤미에게 전가한 것처럼 보인 건 내 잘못이라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도 배웠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는 사실을. 기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소개팅할 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붙잡는 방법은 경청이다. 이것도 내 생각과 똑같다. 그런데 어쩌면 표현을 이렇게 이해가 쏙쏙 되게 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경청인지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마주 앉은 사람이 내 이야기에 관심 없거나 도통 아는 게 없는 태도를 보이면, 아무리 예뻐도 매력이 없다. 하지만 상대의 눈높이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정작 내가 자란다. 상대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게 아니라, 그가 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려는 마음과 듣고 싶어 하는 태도를 말한다.

나를 억지로 상대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더 많은 세계를 이해하고, 더 단단해져 가는 것이다. 나도 남편에게 억지로 맞추지 말고, 그가 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네가 중요하다는 표현이다. 네가 보는 걸 나도 함께 보고 싶다고 손 내미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언제나 감정보다도 '자기 존중'에서 시작된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을 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6교시는 나누는 즐거움이다. 문학과 영화 등 작품을 소개하고 이야기한다. 소설이나 수필은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숨그네>, <괴물 부모의 탄생>,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헤븐>,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등이 나오고, 영화와 드라마는 <가버나움>, <소년의 시간>, <패터슨>, <다음 소희>를 소개한다. 에필로그에서는 나를 지금의 나로 키워낸 시간들을 회고한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니 존경이 아닌 존중을 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완벽하지 않은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경 대신 존중을 실천한다면,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지 않을까?

40년간 국어를 가르치고 문예반을 이끌었던 교사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같은 교사가 읽으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힘든 감정노동 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고, 번아웃이 오기 전에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현실적인 생존법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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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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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다. 9세 때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와, 대학 시절 자살을 시도한 후, 정신병원에 약 3년간 입원했던 경험을 가진 수잰의 에세이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독서와 읽기로 치유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조울증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과 저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여성, 인종차별, 독서와 글쓰기, 정신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자신만의 예리한 통찰과 견해를 펼친다.

원제인 Committed에는 수용되다는 뜻과 전념하는의 2가지 뜻이 있다. 수잰 스캔런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Committed) 경험과 삶의 의미(Meaning)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한(Committed) 삶이라는 2가지 뜻을 모두 담아 이 책의 제목을 정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처음에 조현병으로 오진을 받았고, 이후 히스테리 진단을 받고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 그 당시 여성 환자에게는 히스테리라는 진단이 너무 쉽게 내려졌다고 비판한다. 그녀의 고통은 히스테리가 아니라 외로움, 슬픔,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수잰은 뉴욕주립 정신의학 연구소의 분석가들의 형식적인 차가운 대화와 비인간적인 형식으로만 가득한 것에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결국 그녀는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의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약물이나 형식적인 치료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치유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진단명이 아니다'라고 그녀는 외친다. 진단명이 개인의 정체성이 되면, 그 사람의 급진적이거나 예술가적인 면모 등은 진단명에 묻혀버린다.

일례로 어떤 A라는 여성이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면 가족부터 A를 광녀(madwaman)취급 할 것이고, 친구도, 사회의 시선도, A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저 조현병 환자일 뿐이다. 만약 A에게 예술적인 천재성과 탁월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그저 광기로 취급된다. 진단명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환자로 지내는데 점점 익숙해진다. 죽음을 계획하거나 정신과 의사들과 대화하는 일도 더 능숙해진다. 주립병원은 학생 보험을 적용받아 모든 게 공짜였다. 그러니 떠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형식적이나마 이런 시설이 있어서 자살은 막지 않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해 봤다.

그녀는 자신이 외로웠고, 슬펐으며, 미친 상태였거나 미친 척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과거 트라우마를 기억해 내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의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환상적인 트라우마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관심을 얻기 위해 연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한다.

광기를 연기하는 것은 더 역동적이고 더 진정한 존재가 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햄릿은 미친 것일까? 아니면 미친 척하는 것일까? 누가 그 차이를 알 수 있을까?

병원에 있는 여자들끼리는 서로 경쟁하듯 자해하며 서로를 부추겼고, 환자로서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소리치거나, 침묵하거나, 광분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었다.

환자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병원에서 배웠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사춘기 때 어긋나는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런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부모의 나쁜 관심이라도 받고 싶은 것이다. 이곳 환자들 역시 의사의 나쁜 관심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p.52 그 일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맥락이었다. 그 무엇도 고립된 채 존재하는 건 없으며, 우리는 맥락 속에, 그 순간이라는 맥락과 서로의 존재라는 맥락 속에 존재했다.

뉴욕주립 정신의학 연구소뉴욕주가 관리하는 곳으로, 그 병원의 의학 대학원 학생들을 교육했다. 즉 그 병원은 커리큘럼이었고 훈련장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석 달에 한 번씩 의사들이 교체됐다. 한 의사가 떠나면 또 새로운 의사가 도착했다.

환자들은 한 의사에게 애착을 느꼈다가 3개월에 한 번씩 작별했다. 이것을 치유될 때까지 반복한다. 이것은 이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진 인생을 훈련하는 일이었다. 애착을 형성했다가 놓아보내기를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면, 남은 평생도 그렇게 할 준비가 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훈련이기도 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허전한 마음이 느껴졌다.

죽으려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엄마. 살아 있는 일조차 잘 못하는 엄마가 부끄러웠던 수잰은 엄마가 돌아가셔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9살짜리 아이는 이미 슬픔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는 법을 터득한 뒤였기 때문이다. 사별의 슬픔을 매 순간 느낄 수는 없다. 사람이 항상 슬플 수는 없으니까. 그 무엇도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지라도 삶은 계속된다.

이 애착과 놓아 보내기는 돌아가신 엄마를 놓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훈련이었다고 한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저자의 기억들이었다. 앞으로 사랑하고 잃게 될 모든 사람들에 대한 훈련을 이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병원에 있던 환자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는데, 백인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은, 백인 우월주의의 결과였다. 백인 여자들의 고통이 다른 이들의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는 암묵적 메시지는, 병원 직원들이 대부분 흑인이며 아무도 그들의 고통은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저임금 노동자인 것과 대조적이었다.

저자는 그 병원 시스템 안에서 보낸 시간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누군가를 사귀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관계가 가짜인 것을 알았거나, 구멍투성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과 좀 비슷했다고 한다.

p.354 더는 할 일이 없었다. 일단 그걸 꿰뚫어 보고 나면 떠나야 한다.

수잰의 전환점은 자살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그 결정은 예리하고 명료했으며 그걸로 끝이었다. 자살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결정. 그것은 치료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노트에 미친 듯이 글을 썼다. 이 책에서 하이퍼그라피아라는 단어를 배웠다.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상태를 말한다. 이 노트를 통해 저자는 젊은 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말한다. 때로는 그 젊은 여자를 돕고 싶었다고. 너무나도 그 여자의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고, 때로는 미쳤다고, 참아주기 힘들다고,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다고.

지금이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거라며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과거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수잰은 스스로를 치료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82 미친 여자의 자유는 꿈이기도 하고 덫이기도 하다. -수전 손택

수잰에게는 어쩌면 사회와 단절된 정신병원에서의 삶이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신적 자유를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에서는 낙인이 찍힌다. 사회에서 영구히 제외되어버리는 덫에 갇힌다. 직장, 결혼, 대인관계 등 과연 나라면 정신병원에서 나왔다는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과 제정신인 사람들을 구분하려는 욕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멀쩡한 사람이니까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이 사람일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우린 모두 아프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영원히 살아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내가 너보다 조금 더 건강하면 뭐하고,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제정신이면 뭐 하겠는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끼리 상처와 아픔을 덮어주는 것이 더 기쁘지 않은가?

1990년대부터 정신과 약물이 정신 질환 치료의 새로운 방법이 되었고, 제약 회사의 마케팅이 병원에 침투했다. 이로 인해 정신 질환 환자는 소비자가 되고, 환자들이 의사에게 특정 약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다.

항우울제는 복용했을 때 슬픔을 바로 멈춰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이 느껴지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마치 고혈압 약이나 고지혈증 약으로, 증상만 완화시키는 미봉책 같은 것이 정신과 약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낫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 격렬한 광기의 순간을 피해야 삶의 의미든 뭐든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약물이 그때뿐일지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별이나 이별의 슬픔 또한 이런 광기와 마찬가지로 해결되거나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걸 안고서 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익숙해지거나 익숙해지지 않거나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것 또한 나라는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수잰에게 엄마의 죽음은 엄마를 보며 형성되던 자아를 상실한 일이었고, 엄마와 연결되었던 끈이 끊어진 일이었다. 그녀를 알아주고 사랑해 주던, 엄마를 통해 인식했던, 자기 자신을 잃은 일이었다.

독서와 글쓰기로 자기 자신을 되찾은 그녀는 이제 엄마가 돌아가신 그때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엄마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지 않는다.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본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엄마는, 이제 사진 속에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랑하는 것은 초월이 아니라 삶에 전념(Committed)하는 일이고, 버티며 살아내는 일임을. 그 전념의 방법으로써의 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나만의 시선으로 내 스스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는 한 사람이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수잰의 주위에 엄마 잃은 슬픈 마음을 이해해 주고,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는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그녀는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너무 어렸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절망 속에서도,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방문을 열고 나오게 만드는, 그런 따뜻한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돌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정신병원의 실체를 밝히고, 그곳을 뛰쳐나와 작가가 되었다. 고통을 읽기와 글쓰기로 승화한 진정한 인생의 의미들을 찾은 수잰에게 박수를.

p.503 당신이 왜 그리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그 의사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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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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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윌리엄 헤즐릿의 10살 위인 형 존 해즐릿이 자주 하던 말이 "청춘은 죽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청춘에는 고난을 이겨낼 힘이 있고, 기회 또한 무궁무진할 것 같다. 방황과 고통은 있지만, 지쳐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청춘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p.178 삶의 시작은 마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나는 순간과 같다. 세상이 나를 위해 열려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너머의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청춘은 자연처럼 자신도 영원하리라 착각한다.

8편의 에세이 중 7번째 실린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젊을 때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으며, 마치 나는 불멸의 존재인 것 같이 살아가는 젊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청춘도 아닌데 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에서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 읽게 되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산다.

p.179 그들은 모른다. 언젠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노쇠해지며, 결국 무덤에 던져질 날이 온다는 것을. 청춘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드라마 속이나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부정한다. 장례식장에 다녀왔어도 나는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음을 상상해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천년만년 살 것 같으니까 늘 나중에, 다음에로 미룬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거나,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당황하는 것은, 죽음이 현실이 되니 충격이라서 그럴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장 좋은 땅은 지금 밟고 있는 땅이고,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하지 않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기 때문에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하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실천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나부터 사랑하고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 주며, 내가 먼저 더 많이 사랑하자.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대한 특효약은 메멘토 모리라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메멘토 모리를 생각해야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

나는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늘 해설이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는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계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더니 윌리엄 해즐릿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트와이스와 BTS 가사를 예로 들고, 『호밀밭의 파수꾼』과 『데미안』의 비유를 해주셔서 더 잘 이해가 되었다.

해즐릿은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 글을 쓴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인간 본성을 비판하며, 독자에게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후대의 에세이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영어 수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지적 명성과는 달리 개인사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해즐릿은 1778년 영국 메이드스톤에서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초상화 화가로 활동하다가 문필 활동으로 전향해서 철학서와 문학 평론을 썼다. 1812년 런던으로 가서 형과 함께 살면서 언론인 및 평론가로 명성을 얻었다. 말년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런던 소호 지역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인 그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급진적 공화주의자로서 반체제 운동을 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한다. 또한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지지했다. 그의 에세이는 저항의 무기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조지 오웰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에세이 중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를 빼고, 나머지 7편의 간략한 내용을 살펴보자.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는 유행하는 의견에 따라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진부한 비평가는 말할 시간은 많지만 생각할 의무는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뻔하고 무의미한 말만 반복한다는 말에 찔렸다. 그게 실력인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입력된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뻔한 말을 하거나 저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게다가 귀가 얇아서 남이 말하면 다 진실인 줄 안다. 생각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 해즐릿을 만나면 지식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귀엽게 봐달라고 하고 싶다.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은 온화한 성품이 위선일 수 있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친다. 온화한 왕이 폭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해즐릿이 말하는 온화한 사람이란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성인군자의 온화함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을 버린 대상에 대한 증오는 한때 그 대상에 품었던 애정의 크기만큼 깊고 격렬하다. 그들의 신념이 배신당했을 때 그 분노는 광란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바람난 배우자를 사랑했던 깊이만큼 증오하나 보다.

<종교의 가면>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기독교를 믿으면 제사를 안 지내고, 성당과 절에 다니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떠올랐다. 종교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낸다면 어떤 종교가 옳은 것일까? 난 제사 지내기 싫어서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는 교회고 제사는 지내야 했었다는.

<인격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해즐릿은 상대방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얼굴을 보라고 한다. 말은 바꿀 수 있지만 표정은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의 표정과 얼굴은 그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가난이 배고픔뿐만 아니라, 굴욕감도 준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위선까지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 한 집 걸러 외제차인 이유도 물론 돈이 많아서 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셋 방 살아도 돈 있어 보여야 무시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는 기척만으로도 마치 쓰러지는 말을 피하듯 도망간다는 표현은 지금도 그대로다. 곤경에 처한 말을 돕다 깔려 죽느니 피하고 봐야 한다. 사람도 도움을 청할 기척만 보여도 귀찮고,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본다. 세일즈 관련 일을 하면, 혹시 나보고 보험이든 구독이든 해 달라고 할까 봐 친구들이 다 도망가지 않는가? 물론 나는 거절을 못 해서 보험을 들어주고 해약하고를 반복했지만 말이다.

<인도인 곡예사>는 기계적인 숙련된 기술이 주는 감동을 성찰한다. 그는 몸으로 표현되는 예술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종 차별, 직업 차별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나도 신혼 때 부부 싸움을 하다가 내가 파출부냐고 스스로를 비하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나 스스로 파출부라는 직업을 무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 통해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곡예사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시대에만 위대한 사람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위대함의 진정한 시험대는 역사의 기록이라도 말했던 그는, 이렇게 200년이 지나서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에세이를 써서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마지막 <병상의 풍경>은 병원에 누워 세상과 격리되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조용한 통찰을 담았다. 병상에서의 회복은 독서를 통해 완성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병에 집중하기보다 독서를 통한 삶에 집중하는 게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서는 치유의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끝으로 해즐릿은 병에게 삶을 내어주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 해즐릿을 훌륭한 벗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알고 그것을 힘차게, 게다가 눈부시게 말한다고 표현했다.

신랄한 비판으로 유명한 에세이의 대가 작품을 읽고 나니, 강함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아름답게 묘사한 점이 돋보였다. 그래서 나도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해즐릿의 표현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에세이는,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시적이면서도 날카롭고, 지적이면서도 따듯하다고 정의하고 싶다. 지성의 향기 속에 흠뻑 젖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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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한서형 향기시집
윤동주 외 지음 / 존경과행복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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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향기 시집은 말 그대로 책에서 향기가 나는 시집이다. 향기가 나는 책갈피와 부채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향기가 나는 책은 생각도 못 해봤다. 나도 태국의 카르마카멧 아로마틱 북마크를 가지고 있다. 오래돼서 향은 거의 다 날아갔지만 북마크를 선물한 아들의 예쁜 마음의 향기는 아직도 그대로다. 향기가 있으면 평범한 물건도 더 특별해지는 것 같다.


책갈피도 이렇게 특별한데 책이라니! 그래서 가장 먼저 이 책의 대표 향기인 유향에 대해 알아봤다. 저자는 상처에서 피어난 맑은 향기가 윤동주의 시와 닮았다고 느껴 이 향을 택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은 유향, 황금, 몰약이었는데, 왕에게 바친 예물에 유향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귀한 향료였던 것 같다. 


유향(乳香) 나무는 사막에서 자란다. 이 나무의 상처 난 자리에 맺히는 금빛 나뭇진은 고귀해서 신이 흘린 땀방울이라 불린다. 유향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치유의 향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랑받아 왔다. 제사 때도 사용하는 향료로 황금보다 귀하게 여겨졌으며, 가장 영적이고 시적인 향이다. 


신성한 빛을 머금은 유향을 중심으로, 시트러스, 사이프러스, 재스민 등 다양한 향을 쓰다가, 마지막은 우리 땅의 편백으로 마무리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향이 나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너무 신기하다. 


책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책에서 향기가 난다. "와아~ 냄새 좋다!" 숲속에서 시를 읽다가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오는 이름 모를 향기에 행복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눈으로 읽고, 코로 냄새 맡고, 소리 내어 낭독하고, 손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럼 오감 중 미각은 어떻게 느끼나? 책을 뜯어 먹을 수는 없으니 커피 한 잔과 함께하면 어떨까?


향기 다음은 이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인 을 따라 수천 리 길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다. 왕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을 헤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고난의 시대 속에서 희망을 꿈꾸었다. 그래서 이 된 시인 윤동주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이다. 숭실학당,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 문과를 졸업했고, 일본의 릿쿄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영문과로 전학했다. 이 도시샤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나는 윤동주의 시만 알았지 윤동주가 27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사망한 사실은 몰랐다. 윤동주의 생일은 1917년 12월 30일이고 사망일은 1945년 2월 16일이라 만 나이로는 27살이다. 단순히 사망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법적 나이는 28세다. 태어난 해를 한 살로 치는 한국식 나이는 29세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2023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하므로 27세가 맞다. 


윤동주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윤동주는 문익환 목사와 동갑내기 친구다. 둘 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곳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龍井市)라고 한다. 누나들은 어릴 때 요절했고, 3명의 남동생과 1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윤동주에게 형제와 다름없이 가까웠던 특별한 인물이 있는데, 사촌 형인 송몽규(宋夢奎)다. 두 사람은 함께 북간도에서 자랐고, 일본 유학은 물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도 함께 순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가 반대하던 창씨개명까지 해 가면서 더 공부하고 싶어 유학까지 갔는데, 죽음이라니... 그냥 공부하지 말고 한국에 있었으면 적어도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대의 건강한 청년이 갑자기 옥 중 사망한다. 윤동주 부모님이 시신을 거두러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다가 송몽규를 면회했는데, 그때 그가 증언하길 조선인 죄수들을 대상으로 매일 이상한 주사를 맞게 하고, 암산 테스트를 시켰다는 것이다. 송몽규도 윤동주 사후 약 3주 만에 사망했다. 아무런 증거도 남아있지 않기에 윤동주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사람들은 윤동주의 죽음이 생체 실험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윤동주 하면 <서시>와 <별 헤는 밤>이 생각난다. 두 시 모두 별이 중심 소재라 별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외우는 단  2개의 시도 윤동주의 <서시>와 <할아버지>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꼭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구일 것 같지만 <서시>의 마지막 행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은 중학생 때 선물을 받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는 <할아버지>라는 시였다. 이 책 84페이지에 실려있다. "왜 떡이 쓴 데도 자꾸 달다고 하오"가 끝이다. 시가 한 줄인데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 시는 "왜 떡이 씁은데도 자고 달다고 하오"인데 요즘 말로 바꾼 것 같다. 

이 시집은 워낙 유명하고, 내가 기억하는 시들이 많아서 도대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 책이 향기 시집인 것과 이제까지 시만 읽었지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향기와 윤동주가 살아왔던 삶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가 살아왔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다시 읽으니, 윤동주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어릴 때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달을 쏘다>라는 윤동주의 수필이 있다. 주인공은 바다를 건너온 H 군의에게 절교 편지를 받고 연못에 비친 달을 향해 돌을 던진다. 화내서 씩씩거리는 귀엽고 순수한 소년의 마음이 느껴진다.


p.116 못 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달이 있고...)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더니 딱 그런 모습이다. 그런데 달은 산산이 부서지는가 하더니 연못의 파문이 가라앉자 도로 살아났다. 하늘을 보니 얄미운 달이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 같아 활을 만들어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향해 화살을 쏜다.


나는 진짜 나뭇가지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비슷하게 만들어 쏘는 시늉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본인만이 아는 사실이다. 검색해 보니 활을 쏘는 행위는 저항하는 청년의 끓어오르는 의지의 상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떠나서라도, 저항과 울분을 이렇게 글로 풀어낸 것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둘 다>라는 시에서도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윤동주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달을 쏘거나, 사용이 금지된 한글로 시를 써서 남겼다.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해도 지나간 일과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윤동주는 최선을 다해 일제에 저항하며 시를 썼기에 지금까지 글로 남아, 우리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잔잔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향기까지 더하니 금상첨화다! 


시향에 취하다는 말이 있다. 이 시집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시의 운치와 진짜 향기 모두에 취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어디선가 은은하게 향기가 난다. 처음 느껴보는 향기들과 시를 함께 감상해 보자. 


아기 예수님께 선물한 유향을 위주로 구성한 한서형의 윤동주 향기시집과 함께, 시향이 가득한 특별한 2025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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