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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의 시대 - 인류 문명을 바꿀 양자컴퓨터의 미래와 현재
이순칠 지음 / 해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퀀텀의 세계』를 썼던 카이스트 이순칠 명예교수님은 쏟아지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하여 개정판까지 냈지만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가 어려워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1. 언제 쓸 만한 양자 컴퓨터가 나오는가? 2. 어떤 형태의 양자 컴퓨터가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그래서 나도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은 양자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양자 기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룬 책이다.
1. 언제 쓸 만한 양자 컴퓨터가 나오는가?
암호를 풀 정도의 훌륭한 양자 컴퓨터라면 2035년 정도는 되어야 나올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1000 큐비트 초전도 양자 컴퓨터를 2025년에 시작해서 2033년에 완성하기로 로드맵 되어 있는데 IBM에서는 2023년에 이미 1000큐비트 양자 컴퓨터를 발표했고,10년 정도 수준차가 있다고 한다. IBM에서는 2033년까지 10만 큐비트를 가진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공표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업 비밀이 10년 후에는 공개되어도 괜찮으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 양자 컴퓨터가 뚫지 못하는 양자 내성 암호를 걸어두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자 컴퓨터는 공개 키 암호체계와 비밀키 암호체계의 격파에 모두 효율적이므로 암호를 제대로 푸는 양자 컴퓨터가 개발되면 암호화폐 계정은 모두 해킹당할 수 있으며 채굴도 독점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오면 당연히 암호화폐는 무용지물이 된다. 저자는 지금 비트코인의 시세는 1억 원도 넘는데 나 같으면 10년 이내에 모두 처분하겠다고 한다.
전자 서명의 안정성을 높이려면 소인수 분해에 기반한 공개키 암호체계 대신에 양자 컴퓨터가 효율적으로 뚫지 못하는 격자 암호 등을 사용하면 된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국정원의 후원으로 양자 내성 암호 국가 공모전을 열고 있다.
2. 어떤 형태의 양자 컴퓨터가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초전도, 이온덫, 중성원자, 광자, 양자점, 점결함 양자 컴퓨터와 위상 양자 컴퓨터 중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책에 나온 비유가 인상적이다. 로켓이 성공적으로 발사될 확률을 총책임자에게 물으면 100%, 중간 관리 책임자에게 물으면 60%라고 답하는데, 맨 아래 실무자에게 물으면 날아가면 기적이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양자 컴퓨터의 오류 정정과 확장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자 컴퓨터 개발이 넘어야 할 산들을 생각하면 이 농담이 웃을 일은 아니라고.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 중에 양자 컴퓨터 회사 주식을 가진 사람은 없고, 앞으로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되어 큰 변화를 일으켜도 돈을 많이 버는 연구자는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이라니, 앞으로도 기적 같은 혁신은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나는 암이나 치매, 당뇨병과 같은 대표적인 노화성 질환의 기전을 분석해서 불로 장생을 가능하게 하는 신약이 개발되지 않을까 한다. 비만 약 위고비가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라는데, 만약 양자 컴퓨터가 노화를 역전시키는 약을 개발하면 한 달에 100만 원만 받을까? 저자는 앞으로 20년 정도 더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양자 컴퓨터 덕에 영생을 얻을지도 모르니, 이를 대비해 돈을 좀 많이 벌어두라고 한다.
양자 컴퓨터 덕분에 계산 능력이 아주 좋아지면, 전쟁을 하기 전에 상대방과 나의 전력을 정확히 입력해서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게 되므로 전쟁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드론이 사용되는데, 이왕이면 기술이 빨리 발전해서 전쟁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양자 컴퓨터 기술은 녹색 비료, 분자 모델링, 단백질 접힘, 탄소 포집, 태양전지 디자인, 배터리 디자인 등 분자 시뮬레이션 연관 문제를 해결한다. 세계 경제 포럼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최우선으로 적용될 분야를 분자 시뮬레이션 분야라고 보았다. 분자 시뮬레이션의 대표적 응용 분야는 신약 개발이다.
원작 폭탄보다 기후 온난화에 대한 공포가 더 커지는 요즘 탄소 제로나 중립은 인류가 당면한 숙제다. 양자 컴퓨터는 탄소 중립에도 기여한다. 탄소 포집이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물질을 찾고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변환하는 효율적인 화학 결합을 찾는 일이다. 양자 컴퓨터는 분자 결합을 시뮬레이션해서 이런 물질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현대자동차, 미츠비시 벤츠 등은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배터리에 쓰이는 전극이나 촉매 물질이 새로 개발되어 배터리의 효율을 2%만 높여도 나머지 배터리 회사들은 전멸할 것이다.
경로 최적화, 전력망 최적화처럼 최적화 문제는 양자 컴퓨터의 응용이 가장 먼저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금융산업에서는 파생상품 가격 결정과 포트폴리오 최적화다. 슈퍼컴퓨터로 어떤 문제를 푸는데 150억 년이 걸린다면 그 문제는 풀기가 불가능한 문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양자컴퓨터가 하루 또는 일주일에 풀 수 있다면 이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양자 컴퓨터도 우리가 쓰는 고전 컴퓨터처럼 이진법을 쓴다. 예를 들면 원자에서 전자가 가장 반경이 작은 궤도를 도는 상태와 그보다 반경이 큰 궤도를 도는 상태를 0과 1로 사용할 수 있다. 양자 상태가 고전적인 상태와 가장 다른 점은 중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산에서 0과 1을 나타내는 상태를 비트(Bit)라고 부르듯, 양자 컴퓨팅에서는 양자 비트라는 뜻으로 큐비트(Qubit)라고 부른다. 비트가 0 또는 1 중 하나만 갖는다면, 큐비트는 0이면서 동시에 1인 상태를 가질 수 있다.
Q : 양자 컴퓨팅에서 0과 1이 중첩된 상태에 NOT 연산을 가하면 1을 0으로 바꾸는 동시에 0을 1로 바꾼다. 10개의 큐비트가 있다면 개개 큐비트가 2개씩의 상태를 가지므로 모드 몇 개의 상태를 만들어내는가? (p.88)
A : 10개의 큐비트가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는 전체 상태의 개수는, 큐비트 1개가 0과 1, 두 가지 상태를 가지고, 큐비트 2개는 00, 01, 10, 11의 네 가지 상태를 가지는 식으로 계산하면, 큐비트 10개는 2를 10번 곱한, 2의 10제곱인 1,024개의 상태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중첩된 상태에 연산을 가하면 1024개의 숫자에 동시에 연산이 된다. 이렇게 동시에 여러 개의 연산을 하는 것을 병렬 처리라고 부른다.
10큐비트가 1,024라면, 30큐비트는 약 10억이고, 50큐비트만 해도 약 1,125조이다. 내친김에 100큐비트는 얼마인지 AI에게 물어보니 12억 6천7백65경 조 개 또는 12 해 6765경 개라고 한다. 1해는 1억의 1억 배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숫자가 나왔다.
호기심 발동! 그럼 1000큐비트는? 약 10의 301제곱 개다. 전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를 가지고도 일반적인 계산을 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경우의 수를 동시에 표현하고 계산할 수 있는 값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1000큐비트 수준의 양자 컴퓨터를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의 시대로 보는 이유다. 이 정도 큐비트가 되면 기존의 슈퍼컴퓨터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병렬 처리가 빛을 발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데이터 검색이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고전 컴퓨터로는 300년쯤 걸리는 검색을 양자 컴퓨터를 쓰면 1분 정도면 찾을 수 있다. 양자 컴퓨터와 우리가 쓰고 있는 고전 컴퓨터의 계산 속도는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그 차이가 커진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세상의 모든 것은 저절로 더 무질서해지려는 성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란 어지럽혀진 정도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냅두면 지저분해진다는 뜻. 엔트로피를 줄이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그냥 우리집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확 될 것이다. 하루만 설거지를 안 해도, 하루만 빨래를 안 해도 엉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깨끗한 집을 원한다면 매일 청소를 하고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도 바로바로 갖다 버려야 한다. 나의 노력인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아파트가 있다. 이것은 질서 있는 형태다. 하지만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해 무질서한 상태인 돌무더기나 흙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을 다시 튼튼하게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돈을 들여 수리를 하거나 보수를 해야 한다.
두 개 이상의 양자 입자가 얽혀 있을 때, 한 입자의 상태를 알게 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여전히 증가하며 이는 양자 얽힘이 시스템의 정보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어지러워지는 정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는 옛날 고전적 열역학에서 현대의 양자역학까지 자연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이다. 이 엔트로피는 단순하게 어질러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가진 정보와 에너지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다.
이 책은 양자 기술의 원리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자 기술의 근간이 되는 속성인 얽힘(Entanglement)에 대한 내용은 맨 뒤에 부록으로 빼놓았다. 얽힘은 양자 세계의 속성 중에서도 가장 양자스러운 것이어서 이 속성을 이용한 양자 기술은 또 한 번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벨 부등식 실험을 통해 양자 얽힘의 실재를 입증해서 2022년 노벨 물리학 상을 받은 알랭 아스펙트 (Alain Aspect) 등이 증명한 내용은 이 책의 부록을 읽어보자. 벨 테스트(Bell Test)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벨 테스트는 벨 부등식(Bell's Inequality)이라는 수학적 규칙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교양 과학 서적을 읽는 독자 중에서 2022년도 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 사유를 이해하고 있는 분은 극소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이해할 수 있다면 멋진 일 아닐까?
양자 컴퓨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양자 통신은 보안 분야에, 양자 센서는 국방과 의료 분야에 주로 사용될 것이고, 양자 컴퓨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주의 시작과 끝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같은 철학적 문제들에 관심이 크다면 양자 컴퓨터를 공부해보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실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현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 적어도 혼란은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 양자 기술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어려운 내용인데도 재밌게 술술 읽힌다. 교수님의 지식의 깊이를 알려주는 듯하다. 이해가 깊을수록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AI로 검색하고 동영상을 보며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고 읽으니 더 재밌었다. 양자의 세계는 정말 신비 그 자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