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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표범 - 상
최찬혁 지음 / 좋은땅 / 2025년 8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문 앞에 서 있으니 내가 부르지 않아도 오지만, 삶은 내가 적극적으로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삶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음의 증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최민준은 학창 시절 소중한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이 생을 마감한 충격 때문인지 조울증을 앓고 있다. 그의 삶은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에게 친구 C와 아들을 잃고 술집을 하게 된 술집 사장 K,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하루카를 통해 상실은 자신만이 겪는 아픔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조울증이 뭔지 사전을 찾아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힘든 병인지 알게 되었다. 저자가 극단적으로 감정이 요동치며 무너져 내리는 주인공 민준의 마음을 생생하게 표현해 낸 덕분이다. 고통을 이겨내고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색다른 위로를 건넨다.
p.34 약을 먹으면 감정이 다 죽어 버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그냥 무미건조해져. 마치 무언가에 덮여 있는 느낌이야. 숨 쉬는 것도 둔해지고, 감각이 다 무뎌져.
민준은 여자친구를 떠나보내고부터 이상하게 감정이 막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날은 바닥까지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서 조울증 판정을 받는다. 병명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더 실감이 났다고 한다. 내가 그냥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병에 걸린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 그러나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는다.
하루카의 어머니는 중학생 때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애들이 뭘 알겠냐고 말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아플 건 다 아프다고 하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어머니의 부재는 하루카에게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안겨줬다. 친구들은 말로는 위로하는척하면서도 그녀를 자꾸 따돌렸다.
하루카를 괴롭히는 정도는 점점 심해졌고, 책상 위에 누군가가 남긴 "너도 따라가"라는 메모를 본 순간 진짜로 엄마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더 이상 일본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던 아빠는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이민을 간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녀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괴롭힘을 당했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에스콰이어'에서 강효민 변호사가 과거 학폭 방관자였던 자신의 과오를 마주하고 살인죄로 기소된 학폭 피해자의 변호를 맡게 되는 내용이 나온다. 강효민 변호사와 엄마의 화해 장면은 마음이 찡했다. 학폭 피해자였던 하루카의 고통 역시 강효민 변호사의 학교 친구였던 학폭 피해자 김영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소윤이라는 이름이 싫어 김영미로 개명한 그녀의 삶도 하루카의 삶도 학폭이 없었으면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조금씩이나마 방관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무전 유죄가 아니고 정의가 이기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변화가 느껴져서인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성별과 국적, 인종은 물론 학폭의 피해자인 것, 조울증인 것 등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불평하기 보다, 인정하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 냈다. 세상이 귀 기울여 주지 않을 때, 종이 위에 쏟아낸 수많은 문장들은 저자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했다는 하루카 역시 자신이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평안함을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책 제목을 보고 나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생각나 가사를 찾아봤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하이에나는 무리 생활을, 표범은 철저한 단독 생활을 한다. 그래서 한 마리의 표범은 그 높은 킬리만자로의 정상까지 올라가 혼자 얼어 죽었나 보다. 책 표지에도 표범 한 마리가 눈 위를 걷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고독과 역경 속에서 홀로 걷고 있는 민준의 모습일까?
너무나 고독했던 하루카와 과거의 상실로 인해 괴로웠던 민준의 고독이 서로를 끌어당긴 것이었는지 민준은 하루카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런 우연과 아주 사소한 만남과 평범한 일상을 통해 민준은 삶의 의미를 조금씩 되찾는다. 작은 기쁨들을 다시 느끼게 된 민준은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삶에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덮인 정상에서 얼어붙은 채 발견된 표범이 등장한다. 아무도 왜 표범이 그 꼭대기까지 올라갔는지 알지 못한다며 삶의 의미와 죽음, 그리고 고독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작가는 이 상징을 민준에게 겹쳐 놓는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민준의 삶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혼자만의 싸움이다. 아무도 오르지 않는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홀로 올라가 죽은 표범처럼, 민준은 자신만의 고통과 싸운다.
표범이 왜 정상에 올라갔는지 알 수 없듯, 민준의 고통도, 우리가 사는 삶의 이유도 알 수 없다. 하이에나처럼 무리에 섞여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건지, 힘들어도 표범처럼 홀로 고독한 삶을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건지 정답이 없다.
p.308 민준 씨는 지금 약물이 정신을 잡아주는 중이에요. 그런데 생각을 약으로 잠깐 눌러 놓는 거예요. 마음속 바닥을 스스로 뒤집지 않으면 다시 곰팡이가 피어납니다.
저자는 정신병을 우리가 앓고 있는 삶의 한 방식으로 본다. 사람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으면 어떻게든 그 병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과연 정상이라는 게 존재할까? 때로는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늘 아픔과 상실의 연속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정신병은 결국 상실의 병이다. 무언가를 잃었는데 그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은 갈 곳을 잃고 헤맨다. 저자는 상실로 인해 힘들다면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고 한다. 정신병은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솔직한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면서.
이 책을 통해 내가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기분이 나쁘면 그 즉시 표현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엄마에게 '괜히 일 만들지 말고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그 서운함을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민준과 부모님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엄마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을 뿐,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민준의 엄마가 "민준이는 뭘 하든 중간에 포기할 때가 많았지"라고 말했을 때, 민준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알려준다. 엄마도 너를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우리가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다고, 너를 믿지 않는 건 절대 아니라는 말이 왠지 우리 엄마가 하는 말 같아서 나까지 마음이 풀려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마음에 킬리만자로를 품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죽음이든 이상향이든 천국이든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닐까?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정상까지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정상까지 못 가고, 산 중턱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또 어떤가.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니었을까?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처럼 저자에게 이 책은 스스로의 삶의 기록이자 살아온 흔적이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작은 위로를 건넨다.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 없이(감쪽같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아직도 아픔과 마주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저자에게, 그 글쓰기가 상처를 넘어 빛나는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똑같은 아픔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분들에게 새로운 아침을 열어주기를... (하) 권에서도 그 희망찬 여정을 기대해 본다.
