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고전의 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만권 옮김 / 책세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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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유론>의 제1장 머리말에 나와 있는 이 말을 읽는데 가장 먼저 제사가 생각났을까? 이 확실한 명령 같은 말에 억울한 감정이 쏟아져 한동안 마구마구 글로 풀어냈다. 서평을 쓰면서 이렇게 많이 울분을 터뜨리고 이렇게 많이 쓰고 이렇게 격분하다가 전부 다 지워 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어려운 고전으로 내 안에 묻혀 있던 제사라는 단어가 다시 터져 나올 줄은 상상을 못했다. 그래서 자유론과 제사를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만큼만 연결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어떤 사람의 자유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자기보호뿐이다. 제사를 강요하는 것이 자기보호 때문인가? 제사를 안 지내면 조상신이 노하셔서 불행을 가져올 것 같은 불안함? 하지만 진짜 조상 잘 만나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다 해외여행 간다. 조상 덕 부모 덕 1도 못 본 나 같은 며느리가 죽어라 제사 음식 만들고 남편이랑 싸운다.

하지만 자기보호를 위해 상의도 의논도 없이 당연히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며느리의 자유에 개입하는 것은 옳은가? 둘 다 자기보호라면, 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의견은 옳고 제사를 지내기 싫다는 의견은 틀린가?

다시 말해 누구에게라도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목적은, 타인에게 가해질 해악을 막는 데 있다. 제사가 자기보호 때문에 정당한 것이라면, 제사를 지내기 싫다는 며느리인의 의견 역시 정당하다. 타인에게 가해질 해악을 막는데 권력을 써야 한다! 며느리도 타인이다. 그러면 며느리인 나에게 제사는 해악이니까 제사를 안 지내게 해주려고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나에게 제사를 강요함으로써 해악을 막은 것이 아니라 해악을 가했다.

개인 자신의 이익은 정당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강제하거나, 그가 다르게 행동한다고 하여 불이익을 줄 이유는 될 수 없다. 여기서 개인은 누굴까? 나는 시아버지도 나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사를 지내라는 시아버지와 안 지내겠다는 나, 이 두 개인의 이익은 모두 정당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할 말이 없는 게 시아버지가 제사를 지내라고 강요한다고만 느꼈는데, 나는 제사를 안 지내겠다고 시아버지에게 강요를 한 것은 아닐까? 일단 남편의 아버지니까 20년 이상을 참고 제사를 지냈다. 그럼 잘한 건가? 나만 불이익을 당했으니? 그냥 내가 참고 말지, 내가 져주고 양보해야지, 이런 게 진정한 효도이고 미덕일까?

인플루언서 인디캣님의 서평을 읽는데, 최해직의 <죽어도 컨티뉴>라는 책에 "내면 성장은 스스로 여유를 갖는 것을 말한다. 남을 돕는 따뜻함은 그 다음이다. 자기보다 먼저 남을 돕는 것은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자기를 버리는 행위가 된다. 성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자기를 버리고 산 사람이 딱 나구나 싶었다.

김만권 교수님은 해제 250페이지에서 밀의 말을 인용한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비난을 받거나, 모두가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때로는 정신병자 취급까지 당한다며 우려한다는 말이다. 여론의 횡포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지만, 나는 이것을 제사에 대입해 보았다. 제사가 너무 싫어서 딱 2번 아프다는 핑계로 안 했는데, 며느리가 시어머니 제사 안 지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비난을 받았다. 모두가 하는 제사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은 사람이도 나다.

그러면 그렇게 당연히 해야 하는 며느리의 임무인 제사가 실버하우스 가자마자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제사였던 것인가? 나는 제사가 싫어요!라고 외치던 어린아이였던거다. 아무런 논리도 없고 이유도 없이 그냥 하기 싫다는 칭얼거림 뿐이었던 거다. 내가 왜 제사를 지내야 하냐고 따지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내가 제사를 거부할 자유가 있다면 시아버지는 제사를 강제할 사회적인 의무가 있다 했을거다.

나는 어쩌면 이 말한 배부른 돼지로 산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은 물론, 내 가족을 힘들게 하는 이 비합리적인 제사를 그냥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책을 읽고 힘을 키웠어야 했다. 그래서 나처럼 제사에 희생되고 있으면서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느끼는 고통 받는 모든 아내와 며느리들에게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근거를 더하고, 각자의 고충사항을 알리고, 힘을 키워서 제사를 없애는 것이 옳다는 나의 주장을 관철해 나갔어야 했다.

그래서 기일에는 제사 대신 가족여행이나 외식을 하며, 가족만의 추억을 만드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했어야 했다. 그러면, 제사를 지내던 사람들도 이것이 맞으니까 제사라는 유교 문화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다.

나도 어떤 분 블로그에서 형제들이 다 같이 모여 회의를 해서 부모님의 제사를 없애기로 결정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대신 가족끼리 함께 모여 추모 겸 가족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아이들도 즐겁고 어른들도 즐거워서 엄마 아빠 기일과 구정과 추석은 함께 놀 생각에 기다리게 된단다.

무엇이 두려워서 누구 눈치를 보느라고 이런 행복한 추억 대신 TV에 병풍 사진을 띠워놓고 의미 없는 제사를 지내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제사를 지내고 말고는 내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그 자유가 내 가족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을 열고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러는 나는 친정 엄마 제사도 안 지내냐고? 안 지낸다. 울 엄니 언제 돌아가셨는지 네이버 캘린더 봐야 안다. 그러나 엄마는 내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제사를 없애는 것이 진리라고 할 수 있냐고? 그냥 제사 음식 사서라도 부모님 뜻에 따라드리는 게 효도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도 진리와 효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진리란 무엇일까? 이 25살부터 평생 사랑한 여인 해리엣 테일러는 유부녀였다. 그녀의 남편 사망 후 둘은 결혼을 했고 7년 후 프랑스 여행 중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밀은 해리엣의 무덤에서 멀지 않은 오두막에 머물며 그녀를 그리워하고, 이듬해 대부분이 그녀의 업적인 <자유론>을 출판해 그녀의 영전에 바친다. 이 책은 에게는 절대로 손대고 싶지 않은, 그 자체로 사랑의 기억이었다.

유교적인 가치관에 의하면 은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게 진리인가?

밀은 거짓 의견도 탄압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거짓 의견에 대한 반론과 증거를 제시하면 진실을 더 빛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불합리한 명령에는 합리적인 의견을 내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결국 이런저런 반박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빛나야 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나라에 따라서 대다수의 의견이나 관습에 따라서 바뀐다면 진리가 아니다.

효도는 진리인가? 내가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부모님은 공경의 대상이어야 하는가? 효도는 진리가 아니다. 제사와 같이 사회가 만들어낸 개인의 자유를 압박하는 구속일 뿐이다. 만약 효도가 진리라면 부모를 버리는 자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가페적인 부모의 사랑도 효도도 모두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진리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제사가 진리라는 것인가? 그래서 제사와 효도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선택의 문제는 마지막에 한 번 더 이야기하겠다.

은 만약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국가가 이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술 마시는 것은 자유지만 내가 음주 운전을 한다면 국가는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 타인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 외에는? 가족은 타인이 아니니까 피해를 줘도 된다는 말인가?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음주 운전을 해도 된다는 말 아닌가? 가족도 타인이다. 나 아닌 사람은 모두 타인이다. 가족도 나에 해당된다면 내가 내 가족을 치어 죽였어도 국가가 처벌하면 안 되는데 내가 내 자식을 죽이면 처벌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Freedom이 아닌 Liberty에 관한 책이다. 나는 가장 먼저 정치철학자 김만권 교수님의 '해제'를 읽었다. 자유라는 말을 나는 Freedom이라고 배웠다. <자유론>하면 Freedom Theory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원제를 보면 On Liberty다. 둘이 뭐가 틀린가 했더니 Freedom은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자유로 개인에 국한되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 이런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하는 Freedom의 공적인 조건을 다룬다. 이 공적인 조건이 정부 권력에 대한 제한인 Liberty다. Liberty 하면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이 생각난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새로운 땅으로 온 이민자들에게 손에 든 횃불은 희망과 자유의 상징이었고, 책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다. 나는 여신상 발밑에 끊어진 쇠사슬이 있는 건 몰랐다. 압박과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한다. 이 개인의 Freedom을 얻기 위한 모든 것들이 Liberty가 아닐까?

이 <자유론>에서 말하는 자유의 핵심은 공권력 행사에 제한을 두고, 그 제한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이 제정되었다. 근대 헌법은 기본권과 권력구조로 되어있다. 기본권이란 인간이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 법 앞에서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평등권, 국가의 간섭 없이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자유권 등이 있다. 권력구조는 흔히 권력 분립을 통해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했다.

누군가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원래 이 표현의 자유란 공권력의 억압을 견제하고 대항하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억압적 공권력에 맞서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이를 왜곡하여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에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내가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표현하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분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

왜 이렇게 질문을 해 보냐 하면 이 말한 오류 가능성이라는 말 때문이다. 오류 가능성은 당신도 나도 다 틀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오류 가능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극단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극단주의는 타자의 말을 경청하는 일을 거부하기에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강요와 폭력을 조장한다. 내가 뭐 강요와 폭력까지 조장하겠냐마는 내 억울함 때문에 극단으로 치달아 시아버지의 말을 경청하기를 거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인류를 바꾼 것은 낙관론자들이었다. 이건 안돼, 어려워, 못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 이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바뀌어야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인류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테스 형에게 세상이 왜 이러냐고 물을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꿈이 없다고 포기할 것도 아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세상 속에서 내가 올바르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는 게 먼저다. 그래야 사회가 바뀐다.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이 더 이상 악인에게 당하지 않는 세상은, 착하고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산다. 성취하기 위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산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꼭 그런 말 한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택배를 하다가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걸어가는 할머니를 본다. 그동안 먹고살라고 억지로 일했는데 이 할머니를 보며 갑지가 이렇게 무르팍도 안 아프고 젊다는 게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한 것인지 깨닫는다. 집을 사거나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걱정 대신 행복감이 몰려든다. 이 순간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이다.

사르트르의 Life is C between B and D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인생은 B와 D 사이(Birth and Death)에서의 끊임없는 선택(Choice)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백지의 상태로 태어나 자유 의지에 의해 나의 본질을 만들어간다. 나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고 나의 자유를 박탈할 수 없다. 이것이 실존주의 철학이다. 현대 철학은 나는 나의 주인이며 주체다. 따라서 세상이 정해놓은 룰과 정답에 따를 것이 아니라 나만의 정답을 찾겠다는 것이다.

나의 선택은 내가 지켜야 할 사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인가? 어쩌면 진정한 자유란 당신과 내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나만 자유롭고 행복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더 넓고 이타적인 목표에서 오는 게 아닐까?

우리를 지금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사고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철학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대한 해방의 철학은 <자유론>이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내게는 제사였다. 밀의 <자유론>에서 내게 도움이 되는 포인트를 찾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보았다. 내 의견이 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로 내 글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둔다.

끝으로 옮긴이 김만권 교수님은 인생의 모든 일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저서도 무려 11권이나 된다. 그래서 그는 삶의 목표를 행운으로 누리며 얻은 지식을 사회에 실천으로 돌려주는 일로 삼았다.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고, 연대 국제학 대학원 객원교수로도 일하고 있지만 그의 교실은 누구라도 불러주는 곳, 그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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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줄거리를 회수하라
김연주 지음, 박시현 그림 / 풀빛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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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든 믿음이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서툰 믿음만큼 관계를 해치는 것도 없으니까.

이 책은 고등학교 1 학년 서하나와 스토리텔러가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속, 꼬여버린 줄거리를 회수하는 퀘스트를 달성해 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퀘스트란 롤플레잉 게임에서 주인공이 NPC(Non-Player Character)로부터 받는 임무, 즉 미션을 말한다. 책에는 녹색 글자로 표시된 부분에 나온다.

처음에는 하나 혼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으로 들어가고 그다음에는 스토리 텔러 B와 함께 <어린 왕자> 속으로 간다. 마지막은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가 <별주부전>과 함께 섞여버린 이야기 속으로 A와 함께 간다.

어떻게 사람이 책 속으로 들어가지? 신비한 자수정 때문이었다. 이것을 일정 속도 이상으로 진동시키면 차원의 틈이 열려서 책 속의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는 것. 그래서 이 외계 물질 NF3908은 '책 속으로 향하는 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나는 자기 방에 갑자기 책 속에서 나타난 스토리텔러 A를 만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으로 들어갔다. 엘리스가 된 것이다. 이렇게 빙의가 돼버리면 엔딩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빙의된 책에서 나갈 수 없다. 이곳에서 줄거리를 회수해야만 한다.

하나의 놀라운 점은 빙의된 캐릭터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책 감응도 수치 100%. 동화자는 캐릭터에 스토리텔러처럼 빙의되는 것이 아니라 동화된다. 빙의는 한 육체에 2개의 영혼이 공존하지만, 동화는 한 육체에 한 영혼만 존재한다. 캐릭터의 영혼과 융화되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줄거리를 회수하자, 스토리텔링 협회에서 하나를 데리러 나온 스토리텔러 B와 만나게 된다. 그다음 퀘스트는 <어린 왕자>다. 장미로 빙의된 B가 간 소행성에는 어린 왕자가 아닌 팝콘만 잔뜩 먹어서 뚱뚱해진 할아버지가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여우로 동화된 하나는 보아뱀과 친구가 되고 진화한 보아뱀이 소행성 B612로 하나를 데려다준다.

하나가 어린 왕자에게 가니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린 왕자를 산책시키세요'라는 퀘스트가 주어졌다. 하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공원을 걸었다. 왜 우울한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를 때는 걷다 보면 이런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정리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단다. 나도 무조건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게 내버려두며 걷다가 점점 아무 생각이 안 나게 되면 뇌가 쉬게 되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어린 왕자는 노을을 보며 이게 마지막이라고 한다. 하나는 내일 또 보면 되지 않냐고 했는데, 어린 왕자는 오늘의 노을은 오늘뿐이라며 슬퍼한다. 하늘 아래 같은 붉은색이 없듯, 노을도 다 다르다고. 그래서 십인십색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우리 모두는 다 다르기에 세상이 빛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에 재밌게 봤던 <대행사>라는 드라마 대사처럼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나처럼 책을 읽으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을 키워간다면 기쁨은 배로, 슬픔은 반으로 나눌 수 있는 멋찐 어른이 될 것이다.

이제 어린 왕자와 이별할 시간.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호를 떠날 준비를 한다. 하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정이 든 걸까? 이런 게 길들여지는 걸까? 우리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지구를 떠나야 한다. 그때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졌던 장미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서로를 길들이는 연습을 하나보다.

하나는 사무실에서 눈을 뜬다. 줄거리 회수 완료를 알리는 종료음과 함께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어쩌면 헤어진 어린 왕자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사진과 동영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실물로 볼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에 늘 나와 함께 살아있는 것 같다. 내가 잘 한 일 있으면 혼잣말로 엄마에게 자랑하니까.

마지막은 <별주부전>과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가 섞인 책 속으로 A와 함께 간다. 둘 다 토끼가 되었는데 별주부 전에서는 A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줄거리를 바로잡고, 거북이와 경주하는 토끼에 동화된 하나는 색다른 결론을 내면서 줄거리를 회수한다.

대한 스토리텔링 협회 이사장은 진상갑이고 스토리텔러 A에게 신입들이 다쳐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악명 높은 X가 배후일 것이라고 했다. 자수정과 안티 스토리텔러인 X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이제까지 발견된 조각은 5개. 이제 마지막 조각 하나를 찾아야 한다. 과연 이렇게 줄거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왜 그랬을까? 책 속에서 함께 찾아보자.

나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렇게 정신없이 읽었는데 내 조카에게 선물해 주면 엄청 좋아할 것 같다. 표지까지 반짝반짝 빛나서 너무 예쁘다. 나는 아직 나의 꿈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찾으려고 책을 읽는 과정이 행복하다. 설령 꿈을 찾지 못한다 해도 매 순간 새로운 책과 함께하는 여행 자체가 참 즐겁다. 소설 속 하나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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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 서울을 잇다 - 공학 박사가 들려주는 한강 다리의 놀라운 기술과 역사
윤세윤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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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전한 한강을 위해 희생되신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바친다.

<한강 다리, 서울을 잇다>는 한강에 있는 다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제정된 '시설물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안전한 통행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고 이후 한강의 모든 다리에 정밀 안전 진단을 시행했고, 유지관리라는 개념이 등장해서 더 이상의 사고는 없었던 것이다.

한남 대교 이야기 중에 소양강댐이 한강 수위를 조절하여 강남 지역을 대도시로 변모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때 강줄기 흐름을 바꾸고 산을 헐어야 하는 어려운 공사를 하다가 공사 중 37명의 기술자와 근로자가 작업 현장에서 순직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수도권에 살면서 집이 한 번도 물에 잠긴 적이 없다면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안전 뒤에는 이런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한강에 대해서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그냥 있나 보다 했지 느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한강도 다리도 진심으로 느껴진다. 굳이 왜 느껴야 하냐고? 우리나라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내가 한국인인 것이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국의 템즈강과 파리의 센 강은 우리나라의 안양천 또는 분당에 있는 탄천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강이었다. 그에 비하면 한강은 1킬로미터 이상의 강폭을 가진 거의 바다인 셈. 그래서 강 바람이 센 거였다. 바다처럼 큰 강이어서.

다리를 떠나 남산이랑 관악산 우면산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인왕산, 청계산, 아차산 등도 모두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 이렇게 많은 산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전주 한옥마을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북한산 한옥 마을도 있었다.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에서 서울이 가장 잘 내려다보인다고 한다. 여기는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니 정말 서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대중교통으로 다리를 관람하는 법이었다.

1. 양화대교

한강 최초의 다리가 한강 철교라면 우리나라의 기술로 지은 최초의 다리는 양화대교다. 다리 이름은 몰랐지만 잠두봉의 순교자 박물관은 오다 가다 많이 봤던 것 같다. 누에가 머리를 든 모습과 비슷해서 잠두봉이다. 머리가 잘리는 산이라는 뜻의 '절두산'이라고도 한다. 그저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죽여도 되었던 가슴 아픈 흔적이다.

합정역 7번 출구로 나가 한강 방향으로 가면 절두산과 순교자 박물관이 있는 양화진으로 갈 수 있다. 선유교를 건너면 양화한강공원으로 가게 된다. 9호선 선유도역에서 걸어왔으면 이 다리를 통해 선유도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알려주는 가이드북 역할도 톡톡히 한다.

2. 원효대교

영화 <괴물>에서 한강 어딘가의 콘크리트 터널 같은 공간이 원효대교 북단에 위치해 있다. 원효대교의 이름은 원효로에서 따왔고, 원효는 원효(元曉) 대사에서 따왔다. 효창공원에는 원효대사의 동상도 있고 백범 김구 선생의 묘와 기념관까지 있다는 것을 나만 지금 안 건가? 원효대사가 괴물을 때려잡는 원효대교.

원효대교는 5호선 여의나루역 2번 출구와 연결되어 있고,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한강공원 주차 사이트에서 주차장 상황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에디스톤 등대에 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3. 한강 철교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처음 놓인 것이 한강 철교다. 철도가 지나는 다리를 철교라고 하고 철로 만든 다리도 철교라고 한다. 한강 철교는 제1철교에서 제4철교의 4개가 있는데 9호선 노들역 1번 출구로 나와 사육신 역사 공원으로 가면 한강철교를 볼 수 있는 우수 조망명소라는 전망대가 있다.

노들역에서 건널목을 건너 노들나루공원을 대각선으로 질러가면 한강대교 입구의 사거리가 나온다. 이 입구의 왼쪽으로 자전거와 사람들이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같이 있다니, 나도 한강 변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한강 철교를 느끼고 싶다면 노량진역에서 1호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가면 된다. 급행을 타면 제1철교와 제2철교를 이용해서 한강을 건너볼 수 있다.

강철왕 카네기를 아시는지? 나는 카네기란 사람이 강철처럼 굳세게 뭔가 인생에서 이뤄낸 사람이어서 위인전에 나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철강회사를 만들어서 강철왕이라고 한다. 초딩 때 들었던 강철왕의 뜻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회사 이름은 바뀌었지만 본사는 피츠버그에 있고, 미식축구팀 이름도 스틸러스다.

한강철교와 에펠탑은 같은 트러스 구조로 만들어졌다. 책에는 이 구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한강 철교를 지날 일이 있으면 이 다리가 에펠탑과 같은 츄러스 구조로 되어있다고만 기억하겠다. 츄러스나 트러스나 발음이 비슷하니깐.

서울 함 공원도 특이하다. 성산대교 북단에 퇴역 군함과 잠수함을 전시하는데 아이들뿐 아니고 어른도 가면 이색적인 볼거리라 재밌을 것 같다.

4. 한강 대교

옛날에 한강에 다리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건넜을까? 배 타고 건넜겠지? 그런데 정조는 배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배를 강에 엄청 많이 띄우고 그 위에 판자를 연결하면 배다리가 된다. 어찌 이런 생각을?

그러면 물속에 어떻게 교각을 만들었을까? 교각(橋脚)은 다리를 받치는 다리, 즉 기둥을 말한다. 위아래가 뚫린 양동이를 모래사장에 세우는 것으로 비유를 해 주시니 이해가 쏙 되었다. 위아래가 뚫린 양동이를 케이슨이라고 한다. 케이스라고 생각해도 될 듯. 그래서 이런 공법을 오픈 케이슨 공법이라고 한다.

한강 대교는 제1한강교, 양화대교는 제2한강교, 한남 대교는 제3한강교라고 불렀는데 1984년 한강 다리 이름을 일제히 바꾸면서 한강 대교가 되었다. 현재 한강대교는 1930년대와 1980년대의 나이가 다른 쌍둥이 다리다.

9호선 노들역 3번 출구로 나와 걸으면 노량진 문화원과 노량진 교회가 있고, 용이 달리고 봉이 날아드는 정자라는 뜻의 용양봉저정이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가기 위해 한강을 배다리로 건너고 쉬던 행궁이다.

나는 용양봉저정 공원에서 블로거들이 찍은 사진으로 다리 사진을 보았다. 너무 멋있다! 하늘 전망대 조망점에서는 원효대교, 한강철교, 한강대교가 보인다. 정말 아치 모양의 흰색 쌍둥이 다리네? 나도 어디 가서 이제 아는 척 좀 할 수 있겠다.

5. 반포 대교

반포대교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2층 구조의 다리다. 위를 반포대교라 하고 비 많이 오면 잠기는 아래쪽을 잠수교라고 한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보는 멋진 분수쇼를 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9호선 고속터미널 역 G2 출구는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에서 반포 한강공원까지 이어지는 360미터 길이의 지하 통로가 공공보행 통로로 개방되어 있다. 이 통로를 통해 지상으로 나가지 않고 곧바로 반포 한강공원에 도달할 수 있다. 통로 끝자락에 이르면 하얀 타일로 마감된 구간이 나오는데 여기서 아래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통해 한강공원으로 진입한다.

계단을 내려와 잠시 걸으면 장대한 반포 대교와 잠수교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 상류 쪽으로 걸으면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동작역에서 반포 한강공원까지 무료로 운행되는 한강 해치카 셔틀 정류장이 있다.

세빛 섬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튜브스터라고 배에서 식사를 즐기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는 세빛 섬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튜브 스터에서 1시간에 55,000원이면 한강에서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 대신 튜브 스터?

6. 한남 대교

혜은이의 '제3한강교'라는 노래 제목이 한남대교다. 이 노래가 유행한 이후, 오렌지족이 등장했고,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 같은 상권이 탄생했다. 경기 남부에서 서울 시내로 가기 위해 빨간색 광역 버스를 타면 경부고속도로에서 나오자마자 왕복 12차로의 한강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다리가 바로 한남대교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한남대교에서 남산타워가 보이고 아 서울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남산 1호 터널을 지나면 명동으로 진입한다. 이 다리 덕에 말죽거리는 땅값이 1년 사이 10배가 올랐지만 강남지역은 상습 침수지역이라 개발되기 어려웠다. 오늘날의 강남을 있게 한 것은 소양강댐 덕분이었다.

7. 성수 대교

수인 분당선 서울숲 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서울숲공원 정문이 나온다. 문화 예술공원, 생태숲, 체험학습원, 습지 생태원의 특색 있는 4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어 공원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 식사를 하고 가기를 추천한다. 생태숲으로 가는 길에는 성수대교 북단 아래를 지나게 된다.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는 서울숲공원에서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울타리로 막혀 도보로 접근이 힘들다. 위령비조차 도보로 접근이 어려운 현실은 우리 사회가 그들의 희생과 교훈을 얼마나 쉽게 잊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이지만, 그 고통을 짐작하기조차 어렵지만 성수대교 붕괴로 희생되신 분들과 무학여고 학생들,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을 자책하며 생을 마감하신 부모님들을 추모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을 받으셨던 유가족 분들에게 책으로나마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작가님의 마음에 감동했다.

8. 올림픽 대교

올림픽 대교는 88 서울 올림픽을 영구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현상 공모를 시행하여 당선된 설계를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주탑 꼭대기에 있는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윤동규 교수의 '영원한 불'이라는 작품이다. 이 조형물을 내려놓고 하강하던 헬기는 로터가 조형물과 부딪치며 추락했고, 조종사, 부조종사, 기관사 모두 현장에서 순직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자.

암사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한 암사종합시장이 있다. 여기서 간식을 사고 길을 건너 버스를 탄다. 340번, 3318번, 3324번 중 하나를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광나루한강공원으로 들어가는 즈믄길나들목 가는 길이 나온다. 하류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천호대교 아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천호대교를 지나면 올림픽대교와 테크노마트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이 펼쳐진다.

강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테크노마트 9층 '하늘공원'에서는 올림픽대교를 더욱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블로그 사진을 보니 정말 올림픽 대로가 눈앞에서 쫙 펼쳐진다. 이곳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니 꼭 노을 시간에 갈 것.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한다. 테크노마트 옆에는 이제 사라져 가는 포차 거리도 있다.

이렇게 8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다리에 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등대 이야기, 댐 이야기, 경제 이야기, 사회 이야기 등 다리를 통해 서울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구경 하고 온 느낌이다. 나중에 시간 되면 이 책 한 권 들고 나도 한강 다리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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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은 선물이었다
정성교 지음 / 좋은땅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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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겹겹이 쌓인 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별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예쁘다.

이 책은 자연과 함께 걸으며 자연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의 작지만 큰 실천 이야기다. 환경운동가이자 산을 오르며 청소하는 저자의 인스타그램에는 자연에서 거둬들인 우리들의 부끄러운 흔적들이 한 봉지 가득 담겨 있다. 이 봉지야말로 아름다운 자연을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사랑 그 자체가 아닐까?

이 책은 산 타는 남자 정성교 작가님의 세 번째 책이다. 전작에서의 산과 함께하는 풍경은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 넣었다. <부족은 선물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자연을 접하고 느낄 수 있었다. 부족했기에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다. 현재의 나는 자연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이 만들어 준 것임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이자 제일 큰 학교인 자연 속으로 출퇴근을 한다.

책에서 얻은 수익금을 자연에 기부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 산을 오르며 자연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이 확대되어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왠지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을 아끼면, 자연은 더 맑고 푸르른 공기를 선물해 주지 않으려나?

요새 공기질이 너무 나빠서 목이 매일 칼칼하고 아프다. 게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패딩을 입었는데 갑자기 반팔을 입어야 할 지경이다. 이런 환경을 우리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전기랑 가스도 아끼고, 옷도 입던 옷 엔간하면 계속 입고, 쓰레기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님처럼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등산 코스를 돌며 산에 있는 쓰레기를 치워내는 일도 있었다. 나는 등산이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막걸리 한잔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흥청망청 놀다가 버리고 간 쓰레기들은 작가님께서 모두 다 거두어 오신다. 나는 작가님의 이런 행동이 너무도 인상적이고 귀하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등산을 하시면서 쓰레기 주울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작가님 산행의 목적 자체가 쓰레기 줍기다. 건강은 자연이 덤으로 선물해 주지 않을까. 쓰레기를 줍기 위해 산을 오르기는 해도, 쓰레기를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는 작가님... 특히 담배꽁초 앞에서는 가슴이 철렁하셨단다. 작은 불씨 하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회사의 주주는 지구라는 파타고니아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회사도 개인도 이렇게 자연을 위하는 마음들이 모인다면 이제 머지않아 다시 사계절을 느끼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실천하는 한 사람의 힘이 두 사람을 만들고 그래서 공동체가 생기고 자연은 더 넓고 크게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사랑의 선순환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니, 어머님께서 해주셨다는 흑설탕을 묻힌 인절미 구이가 생각난다. 나는 내가 먹고 싶어가지고 이것을 누가 사업 아이템으로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릇노릇하게 즉석에서 인절미를 구워서 꿀도 찍어 먹고 흑설탕도 찍어 먹고, 콩고물도 묻혀 먹고, 꿀 찍어서 콩고물을 또 찍어 먹고 취향껏 인절미 구이를 즐기는 것이다. 너무너무 맛있을 거 같다.

이 인절미 구이 이야기에 대전역에서 파는 호떡 빵 생각이 났다. 호떡은 식으면 맛이 없는데 페이스트리로 되어 있고 안에 슈크림이 들어서 언제 먹어도 맛있다. 그런데 인절미를 즉석에서 구워서 먹을 수 있다면? <오징어 게임>이 옛날 놀이를 현재에 재현했듯 이 책 속에는 스타트업을 하실 분들의 추억의 소환 거리가 많이 나온다.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이 소시지와 계란, 어묵 반찬을 싸올 때, 저자의 도시락에는 밥과 김치, 멸치뿐이었지만 한 번도 도시락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나만의 세상이 있고,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어서 짜증이 나거나 투정과 불평이 가득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만들어 왔고 내가 만들어 갈 것에 대한 소중함. 이 소중함에 대한 반응이 더 커야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남이 가진 것, 남이 누리는 것에 반응하는 것은 스스로 내 속에 억지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처음 결혼했을 때 남들은, 내 친구들은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우리는, 나는으로 시작하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도 친구들이 투자를 잘해서 또는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에 아파트를 샀다는 말을 들으면 질투 난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책을 왜 읽나 싶다. 하지만 이때 자연을 생각해 보았다. 좁은 도시와 빌딩숲이 아닌,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넓은 자연 속에서는 강남 아파트 건 지방 월세방이건 똑같이, 건물이 아니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보인다.

자연과 가까이하면 철학자가 되나 보다. 길을 잘못 들거나 실수를 하면 자책하거나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자연을 통해 배우면서 스스로 나아져 간다는 것을 느낄 때 얼마나 뿌듯할까?

스스로의 만족이 반복될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 자존감의 비교 대상은 나 자신이 된다. 이렇게 계속 성장하면서 꾸준한 만족감을 느끼면 감사와 행복이 저절로 넘친다. 이렇게 풍요로운 삶은 자연이 가르쳐 준 내 안으로 걸어가는 길을 택했을 때 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그저 자연을 숨 쉬게 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좁은 길을 걷고 계신 작가님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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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태국 여행을 10배 재밌게 만들어 주는 책 - 뻔한 태국 여행은 그만
김정욱 지음 / 상상의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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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감성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출의 탈을 쓰고 있지만 철저히 인생의 저축이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유명한 곳을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오는 것이 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여행에 대한 생각을 근본부터 완전히 바꾸어 놓은 고마운 책이다. 표지에 있는 말, 뻔한 태국 여행은 그만이라는 말은 나처럼 사진 찍고,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하고 오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말이다.

그 뻔한 여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 추억이 있고 행복이 있다. 그런데 보다 깊은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당신의 태국 여행을 10배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란 작가님의 20여 년간에 걸친 태국 여행을 통해 태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왜 태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또다시 태국을 오가며 일일이 직접 갤럭시 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구성했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관광명소 사진도 있지만, 뻔한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아니고서는 알려줄 수 없는 특이한 곳을 많이 알려준다. 일례로 방콕 시내에 위치한 '짐 톰슨 하우스'나 '국립 방콕 박물관' 같은 곳이다. 한국 관광객들이 의외로 잘 가지 않는다고 하니 여유로운 관광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사뭇쁘라깐'을 아시는지? 우리나라 4호선 끝자락인 '오이도역'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듯 방콕에서 BTS를 타고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나는 왜 방탄소년단이 태국에 갔나 싶었다는. 찾아보니 방콕 수도권과 근교를 잇는 도시철도를 BTS라고 했다.

BTS รถไฟฟ้าบีทีเอส, Bangkok Mass Transit System의 약자인데, 2025년 1월 기준, 일일권을 판매한다. 아침 일찍 구입하면 당일 내 몇 번이든 반복해서 탈 수 있다. '게하 역'으로 가면 역 가까이에 '사뭇쁘라깐 바다'가 펼쳐진다. 전망이 끝내주는 레스토랑도 많다. 책에 있는 레스토랑도 너무 낭만적이다.

태국을 사랑하는 저자가 태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고, 머물며, 경험했던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색다르기도 한 에피소드들도 재밌다. 나무 옆에 웬 여자 옷인가 했더니 나무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양주 킵 해놓은 것인 줄 알았더니, 오토바이 주유용 휘발유 병이었다. 태국이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인 것도 처음 알았다. 게다가 '도입살길 천호필달'이라는 한국인도 모르는 한글 사진은 어떻게 찍으신 건지?

저자가 태국어를 처음 공부할 때는 분명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배웠기에 태국에도 4계절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국의 계절은 여름과 더운 여름 그리고 정말 미치게 더운 여름 이렇게 3계절이다. 한 마디로 태국은 그냥 사계절이 덥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나는 알 수 없는 태국 역의 비유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으로 비유를 해 주셔서 이해도를 확 높여버리신 저자님의 센스가 너무 맘에 든다. 첫 부분에 나오는 열차표 사건이다. 서울역에서 대전역을 가는 사람이 부산행을 끊었다. 가만있으면 대전역을 가는데 깜짝 놀라 수원역에 내려서 중도에 표를 바꾸었다. 딱 이런 상황이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대전에 사는데 수원에서 열차를 잘못 탔다. 중간에 천안에서 내려서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열차를 타면 되는데 당황한 나머지 이상한 곳에 내려서 다시 네이버 지도로 경로 검색해서 한참만에 돌아서 대전에 왔다. 그래도 워낙 지도도 잘 되어 있고 내 위치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라고 방향까지 알려줘서 참 감사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서울역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타는 거 맞냐고 물어본 학생들도 생각난다. 내 표를 보여주니 수원역이 아니라 서울역을 간다는 것이다. 서로 타는 곳이 틀릴 거란다. 그래서 수원역 다음이 영등포역이고, 그다음이 서울역이라고 여기서 같이 타면 된다고 알려줬다. 언어도 잘 통하는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젠 태국에서도 휴대폰과 한국 신용카드로 기차표를 쉽게 예약할 수 있다. 심지어 침대 자리 지정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실수도 있고 사람 사는 재미도 있었던 옛날이 왜 그립게 느껴지냐고 묻는다.

나는 어문계열을 나와서 그런지 유독 언어에 관심이 많다. 태국어도 한번 배우고 싶었지만 성조가 5개나 된다고 하고 글씨도 도저히 내가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배울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자음이 42개라서 핸드폰에 있는 키보드가 두 판이라는 것이다. 시프트 위치에 있는 위로된 화살표를 누르면 새로운 자음판이 또 나온다. 정말 태국어 하시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1월 2월 이런 식으로 월을 말할 때 숫자를 쓰는데 태국에서는 모든 달을 숫자를 안 쓰고 태국어로 쓴다. 그래서 자기들도 헷갈려 한다고 한다. 나도 검색을 해서 태국 글자를 한번 접해봤는데 눈이 뱅뱅 돈다. 1월 มกราคม (마카라콤), 2월 กุมภาพันธ์ (꿈파판), 3월 มีนาคม (미나콤)...@@...

저자는 월 이름이 별자리에서 유래한 것을 알게 된다. 복잡해 보이고 생소한 철자들 속에서 질서와 숨겨진 철학을 발견하는 순간 복잡함에서 기인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뭔가를 이해했다는 뿌듯함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으니,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태국을 떠올리면 태국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아닌데 돌아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환한 웃음을 웃어 주고, 어려운 일은 자기 일처럼 기꺼이 도와주고 안심시켜 주었던 넉넉한 마음의 모든 태국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p.287)

이 책을 읽으니 '여행 작가'가 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 아저씨에게 100번 젓는 믹스커피 비법을 배우는 장면도 그렇게 행복해 보인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일상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풀어내는 일, 읽는 사람도 함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계시는 작가님께 이 책 덕분에, 태국 가면 남들과 다른 일정으로 보다 많은 행복을 담아오겠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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