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그곳에 우리 - 토스카나의 여유, 아말피의 설렘을 걷다
이홍범 지음 / 좋은땅 / 2025년 5월
평점 :
품절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로마, 아시시, 피엔차, 시에나, 피렌체,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그리고 다시 로마에서 또 다른 여행을 그리는 13일간의 여정이 담긴 수필집이다.

가장 큰 특징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렌터카로 이탈리아를 여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차 팁과 요금도 나와 있고, 기름을 꽉 채워서 렌터카를 반납해야 돈이 덜 든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유럽 여행은 렌터카가 정답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렌터카 여행기는 처음 읽어본다. 그래서인지 여행기 곳곳에 여유로움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여행을 이렇게 여유롭게 하면 저절로 힐링이 될 것 같다.

저자가 친하게 지내는 부부들이 있다. 이 그룹 이름은 옥타브다. 8명의 멤버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숫자 8을 나타내는 라틴어 옥타(octa)에서 가져왔다. 2주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은 이 옥타브 멤버들과 함께했다.

나는 이 옥타브 멤버들의 여행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핵심적인 여행 일정만 전체가 함께 보내고 모든 일정을 커플마다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한 것. 심지어 막내 커플은 부인과 딸이 먼저 로마로 들어가서 5일 동안은 둘이서 지내다가 남편을 로마에서 만나는 일정을 택했다. 이렇게 각자의 취향과 형편을 존중하는 따로 또 같이 여행이 참 좋아 보였다.

저자인 이홍범 변호사님은 대기업에서 30여 년간 사내 변호사로 활동 했다. 꾸준히 여행에 관심을 기울였던 저자는 40여 개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고 효율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옥타브 멤버들과 함께한 여행 기록을 독자들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여행할 때 여행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미리 해가면 여행의 의미가 더 깊어지고 경험도 풍성해진다. 저자는 방문할 주요 장소에 대해 일부 멤버들에게 미리 준비를 맡겼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나중에는 멤버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그날의 일정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각자의 참여 의식도 높아지고 여행의 재미와 몰입감도 깊어질 것이다. 이것이 따로 또 같이 여행의 묘미일까?

사진 하나가 한 편의 에세이가 된다. 사진은 그저 글과 나란히 있을 뿐이지만 한 폭의 그림처럼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유럽은 아무 데나 찍어도 예술이 된다더니. 저자는 글을 쓰면서 그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첨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글과 사진이 각자 따로 따로 놀지도 않는다는 출판사 리뷰가 읽는 내내 생각났다.

사진이 글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다비드 상 이야기를 하며, 진짜 다비드상 사진과 여기저기에서 찍힌 가짜 다비드상 사진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사진 퀄리티도 뛰어나고 종이 질도 고급스러워 책장을 넘기는 내내 만족이었다.

이 책이 다른 여행기와 다른 건, 변호사님 답게 문학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그 공간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것을 맛보고 느꼈는지 심플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점이다. 도시나 명칭의 유래에 대한 설명도 간단 명료해서 좋았다.

나는 솔직히 여행을 가면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은 맛집에서 맛있는 거 먹고 유명한 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우리나라 여행을 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곳은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곳이고, 그것을 통해 현재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공부하고 갔을 것이다. 경주에 갔었는데도 인증샷 찍고 온 게 다였다는 사실이 매우 아쉽다. 공부하고 여행을 떠날 생각은 어째서 한 번도 안 해봤을까?

"토스카나의 여유, 아말피의 설렘을 걷다"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토스카나의 그림 같은 언덕, 아시시의 고풍스러운 골목, 르네상스의 숨결이 살아있는 피렌체,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가 있는 항구 도시 나폴리를 거쳐 아말피 해안의 절경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글을 읽노라면 매 순간 이탈리아를 제대로 만끽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토스카나아말피가 이 책의 부제라 더 꼼꼼하게 읽었다. 토스카나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인지, 서울의 한 지역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검색해 봤다. 우리나라에는 주라는 개념이 없지만 미국처럼 이탈리아도 주가 있다. 토스카나주에 피사 시가 있고 여기에 피사의 사탑이 있는 것.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토스카나 하면 피사의 사탑밖에 생각이 안 난다. 피사의 사탑은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토스카나 주에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크레타 세네시(Crete Senesi)라는 곳을 들어보았는가? 이곳은 나무들과 흰 점토로 덮인 언덕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토스카나 농촌이다. S자 형태의 커브 길 양쪽으로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늘어선 길은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사진의 단골 배경이라고 한다. 트러플 새우깡 때문에 나도 송로버섯을 알게 되었는데, 여기는 흰색 트러플 송로버섯 산지로도 유명하다.

여유로운 토스카나의 농촌에서 느린 삶의 미학을 발견한다. 느긋하게 식사하며 와인 한 잔을 나눈다. 바쁘게 살아온 저자에게 진정한 휴식의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외국 여행은 유명한 관광 명소들을 빠듯한 일정에 맞춰 순례하고 오는 것이 다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화장실은 아이디 카드가 있어야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다는, 황당한 화장실 탈출기도 여행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정보다. 요즘 세상에도 소매치기가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사람 많은 곳에 갈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카페에 폰 올려놓고 화장실 갈 수 있을만한 나라가 아니란 거다.

치비타 디 반뇨레조(Civita di Bagnoregio) 마을은 그 독특한 지형과 역사 때문에 '죽어가는 도시(The Dying City)' 또는 '하늘 위의 섬'으로 불린다. 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 300 m에 달하는 멋진 다리는 1인당 €5의 입장료가 있다. 주민들이 이 마을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덕분에 전 세계에서 연간 85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꿈의 마을 같다.

알고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유명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실제 모델이 된 곳이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고립된 지형, 오랜 세월을 간직한 중세 건축물들, 그리고 주변의 웅장한 자연 경관이 정말 현실 세계가 아닌듯한 독특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내가 가 보고 싶은 여행지 1위가 베네치아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치비타로 바뀌었다. 2위는 북유럽 가서 오로라 보기, 3위는 몽고 사막 가서 쏟아지는 별하늘 보기인데, 추위와 더위라는 악조건 때문에 보면야 좋겠지만 안 봐도 그만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치비타로 향한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우와~ 어떻게 이런 색이 있을까? 산등성이 위로는 솜뭉치 같은 몽글몽글 구름바다가 너무 멋있다. 환상적이고 신비로워서 실제로 봐도 가상현실이라고 착각할 것 같다. 자동차 타고 이런 환상적인 일출 풍경을 볼 수 있다니!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인 스파카 나폴리(Spacca Napoli)도 신기했다. 스파카라는 말은 둘로 쪼갠다는 뜻인데 골목이 나폴리를 둘로 나눈 듯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골목을 항공사진으로 찍은 것을 보면 지진이 나서 동서로 땅이 갈라진 것처럼 둘로 쪼개져 있다. 한강이 강남과 강북을 나누는 것과는 또 다른 색다름이었다. 물이 아니라 골목이어서 더 신기했던 것 같다.

아말피는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에 있는 나폴리로부터 남동쪽으로 47km 떨어진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아말피 해안은 말 그대로 그림 같았다. 우리나라는 점점 빌딩 숲에 아파트 일색으로 바뀌어 가는데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부러웠다.

저자는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 소중한 이들과 함께한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함께한 이들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며, 서로에게 의미 있는 추억을 선물하는 과정이다. 글과 함께 어우러진 사진들은 그 순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선명하게 남긴다.

이미 이탈리아 여행을 몇 번 다녀오신 분들은 새로운 관점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곳을 가봤다면 그때의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할 수도 있고, 나처럼 유럽에 못 가본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어? 거기 나 알아~" 하면서.

저자의 담담하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은 아무 생각 없이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독자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빠져 나와 잠시 이탈리아에서 여유롭게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며 와인 한 잔 또는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이 책을 읽으니 이탈리아에 관한 다양한 역사와 상식도 많이 알게 되었다. 나 혼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면 이렇게 꼼꼼하고 자세하게 보고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티본스테이크는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치비타로 가는 길에 보는 🌅 일출은 사진도 너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토스카나의 황금빛 언덕길을 달리고 아말피 해안의 눈부신 절경을 가르며 달려온 2주간의 여정. 옥타브 멤버 전원과 함께한 이 아름다운 여행은 도로 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그곳에 우리 마음속에도 잊지 못할 길을 새겼다.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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