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글쓰기 - 일잘러를 위한 관계와 소통의 기술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직장인의 글쓰기>의 특징은 관계소통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아는 부서장은 글도 잘 쓰고 똑똑했지만 위아래로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해 직장 생활이 고달팠다고 한다.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보고서는 물론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이 책은 말하듯 글을 쓰라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상사를 이해하고 직장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은 실전 글쓰기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소통으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글쓰기 자체보다 먼저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리 글을 잘 썼더라도 나는 안 읽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주인공이 되는 걸 포기하거나 양보하면 된다. 내가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말하지 말고 옆에서 들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러면 소통이 수월해진다. 글쓰기는 그다음이다.

이렇게 할 일도 많고 바쁜데 무슨 소통이냐고 소통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소통이 잘 되는 직장은 휴일에도 나가고 싶어질 정도라고 한다. 소통은 자기희생과 헌신을 요구한다. 나는 별로 관심 없는데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준다는 것은 자기희생이다. 헌신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으니까. 소통이 잘되면 적어도 월요병은 없다. 직장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산은 많이 올라본 사람이 잘 오른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잡문이라도 자주 써본 사람이 잘 쓴다. 아무리 낮은 산도 얕잡아봐서는 안 되듯이, 어떤 글도 만만한 글은 없다. 한 줄 한 줄을 메워나가는 악전고투의 과정이다. 아무리 등산의 고수라도 산에 가면 헐떡거리기는 마찬가지다. 글쓰기도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힘이 든다.

나도 서평단을 한지가 2년이 지났다. 글은 잡문이라도 자주 써본 사람이 잘 쓴다는 말은 내가 스스로 경험해 봐서 잘 안다. 참고로 2년 전에 썼던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라는 책을 읽고 쓴 서평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때는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라서 서평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오늘 이 서평도 하루 종일 고치고 있다.

1부 : 글쓰기

<나는 말하듯이 쓴다>는 저자의 책이 있다. 글쓰기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하듯이 쓰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직장에서 글 쓰는 일만 25년 했다. 저자가 말하는 직장에서 통과되는 글쓰기의 비법 6단계의 핵심 역시 한 사람의 독자를 정하고 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 사람의 독자를 정한다. 그 독자에게 이야기하려면 그 독자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정한 그 사람을 내 머릿속에 앉힌 다음 그에게 얘기하듯 쓴다. 한 문장, 한 문단을 쓰면서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고, 그 반응을 글에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독자가 돼서 읽어본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쓰기보다 고치기에 무게중심을 둔다고 한다. 저자는 상사가 평소에 지적했던 내용들을 모아서 오답노트 형태로 갖고 있었다. 한 사람의 독자를 잘 알아가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상사의 모든 것을 질문하고 기록하고 관심을 가져야 잘 알 수 있고, 그 한 사람의 독자인 상사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당사자가 아니고 훈수 두고 컨설팅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거나, 다른 사람이 돼서 미래로 갔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나도 글을 수정할 때 푹 자고 일어나서 쓴 내용을 다시 읽어보거나, 장소를 바꾸어 마치 남이 내 글을 대충 보는듯한 느낌으로 다시 읽어보면 수정할 곳이 꼭 생겼다.

글쓰기는 일단 많이 써야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술과 친구 하지 말고 글쓰기와 친구 하기를 권한다. 저자는 힘든 군 생활을 일기를 쓰면서 버텼다고 한다. 글쓰기는 치유의 효과도 있다. 일단 많이 쓰고 많이 고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쓰면 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 다시 썼고,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를 35년간 고쳐 썼다. 이것이 글쓰기를 잘하는 법이 아닐까?

글쓰기의 기본은 맞춤법과 띄어쓰기, 쉽고 명료하게 군더더기 없이 쓰기다. 맞춤법은 블로그의 맞춤법 검사 기능을 이용하면 되지만, 가끔 본인도 발견하지 못하는 오타가 나온다. 읽다가 혹시 오타를 발견하면 꼭 글 쓴 분에게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나도 누군가가 내게 오타를 알려주면 내 글을 꼼꼼히 읽어 주신 것에 기쁘고, 번거로울 텐데 지나치지 않고 알려 주셔서 감사했기 때문이다.

2부 : 상사의 심리

상사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의 기술과 슬기로운 직장 생활의 팁들이 담겨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눈에 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오래 다닌 직장이 없다. 단점만 찾았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장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해준 사람도 없었다. 내 가족, 내 직장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고 다니자. 좋은 말 할 게 없으면 침묵이 낫다.

상사는 회사 돌아가는 정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미주알고주알 가십성 정보를 알려주면 상사의 측근이 된 것 같겠지만 가벼운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해, 또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자리에 있다면 침묵이 최고인 것 같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말씀하셨듯, 이 세상에는 죄 없는 사람도 완벽한 사람도 없다.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남의 말이나 단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침묵으로 일관하자. 아니면 무관심도 좋을 것 같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명분 만들기다. 명분이란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이유다. 명분은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근거다. 또한 자기 스스로도 설득될 만큼 진심으로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명분은 거창하지 않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팩트를 기반으로 공익에 가까울수록 좋다. 명분은 공적인 눈치를 보게 함으로써 사적인 욕심과의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애국'이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사와 사이코패스의 공통점을 이야기한 부분이 재밌었다. 사이코패스는 치료가 안되니 사랑으로 품는 수밖에 없다. '돌아이 불변의 법칙!' 어딜 가나 또라이는 꼭 있다. 사람이 아니라 환경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열차 다니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조용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층간 소음이다. 아가들아~ 빨리빨리 어른이 되거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다.

3부 : 소통

글쓰기 이전에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저자는 스스로의 매력을 허점이 많은 거라고 한다. 사람들은 왜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우리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질투하고 시샘하므로 잘난척하는 사람은 백해무익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완벽하고 싶은 마음, 주인공이고 싶은 마음을 버리는 법은 잘 듣는 것이다. 귀를 기울임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조직 내 불통을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도 경청이다. 경청이란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반박하고 토를 달기보다, 그 말대로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사일로 현상(Silo Effect)은 곡식을 저장해두는 원통형 모양의 창고인 '사일로'에서 생긴 경영학 용어다. 각 부서가 사일로처럼 서로 담을 쌓고, 자기 부서의 이익만 추구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런 부서 이기주의 문제는 멤버십 트레이닝이나 정신 교육을 통한 소통 강화 활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스템과 공동의 목표를 확립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명쾌한 답도 알려주고, 비판의 기본기와 보고 요령, 효과적인 아부의 기술까지 전수해 준다.

똑똑하게 처신하는 법 15가지도 도움이 된다. 일례로 어떤 상사에게 인사해도 받지도 않길래 인사를 안 했더니, 누구는 인사도 안 한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상대방이 인사 안 받아줘도 나는 열심히 인사하자!

회식자리에서 말을 길게 하면 꼰대가 된다는 사실과 회사에 몰빵하면 왜 우습게 보는지도 알려준다. 마당발이 빨리 승진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사방팔방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친절하려 하니 너무 힘들었다. 저자의 솔루션은 좋은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나쁜 사람과는 나쁜 관계를 가지라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해결책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왜 상사는 허구한 날 위기라고 징징댈까? 상사 승낙 받는 9가지 방법, 직장인에게 필요한 4가지 태도, 좋은 관계를 위한 3가지 조언, 거만해 보이기보다는 안쓰러워 보이는 게 유리하다는 조언도 있다. 남들이 다 자기가 한다고 아우성을 칠 때 저자는 뒷전으로 밀려나 조용히 있었더니 상사가 너는 왜 아무 말도 안 하냐며 "바보야? 네가 해!"라고 했다. 세상은 바보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못난 사람, 지는 사람 편에 서고 싶어 한다.

p.331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탈을 쓰고 있다. 마치 글을 잘 쓰는 것처럼, 생각이 깊은 것처럼.

4부 : 실전

글쓰기 필살기. 상대의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움직이는 말하기와 글쓰기, 그리고 처세에 관한 이야기다. 주로 실전 테크닉에 관한 것을 알려준다. 보고서 작성의 본질은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카테고리는 많을수록 좋다. 세분화할수록 정밀하고 친절한 보고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두면 쓸 데 많은 보고서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워보자.

보고서를 잘 쓰는 4가지 팁, 보고 수준을 높이는 3단계, 보고서 작성 시 슬럼프 극복 비법, 이메일로 보고할 때 유의점, 기획서 작성 십계명, 마케팅 글쓰기 접근법 12가지, 마케팅 글쓰기 소재 9가지, 프레젠테이션 달인 되기, 연설문 작성의 기초, 협상의 성공 조건 등 실전 팁을 배운다.

선이후난(先易後難) 전략은 과연 실용적일까? 쉬운 것 먼저,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한다는 뜻인데 성공 경험을 쌓는다는 개인적인 면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어려운 사안을 뒤로 미루면 대부분 협상 마무리에 가서 어려움에 봉착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물거품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을 먼저 해결해야 거기에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쉬운 것은 서로 양보하며 결론을 내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서 실전 글쓰기를 익혀보자.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회장님의 글쓰기로, 그 회장님의 글쓰기는 <직장인의 글쓰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글쓰기 입문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강원국 작가님. 오랫동안 글쓰기 인생을 살아온 것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정리해서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작가님 리스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리만자로의 표범 - 상
최찬혁 지음 / 좋은땅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문 앞에 서 있으니 내가 부르지 않아도 오지만, 삶은 내가 적극적으로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삶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음의 증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최민준은 학창 시절 소중한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이 생을 마감한 충격 때문인지 조울증을 앓고 있다. 그의 삶은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에게 친구 C와 아들을 잃고 술집을 하게 된 술집 사장 K,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하루카를 통해 상실은 자신만이 겪는 아픔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조울증이 뭔지 사전을 찾아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힘든 병인지 알게 되었다. 저자가 극단적으로 감정이 요동치며 무너져 내리는 주인공 민준의 마음을 생생하게 표현해 낸 덕분이다. 고통을 이겨내고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색다른 위로를 건넨다.

p.34 약을 먹으면 감정이 다 죽어 버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그냥 무미건조해져. 마치 무언가에 덮여 있는 느낌이야. 숨 쉬는 것도 둔해지고, 감각이 다 무뎌져.

민준은 여자친구를 떠나보내고부터 이상하게 감정이 막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날은 바닥까지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서 조울증 판정을 받는다. 병명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더 실감이 났다고 한다. 내가 그냥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병에 걸린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 그러나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는다.

하루카 어머니는 중학생 때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애들이 뭘 알겠냐고 말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아플 건 다 아프다고 하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어머니의 부재는 하루카에게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안겨줬다. 친구들은 말로는 위로하는척하면서도 그녀를 자꾸 따돌렸다.

하루카 괴롭히는 정도는 점점 심해졌고, 책상 위에 누군가가 남긴 "너도 따라가"라는 메모를 본 순간 진짜로 엄마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더 이상 일본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던 아빠는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이민을 간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녀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괴롭힘을 당했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에스콰이어'에서 강효민 변호사가 과거 학폭 방관자였던 자신의 과오를 마주하고 살인죄로 기소된 학폭 피해자의 변호를 맡게 되는 내용이 나온다. 강효민 변호사와 엄마의 화해 장면은 마음이 찡했다. 학폭 피해자였던 하루카의 고통 역시 강효민 변호사의 학교 친구였던 학폭 피해자 김영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소윤이라는 이름이 싫어 김영미로 개명한 그녀의 삶도 하루카의 삶도 학폭이 없었으면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조금씩이나마 방관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무전 유죄가 아니고 정의가 이기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변화가 느껴져서인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성별과 국적, 인종은 물론 학폭의 피해자인 것, 조울증인 것 등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불평하기 보다, 인정하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 냈다. 세상이 귀 기울여 주지 않을 때, 종이 위에 쏟아낸 수많은 문장들은 저자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했다는 하루카 역시 자신이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평안함을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책 제목을 보고 나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생각나 가사를 찾아봤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하이에나는 무리 생활을, 표범은 철저한 단독 생활을 한다. 그래서 한 마리의 표범은 그 높은 킬리만자로의 정상까지 올라가 혼자 얼어 죽었나 보다. 책 표지에도 표범 한 마리가 눈 위를 걷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고독과 역경 속에서 홀로 걷고 있는 민준의 모습일까?

너무나 고독했던 하루카와 과거의 상실로 인해 괴로웠던 민준의 고독이 서로를 끌어당긴 것이었는지 민준은 하루카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런 우연과 아주 사소한 만남과 평범한 일상을 통해 민준은 삶의 의미를 조금씩 되찾는다. 작은 기쁨들을 다시 느끼게 된 민준은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삶에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덮인 정상에서 얼어붙은 채 발견된 표범이 등장한다. 아무도 왜 표범이 그 꼭대기까지 올라갔는지 알지 못한다며 삶의 의미와 죽음, 그리고 고독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작가는 이 상징을 민준에게 겹쳐 놓는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민준의 삶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혼자만의 싸움이다. 아무도 오르지 않는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홀로 올라가 죽은 표범처럼, 민준은 자신만의 고통과 싸운다.

표범이 왜 정상에 올라갔는지 알 수 없듯, 민준의 고통도, 우리가 사는 삶의 이유도 알 수 없다. 하이에나처럼 무리에 섞여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건지, 힘들어도 표범처럼 홀로 고독한 삶을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건지 정답이 없다.

p.308 민준 씨는 지금 약물이 정신을 잡아주는 중이에요. 그런데 생각을 약으로 잠깐 눌러 놓는 거예요. 마음속 바닥을 스스로 뒤집지 않으면 다시 곰팡이가 피어납니다.

저자는 정신병을 우리가 앓고 있는 삶의 한 방식으로 본다. 사람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으면 어떻게든 그 병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과연 정상이라는 게 존재할까? 때로는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늘 아픔과 상실의 연속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정신병은 결국 상실의 병이다. 무언가를 잃었는데 그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은 갈 곳을 잃고 헤맨다. 저자는 상실로 인해 힘들다면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고 한다. 정신병은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솔직한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면서.

이 책을 통해 내가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기분이 나쁘면 그 즉시 표현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엄마에게 '괜히 일 만들지 말고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그 서운함을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민준과 부모님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엄마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을 뿐,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민준의 엄마가 "민준이는 뭘 하든 중간에 포기할 때가 많았지"라고 말했을 때, 민준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알려준다. 엄마도 너를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우리가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다고, 너를 믿지 않는 건 절대 아니라는 말이 왠지 우리 엄마가 하는 말 같아서 나까지 마음이 풀려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마음에 킬리만자로를 품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죽음이든 이상향이든 천국이든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닐까?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정상까지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정상까지 못 가고, 산 중턱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또 어떤가.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니었을까?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처럼 저자에게 이 책은 스스로의 삶의 기록이자 살아온 흔적이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작은 위로를 건넨다.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 없이(감쪽같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아직도 아픔과 마주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저자에게, 그 글쓰기가 상처를 넘어 빛나는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똑같은 아픔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분들에게 새로운 아침을 열어주기를... (하) 권에서도 그 희망찬 여정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스마일의 월 1,000만 원 버는 유튜브 첫걸음 가이드북 - 누구나 쉽게 따라 하는 AI 활용 유튜브 수익화 가이드
구스마일(구태한) 지음 / 한빛미디어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꾸준히'라는 말을 듣자마자 생각나는 것이 매일 출근하는 남편과 매일 서평을 올리시는 인디캣님이었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학생들과 직장인들, 매일 아이들 챙기는 주부님들 이렇게 매일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하시는 분들을 존경한다.

나도 올해 초에 1일 1책 리뷰에 도전해 봤는데 최고 기록 22권 쓰고 포기했다. 그래도 매일 리뷰하시는 인디캣님이 계셔서 자극이 되었는지 서평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작심삼일인 내가 이렇게 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아주 기특하다. 유튜브는 꾸준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나에게는 무리인 것 같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시작했다 포기하는 이유가 실행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령 실행력이 있더라도 꾸준히가 가장 어렵다. 어떤 일이든 처음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식는다. 영상 하나를 만드는 것도, 꾸준히 업로드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인디캣님은 서평뿐만 아니라 동영상 리뷰까지 늘 꾸준함 그 자체가 귀감이 된다.

인디캣님의 동영상 리뷰를 볼 때마다 다양한 효과와 자막이 멋있어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동영상 리뷰까지는 못하더라도, 동영상에 어떻게 글자도 넣고 편집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물어봐도 알려주시겠지만,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동영상 편집 어떻게 해요?"라고 물으면 "잘~"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동영상 편집은 캡컷, 다빈치 리졸브, 브루 같은 무료 프로그램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은 딱 나와 같은 초보자들이 보는 책이다. 어렵지 않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학으로 유튜브를 시작해서 월 1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구스마일 님이 터득한 수익 다각화 전략 등의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알아낸 노하우와 AI를 활용해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유튜브 주제를 정해야 한다. 취미 생활, 게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 언박싱 리뷰, 테마 여행 리뷰 등 다양한 콘텐츠 아이디어 및 저작권 관련 내용과 제작사와 협의된 작품인 화이트 리스트를 받는 방법도 나온다.

그런데 나처럼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다면? AI를 이용해서 마치 식물을 키우는 마음으로 천천히 채널을 성장시켜 나가라고 한다. 수익성 높은 주제,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업용으로 유튜브 활용하기, 채널 이름 정하기, 캔바에서 채널 로고 사진 만들기, 첫 영상을 올리기 전 채널에 적용하면 좋은 설정 등 꿀팁이 가득하다.

'구스마일의 돈 버는 유튜브 추천 노트'와 '초보 유튜버를 위한 Q&A 코너'도 딱 내가 궁금했던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면 영상은 일주일에 몇 개씩 올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초보자에게는 일주일에 2개의 영상이 가장 적당한 빈도라고 한다. 너무 적게 올리면 성장 속도가 느리고 너무 많이 올리면 채널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올리다가 몇 개월 쉬다가 또 하나 올리고 그러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은 일정한 업로드 패턴을 유지하는 채널을 선호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신이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업로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내가 궁금했던 영상 편집은 기초 3단계만 알면 되었다. 컷 편집, 자막, 효과다. 효과는 필수 요소가 아니니 컷 편집과 자막 넣기만 배우면 된다. 특히 '구스마일의 돈 버는 유튜브 실천 노트'에서 PC 화면 녹화에 최적화된 OBS Studio라는 라이브 및 녹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는데, 무료라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사용 방법은 유튜브 검색.

브루(Vrew)는 배울 필요 없이 설치 과정에서 나오는 튜토리얼만 보고도 바로 사용할 수 있고 활용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AI로 자막 받아쓰기 기능이 뛰어나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AI 캐릭터가 책을 읽어주는 걸 봤는데 그것이 브루에 있는 AI 성우 기능이었다. 입력한 자막을 AI가 읽어주는 기능으로 퀄리티가 정말 놀랍다.

Gemini에서 검색을 하면 AI 가 검색 내용을 읽어주는데 사람 목소리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AI가 발전했음을 느낀다. 저자의 지인은 대본을 작성하고 AI로 더빙해서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댓글에 목소리가 예쁘고, 발음도 정확하다는 글이 있어 AI 목소리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분도 많다고 한다. 내 얼굴도 노출할 필요가 없고, 내 목소리도 노출할 필요가 없다. 이젠 개인 프라이버시 노출이 싫은 사람도 유튜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네이버의 클로바 노트 앱으로 강의를 텍스트로 변환해서 내용을 정리할 때 사용한다. 그런데 클로바 더빙도 있다. 출처만 표기하면 비영리 채널에서 매월 다운로드 20회, 글자 수 15,000자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먼저 성공한 AI 더빙 서비스인 타입캐스트도 있고, 브루에서도 유료 구독을 하면 더욱 자연스러운 음성과 다양한 성우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클릭률을 높이는 방법과 시청 지속 시간 늘리는 방법, 숏폼과 롱폼의 효과적인 사용법, 알고리즘을 망치는 나쁜 습관, 채널 운영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잘 되는 채널의 10가지 공통점, 유튜브 알고리즘이 상단 노출을 결정하는 기준들을 알려준다. 나는 뒷부분에 나온 다양한 용도별 AI 이용법이 큰 수확이었다. 프롬프트를 자세하게 입력하면 AI가 대본도 척척 써준다. 하지만 독창성이 중요하므로 센스 있게 AI를 이용하는 법을 배워보자.

특히 광고 제안 메일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기억에 남는다. 해커들은 광고 제안을 하면서 첨부파일을 열도록 유튜버들을 유인한다. 첨부 파일을 클릭하면 멀웨어를 이용해서 계정을 탈취하고, 그 채널에 가짜 광고 영상을 올리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한다. 나도 옛날에 페이스북 계정을 해킹당해 이상한 사진들이 올라온 적이 있어서 바로 계정을 삭재한 경험이 있다. 채널이 성장할수록 해커들의 표적이 되기 쉬우니 아주 조심해야 한다.

그동안 유튜브를 보면서 왜 유튜브에는 영상을 올리는 곳이 없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으로 궁금증이 해결됐다. 유튜브 스튜디오라는 별도의 앱을 이용해야 했던 것이다. 유튜브는 콘텐츠를 보는 곳이고, 유튜브 스튜디오는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하는 곳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걸 나만 몰랐나?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이미 절반은 시작한 것이라고. 왜냐하면 하고 싶다는 마음은 실행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유튜브를 시작하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나는 굳이 수익을 내지 않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영상을 올린다면 뿌듯할 것 같다.

p.5 성공이란 남들보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기행 : 변경의 사람들 - 경계와 차이를 넘어 사람을 보다
김구용 지음 / 행복우물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길에서 마주친 풍경,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게 되는가? 여행은 자아를 대변하고 완성해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글은 기행문이다. 단순히 중국의 변경을 여행하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저자의 생각을 적었다. 여행이 너무 힘들면 나는 그냥 집으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작가님이 멋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엄청 힘들고, 황당하고, 아슬아슬한 여행을 따라갔더니, 책장을 덮는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전하고 축복받은 나라인지 새삼 감사의 마음이 솟구쳤다.

p.80 실상 여행은 종종 고행이나 다름없다. 그 과정 중에 무엇을 느끼고 남길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불쾌한 경험만 남길 것인가? 아니면 그 경험을 통해 사유를 확장하려 노력할 것인가? 티베트에서는 유난히 그 선택을 자주 해야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한 풍습은 조장(鳥葬)이다. 처음에는 게으름을 조장한다? 아니면 우리 조의 조장? 을 생각했는데 한자를 보니 새 조(鳥) 자이다. 새🐦로 장례를 치른다고? 맞다. 그 새는 독수리다.

티베트고원 기후 특성상 시체가 안 썩어서 매장도 못하고, 척박한 고원이라 나무가 없어서 화장도 못하니까 조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신을 토막 내고 썰어 독수리에게 먹인다. 다 먹고 난 뼈도 잘게 빻아 보릿가루와 섞어 독수리에게 준다.

시신은 윤회를 위해 버려진 껍질로, 독수리에게 보시함으로써 영혼이 극락 왕생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새가 영혼을 극락으로 가도록 돕는다는 뜻도 있다. 하늘 장례라는 뜻의 천장(天葬)이라고도 한다. 시신을 독수리가 먹어서 하늘로 데려다준다는 의미이다.

처음 듣는 문화라 엽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보시의 가장 높은 경지가 몸을 바치는 것으로, 불경에도 몸을 호랑이에게 줘서 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후에 시신을 독수리에게 먹이는 것은 내 삶의 마지막 선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땅속에서 썩는 것보다는 조장이 나을 수도 있을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해를 하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치킨은 닭의 시체이고 소고기나 돼지고는 역시 소와 돼지의 시신 아닌가.

위구르 족은 한족을 아주 싫어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족은 자부심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내 위구르족은 한족을 '중국 것들'이라며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한족들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부터 들어와서 위구르 사람들이 살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겨댄다는 것이다. 최고급 교육을 받은 인재에게 중국 정부는 농사를 지으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냐며 울분을 토한다. 한족들은 그래서 다 나쁜 놈들이다.

좋은 직업은 다 한족이 차지하고, 위구르족에게는 아예 기회 자체가 없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건 등골에서 뱀이 스멀거리듯 기분 나쁜 일이라는 표현이 확 와닿았다. 하물며 그 이유가 자기 잘못이 아닌 타고난 원죄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나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차별은 정말 서럽고 기분 나쁠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여행 중에는 내가 들어도 화가 나는 어이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차별이 아니라 아예 상종을 하고 싶지 않다.

서유기에 화염산이라는 곳이 나오나 보다. 저자가 이 화염산에 갔는데 차가 이상한 위구르족 토기 공예품 전시관에 내려줬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매표소 직원에게 화염산이 어디냐고 물으니, 매표소 아가씨가 저자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뭐 이런 병X이 다 있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네가 서 있는 곳이 화염산인데요."라고 대답했단 말에 생각 없이 읽다가 빵 터졌다.

화염산은 투루판 인근을 동서로 100km나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이다. 거칠게 마모된 산 옆면이 세로 방향으로 지그재그 문양을 그리고 있었는데, 흙마저 붉은색이라 강한 햇빛 아래선 충분히 불꽃 모양으로 보일만했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사진은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포도구 가는 길에 볼 수 있다.

투루판에서 누군가 '우루무치 - 이닝 - 쿠처' 구간을 버스로 가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정말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허리가 아파서 눈물이 났단다. 생각 없이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작은 유머에 웃게 된다.

나는 코라를 도는 동안 등에 포대를 멘 장족 아이들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열서너 살 남짓한 아이들은 코라를 돌면서 사람들이 버려 놓은 쓰레기를 수거한다. 학생들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쓰레기를 주우면서 코라를 돌면 보람도 있고, 공덕을 쌓는 일이라며 안 힘들단다. 자기 덩치만 한 포대자루에 무거운 쓰레기를 가득 채워 코라를 도는 아이들. 비록 때가 고질 꼬질한 얼굴들이었지만, 눈은 티 없이 맑고, 미소는 싱그러운 그 아이들이 성자(聖者)였다는 저자의 말에 어쩌면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닐까 싶다.

일상에서 기쁨을 찾고 평범한 삶 속에서 성자의 모습을 보여 준 아이들. 저자는 삶의 원칙이 철저하게 신앙에 맞춰진 그들의 생활방식을 무의미한 삶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시대를 역행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언뜻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숭고함을 발견한 저자는,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훌륭한 업적을 세운 사람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환경과 일에 만족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도 참 아름답다.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라싸로 순례 가는 걸 꿈꾼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부터 라싸 포탈라궁까지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두 팔꿈치와 무릎과 이마의 5가지 신체 부위를 땅에 붙이는 절인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삼보일배(三步一拜)의 수행을 하며 걸어간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 8화에 오체투지가 나오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니 더 실감 났다. 몸을 많이 쓰면 마음이 맑아질까?

넓은 초원에서 말타기를 배워서 말을 타는 승마체험은 드라마에서 초원에서 말 타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분명히 땅 위를 달리고 있는데 하늘을 나는 착각이 든다고 한다. 넓은 초원을 총알처럼 내달리는 그 짜릿한 기분은 말을 달려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니, 나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떨어지면 평생 불구로 살 수도 있으니 생각만 하기로.

여행 중에 만난 많은 사람 중에 결국 인연으로 남은 건 친절한 사람이다. 이기적이고 불쾌한 사람들에게 지쳐갈 때쯤 그런 인연들을 만났기에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p.156 모든 삶에는 의미가 있다. 자신의 잣대로 남의 삶을 판단하는 건 오만이다. 반대로 남이 나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도 없다. 내 방향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나만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멋대로 세상공부
장복남 지음 / 좋은땅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침대 패드에 조그마한 나무 가시가 박혀 있다. 그 위에 누우면 따갑다. 그럼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제거하면 해결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방치하면 불편함이 없어지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소통을 통해 적극적으로 가시를 빼 버려야 한다. 저자의 지도 교수였던 W 박사님의 말이다.

실험실 구성원 중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따돌림을 받게 된 친구가 있었다. W 박사님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문제를 깔끔히 해결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내 생각에는 문제 행동을 지적하기 보다 경청을 통해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멋대로 세상 공부>에서 말하는, 세상 공부란 어쩌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내 멋대로 해답을 찾고, 주체적으로 행동해 나가는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W 박사님의 발견한 사람이 가시를 빼버리라는, 문제가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라는 말 역시 주체적인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소신 있게 행동에 옳기는 실행력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내 방식대로, 줏대 있게, 내 멋대로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첫머리에 이야기를 꺼냈다.

이 책은 대기업 임원의 도쿄 주재원 생활 5년과 본사 귀임 후 2년간의 멋대로 인생 여행기다. 멋대로, 나만의 방식대로 지내온 저자의 인생 여정을 읽고 나니,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현재를 잡아라, 오늘을 즐기라는 뜻이다. 현재를 즐기는 현재에 충실한 삶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책 속 이름은 J 상무다. 그는 단신부임이라 생활이 흐트러지기 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저 일만 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꾸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점이 훌륭하다. 나같으면 일만 하기도 벅찼을 텐데, 등산, 여행, 좋아하는 TV 시청, 일본어 공부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채워나갔다. 특히,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사진들은, 여행 가이드북에 나오는 뻔한 사진이 아니라 저자만의 독특한 시선이 담겨 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책에서 가끔 나오는 'J 상무는 운이 너무 좋다'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나까지 운이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1. 도쿄

일본으로 주재원이나 장기 출장 가시는 분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소소한 생활 꿀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는 분들에게도 흔치 않은 여행지 추천 같은 팁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일본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방문해 보려고 잘 보관해 놓았다

여행기가 참 좋은 게, 뇌리에 새겨진다고 할까?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레인보우 브릿지 사진도 기억나고, 알펜루트에서의 별들이 쏟아지는 하늘도 기억난다. 내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는 몽고에 가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 책으로 알펜루트에서 별 보기로 바뀌었다.

일본 회사에는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갈 때, 전체를 향해 인사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우리나라 식당에 도입해서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 때 종업원들이 다 함께 인사하는 식당이 있었나보다. 특히 일본 음식을 파는 술집에서는 일본어 인사말인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47개의 도도부현(都道府県)이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특별시, 세종특별자치시, 6광역시(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가 있고, 3특별자치도(제주, 강원, 전북)6일반도(경기도, 충청 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도)의 17개의 시와 도가 있다. 나도 저자분이 늘 검색을 하셔서 물들었는지 찾아보게 된 것이다. 일본 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사는 대전이 광역시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냥 서울시, 세종시, 대전시인 줄?

주말마다 등산을 하다가 일본 돌아보기로 방향을 전환하며, 의욕적인 생활을 하던 저자는 2019년 코로나로 인해 일본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2. 코로나

47개 도도부현 돌아보기를 못 하게 되자, 토요일은 승용차로, 일요일은 대중교통으로 도쿄 근교 지역을 돌아보기로 한다. 나는 코로나 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거의 집에만 있었는데, J 상무님은 주말마다 도쿄 주변 공원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멋대로 추억을 쌓아 나갔다.

일본은 매년 5월 1일을 중심으로 일주일 내외의 휴일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골든 위크라고 한다. 1년 중 가장 여행을 많이 다니는 시기이다. 저자는 2020년 골든 위크 때 10시간 이상을 걷는 걷기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2021년에도 했는데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물집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일본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인듯.

나는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지리를 잘 모른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처음 들어보는 장소를 말하면서 길을 물어보면 바로 핸드폰을 검색해서 알려드린다. 저자도 나처럼 어떤 할머니가 무사시 코야마 역까지 간다고 길을 물어보는데 지도 앱에서 찾아 알려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하지만 내가 감동한 것은 그다음이다. 백발의 거동도 완전치 못한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왜 혼자서 움직여야 했을지 궁금해하는 모습에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냥 기차에서 내려 알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친절한데, 할머니의 이면에 담긴 사연까지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울(憂鬱)이라는 한자의 울()자는 쓰기가 너무 어렵다. 그 안의 울창주 창(鬯)자도 어려운데, 이 모든 글자를 합쳐 해서 울(鬱) 자를 외우셨다니 정말 그 집념에 감탄했다. 나도 재미 삼아서 네이버 한자 사전의 필순을 따라 쓰며 외워 보기로 했다.

저자는 일본인 K 씨와의 술자리에서 젓가락 포장지에 이 울(鬱) 자를 직접 써서 보여주었다. 그 일본인 K 씨는 울(鬱) 자가 적힌 젓가락 포장지를 달라고 하더니, 잘 접어서 지갑에 넣었다. 그 이후 일본인 K 씨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본인이 느슨해진다고 느껴질 때마다 울(鬱) 자를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외국인도 한자 하나를 외우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 같다.

작심삼일인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본다고 독서를 시작했지만, 지속하기가 쉽지 않아서 서평단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게으른 나는 자꾸 꾀가 나서 서평단 안하고 드라마나 보며 놀고 싶었다. 이때 인디캣님의 꾸준한 포스팅과 동영상 리뷰를 보며, 남들이 말하는 블태기를 극복했다. 저자의 노력이 K 씨에게 도움이 되었듯, 나도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3. 퇴임

정년 퇴임을 앞두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파트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장 확실한 퇴임 준비 방법을 알았다. 퇴임한 날부터, 평일과 주말로 나누어 스케줄을 촘촘하게 짜서 항상 바쁘게 생활하면 된다. 그래야 정년퇴임 후 겪는 우울증인 은퇴 증후군에 빠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은퇴증후군을 퇴직 후 증후군(退職後症候群)이나 아내의 입장에서 표현한,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主人在宅ストレス症候群)이라고 부른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인해 본인 스스로 심리적 불안감과 우울 증세를 겪게 되는 현상이 퇴직 후 증후군이다. 아내도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던 남편이 정년 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

입장이 있으면 퇴장이 있듯,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현역에서 은퇴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누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정년 퇴임 다음에 오는 마지막 은퇴인,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떠날 때는 완전 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하게 웃으며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 돌아온 저자는 업무 시간 이외의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다가, 철학사를 공부하는 것으로 그 답을 찾는다. '멋대로의 우주, 뇌, 철학사' 요약을 읽으니 나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참에 인문 교양으로 이 부분을 읽으며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2019년 초부터 시작한 47개 도도부현 여행이 코로나로 인해 2020년 34번째 현에서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13개 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저자의 끈기가 정말 대단하다. 나 같으면 미련 없이 그만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여행을 계속 한 덕분에 나도 47개 도도부현 이름이라도 들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리얼한 지진 경험담은 일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싹 없애 줘서 좋았다.

은퇴 후, 저자는 원령공주의 무대가 되었다는 가고시마 현의 야쿠시마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통해 생의 다음 페이지를 쓸 준비를 하는 것도 굿아이디어다. 하지만 야쿠시마행 경비행기 이야기를 들으니 강풍이 불면 너무 위험해서, 만약 가게 된다면 배를 이용하자.

마지막은 도쿄에서 지인들과의 만남 이야기다.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직 젊으니 연봉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오래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으라고 했다. 결론은 "J 상무, 여전히 젊다. 뭔들 못 하겠어?"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뜻이다. 현재는 선물이라더니,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마음 챙김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버나드 쇼의 명언처럼 인생은 자기 만들기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만의 방식대로, 내가 택한 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며 살아온, 후회 없는 마음 챙김의 인생을 담은 <멋대로 세상 공부>. 작가님의 은퇴 이후의 멋진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