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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태국 여행을 10배 재밌게 만들어 주는 책 - 뻔한 태국 여행은 그만
김정욱 지음 / 상상의순 / 2025년 2월
평점 :
♥ 지식과감성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출의 탈을 쓰고 있지만 철저히 인생의 저축이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유명한 곳을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오는 것이 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여행에 대한 생각을 근본부터 완전히 바꾸어 놓은 고마운 책이다. 표지에 있는 말, 뻔한 태국 여행은 그만이라는 말은 나처럼 사진 찍고,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하고 오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말이다.
그 뻔한 여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 추억이 있고 행복이 있다. 그런데 보다 깊은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당신의 태국 여행을 10배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란 작가님의 20여 년간에 걸친 태국 여행을 통해 태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왜 태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또다시 태국을 오가며 일일이 직접 갤럭시 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구성했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관광명소 사진도 있지만, 뻔한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아니고서는 알려줄 수 없는 특이한 곳을 많이 알려준다. 일례로 방콕 시내에 위치한 '짐 톰슨 하우스'나 '국립 방콕 박물관' 같은 곳이다. 한국 관광객들이 의외로 잘 가지 않는다고 하니 여유로운 관광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사뭇쁘라깐'을 아시는지? 우리나라 4호선 끝자락인 '오이도역'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듯 방콕에서 BTS를 타고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나는 왜 방탄소년단이 태국에 갔나 싶었다는. 찾아보니 방콕 수도권과 근교를 잇는 도시철도를 BTS라고 했다.
BTS는 รถไฟฟ้าบีทีเอส, Bangkok Mass Transit System의 약자인데, 2025년 1월 기준, 일일권을 판매한다. 아침 일찍 구입하면 당일 내 몇 번이든 반복해서 탈 수 있다. '게하 역'으로 가면 역 가까이에 '사뭇쁘라깐 바다'가 펼쳐진다. 전망이 끝내주는 레스토랑도 많다. 책에 있는 레스토랑도 너무 낭만적이다.
태국을 사랑하는 저자가 태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고, 머물며, 경험했던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색다르기도 한 에피소드들도 재밌다. 나무 옆에 웬 여자 옷인가 했더니 나무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양주 킵 해놓은 것인 줄 알았더니, 오토바이 주유용 휘발유 병이었다. 태국이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인 것도 처음 알았다. 게다가 '도입살길 천호필달'이라는 한국인도 모르는 한글 사진은 어떻게 찍으신 건지?
저자가 태국어를 처음 공부할 때는 분명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배웠기에 태국에도 4계절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국의 계절은 여름과 더운 여름 그리고 정말 미치게 더운 여름 이렇게 3계절이다. 한 마디로 태국은 그냥 사계절이 덥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나는 알 수 없는 태국 역의 비유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으로 비유를 해 주셔서 이해도를 확 높여버리신 저자님의 센스가 너무 맘에 든다. 첫 부분에 나오는 열차표 사건이다. 서울역에서 대전역을 가는 사람이 부산행을 끊었다. 가만있으면 대전역을 가는데 깜짝 놀라 수원역에 내려서 중도에 표를 바꾸었다. 딱 이런 상황이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대전에 사는데 수원에서 열차를 잘못 탔다. 중간에 천안에서 내려서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열차를 타면 되는데 당황한 나머지 이상한 곳에 내려서 다시 네이버 지도로 경로 검색해서 한참만에 돌아서 대전에 왔다. 그래도 워낙 지도도 잘 되어 있고 내 위치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라고 방향까지 알려줘서 참 감사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서울역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타는 거 맞냐고 물어본 학생들도 생각난다. 내 표를 보여주니 수원역이 아니라 서울역을 간다는 것이다. 서로 타는 곳이 틀릴 거란다. 그래서 수원역 다음이 영등포역이고, 그다음이 서울역이라고 여기서 같이 타면 된다고 알려줬다. 언어도 잘 통하는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젠 태국에서도 휴대폰과 한국 신용카드로 기차표를 쉽게 예약할 수 있다. 심지어 침대 자리 지정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실수도 있고 사람 사는 재미도 있었던 옛날이 왜 그립게 느껴지냐고 묻는다.
나는 어문계열을 나와서 그런지 유독 언어에 관심이 많다. 태국어도 한번 배우고 싶었지만 성조가 5개나 된다고 하고 글씨도 도저히 내가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배울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자음이 42개라서 핸드폰에 있는 키보드가 두 판이라는 것이다. 시프트 위치에 있는 위로된 화살표를 누르면 새로운 자음판이 또 나온다. 정말 태국어 하시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1월 2월 이런 식으로 월을 말할 때 숫자를 쓰는데 태국에서는 모든 달을 숫자를 안 쓰고 태국어로 쓴다. 그래서 자기들도 헷갈려 한다고 한다. 나도 검색을 해서 태국 글자를 한번 접해봤는데 눈이 뱅뱅 돈다. 1월 มกราคม (마카라콤), 2월 กุมภาพันธ์ (꿈파판), 3월 มีนาคม (미나콤)...@@...
저자는 월 이름이 별자리에서 유래한 것을 알게 된다. 복잡해 보이고 생소한 철자들 속에서 질서와 숨겨진 철학을 발견하는 순간 복잡함에서 기인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뭔가를 이해했다는 뿌듯함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으니,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태국을 떠올리면 태국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아닌데 돌아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환한 웃음을 웃어 주고, 어려운 일은 자기 일처럼 기꺼이 도와주고 안심시켜 주었던 넉넉한 마음의 모든 태국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p.287)
이 책을 읽으니 '여행 작가'가 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 아저씨에게 100번 젓는 믹스커피 비법을 배우는 장면도 그렇게 행복해 보인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일상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풀어내는 일, 읽는 사람도 함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계시는 작가님께 이 책 덕분에, 태국 가면 남들과 다른 일정으로 보다 많은 행복을 담아오겠다고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