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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자 문제를 주셨습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이지현 옮김 / 윌마 / 2025년 6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지혜를 구하자 문제를 주셨습니다』라는 책 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님께 지혜를 구하니까,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고 문제를 또 주었다는 말인가?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이해가 안 되서 계속 AI와 실랑이 한 끌에 알게 되었다.
성경 말씀에 지혜가 덤겨 있지만 그 지혜는 누구나 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좋은 말이네~" 하면서 지나가기 십상(十常八九)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저절로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를 만나야 비로소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지혜를 구한다.
문제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지혜를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이다. 집값, 교육비, 노후준비 같은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가족이나 직장 내 관계 등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과 같은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이미 주어진 지혜를 지나쳐 버렸거나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지혜를 구한다.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이 책은 성경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쓴 책이다. '철학의 언어로 재해석된 3500년 성경의 말들'이라는 부제처럼. 그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혜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배우는 책이다. 예수가 제시한 것은 개개인의 내면에서 구원을 실현하게 만드는 행동과 사고방식과 태도다. 이 책에서 다룬 예수의 문장들도 이런 관점에서 발췌했다고 한다. 이 책은 매일 한 개씩 필사하기도 좋지만, 목차만 읽어도 힐링이 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님 이름인 줄 알았다. 이름이 아니고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특별한 표현으로 구세주 예수라는 의미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구세주란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니체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고,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창설한 사람도 아닌, 가엾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기 삶의 방식을 보여준 인물로 보았다.
이 책의 원제는 초역 예수의 말(超訳 イエスの言葉)이다. 초역에는 발췌 번역한 초역(抄譯)과 일본에서 만든 표현인 초월 번역이라는 뜻의 초역(超譯)이 있다. 이 책은 원작자가 성경을 자신의 생각대로 내용을 재해석하고 변형해서 번역한 초역(超譯)이다. 저자가 성경의 정신과 본질을 살리면서 우리에게 더 잘 와닿도록 각색하거나 의역한 것으로 신약성경뿐 아니라 외경이라 불리는 서적들도 포함되었다.
왜 초역이라고 하는지 책 속 문장을 가져와 봤다. 듣는 귀가 없는 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제목이다. 이 책의 176 페이지에는 마가복음 4장 3 절~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성경을 찾아보면 마가복음 4장 3절에서 9절까지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가 나온다.
씨를 바위 위에 뿌리는 농부는 없다. 씨는 비옥한 땅에 뿌려져야 싹을 틔울 수 있다. 여기서 바위란 무엇을 뜻하는가? 나야말로 착실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직함이나 지위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남의 말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내 말과 행동은 바위 위에 뿌려져 말라비틀어진 씨앗과 같을 뿐이다. (p.176)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중략)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30배나 60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여기서 말하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이제까지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씨앗을 돌 위에 뿌리면 당연히 싹이 안 나는데 왜 이런 비유를 했을까? 바위란 교만한 사람을 말한다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실천했던 사랑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씨는 비옥한 땅에, 좋은 땅에 뿌려져야 열매를 맺는다. 말씀을 형식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라는 교훈이었던 것이다. 씨앗에 담김 생명력은 말씀의 힘이다. 그 말씀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렸다.
저자는 예수가 말하는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살고 있는 곳도 아니라고 한다. 천국은 현재에 있으며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마음속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도 천국은 이 세상에 있는 게 맞다고 본다. 내 환경이 어떻더라도 내 마음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것이 곧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천국은 마음의 상태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을 갈 수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천국은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다.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고 믿음을 강요당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안 믿었던 건 천국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구원이란 물질적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또한 구원은 타인에게서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세파에 찌들어 아등바등 산다면 그때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뿐 구원은 없다. 다시 말해 구원이란 자기가 사는 방식의 질적인 변화다.
나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보는 예수는 자신이 구원받음으로써 사람들에게 구원 그 자체를, 즉 평안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샬롬은 '어려움 가운데 평강이 함께하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행한 기적을 저자는 비유나 은유로 보는 점이 특이했다.
예수는 사람이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율법이 존재한다면서 이를 몸소 실천했다. 이런 점은 인도의 엄격한 카스트 제도 사회에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던 고타마 싯다르타인 부처와도 닮았다. 결국 기독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진리는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 모든 종교는 사람을 위해서 생긴 것이지 사람이 종교를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닌 거다. 그리고 모든 종교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니까 옳다거나 불교인이니까 당연히 선하고 진실되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저럴 수 있냐, 하나님 믿으니까 사람을 속이는 일은 없겠지, 절에 다니니깐 마음이 넓겠지 하는 생각도 없다. 교회 안 나온다고 나한테 화내는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가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과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는 예수에 관한 우화가 세 편 실려 있다. 유대인과 사이가 안 좋은데도 쓰러진 유대인을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 하나님의 구원의 평등성을 강조한 포도밭의 일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비유한 방탕한 아들이다. 탕자의 비유라고도 하는데 큰아들은 겉으로는 효자인 것 같지만 내면에는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다. 자기 동생이 돌아왔는데 자기 몫을 뺏길까 봐 벌벌 떤다. 어떻게 보면 돈만 밝히고 자기 동생도 미워하는 큰아들이 더 방탕한 아들 같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10절에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절은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든다는 부분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초역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다. 사랑이 있다면 지배하지 않는다. 지배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 함께 슬퍼하며 함께 웃고, 함께 먹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이것이 곧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p.195)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라는 성경의 말을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니 나도 실천하고 싶어진다. 사랑이 있다면 지배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맘에 와 닿았다. 내가 너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악의 근원에는 언제나 무지가 존재한다. 무엇에 대한 무지인가 하면 바로 사랑이다. (p.208)
나만 배부르고, 나만 편하면 그만이다. 특정 집단에 대해 불필요한 적대감이나 차별을 한다. 이런 것들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미워한 것은 아니다. 이기심, 오해, 두려움은 사랑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악은 사랑을 몰라서 생긴다. 그래서 서로 부족한 점은 덮어주며 사랑하면 내 마음은 이미 천국인 것이다.
"예수의 언어는 우리가 일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지혜다" -띠지에 있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